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정강현 지음 / 푸른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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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세월호, 아버지, 어른, 나, 나이, 정치. 정강현씨의 산문은 이렇게 몇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그의 삶의 궤적과 나의 삶의 궤적이 겹쳐지면서, 때로는 분노와 좌절감,수치심과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우리는 세상에 온전히 방치되어질 때가 있다. 그의 삶이 나의 삶과 일치할 때,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들과 겹쳐질 때 이유없는 위로를 얻게 되고, 삶에 대한 위안을 얻게 된다. 기자보다 기레기로 더 많이 불러여졌을 저자의 은밀하고 감춰진 삶의 패턴이 자꾸만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어른으로서,누군가의 아버지로서, 누군가의 아들로서 , 기자로서 정강현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눈물을 쏟고 나면 얼굴이 간지렵다. 눈물이 증발한 자리, 나는 간지럽다. 그만하면 됐다고, 눈물이 지나간 희미한 웃음이 꿈틀댄다. (p103)


그 어느때보다 혼란스러웠던 시간들, 4년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눈물을 쏟았고, 허망했다. 나의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다 송두리째 바람에 날려간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게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게 그렇게 어리석은 행위인줄 꿈에서조차 꾸지 못하게 된다.언젠가 죽을 운명에 놓여지는 인간이지만, 그 시간을 그 누구도 앞당길 자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세월호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그 하나의 시간의 점은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어버렸으며, 눈물이 증발하고 난 이후 우리는 희미한 웃음을 샘솟게 하였다. 그 웃음은 분명 행복이나 즐거움의 웃음은 아닐지다. 냉소와 쓸쓸함을 느끼는 미소 뒤에는 세상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잔인한 생각이 감춰져 있다.


할배를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을 애려가는 길. 칠순을 바라보는 내 아비의 쪼그라든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배의 길은 , 내 아비의 길이자 나의 길이 될 것이다. 죽음이란,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누군가는 앞줄에 누군가는 뒷줄에 선다. 할배는 그 길을 앞서 걸어갔을 뿐이다. 할배 , 안녕, 안녕히.(P257)


책에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누구나 태어나는데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 순서가 없다는 말이 진리라는 걸 살아온 사람들은 알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살아남은 이는 죽은 이가 남겨놓은 것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살아야 할 이유는 분명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것조차 버리고 세상과 작별을 하게 된다. 안녕이라고 외치는 건 어쩌면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닐런지, 할해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게서 손자로 되물림 되는 삶과 죽음의 패턴들, 그 패턴들은 살아가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살아가는 본질은 한결 같이 같다. 인간으로서 자손을 남겨야 한다는 그 단하나의 명제, 그것이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된다.


나는 종종 두렵다. 디지털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인간의 얼굴이, 어느덧 종이신문 대신 모바일 뉴스를, 레코드 대신 음원 스트리밍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쩌면, 슈퍼돼지처럼 디지털 기술에 포획된 존재가 돼버린 건 아닐까, 조이 책과 신문, 만연필이나 연필 같은 아날로그적 사물과 '육체적인' 접촉을 하던 기억은 자꾸만 아득해진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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