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크르
서진연 지음 / 답(도서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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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경고였을 것이다. 그 일로 회원들은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탈퇴란 곧 아바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 죽은 사람을 없애기 위해서는 다시 죽여야 한다는 것,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문제였다. 사건을 목격한 대부분의 회원들이 충격에 빠졌다. 
세영도 충격을 받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영도 사무실에서 '부재중' 모드로 그 사태를 지켜봤고, 그래서 저녁에 남편이 앞동에 사는 여자가 뛰어내렸다는 말을 전하는데도 적절히 반응해 주지 못했다. 게임 속 아바타일 뿐인 남편이 하는 말들이 상황에 맞게 프로그래밍된 언어인지, 카멜이 남편의 입을 빌려 보내는 어떤 메시지인지 의구심마저 일었다. 세영은 바로 남편의 아바타를 재우고 서버와의 접속을 끊어 버렸다. (p173)


소설 제목 시뮬라크르는 복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들뢰즈는 근대에 들어와 '시뮬라크르에 대해서 재정의하게 된다. 그 어떤 것도 원본이 없고, 복사본이 없다는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소설은 그 제목이 가지는 의미와 절묘하게 엮여지면서, 스토리 전개가 형성되고 있다. 이 소설은 철학과 SF 적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있으며, 소설 속 주인공 완과 루 , 세영과 혁이는 각자 직업을 가지고, 서로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세상에 놓여진 문제들은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서, 변화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으며, 인간의 속도를 넘어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욕망을 분출하려고 하며, 가상과 현실이 교차되면서, 인간은 현실에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가상의 세계를 스스로 창출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의 나와 가상의 또다른 아바타로서 나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으며,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세계는 어떻게 세상을 바꿔 놓는지 눈여겨 볼 수 있다. 소설은 그로테스크하면서, 대재앙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방사성에 노출되어 있는 세상은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고,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은 인간이 꿈꾸는 세계 그 자체였으며, 인간이 상상 그 자체가 미래에 투영되었다. 설 속에서 보여지는 미래상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소설 속에서 세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영은 카멜에게서 서버를 구축하는 모종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다. 세영과 카멜이 구상하는 프로젝트는 현실과 분리된 가상의 세계였으며,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지 않으면서, 서로 연결과 단절이 쉽게 이뤄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설은 세영의 다양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세영은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또다른 아바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세영과 카멜이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는 완벽 그 자체가 아닌 버그가 상존하는 미완성의 프로젝트이며, 다채로운 세상에서 무채색으로 바뀌는 세상의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소설 속 주인공 루,완, 혁, 세영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형성하게 해주는 누군가와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대재앙에 대한 인식들이 보여지고 있으며, 불안한 자화상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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