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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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철학은 무엇'이라고 정의하려 애쓰지 않았다. 다만 철학적이라는 것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다음에 철학적인 시선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말한다. 우리는 흔히 철학 이론을 습득하는 것을 철학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데카르트나 칸트나 공자가 남긴 이론을 열심히 습득해서 그들이 한 주장의 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숙지하고서는, 자신이 스스로 철학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은 이전의 철학자들이 남긴 체계적 이론을 습득하는 일이 아니다. 철학은 이미 있는 철학적 지식을 저장하는 데에 빠지지 않고, 그 철학적 이론이 생산될 때 사용되었던 그 높이의 시선에 함께 서보는 일이다. 철학은 고도의 지성적 시선으로 사유 활동을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해놓은 사유 활동의 결과들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배우는 이유는 그 과정을 통해서 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p140)


이 책은 개정판이다. 1년전 출간된 책이 다시 개정판으로 나왔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철학자 최진석에 대해서 각인되었고, 그의 사유의 깊이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철학적인 사유의 시선이 우리 사회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 오는지,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대한민국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철학을 생산하기 보다는 소비하고 수입하고 있다. 중국의 철학을 수입하고, 서양의 철학을 수입하면서 지식을 향유하고, 철학적 지식을 내것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근대화 과정에서 지속되어 왔다. 지금 현재 인문학을 강조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면, 우리 앞에 놓여진 철학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의 차이는 큰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는 점에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한일합방이 일어났지만, 우리는 그 두개의 굵직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뼈져리게 반성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정작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모습에 대해서 저자 최진석은 우리 스스로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또다른 이유이며, 같은 일이 다시 재현되고 반복될 개연성을 우리 스스로 품고 있다고 말한다.인문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스며들지 않는 이런 모습에 대해 개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적 사유는 생각의 차이를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내 앞에 놓여진 판에 대해서 불평하고 불만스럽게 바라 보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기울어진 판을 스스로 바꿔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아먄 스스로 능동적이고, 주인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바뀌었지만, 선진국의 문턱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철학적 사유의 깊이가 선진국 여러 나라들에 비해서 낮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철학이 가지는 고유의 힘이며, 철학적 깊이가 세상의 판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칸트, 헤겔, 한나 아렌트. 그들은 철학자이다. 우리에게는 조선의 다산 정약용이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다산 정약용과 같은 철학자가 나오고 있지 못하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남이 해 놓은 것을 탈취하려는 성향이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남들이 성공하면, 자신도 성공할 거라 생가하면서, 배아파하고 뒹구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기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삶을 살아가려면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사유의 깊이를 높여 나가야 하며, 그 과정 속에서 철학이 가지는 효용적 가치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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