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그리움과 상실감.
외로움과 통증이
드러내어 나아지지 않는 종류의 아픔임을 알게 되면
내색하지 않고 혼자 다루는 것이 습관이 된다.

뭉을 산에 묻고 온 날
나는 집에 있던 나뭇조각을 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영혼이 이곳을 떠난다는 
49일까지 간직하고있다 태우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모든 액세서리를 다 빼야 하는 검사를 받을 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가끔 옷에 어울리지 않아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설명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자 줄이 너덜너덜해져
장신구로 보이지도 않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상관없는 일이었다.

목걸이의 줄이 해지는 동안,
나는 길에서 마주치는 기이한 모습의 사람들과
예전에는 궁금했을 모양새의 사람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픔을 새기는 방식은 제각각이라는 사실.
그 이유를 내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뭉을 보내었으나 보내지 못한 시간 동안
가슴 저릿한 통증을 느끼며 알게 되었다.

그 서늘함을 읽기 어려운 타인들은
저 이는 그래도 잘 산다.로 이해할지도 모른다.
밥도 잘 먹고 일도 잘하고,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며
서늘한 시기를 무사히 통과해
원래의 그이로 돌아왔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대체로 잘 사는 이들로 꽉 찬 듯 보이지만
드러나는 세상이 그러할 뿐이다.
말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홀로 쓰다듬으며 잠드는 밤.
서늘함과 통증은 오롯이
개인의 것이기에.(P101)


우리는 
관용을 배울 수 없고 인자함을 배울 수 없고
인내를 배울 수 없고 사랑을 배울 수 없다.

같은 이유로 
관용과 인자함과 인내와 사랑을 가르칠 수도 없다.

가르치려 애쓰거나 보여주려 애쓰다 보면
자신이 그러한 가치에 대해 더 가까이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너보다 관대하고 인자하다고.
적어도 나는 너보다 인내와 사랑을 안다고.

자신이 보여주려는 것이
같은 의미와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보이는지
누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가난한 형편에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려
엄마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물론 그 좋은 교육이
지금 기준에서는 최소한보다 못한 것이겠지만
그 작은 것을 더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봉투 붙이기나 전자부품 만들기 같은 부업을 해
나에게 학습지를 구해주고 문제집을 사주었다.
때론 혹독했지만 그것이 엄마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사랑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에게 명징한 형태로 남아있는 사랑의 느낌은

초등학교 겨울방학.
숙제를 미뤄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던 날.
울다가 잠든 나의 종아리에
살금살금 연고를 바르던 엄마의 손길이다.
나는 깨어잇었지만 계속 자는 척했고
엄마는 울면서 연고를 발랐다.
종아리에 어마의 손이 닿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내가 잠들었던 많은 밤들에 반복되었을 일상의 모습.
다만 하루, 억울해서 잠들지 못했던 내가 목격했을 뿐인
사랑 한 조각.

어제 몸이 안 좋아 일찍 잠들었는데
잠결에 얼핏, 내 이마를 짚어보는 손길이 느껴졌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 (P139)


삶과 죽음,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한권의 책을 온전히 필사해 보고 싶은 책 <무탈한 오늘 >이 내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순간 참 다행이다, 그리고 사소한 감사를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수십만권의 책들 중에서 내 삶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책, 내 안의 사유의 깊이를 한층 더 높여줄 수 있는 책, 그것이 이 책이었고, 쓰고 또 쓰고 싶은 문장들이 200여 페이지 분량의 종이책 한 권속에 오롯히 채워지고 된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의자위에 앉아있는 고양이가 보여진다. 눈치챘겠지만, 저자는 고양이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고양이 뿐 아니라 개도 등장한다. 저자의 삶 곳곳에는 고양이와 개와 함께 해 왔던 일상들로 채워져 있으며, 행복이란 무엇이며, 감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반려동물들과 함께 한 시간 속에 채워지게 된다. 10여년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은 주인이 누군지 모른채 자신의 몸을 맡기게 된다. 주인의 성향이 어떠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은 극과 극을 달릴 수도 있다. 행복해질 수 있는 운명이 놓여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운명과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온전히 자신의 몸을 주인을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 말하지 못하는 짐승, 눈빛과 몸짓으로 사랑을 표현할 뿐이다. 언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태어나면서 사랑과 지혜를 간직하고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본성에 이끌려서 살아가게 되고,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감사함이란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부족햇던 것들이 채워지는 것들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나 스스로 감사하게 되고, 행복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인간은 망각이라는 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 때문에, 과거에 행복했던 순간들을 지속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자꾸만 찾으려 한다. 망각하는 우리가 행복을 지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행복한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어려서 꼭 가지고 싶었던 것들, 그것을 어른이 되어서 쉽게 가질 수 있게 된다. 가지고 싶었던 걸 가지게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행복은 지속되어지지 않았고, 또다른 행복을 추구할려고 몸부림 치게 된다. 그것은 집착이었고 또다른 번뇌의 일종이었다. 항상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미래만 자꾸 쳐다보고 살아갔다. 우리가 불행의 늪으로 자꾸 빠져드는 이유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저자는 행복을 온전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함께 살아가는 사랑하는 미물들을 통해서 사랑과 감사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삶과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잇었다. 암으로 인해서 아픈 몸을 간직하고 있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날려고 애쓰지 않는다. 암으로 인해 자신의 운명이 삶과 이별한다 할지라도 저자느 그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현재에 충실한 삶, 그것이 의미있는 삶이라는 걸 저자는 충분히 느끼고 있다. 책에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채워지게 된다. 행복과 감사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가 행복을 채워주지 않는다는 걸 이 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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