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파우스트비극23, ‘성안의 안 마당에 이르면 파우스트는 중세기사로 변장하여 헬레나에게 압운시를 가르치는 관능적 쾌락의 정점에 달하는 장면이 있다. 고대와, 중세와 근대를 마구잡이로 널뛰며 도착한, 이 장면은 역사적 위치로부터 해방된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들과 양식들이 공존하는별난 세계, 소위 비동시대성(Non-Synchronism)’이라는 말을 설명할 때면 빈번하게 인용되는 부분이다.

 

비동시대성이란 많은 개인들이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문화적 또는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한 사태를 일컫는다. 이러한 양태의 탁월한 사례로서 파우스트는 예외없이 등장한다. 이 개념이 떠오른 것은 바로 지금 우리 정치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커다란 파문을 바라보면서 문학의 기능을 새삼스럽게 생각게 된 탓이다. 한국사회는 엄청난 변혁기에 서있으며, 평화와 번영, 평등과 자연과의 공존 등 새로운 가치를 향해 있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더 이상 안보에 볼모가 되어, 불안과 경쟁, 성장과 차별의 수구적 경향에 머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독일의 사상가인 에른스트 블로흐가 그의 저술 Heritage of Our Times, 1932에 쓴 문장은 마침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개인들이 지닌 시대성의 논파 그것만 같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지금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 오직 외적으로만 그렇다.

오늘 거리에서 이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동시대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이들이 서로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 자(6.15) 뉴스를 보면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선거 참패에 따른 자성의 목소리가 여럿 소개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새로운 가치와 민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몰락했다.”, 혹은 보신주의, 수구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당 해체를 통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와 같이 자신들이 동시대의 가치지향에 동행하고 있지 못함을 비로소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이 진정이라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아마 밝을 것이라 예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같은 한국사회의 구성원임에도 이처럼 비동시대성의 역행적 의식에 머문 집단들로 인해 너무도 큰 갈등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떠난지 오래된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의식이 마비되어 있던 사람들이 이제 시대의 의식을 깨달았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니체 또한 선악을 넘어서에서 독일인들은 그저께의 사람들, 그리고 모레의 사람들이다. - 그들에게 아직 오늘이 없다.” 라며, 시대의 가치에 뒤쳐진 자신의 동족을 향해 외치기도 했으며, 프로이트는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Die endliche und die unendliche Analyse)에서 원시 시대의 용(dragon)들은 실제로 멸종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듯 수구적 가치의 망령이 여전히 발목을 잡아당기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혹여 나의 문화적, 정치적 의식이 현재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이 사회에 비동시대성이 횡행하게 하는 존재가 아닌지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헤르만 브로흐의 소설 몽유병자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그에게 요하임과 루체나는 그들이 속한 시대, 즉 그들에게 살아갈 권리를 부여해준 시대에서

존재의 작은 단편들만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더 큰 부분은 어딘가 다른 곳에,

 (....)이 세계가 각기 다른 세기에 속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바로 그들이 동시대인들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들이 불안정하고 서로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마 이 때문이리라.”

 

문학 작품은 실로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제한된 공간속에 공존하는 역사적 비동질적인 사회적, 상징적 형식들을 예리하게 통찰해 낸다. 우리의 문학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성찰들이 발견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최근의 한국 소설들은 지나치게 현상적인 문제들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전환기에 선 나라들에서는 항상 세계적인 걸작이 탄생했다. 마침 우리도 그렇다.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거대한 발걸음을 구성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사유의 가치들을 모색하는 문학 작품들이 많이 써지기를 기대해본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보여준 우리나라 사람들의 선택은 정말 멋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