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라칠 만큼 놀라우며 고상한 기품까지 지닌...

 

'원 폴 게이트 스트리트(One Folgate Street)', "초인종이 보이지 않는다. 문손잡이도 우편함도 보이지 않는다.“ 실내는 갤러리처럼 세련되고 완벽하며 아름답다. 미니멀리즘을 충실히 구현한 주택. 말끔한 크림색 벽으로부터 돌출된 무엇도 없는, 불필요한 모든 요소가 제거되고 통합된 유기체처럼 작동하는 완전한 인텔리전트 주택. 예산이 없어 마음에 드는 주택을 구하지 못한 여자는 중개인이 저렴하지만 까다로운 200개 남짓의 조항이 열거된 임대계약 조건을 가진 이 집을 소개했다. 여자는 너무 마음에 든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잊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정말 매력적인 공간이란 생각을 한다.

    

 

 

그녀는 이 발견이 더없는 행운이라 여긴다. 따라온 남자는 지나치게 엄격한 계약조건에 망설이지만 이내 완벽한 첨단기술에 의한 작동에 환호하며 여자의 의견에 동조한다.

임대계약서의 첫 번째 조항은 당신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유물을 빠짐없이 목록으로 작성하시오.”이다. 과거 - 에마와 사이먼, 현재 - 제인, 계약서의 마지막 조항인 건축가에드워드 멍크퍼드의 최종 승인과 면접의 관문을 통과한 이들은 주택의 사용계약에 명시된 의무, 결벽에 가까운 조항에 적응하는 삶에 돌입한다.

 

소설은 이제 과거와 현재, 두 시점에서 교대로 서술되며, 하나의 서사가 되어 이 유니크하고 비밀스러운 주택, 그리고 건축가와 관련 인물들을 한 조각씩 이어 붙이며 진실을 쫓기 시작한다. 제인은 현관에 놓인 백합 꽃다발을 발견하곤 치워버린다. 다음날 역시 꽃다발이 현관에 놓여있다. 마침내 꽃을 가져다 놓는 남자와 만나게 된 날, 그것은 이 집에서 죽은 연인에 대한 추모의 의미임을 알게 되고, 제인은 집이 간직한 비밀들을 은밀히 추적한다. 아무것도 없는 집에 혼자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자기 삶을 유린한 강도와 강간의 기억을 잊기 위해 새로이 출발한 에마는 추가수사를 위한 경찰의 방문을 받고, 연인 사이먼은 에마의 강제 성폭행 사실을 처음으로 듣게 되며,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진다. 면접시 마주한 건축가 에드워드의 인상에 매혹된 에마는 사이먼을 내치고 에드워드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한편 사산아를 낳은 상실의 고통으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제인은 원인불명의 죽음으로 알려진 이 집의 전 거주자인 에마의 흔적을 찾는다.

 

건축가의 죽은 아내와 닮은 여자들, 에마, 제인, 소설은 점차 피해망상증, 결벽증, 편집증, 사이코패스로 얼룩진 인물들처럼 왜곡된 인격으로 치달으며 에드워드와 그의 죽은 여자들의 신비를 걷어내기 시작한다. 에드워드의 건축물마다 죽은 이들이 묻혀있는 인신공양의 제례의식이 덧 씌워지고, 에마의 사인(死因)은 자살과 피살의 사이를 널뛴다. 자존감이 극히 낮았던 에마의 피학적이고 수동적인 심리적 태도와 맞물려 강력한 권위를 지닌 에드워드에 집착했던 여성이 수면위에 부상하고, 그녀의 강간사건조차 거짓말의 연속선상에 있음이 드러난다. 꼬리를 무는 에마의 거짓말...

 

    

 

제인이 '이전의 여자(the girl before)'를 규명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그녀 자신을 되찾는,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되찾기 위한, 삶의 현실로 복귀하기위한 처절한 투쟁이다. 제인은 임신하였지만 에마 죽음의 진실, 그리고 태아의 의심되는 다운증후군 징후의 의료적 확인에 이르기까지 에드워드에게 알리기를 미룬다. 소설은 기품과 고상함, 그리고 세련된 지성의 문장들로 마치 평온한 일상의 서사인 듯 목전에 다가온 불안과 공포의 위기를 침착하게 밀고 나간다. 그럼에도 심리 스릴러 고유의 서서히 스며드는 불온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의식을 팽팽하게 당겨댄다.

 

죽은 에마의 사인은 밝혀질까? 살해 된 것이라면 범인은 에드워드인가, 사이먼인가, 아니면 에마의 거짓증언으로 곤혹을 치룬 주변의 남자들인가? 의문 가득한 진실의 베일을 걷어내고 제인은 마침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데 도달할 수 있을까? 그녀가 잉태한, 비록 다운증후군을 안은 아이지만 태어날 수 있을까? 대단원에 이르면 소설은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곤 소스라칠 만큼 놀라운 반전에 마주치게 되고, 기대했던 즐거움의 흡족함으로 넉넉한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가히매혹적 이다!’라는 표현은 이 작품을 위한 문장이리라. 뷰티풀 마인드,천사와 악마,체인질링을 연출한 론 하워드(Ronald William Howard)’감독에 의해 영화도 준비 중이라니 자못 그 영상의 기대감도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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