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은 인지 부조화를 다룬 영화다. 인지 부조화는 이상과 현실이 다른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이러한 스트레스에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을 하는데 인셉션에서 멜, 코브, 피셔 세 인물이 중심이 되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 한다.
멜의 경우 코브와 함께 림보에서 말그대로 꿈 같은 인생을 살게된다. 그러나 멜은 현실로 돌아가기 싫었고 림보가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꿈에서 깨기 위해서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거나 꿈속에서 죽게되면 꿈을 깨는데 코브는 의도적으로 멜이 자신과 함께 자살하도록 만들어 꿈에서 깨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기 싫었던 멜은 꿈에서 깼는데도 현실을 부정한다. 코브가 림보에서 했던 말이 영향이 컸다. '당신은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 당신을 멀리 데려다 줄 기차를, 당신이 바라는 곳에 데려다 줄 기차인 건 알지만, 당신은 거기가 어딘지는 몰라,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아, 왜냐면 당신과 함께하니까' 죽더라도 함께니까 괜찮다는 말이 멜을 자살하도록 만들었다.
코브는 멜이 자살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그도 림보에서 빠져나오기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사랑하는 멜을 너무 그리워하고 미안해해서 틈날때마다 자신의 꿈속에서 멜을 만난다. 코브가 일할 때도 갑자기 등장해서 모두 망치는 경우까지 있다. 멜을 생각할때 코브는 멜처럼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 하고 있다. 그러나 꿈속에서 코브는 자식들을 절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도망자 생활을 해서 절대로 자식들을 볼수 없는 현실때문에 자식들을 보게 된다면 멜처럼 그것이 현실이라고 덜컥 믿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코브과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유일한 일이다. 그러나 영화 막바지에 코브는 림보에 다시 빠져서 꿈속의 멜과 다시 이야기를 한다. 사실상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너는 현실이 아니야 너를 볼때마다 나는 죄책감을 느껴' 그동안 멜에 대해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있었는데 코브는 드디어 구분하는 방법을 찾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피셔는 본래 꿈이 있는 인물이 아니다. 단지 현실에서 아버지와의 갈등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코브일행은 피셔의 아버지가 '나는 너에게 실망했다. 나는 너가 날 따라하려고만 해서 실망했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피셔가 꿈꾸게 함으로써 아버지와 화해하고 회사를 매각하게 만든다.
멜은 현실을 부정하고 꿈만 쫓았고, 코브는 착실하게 현실을 살아가려고 했지만 꿈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피셔는 꿈이 그의 현실에 새로운 발판이 되었다. '꿈을 크게 가져라', '꿈은 이루어 진다', '나는 할 수 있다.' 는 현대 사회의 구호는 우리를 그릇된 망상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우리의 꿈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망상일까? 단지 아름다운 꿈일까? 꿈은 많은 것을 이뤄낼수 있는 만큼 부정적인 면도 많다.
나는 요즘 민주주의 사회에 대해 인지부조화의 관점으로 생각할때가 많다. '만민이 평등한 사회', '누구나 지도층이 될수 있는 사회', '능력만으로 인정받는 사회'... 피셔 처럼 꿈이 새로운 발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코브의 꿈속에 아름답던 멜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듯 현실은 시궁창인 경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코브를 괴롭히던 멜처럼 이러한 민주주의 기반이 현대인들을 hard worker로 몰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자기만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지만 꿈이니 닿을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온갖 루머와 음모들도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들 멜처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점에서 그 한계를 보고있는 지도 모른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제 꿈은 그만 꾸고 우리의 현실에 만족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마치 코브가 멜을 현실과 구분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