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이 우에니껴? 푸른사상 산문선 2
권서각 지음 / 푸른사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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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은 종합고등학교의 유일한 진학 반이었다. 촌놈들이었지만 꿈은 야무져서 팔뚝에 볼펜으로 서울대라고 써 놓고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60명 가운데 그런 용기가 없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나는 이방인으로 삼년을 보냈다는 생각이다. (p232)


"니는 호가 머로?"
"나는 쥐뿔이다."
"쥐뿔이 머로?"
"쥐뿔도 모른다는 뜻이다. 거북하면 서각(鼠角)이라 해라."
"야! 니 호 참 좋다. 이느마 머 좀 아네."(p243)


이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소수서원이 있는 순흥에는 배점이라는 마을이 있다. 배순의 대장간이 있던 마을에서 유래된 땅이름이다. 배점은 소수서원에서 10리가량 떨어져 있으며, 소백산 발치에 있어 물이 맑고 풍광이 수려한 곳이다. 배순은 이곳에 대장간을 짓고 무쇠로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도왔다. 쇠를 녹여 물건을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고 간혹 물건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고객에게 미리 말하고 값을 낮추어 받았다. (p252)


김안로는 영주 출신이었다. 영주는 황의 처가가 있는 곳이며 그의 고향은 영주에서 가까우니 동향 후배라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동향의 후배가 과거에 급제하면 응당 정권의 실세인 자기에게 풍기 인삼 한 박스와 안동소주 한 짝을 싣고 저기 문전에 이르러 인사함이 합당하거늘 어찌 인사를 오지 않느냐? 아직 권력의 뜨거운 맛을 알지 못하니 그것을 알려주려 함이었다. (p283)


"그만하자!"
그리고 그들의 완력이 끝났다. 누군가 말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야 안 되나?"
"이깐 놈 살릴 필요 없다!"
"그르니 우에노...."
이른바 의리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들은 늘어진 재갑을 들쳐 없고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시켰다. 그것이 이 고을의 의리라는 것이다. 병 주고 약 준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실천했다. (p21)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지매가 마늘을 까고 있다. 흘깃 보면 그게 인사다. 어디에 앉으라는 말도 없다. 소님도 없고 하니 빈 자리가 많은데 아무데나 앉으란 뜻이다. 손님은 엉거주춤 서서 대략 난감하고 부아도 난다. 
"보소! 사람이 왔는데 일어서지도 않니껴?"
화가 나서 한마디 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간단명료하다.
"앉으나 서나 값은 같으이더."
돈 내고 음식 먹고 가면 될 일에 무슨 긴 말이 필요하겠느냐는 뜻이다. 앉아서 주문을 하고 밥을 먹어보면 가게 모양새보다 음식이 푸짐하고 정갈하다. 김치가 바닥이 난다.
"아지매 ! 김치 한 접시 더 주소!"
"......"
아지매는 대답이 없다. 부아가 오르려 한다, 내 말을 듣지 못한 건 아닐까. (p31)


"중국 깨는 원래 까만 물이 나오나?"
"자네 속았네. 그건 흰 깨에 물들인 걸세."
배려 선생은 다시 집집마다 전화를 해서 사과했다. 그의 고모가 말했다.
"니는 선생이라 카면서 우에 그런 깨를 샀노?"
배려 선생이 볼멘 소리로 대답했다
"그르이 우에니껴?"(p38)


그는 그 참기름을 샀다. 산나물에 조금만 쳐도 향이 좋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참기름에 향이 없다고 했다. 병 주둥이 부분만 참기름이고 아래쪽에는 식용유라는 것이다. 할매는 기름이 잘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았던 것이다. 할매에게 또 제대로 당했다. 아내가 속이 상했다.
"우째 할매에게 속니껴?"
한참을 난감해 하다가 그가 대답했다.
"그르이 우에능고?" (p41)


봉두와 내가 만나는 날은 대개 장날이 아니면 휴일 오후였다. 함께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사람 사는 느낌도 충전하고 시골 할머니들이 난전에 펴 놓은 푸성귀도 조금 사면 우리들의 시장 순례는 끝나고, 대포집 '끝순네 집'에 가서 막걸리 한 사발에 파전 한 접시로 파티를 연다. 그러면 파전보다 더 좋은 봉두의 안주가 차려진다.
"요즘 명예퇴직인가 뭔가 하면 퇴직할 때 교감으로 승진시켜준다며?"
한잔 같이 마셨다. (p80)


한권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호기심에서였다. 그동안 작가 권서각 선생님을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번 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대면대면하고, 서먹서먹하고, 잘 알지 못하는 사이, 그분의 문학세계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출간된 책을 훑어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이 책의 첫표지에 보자면 '권서각 산문집'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저자의 본명은 권석창 선생님이며, 저자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영주와, 저자의 고향 순흥에 대한 다양한 소회들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영주인들이 느끼는 영주인만의 정서들이 이 책에 기록되고 있으며, 영주 사투리가 함께 들어가 있어서 익숙함과 낯설음이 공존하고 있다. 문학 청년을 꿈꾸었던 소년은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었고,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서 우리 앞에 놓여지고 있다. 더 나아가 책에는 영주 사람이라면 ,5060세대라면 한번쯤은 가봤을 "끝순네'가 소개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저자의 추억의 패턴과, 삶에 대한 기억의 잔상들이 책에 고스란히 흩뿌려지고 있었다. 막걸리와 파전 하나면 ,누군와도 자신의 삶을 드러내 비출 수 있었으며, 영주인들이 모여서 삶의 희노애락을 논하였던 그곳은 변화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그르이 우에니껴?"는 자포자기하면서도, 관조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영주사투리다. 나의 친할매가 주로 쓰던 단어였고, 시골 할매들이 주로 사용했던 문장이다. 젊어서부터 배운 것 없고,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들이 많았던 그분들의 삶의 연속적인 모습들, 그들에게 좋은 날과 슬픈날이 교차되고, 그들은 슬플때, 화가 나는 순간에 '그르이 우에니껴?' 이 한마디로 자신의 속상한 것들을 정리해 버렸다. 특히 배우지 못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이 내 앞에 놓여질 때, 그 분들은 '그르이 우에니껴' 로 자신의 삶을 비워 나갔으며, 새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갔다. 책에는 지극히 영주인의 정서가 묻어나 있으며, 때로는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면서도, 그 안에 숨어있는 그들의 따스함과 온정이 숨쉬는,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연속과 패턴들이 엿보이는 한편의 서사적인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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