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일기 -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의 풀빛 동화의 아이들 30
김영숙 지음, 장경혜 그림 / 풀빛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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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까지 찾아온 외국인이 인사까지 건네니 모두 의아해했다. 노순경이 나를 스코필드 라고 소개하며 감방까지 찾아온 이유를 말하자 수감자들의 긴장된 표정이 풀리는 것 같았다. 어린 소녀가 감방에 있는 것이 애처로워서 노순경에게 누구냐고 물으니 이화학당의 유관순이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유관순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학생으로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인 천안에 내려와 아내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어린 여학생이 어디서 그런 용기와 배포가 나오는지, 참으로 대견하고 존경스러웠다. 노순경은 함께 갇힌 사람들을 차례대로 소개해 주었다. 마흔을 넘긴 어윤희 씨는 개성의 감리교 전도사였다. 민족 독립을 강조한 전단을 유포하며 3.1운동의 불을 댕겼다. 정신 여학교 이애주 학생은 고문으로 목덜미를 다쳐 싸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p112)  


드라마 제중원이 생각 났다. 올리버 애비슨은 우리나아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의 4대 원장이었고,그의 소개로 인해 캐나다에 살고 있었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조선의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 몸담게 된다. 세브란스 의학 전무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치고, 서양식 의술을 활요해 병을 고쳐 나갔던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 감점기 시절 조선의 어두운 사회적인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1919년 3월 1일 일어난 3.1 독립운동을 직접 보았으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기로 직접 기록으로 남겼던 그의 삶 속에는 조선의 역사적인 안타까운 현실 그 자체였다. 파리강화회의의 실패, 고종 임금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3.1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그 안에는 유관순 열사의 3.1운동이 있다. 종로 탑골 공원에서 시작한 3.1운동은 조선 팔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그로 인해 유관순은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스코필드 박사는 외국인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조선인들의 안타까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게 되는데, 직접 서대문 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를 보았던 스코필드 박사는 조선의 독립이 바로 자신의 일인 것처럼 직접 나서게 되었으며, 일본인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4월 18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직접 보게 된다. 조선인들이 일본순사에 저항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본인이 죽는 상황이 빚어지게 된다. 3.1운동을 빌미삼아서 일본인은 만세 운동을 해왔던 남자들을 제암리 교회에 가두있고,불을 지르는 잔인한 행위를 일삼게 되는데, 제암리에서 보았던 잔혹한 모습은 가까운 수촌리에도 똑같은 형태로 자행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일본인에 의해 집단 학살을 당한 사실을 보게 된 스코필드 박사는 몰래 가지고 온 카메라로 직접 사진을 찍었다. 그가 남겨놓은 사진과 기록들은 부상을 당한 자신의 다리를 활용해 사신을 몰래 들고 해외로 나가는데 성공을 하게 되었고, 세계의 언론은 스코필드 박사로 인해 조선의 참상이 고스란히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그가 보여준 외국인으로서의 모습은 바로 조선 독립의 원천이 되었고, 왜 조선이 독립되어야 하는지 명분을 쌓아가게 되었다. 동아시아 변방의 힘없는 나라 조선이 그렇게 일본인에 의해 자행되었던 민족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독립할 수 있었던 이유, 3.1 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인 이름 석호필, 캐나다이름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며, 우리의 역사적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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