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책, 모비 딕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홍한별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가 적당한 때에 수면 위로 튕겨 오르는 책

             - 모비 딕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책이었다.”   P 129에서

 

내게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대한 기억이란 증기압력 솥에 가두어진 듯 내면의 고통과 분노로 가득 채워진 인물, ‘에이해브와 무시무시하고 신비스러운 가능성으로 가득한 흰 고래를 떠 올리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리고 읽어나가기가 꽤나 지루해서 이야기의 장면에 직접적이지 않은 부분은 건너뛰며 대결 국면의 화려한 장면으로 급하게 나아갔던 것 같다. 결국 스토리에 집착한 읽기였기에 작품에 대한 감동이나 이해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 너세니얼 필브릭모비 딕에 바치는 이 경외(敬畏)의 찬가는 내심 부럽고 독서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이 때문인지 멜빌사고(思考)는 냉정함과 차분함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에 우리 딱한 심장은 쿵쾅거리고 모자란 뇌는 너무 심하게 고동친다.”라고 호손’(일곱 박공의 집著者)에게 작품 창조에 대해 자조(自照)처럼 한 말이 마치 내게 한 말처럼 다가온다.

 

또한 필브릭에게 모비 딕회의와 희망을 뒤섞는 데서 오는 구원, 짧고 터무니없고 부조리한 삶 앞의 온화한 극기심을 가져다주는 생애(生涯)의 책이다. 나는 이런 책을 아직 가져보지 못했다. 아마 멜빌의 자조와 같은 이유와 무지가 겹친 탓일 것이다. 어쩌면 은폐된 오만 때문일지도. 그래서인지 내겐 멜빌의 책에 보내는 이 애정 그득한 저작이 진정성과 사랑으로 읽혀졌던 것 같다.

 

모비 딕이 노예제에 대한 갈등, 노동 착취, 야심가들의 위선, 길 잃은 젊은이들의 방황, 권력을 잡기위한 선동적 언어 등 19세기 미국 사회의 불안한 시대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은 비로소 알게 된 행간의 의미이다. 소설 속 화자인 이슈메일(이스마엘)’의 그 많은 독백의 문장들이 21세기 오늘에 이식해도 전혀 의미를 잃지 않는 삶의 정곡들이었음을 듣게 되는 것도 또 다른 깨달음이요 즐거움이 된다.

 

이 삶에서 사랑하고 일하고 행복해 한다는 것은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에서의 쇠락과 죽음 말이다. - 이 깨달음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의 저주다. 이 진실을 인지하고 직접적으로 내면화한다면 에이해브처럼 미치게 된다.” P 64에서

 

멜빌이 소설에서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자신의 현실적 삶 내내 지배해 온 의문의 발설이기도 한 이 문장은 죽음으로 자신이 전적으로 소멸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천국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를 온통 태워버려야 했던 작품이었음을 상상하게 된다. “지상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영원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확신을 보이는 이슈메일의 믿음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한편 멜빌의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와 호손의 영향이 반영된 작품임을 알게 되기도 하는데, 에이해브의 가면 뒤에 있는 실재의 고통과 같이 호손의 불가해한 본질이 사방에 존재하며, “‘어둠의 위대한 힘에 사로잡힌 인정받지 못한 천재처럼 셰익스피어의 캐릭터에서 비롯된 차용 같은 것들이다.

 

이 밖에도 그저 스치듯 지나갔던 장면들의 그 현실감 넘치는 묘사들을 새롭게 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작살잡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노잡이들이 부들부들 떨며 숨을 헐떡인다....”와 같이 포경보트에 탄 선원들이 모비 딕이 일으킨 거대한 너울을 헤쳐 나가는 모습의 사실감이다. “무엇보다 여러분이 모비 딕을 읽게 만드는 것이 관심사라고 말하는 저자 필브릭의 희망은 결코 헛된 욕심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책 장 저 밑에 꽂혀있던 700여 쪽의 책을 다시금 꺼내 들었으니까.

 

필브릭의 저술인 이 책의 미덕을 말한다면, “원조 황무지인 드넓은 대양(大洋)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멜빌의 책은 그야말로 거대하고 통 큰 주제들의 향연임을 보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도 그만한 크기로 팽창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부풀게 한다. 구명부표가 된 퀴퀘그의 관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다시 떠오를 수 있는 문학으로 유혹하는 이 책에 겸허하게 갈채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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