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았다. 거울 (....) 지금까지 한 번도 나는 거울에서

벗어나보지 못했다. 햇빛을 반사해 나를 되쏘았다.”   P 32에서

 

 

거울, 소설은 내 안의 타자에 관한 이야기다. 불멸의 무용수로 불렸으나 서른여덟의 은퇴가 임박한 발레리나, 제인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이도 하다. 누군가의 얼굴, 그 속에 숨겨진 타자의 욕망을 응시하는 것은 은밀한 쾌락을 동반한다. 화장대 거울, 수영장의 잔잔한 수면, 무용연습실 사면의 거울, 여기에는 자신의 욕망, 혹은 숨기고 싶은 무언가의 형상이 있다. 그래서 제인은 공들여 화장을 한다. 어떤 흔적도 드러나지 않게, “모든 기억과 무관한 얼굴이 되어서야 거울 앞에서 벗어난다.

 

절박한 욕망이 지은 나라”, 싱가포르에서 영국 여인에 의해서 키워진 여자. 잃어버린 어린 딸(제인)을 대신해 입양된 임선경은 제인이 되어, 제인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제인이 입었던 무용복과 발레슈즈에 자신을 맞추었다. 더 이상 임선경이라는 이름은 없다. 철저하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존재로,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존재가 되기위해 자신을 억압해온 국립무용단 프리마돈나가 있을 뿐이다.

 

퇴락하는 무용수가 될 수 없어 절치부심하는 제인에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라는 유명 안무가의 작품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가 제안하는 작품은 그녀의 내면 저편에 수장시켰던 쾌락과 고통의 금지되었던 기억을 불러내려한다. 억눌렸던 욕망의 반동, 틈새가 없는 쾌락의 향연, 태초의 암흑이었으며 자기 몸의 경계선이 지워지는 파멸 같은 춤에 새겨진 비극의 기억들을.

 

 

 [출판사 은행나무 블로그 內 이미지 편집 발췌]

 

언제나 기존의 규칙과 형식 안에서 완벽하고 안전하게 춤을 춰왔던제인에게 주물 같은 몸을 깨고 나와 자신만의 춤을 추게 했던, 처음으로 자기 몸의 주인임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지고의 욕망에 몸을 떨며 관습을 초월한 쾌락과 어둠의 심연이 뒤얽혀 있던 대학 무용과 시절의 은밀한 춤의 이야기다. 이것은 소설의 중추가 되어 온통 에로틱한 위반행위로 독자의 의식을 고양시키는데, 기존의 기준을 위반하고 제한을 타파하며 고통과 절정의 쾌락을 경험케하는 도발과 악의 내부의식이 제기하는 문제를 살피게 한다.

 

소설은 이처럼 에로틱한 물결로 가득 차있는데, 그 형식적 구성에 있어서조차 관능적이다. 이것은 제인의 은밀한 춤의 내용, “거대한 쐐기못. 거기에 매인 로프는 그들의 절박한 몸부림에 의해 어둠 속에서 느슨해졌다 팽팽해지길 반복하는 것과 일치하면서 그 강렬함을 증폭시킨다. 지연과 전진의 페티시즘, 소설의 결말, 앎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 자극으로 가히 폭력적인 읽기로 내몬다.

 

그런데 이 반복의 페티시즘은 안무가 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제인의 기억을 들춰내고, 자아가 상실된 그녀의 껍데기뿐인 실체를 드러내며, 마침내 거울에서 이상화(理想化)된 타자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제인과 텐은 다름 아닌 거울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텐을 통해 제인의 적나라한 욕망의 세계를 다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소설은 이처럼 제인과 텐이라는 인격 뒤에 감추어진 타자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개인의 욕망이 그녀와 그를 에고가 소외된 존재로, 즉 타인들의 응시와 관점에서 생긴 존재로 규정하는 비인격적 타자에 의해 정해진 불온한 인간의 모습을 비춘다.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는 일이란 그리 용이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타자의 삶이란 얼마나 피상적인가.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거절했을 때 삶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으리라일체의 감각과 지성을 깨우는 강력한 작품이다. 불현듯 이런 생각도 스친다. 혹 여성주의 물결과 함께 억압되었던 자기애와 욕망의 폭발적인 분출을 자극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작품 평점 : ★★★★★

작가 소개 : 1983년 서울출생,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15년 「아저씨, 안녕」으로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7년 장편소설 『위안의 서』로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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