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연애
한나 지음 / 유노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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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경보

얼마 전까진 봄비가 반가웠다.
무료한 일상 가운데 오는 단비가 고마웠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다.
온종일 이런 비 소식이 전해졌다.

"전국에 상당량의 비가 내릴 것으로예상됩니다.
호우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일부 지역에 폭우가
예상되니 시설물 관리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젠 모두가 하늘만 본다.
비가 너무 많이 올까 봐 혀부터 찬다.

오지 않을 땐 내내 기다리고
조금 내릴 땐 원망하다가
기어코 와주자 반가워서
그 마음 금세 잊고
이젠 너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

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늘 하루,
사랑을 대하는 우리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았다. (p25)


습관적 거짓말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참 하기 쉬운 결심.

사랑하기
이별하기
동감하기
결정하기


곤란한 순간에 책임회피하기에
참 적당한 말.

"나한테 해준 게 뭐야?"
"당신한테 실망했어."
"당신 마음대로 해."

이별을 기다리던 사람이
결국 상대를 지치게 만든 뒤
나오게 만드는 무책임한 대답

"나도" (p39)


이별 웅덩이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러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추억 웅덩이
미련 웅덩이
이별 웅덩이

나는 이별 웅덩이라는 거대한 웅덩이에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딛고 일어서려 해도 발이 닿지 않아
한참을 허우적 거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든 내가 원하면 손을 내 줄 것처럼,
하지만 내가 스스로 이곳에서 나오길
응원하며 조용히 거기에 서 있었다.

잠시 고민이 됐다.
눈물로 범벅된 짠물과
가위눌린 듯한 무거운 공기.
그 사이에서 힘겹게 호홉하면서도

이 곳
이별의 웅덩이.
이곳에 계속 있다 보면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당신도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때 둘이 되어 손잡고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당신은 웅덩이 밖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얼 하고 있냐며 이제 그만 잊으라고 손짓한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며 가슴 아파한다.

결국 나는 당신으로 인해
이 깊고 긴 웅덩이를 빠져나온다.

어쩌면 당신은 
한 번도 빠지지 않았을웅덩이에서
나는 다시는 빠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아
남은 추억을 모두 쏟아버린다. (p69)


연애는 남녀의 기대치에서 시작된다. 남자가 여자에 대한 기대치, 서로의 기대치와 기준이 채워질 때 두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진다.그 명분의 깊이는 사랑을 지속하게 되는 힘이 된다. 공교롭게도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별을 선택하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고 말았다.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가득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비가 오지 않아 가물때면, 비가 오길 바라는 사람의 마음, 정작 비가 올 때는 비가 내가 원하는 양만 오길 바라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가뭄에 대한 걱정이 있고, 비가 오면 홍수를 걱정한다. 마음이라는 것은 참 오묘하며, 때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어른들의 연애에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게 되고, 이기적인 사랑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니까 거짓말을 하게 되고, 사랑하니까 변명하게 된다. 이별의 웅덩이에 빠지게 되면서, 미련과 추억에 허우적 거리게 된다. 연애하면서 차곡차곡 쌓아나갔던 행복한 기억들이, 이별로 인해서 행복의 순간이 불행의 순간으로 바뀌고,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은 허우적 허우적 거리면서, 웅덩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 그런 것들 하나 하나가 공감이 갔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사랑하면서 마주했던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버리고 싶어지는 마음들, 가벼운 말 한마디 한 마디 속에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책임지지 않는 가벼운 말들이 오고 가면서 느끼게 되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들은 우리 스스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이유였다. 가벼운 말과 가벼운 말들 사이에 책임회피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과 무책임한 마음이 공존한다. 그 가운데서 연애를 통해 나의 이기적인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마음들은 무책임한 말들을 나열하는 또다른 이유였다. 그래서 사랑하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더 많이 후회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나 이별할 수 밖에 없기에 공감가며, 때로는 그 공감을 직접 적어보게 되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적어보면서, 몸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느껴 보면서, 몸으로 기록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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