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마지막 날들
조제 렌지니 지음, 문소영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은 소리 없이 엄습하고 피는 조용히 흐른다.”  - 오델로 中에서

‘카뮈’하면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손에는 담배 한 대를 들고 있는 비스듬한 시선”의 익숙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애정과 무관심이 동시에 깃들어 있는 시선”, 이 소설을 통해 그의 시선에 깃든 무관심의 정체를 헤아릴 수 있게 된다.
1960년 1월4일 파리근교‘프티-빌블르뱅’에서 자동차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그 시간에 이르는 이틀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카뮈의 작품들과 작품 속 인물들, 그리고 그의 친지와 친구, 동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카뮈에 대한 그 어떤 글들보다 이해와 애정이 깊게 담겨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친구이자 출판업자인‘미 셸 갈리마르’가족과의 파리를 향한 이틀간의 자동차 여정 속에서 프루스트의 마들렌의 추억과 흡사한“기억과 재구성된 기억의 침묵사이에 고해”하듯이 과거의 시간을 풀어놓는다. 열병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어머니의 침묵’은 이 작품의 가운데 놓여 카뮈의 인생을 지배했던 삶의 지향점을 풀어놓는다. 아마 작품 도입부의 표현처럼 “어머니와 함께 보낸 기나긴 무언의 시간에서 비롯된”‘선천적인 불구’에 대한 해명이라 하여야 할까?

카뮈에게‘침묵’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소리를 삼켜버리는 방식으로 언어를 표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침묵,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 헛된 연민 뒤에 갇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던 어머니, 말을 하고 싶을 때조차 결국 체념의 벽을 넘지 못하던 어머니의 고통에서 말과 침묵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방황하는 카뮈를 발견하게 된다.
문득 이 작품을 침묵의 해석이라 부르고 싶어진다. 알제리의 분리독립과 프랑스령 알제리라는 서로 다른 민족의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갈등하던 알제리의 프랑스인인‘카뮈’의 고뇌, 여기에 더해‘샤르트르’를 비롯한 파리 사교계의 비난과 조롱은 그의 침묵을 더욱 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침묵은 그의 작품『이방인』의‘뫼르소’가 재판관의 노여움을 증대시킬까봐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는 것과, 양로원에서의 어머니 장례식 날의 자신의 모습과 행위처럼 거짓말하기를 거부하는 진실함을 내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카뮈의 주요 작품들인 『전락』『페스트』『이방인』『안과 밖(表裏)』등의 인물들에서 카뮈의 전형을 찾아내고, 카뮈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절대로 혀가 할 수없는 그 이상의 의미로서의 침묵에서부터 삶의 역경을 잠재우는 행복한 침묵, 내 뱉어지지 않은 수많은 말을 담고 있는 고통스럽고 귀중한 침묵을 통해 “소리나 감정의 부재가 아닌 가득 들어차 있는 상태”라는 것을.

지나가는 풍경과 상황,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상상의 공간과 마주하며 눈앞에 현실이 펼쳐지듯 이 작품이 그려내는 그 날의 카뮈를 보는 것은 감동이지만 그의 죽음을 알고있는 독자로서의 애잔함이 내내 콧등을 시큰거리게 하고 왠지 어떤 시원적인 고독함이 내내 가슴에 엉겨붙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따라다닌다.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우리네들에게‘부조리의 시간’과‘반항의 시간’으로서만 그의 작품을 기억하게 하지만, ‘사랑의 시간’이 그에게 시작되고 있었음을『최초의 인간』이라는 완성되지 못한 그의 작품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이 소설에서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하는 그의 야심작으로 준비되던 작품을 우린 접할 길이 없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대변되는 알제리의 사랑, 그리고 그 속의 서민들의 침묵으로부터 도출해야 했던 회고로서 그가 펼쳐냈던 그간의 기억의 편린들을 완결하는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예기치 않은 운명을 진정 애석하게 한다.
어린시절의 가난과 그 가난한“빈민가의 서민들이 침묵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최초의 메아리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의 표시인 존재, 밀봉된 상자...”는 벙어리인 어머니이자 고향 알제의 벨쿠르 언덕과 아르카드 숲,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있는 알제리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최연소 프랑스인 노벨상 수상자의 어머니는 침묵 속으로 숨어버렸다”는 감정적 비약을 담은 기사에서부터 시기와 질투로 졸렬한 비난의 앞장을 섰던 엘리트주의자들의 대표인 샤르트르같은 좀스런 사상가까지 “암담한 자기도취와 상처받기 쉬운 나약함이 한데 뒤섞여 있어서...省略..”라고 카뮈라는 개인에 대한 공격을 해대었으니, 그 극단적 야비함에 대해 카뮈는 정말 아무런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외롭고 감각적인 삶의 변두리에서 자신이 살고 떠들고 소외되는 사회에서 이방인이었던 사람, 또한 침묵의 의미를 알았던 20세기 실존주의의 커다란 한 획을 그은 천재작가의 마지막 날들의 소묘는 가난한 프랑스인 아들에 관한 아름다운 서사로 가슴 깊이 새겨진다. 어쩌면 이 작품이 바로 “어머니의 존경할 만한 침묵에 내재해 있는 사랑이나 정의를 되찾으려는 한 남자의 노력을 작품의 중심에 놓으리라는 구상”이었던‘카뮈’가 미처 완성치 못한 『최초의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마치 자전소설 같은, 그의 인생과 작품을 이해하고 작품 속 주인공들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진정 유효한 완성도 높은 소설이기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뮤진트리 2010-05-1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도 뵙네요. 저희 서재에도 가끔 들러주세요~

2010-05-18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뮤진트리 2010-05-1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 오늘 카뮈 좌담회 갔다왔어요. 소식 올리려고 하는데 만감이 교차하네요
'카뮈의 마지막 날들' 에 모든 이야기들이 다 들어있더군요. 그들이 말하는.
..자주 뵈어요.

필리아 2010-05-14 19:48   좋아요 0 | URL
자주 들러 좋은 소식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