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
요나하라 케이 지음, 임경택 옮김 / 사계절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 하면 먼저 생각나는 지역은 도쿄와 교토이다. 두 지역은 일본의 특색을 반영하는 중요한 역사 유적지가 있으며, 특히 천년 고도 일본의 교토는 에도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잇어서 국내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반면 오키나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키나와는 19세기만 하여도 류큐왕국이었고, 그들은 일본 본토와 동떨어져 각자 도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류큐왕국을 일본에 편입하였고, 류큐왕국에 있는 낡고 허름한 슈리성을 정전 철거 계획까지 세워 나갔다. 


일본의 오키나와 현 슈리시에는 슈리성이 있다. 언덕에 있는 슈리성은 일본 본토로 편입되면서, 슈리성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색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100년전 일본은 슈리성의 가치와 의미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고, 슈리성을 철거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그런 일본 정부에 맞서는 이가 있었으니, 20대 젊은 혈기를 가지고 있는 가마쿠라 요시타로였다. 그는 오키나와 현립 도서관에 일하면서 류큐의 역사와 문화에 깊이 관심 가지게 되었다. 20대부터 시작한 류큐왕국에 관한 관심은 20년간 이어지게 되었고, 그들이 쓰는 류큐인들이 쓰는 본토어인 슈리말(우치나구치)를 쓰면서 그들과 소통하게 된다. 슈리말(우치나구치)은 일본어(야마토구치)와 다른 언어였으며, 가마쿠라 요시타로는 오키나와에서 그들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 예술,더나아가 그들의 외교관계까지 깊이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남다른 노력은 누가 시켜서 한 건 결코 아니었다. 건축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가마쿠라는 스스로 사진 기법을 배웠으며, 류큐 곳곳에 남아있는 유적과 슈리성을 찍어 나갔다. 남다른 사진 기술은 그 당시의 상황을 보더라도 가마쿠라의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직접 고문서를 필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데, 그가 남겨놓은 '가마쿠라 노트'는 류큐국과 주변 국가들의 외교관계 ,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조선과 중국과 류큐국의 문물 교류를 깊이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류큐국은 450년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1879년 오키나와 현에 편입되기 전 류큐국의 전성기는 15세기 무렵이다. 조선의 도공을 데려와 류큐국의 예술과 도자기 문화, 건축을 발달하였고, 슈리성은 조선의 경복궁과 흠사한 구조를 띄고 있다.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던 것처럼, 슈리성 또한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말았다. 일본과 미국의 전투에서 슈리성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인 잇점이 일본군 참호로 쓰여졌으며,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류큐국의 역사적 사료들 대부분은 소실된 상태였다. 특히 1429년에서 1879년까지 류큐국의 외교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역대보안' 두가지 판본이 있었지만, 첫번째 판본은 관동 대지진으로, 두번째 판본은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원본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또한 류큐국의 역대 왕의 모습을 그린 '오고에'도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한사람이 류큐국에 보여줬던 노력과 관심은 일본과 미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사라졌으며, 지금 류큐국은 어떤 나라인지 알수 있는 기록들 일부분만 남 아 있다. 특히 류큐국의 400년간의 외교문서 '역대보안'은 가마쿠라가 직접 복사하고 필사해 남겨놓은 게 전부였다. 그가 남겨놓은 사진과 기록이 현존하였기에 슈리성이 오키나와 현에 복원 될 수 있었고 우리는 류큐구의 전성기에 대해서, 그들과 조선과의 관계를 역추적 할 수 있다.


류큐왕국은 확고한 위계 제도하에 있었고, 신분에 따라 복식도 정해져 있었다. 빈가타는 기본적으로 왕족과 사족 계급이 입던 의상이다. 빈가타 의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황색천에 큰 무늬가 들어간 의복은 왕비나 안지(按司(최상층 사족)의 부인만 착용할 수 있었다. 왕권을 상징하는 봉황이나 용문양은 왕족만의 것이었다. 옷감의 소재에도 규정이 있었는데, 특히 비단은 상층 계급만 입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파초 섬유로 짠 옷감이나 모시(가라무시),무명천 등이다. 더운 계절에는 맨살에 닿는 촉감이 좋고, 겨울에는 겹쳐서 입는 것을 즐겼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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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8-05-29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키나와를 다녀올 때 관련 책이나 자료를 좀 찾아봤습니다. (당시엔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 때 류큐국에 군사를 요청했으나, 형제의 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홍길동의 율도국이 류쿠국이라는 설도 있고요.

오키나와를 또 가 보고 싶은데, 그 때 한번 챙겨 읽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