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정의롭게 사는 법
정민지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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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자란 이름을 팔아먹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어느 하루는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연락을 했다. 등산의류 매장에서 옷을 하나 샀는데 집에 와서 가격표 스티커를 떼보니까 엄마가 지불한 가격보다 더 쌌단다. 한번은 동생이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가는데 앞 화물차에서 떨어졌는지 낙하물이 동생 차에 떨어지면서 큰일 날 뻔 했다. 이럴 때마다 우리 가족은 "이런 건 왜 기삿거리가 되지 않냐!" 며 무슨 신문고라도 되는 듯 나에게 전화를 해댓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의료 사고부터 중고나라 사기, 뺑소니 누명 쓴 일까지.. 애매하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뭣도 모르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달라거나 기사를 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자라고 전화 한 통 그쪽에다가 해달라는 거였다. 기자가 지켜보고 있다. 기사로 나갈 수도 있다,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그쪽에서 충분히 '쫄'거란다. 꼼수 안 부리고 정석대로 처리할 거라며. (p144)


뭔가 대단히 어긋나 있는 이 세상에서, 사는 건 그저 스스로를 다독여가면서 한발씩 가는 것 같다. 한때 까막눈으로 낙제를 받더라도 그게 내 인생 전체의 낙제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실수에 관대해졌다. 결국 나는 그 아이의 희망사항을 조금 뭉뚱그려 기사에 담아주면서 빌었다. 너의 평범한 꿈에도 기쁨이 깃들기를, 좋은 어른이 되기를 , 우리 사회에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나부터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기를.. (p189)


함께하는 연대에 다다르지 못하고 그저 연민 수준에 그쳐버리게 만들면서 우리의 일을 타인의 비극으로 만드는 구조에 나 역시 일조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너무나도 쉽게 다른 사람의 고통과 불행을 소비해버리는 세상이다, 불구경하듯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본다. 돌아서면 잊혀지고, 하루 지나면 어제의 뉴스가 오늘의 뉴스에 밀리고,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뉴스가 덜 중요하더라도 '쎈 그림'을 갖고 있는 뉴스 앞에서 무기력하게 뒤로 밀려나는 이 사회에서,시청자인 당신은 뉴스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나요?(p209)


저자 정민지는 기자였다. 25살 기자가 되어서, 솔직하고, 고집쎄고, 철부지이면서, 당돌한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사회에 내비치게 된다. 세상의 불공평함과 부조리함을 일거에 모두 지워버리겠다는 그 신념으로 기자가 된 저자는 10년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무디어져만 가게 된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낮아지게 되었고, 네 남매의 둘째 딸로서 살아온 궤적들,열등감은 사회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버렸다. 법과 정의가 살아있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 나서면서, 세상의 양과 음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그 반복된 일상들이 한 권의 책에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이 책제목이 가지는 무게감은 조금 남다르다. 책 제목만 보면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지지만, 이 책은 에세이와 사회를 오가면서 , 세상의 프리즘을 자신의 눈으로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저자는 내가 왜 기자가 되었는지 되물어 보고 있으며, 자신이 보는 세상과 세상사람들이 보는 세상을 동시에 비추고 있다. 살아가면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그 무언가들, 기자로서 본분을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서 보여지는 그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인가 많이 흔들렸을런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들, 자영업자로서, 농민들이 마주하는 그 뼈져린 절망감은 스스로의 처절함으로 다가가게 된다. 농약을 마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고, 염산을 사용하는 어부들을 보면서 저자는 기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런지, 그 하나 하나 저자의 생각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으로서의 본분이며, 사람사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각자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저자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서 , 그것의 마지막이 허망함으로 다가오더라도 작은 밀알이 되기 위한 노력들이 세상을 바꿔 나간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기자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작가로서 새출발하는 저자의 다음 삶이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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