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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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은 그릇된 생각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사람의 육신은 조만간에 땅에 묻혀 퇴비로 변한다.사람들은 흔히 필요성이라고 물리는 거짓 운명의 말을 듣고는 한 옛날 책의 말처럼 좀이 파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갈 재물을 모으느라고 정신이 없다.그러나 인생이 끝날 무렵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인생이다. (-19-) 


나는 빵에 탄산 소다나 기타 어떤 산이나 알칼리도 넣지 않았다.결국 내가 사용한 방법은 기원전 2세기에 로마의 정치가 카토가 권했던 빵굽는 법을 따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그가 권하는 방법을 나는 이렇게 옮겨보았다"밀가루 반죽은 다음과 같이 한다.먼저 손과 반족 그릇을 잘 씻는다.그릇 속에 밀가루를 담아 서서히 물을 부어 잘 이긴다.반죽이 된 다음에는 빵 모양을 만들어 뚜껑을 덮고 굽는다."즉 빵 굽는 솥에 넣고 구우라는 뜻이다.효모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도 없다.나는 이 생명의 양식인 빵을 항상 먹은 것은 아니었다. 한때 호주머니가 한 달 이이나 빵의 모습을 구경조차 못 한 때도 있었다. (-100-)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가지나 천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문명생활이라고 하는 이 험난한 바다 한가운데서는 구름과 태풍과 유사와 그리고 천 가지하고도 한 가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하므로,배가 침몰하여 바다 밑에 가라앉아 목표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추측항법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뛰어난 계산기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141-)


나는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그로 하여금 사물의 정신적인 면을 보게 만들 수는 없었다.그가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최고의 개념은 동물 역시 이해하리라고 생각되는 '단순한 편리'같은 개념이 고작이었다.하긴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할 수 있으리라.내가 그의 생활방식에 어떤 개선을 제시하면 그는 별로 후회하는 기색 없이 이미 늦었다고만 대답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정직과 기타 여러가지의 미덕은 철저히 신봉하고 있었다. (-227-)


11월 독서모임 책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게 되었다.여러 사람들이 선택한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판본도 다양하였고, 월든을 쓴 저자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 문명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호숫가의 숲에 머물면서 자급자족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직접 물고기를 잡고, 직접 집을 지으면서, 추위와 더위를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온 데이비드 소로의 자연 그대로의 삶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월든>의 탄생의 사유가 되었다.하지만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는 <월든.은 사람들에게 관심 받지 못하였다.대중들에게 소로의 삶은 현실과 동떨어진 삶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리고 그가 2년동안 호숫가에 살았다는 것은 데이비드 소로 역시 온전히 자급자족적인 삶을 추구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독자들의 따가운 비평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사럼들은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그건 우리의 삶이 이 책이 출간될 당시와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이제 우리는 자급자족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으며,굳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필요도 없다. 그건 우리의 삶이  자연과 벗하는 삶보다는 도시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가는게 더 익숙해 졌기 때문이다.편리한 삶을 살아가면서,맛과 멋에 중독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우리는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켰다.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 곰곰히 따져 볼 여지가 있었다. 자연에서 멀어짐으로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즉 도덕적인 가치 추구에서 멀어지게 되었으며, 자연의 가치보다 경제적인 가치를 우선하였다.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우리 스스로 자연파괴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고 있다. 어쩌다가 잉여생산물을 만들었던 과거의 자본의 민낯은 어느덧 사라졌으며, 과잉생산 ,과잉 소비가 일어남으로서, 생산하였지만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서 생산물을 소비하지 않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농미은 애를 써서 농산물을 생산하였지만, 인건비가 나오지 않아 그대로 갈아엎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가게 되었으며,그런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해서 그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소로는 바로 이런 우리의 현실들을 미리 예측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대인의 삶에 있어서 버려진 삶을 들여다 보고 있다.살아가면서 놓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들여다 보게 되고, 복잡함에서 벗어나 간소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건 삶의 복잡함이 가져다 주는 분주함에 대한 부작용이 반드시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반목과 갈등을 빚어내게 된다. 즉 소로의 자급자족적인 삶은 자본의 논리에서 빗겨나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면역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속하고 있다. 나와 너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과 연대, 그 가치의 회복이 바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현대인들의 삐뚤어진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환적인 사횔의 가치 회복,우리 스스로 편리한 삶에 도취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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