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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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티셔츠를 벗은 뒤 리비아를 아기 띠로 내 맨살 위에 묶어 고정한다. 그리고 아파트에 걸려 있는 카린의 사진들을 모두 뜯어낸다. 장례식에서 사용하려고 확대한 사진. 리비아가 잉태된 그 여름에 고틀란드로 가는 배의 선미 갑판에서 찍은 그 사진 마저도, 전에는 모든 벽을 카린의 사진으로 장식해두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다. 나는 냉장고에 붙여둔 사진 한 장만 남겨둔다. 카린이 카메라를 마주 보지 않는 유일한 사진이다. 그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그녀 뒤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이 사진 속에서 카린은 머리를 여러개의 핀으로 고정해두었다. 오른족 귀가 살짝 보인다. 등이 매끈하고, 비키니 상의의 끈은 목 뒤에서 묶여 있다. 카린의 시선은 벤드부르그스피켄 쪽을 향하고 있다. 카린이 앉아 있는 모래사장에는 그림자와 햇별에 마른 해초들이 가득하다. (p243)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지 한편의 소설을 들여다 보면서,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있다.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의무는 죽은 자의 흔적들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죽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그러던가,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보다 더 안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예기치 않은 죽음도 늘어나고 있다. 일반적인 교통사고나 질병에 의해서 누군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그것을 지켜 보고 봐라 보아야 하는 사람의 의무는 무엇이며, 죽음이 내 앞에 놓여질 때,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카린과 톰이다. 소설이지만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어서인지 에세이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름도 똑같은 소설 속 주인공의 삶 속에서 남편과 딸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카린의 일상적인 모습을 들여다보면 그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가 이 소설을 슬픔의 심연으로 들어가 버리게 만들어 놓는다. 살아있는 자들의 의무는 무엇이며, 남아 있는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되고 , 톰과 카린의 일상을 마주하면서 소설 한 편을 읽어나가게 된다. 25살 카린은 남편 톰과 딸 리비아를 남겨 놓고 그렇게 예고없는 죽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남편 톰은 미혼모 아내 카린을 두고, 임신으로 미숙아로 금방 태어난 리비아를 돌봐야 한다. 엄마 없이 아빠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리비아, 리비아를 혼자서 케어를 해야 하는 현실이 톰을 더 힘든 순간으로 밀어 넣을 것처럼 보여지고, 상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모습을 담아내고 있지 않다. 독자들의 예측에서 벗어나게 한다. 삶은 죽음의 연장선이며, 죽음과 삶은 연결되어 있으니 크게 힘들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얻게 된다.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 놓은 원칙에 의해서, 딸 리비아를 톰의 자녀로 옮기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은 현실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고, 융통성 없이 일처리하는 모습들이 우리의 시선으로 보자면, 화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톰이 아내를 케어하는 것조차 힘겨운 나날을 보내면서, 자신이 머물러 있는 곳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일상들이 때로는 우리의 삶과 겹쳐지게 되고, 그럼으로서 톰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들을 공감하게 되고 톰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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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2-3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도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깐도리 2019-01-01 21:01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기해년 새해 잘 보내세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