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인간은 무엇인가’, 혹은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무한 역행적’, 즉 논리적으로 대답이 불가능한 물음들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원인/이유의 물음에 대한 답은 논리적으로 제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물음들이 우리를 떠나지 않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1)사실적인 측면에서 그 대답은 공허, ()와 같은 허무를 떠나지 않지만, 줄기차게 거듭하는 것은 이성적 사유가 도달한 결론을 부정하고 싶은 본능적 저항, 아마 삶에 대한 뿌리 깊은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의미의 부여를 통해서만 이것에 반항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 이 소설도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이 물음일 것이다. 아니 우리들은 애초에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또 자문한다. 인간은 조건반사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이 아니라 의미 해석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로써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 것인가를 탐색하는 확장된 의미의 대상이 된다. 바로 지금 개별자로서, 혹은 종()의 집단인 사회, 국가, 그리고 인류라는 동종의 총체에서 벌어지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유, 그 해석을 추상하고 추론하는 것이다. 인간, 나는 진정 무엇인가?에 대해서.

 

소설의 공간적 무대는 지구가 아니다. 지구는 단지 모()행성으로서 스치듯 언급될 뿐이다. 인간 실존조건의 핵심인 공기와 태양의 열과 빛, 대지라는 지구를 벗어나있을 뿐 아니라, 이백년간 캡슐에 갇힌 채 우주미아로 떠 돈 후 무인행성에서 깨어난 한 존재의 행위와 기억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그야말로 이 얄궂은 배경은 우리들이 굳게 믿고 있는 인간의 실존 조건이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세계임을 알린다. 실존적 조건을 벗어난 존재로서의 객관적 지위를 획득한 자, 어쩌면 이미 인간이 아닌 자의 시선으로서.

 

1. 인간 실존의 조건에 대해서

 

화자는 지구의 식민행성으로서 독자적인 체제를 수립한 네이처정부로부터 육백 이십 오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살인을 저지르고 추방된 1급 범죄자이다. 네이처는 법, 제도적 계급의 구분은 없으나, 실재적 계급으로 철저하게 분리된 계급사회이다. 즉 거대한 위선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 중에서 5계급은 최하위 계층으로서 거주 지역뿐 아니라 체제에 소외되어 오직 노동자로서의 신분만을 세습한다. 또한 개별자들의 몸에는 그들의 신상을 통제하는 칩이 내장되어 있는 감시사회이자 통제사회이다. 극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이 축조한 사회가 기실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한다. 소수의 엘리트가 과학기술과 정치를 이끌어가고 다수의 인간은 그 혜택으로부터 차단되어 노예화되어 있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촘촘하게 계층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채 하는 오늘의 우리네처럼. 그 기만의 사회처럼.

 

화자는 HD-733으로 불린다. 계급과 신분의 분류를 함의하는 기호화된 존재. 노동과 실의의 삶을 전전하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고 가출해 버린다. 고아가 되어 떠돌던 아이는 구역 관리자의 선택에 의해 교육과 계급적 구속을 벗어날 기회를 갖게 되고, 네이처 정부 지도자의 아들인 관리자 JN-210의 보살핌과 후원이 있지만 군인으로서의 미래를 시작한다. 20대의 젊은 얼굴을 한 일백 사십 육세의 관리자와 극소수의 지배자가 지닌 욕망의 독점, 그 혐오스러움은 모든 인간, 인류를 위한 과학기술이라는 인본주의의 낙관적인 전망을 선전하지만 그것은 대다수의 인간이 꿈꾸는 인간중심주의의 빗나간 사랑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견뎌야 할 삶이라는 의미에서는 불평등의 심화와 고착처럼 아무런 변화의 이익에 참여치 못한다.

 

20여년의 시간이 흐르고 삼십대의 성인이 된 HD-733은 갈아탔던 복제된 신체의 질병을 벗어나고자 육체교환을 앞두고 있는 JN-210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JN-210은 말한다.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 밑바닥을 드러낼 수 있는지 놀라게 될 거다.” 이기심, 복제된 신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 육신으로 갈아타는 그 무한한 탐욕은 살인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자기 복제를 시도하려는 인간에 대한 살해, 정상적인 한 번의 생애를 살아가야 하는 HD-733을 위한 변론이 진행되지만 네이처 정부는 삼백년간의 추방을 선고한다. 새로운 신분의 기호인 'DH(different human)-194'가 되어.

 

소설의 거대한 한 축인 DH-194가 되기까지의 HD-733의 행성 네이처에서의 성장(成長)()(2)‘전뇌(全腦) 에뮬레이션(whole brain emulation)’을 통한 자아의 무한 반복적 복사로 영원한 존재가 되려는 21세기 뇌 임플란트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희망찬 죽음학이라는 이 모순어가 지닌 기술실증주의의 소름끼치는 욕망의 현주소, 그것의 지향점이 인간에게 말한다. 지구라는 자연의 인간 실존적 조건의 마지막 끈조차 없애버린 과학기술이 추구하는 세계관의 진리들이란 것이 더 이상 인간의 말과 사유로 표현되지 못하는 불구인 것은 아니냐고.

 

2. 다른 존재들의 불문율의 가능성에 대해서

      

두 번째 축은 유배지인 신생 은하계의 한 행성인 루시아에서의 생존을 향한 전쟁(戰爭)()라 할 수 있다. 무인 행성의 유일한 인간인 DH-194(이하 ‘DH’라 함)는 홀로 100년의 유형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너는 고독하지 않은 상태를 알고 있는가라고 자문하며, 항상 자신은 외로움을 단짝처럼 지녔던 존재로써 이 낯선 행성에서의 새로운 삶의 걸음을 내딛는다.

 

DH는 미지의 환경에서 괴성에 불가한 소리만을 내지르는 인간의 외형에 근접한 짐승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를 위해할 의사가 없는 존재임으로 이해하게 되지만, 혐오스러운 그것들에 총을 난사하여 학살한다. 주어진 자유, 그의 의지를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없는 곳에서 이질적인 것,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반감은 무한한 폭력의 행사로 이어진다. 결과는 인간의 외형에 친숙한 것들만 살아남는다. 양식을 구하던 DH는 우연히 숲 속 한 장소에서 열매를 줍는 듯한 이 짐승의 무리를 발견하고, 그중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 돌아오지만, 그것은 열매가 아니라 그것들의 임을 인지하게 된다.

      

부화한 짐승의 새끼에게 애정을 갖게 된 DH이라 부르며 양육하지만 양식을 찾기 위해 은거지를 떠난 뒤 잃어버린다. 렘을 찾기 위해 짐승들의 행동을 좇던 중 알을 주웠던 장소의 특이한 흙과 알껍질의 단 맛에 홀린 듯 먹게 되고, 이후 그의 신체는 변화하고 발화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지하 은거지의 여러 통로 중 하나를 통해 버려진 지하의 거대 유리도시를 발견하게 되고, 최초의 인간인 여성 과 조우한다. DH는 그녀로부터 호전적인 짐승의 공격성을 사라지게 변화시키기 위한 화학적, 약물요법의 계획이 도리어 인간 문명을 멸망시켰으며, 그의 신체변화는 이러한 화학지대의 영향임을 전해 듣는다.

계획이 진행되면 될수록 문제가 생겼죠. 놈들에게서 짐승의 특성이 사라져가자, 거꾸로 놈들에게 그동안 숨겨져 있던 인간과 비슷한 면들이 하나둘 드러나게 된 거예요. ...엉뚱한 결과가 초래....우리의 계략이란 것이 거꾸로 우리 스스로의 발목을 잡게 되어버린 셈이었죠.”(P 239)

 

그런데, DH의 변화에서 발화능력을 잃었다는 것은 하나의 생각을 낳는다. ‘한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말이 힘을 잃은 세계 속으로 진입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3)이것은 지식과 사유가 결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곧 자신의 방법론적 노예, 자기의 창조물에 내 맡겨진 생각 없는 피조물로 전락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 DH는 식물로 화하는 자신, 기억하기를 잊어버린 생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며, 인간이 진화의 단계를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아마 결코 주어지지 않는 개별자의 존재적 영원성에 대한 헛된 욕망이 아닐까? 자연은 종의 존재적 영원성만을 보장한다. 또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진리가 물론 있을 수 있다. 홀로 살아가는 존재로서, 비정치적 존재에게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 세계에 행위하며 살아가는 인간, 다수의 인간들은 서로 소통하고 타인에게 통하는 을 할 때만 의미를 경험 할 수 있다.

 

이제 소설은 이러한 물음의 끝으로 달려간다. DH가 행성 루시아에서 처음 맞이했던 짐승들은 절반쯤 인간화된 변이가 진행 중인, 즉 인간의 과학기술적 오만이 야기한, 자신들의 피조물이었으며, 이제 그것들에 의해 자신의 존재 역시 사라져야 함을 알게 된다. 아마 이 서사 축을 압축하는 문장이 될 것 같다. “우리에게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개념과 사고가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다른 인간이나 지적 생물체에겐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고....다른 존재들의 불문율의 가능성을 이해해야한다는 자각이다. 인간화된 짐승들은 종족의 우성인자를 지켜내고 재편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살상을 시작하고, 열등한 마지막 인간변종, DH는 종말을 고한다. 그들의 원년, 첫 날의 시작과 함께.

      

인간은 무엇인가? 다시 반복하지만 인간은 물을 수 없는 의문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려 하는 여타 동물과는 차별화된 종이다. 그런데 인간은 또한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21세기 인류의 존재론적 가능성에 의문을 품은 필 토레스는 말한다. (4)‘부주의, 실수, 사고(事故), 사고(思考)적 결함, 지식의 불완전성, 게다가 불가지(不可知)에 이르기까지 인간 스스로를 위협하는 그 불완전성에 대해서. 결국 유발 하라리의 인본주의에 경도된 인류의 비판적 사유의 촉구, (5)인간의 자연지배와 약탈행위의 정당화가 만들어 내고 있는 그 마지막 열차의 질주가 인간의 말과 사유를 말살하는 영원한 죽음의 희망학이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것이라는 통렬한 자성의 목소리에 이르게 한다.

 

 

참고 도서:

(1)박이문 , 죽음 앞의 삶, 삶속의 인간, 미다스북스, 2017.2

(2)마크 오코널 , 트랜스휴머니즘, 문학동네 2018.2

(3)한나 아렌트 , 인간의 조건, 한길사, 2017.3

(4)필 토레스 , 디 엔드, 현암사, 2017.7

(5)유발 하라리 , 호모데우스, 김영사, 2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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