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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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여름
독서 모임에서 ‘여름, 책 읽기’ 미션으로 만난 책이다. 이탈리아 현지인들도 휴가를 떠난다는 8월의 여름. 그 여름처럼 강렬했고 그곳을 여행 온 이방인처럼 설레는 작품이었다.


#책에 대해
나는 양장보단 반양장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겉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영문의 제목과 복숭아 이미지도 좋았다. 다만, 겉표지가 약한 재질이라 쉽게 찢어지고 상할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도서관에는 겉표지가 남아있는 게 없어 보였다. 내부의 상하좌우 여백이 넓지 않아 어색했는데 다행히 읽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고 가독성도 좋았다.


#책과 영화
책은 엘리오의 감정을 깊이 알 수 있다. 반면 다른 이들의 감정 또한 엘리오의 시선에서 주관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상상력이 필요하다. 엘리오가 올리버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를 늘어놓아도 독자로서, 엘리오보단 더 큰 어른의 시선으로 해석하며 읽게 된다. 영화는 아무래도 시간적 한계로 긴 이야기를 짧고 속도감 있게 풀어나간다.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섬세한 감성을 모두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아카데미를 포함 유수의 영화제에서 최우수 각색상을 받았지만 난 여전히 원작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원작에선 두 주인공이 헤어진 후 뒷이야기에 대한 부분도 참 중요한데, 현재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까지 다 넣는다면 무리가 있기에 계획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전체 내용에 비해 아주 짧은 부분인데 감독이 후속편으로 만들 의향을 내비쳤다. 오히려 그 부분이 더 기대된다. 아마도 우울하고 습한 슬픔의 영화가 될 것 같다.


#엘리오의 첫,사랑
처음. 우리 인생의 모든 처음은 두근거림의 역사다. 처음 시작하는 것들의 끝은 알 수 없고, 부딪혀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처음이 끝나면 경험이 된다. 경험 후에 우리의 태도는 조금씩 신중해진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첫사랑의 엘리오. 그에게 그 사랑은 어떤 것으로도 귀결되지 않는,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역동이다. 젊음과 혼동과 집착 속을 오가는 그의 감정이 오롯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떨렸다.


#올리버의 사랑
반면, 이 사랑의 끝을 아는 올리버의 감정은 아스라한 자취를 남긴다. 처음부터 그의 마음을 눈치챘지만 거리를 두어야 했던 올리버. 하지만 엘리오의 고백을 외면하진 못한다. 아이의 첫니, 첫걸음마, 첫입학 모습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엄마처럼 누군가의 첫경험은 자신의 처음을 떠오르게 한다. 어쩌면 올리버도 혼동 속에 휩싸인 엘리오를 보며 자신의 어린 날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올리버의 사랑은 엘리오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엘리오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동정한 것일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랑은 사랑하는 내 모습에 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는 나. 점차 바뀌는 나. 행복한 모습의 나. 상대방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 사랑의 실체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네 이름으로 불러줘’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나를 통해 너를 느끼듯, 나도 너를 통해 나를 느낀다는 것. 이 현실 속에, 이 시간 속에, 우리가 존재함을 느낀다는 감각. 어쩌면 인간은 <향연> 속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처럼 두 개체가 등이 붙은 하나의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너를 또는 나를 찾는 사랑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버지
엘리오의 아버지는 이 둘의 관계를 알고 있다. 원작에서는 은근하게, 영화에선 확실히 드러난다. 정말 멋진 건, 아들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이다. 아픈 사랑을 해야 하는 엘리오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이런 따듯한 아버지를 둔 것은 부러웠다. 만일 내게 다음 생이 있다면 좋은 아버지로 살아보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혈연’이란 말이 부정적으로도 사용되지만, 사실은 아름다운 관계이지 않은가.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이.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인상 깊던 장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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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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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속의 약자, 갈등 속의 갈등을 파고드는 소설.


#다양한
문학동네 북클럽을 통해 가제본으로 받은 윤이형 작가님의 신작.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쓰인 11편의 단편집이다. 각 소설은 페미니즘, 성폭력, 동성커플, 성소수자 가족, 여성혐오 등 우리 사회의 약자를 주제로 하였으며 대중 장르를 넘어 판타지, SF 장르로의 확장이 놀라웠던 책이다.



#윤이형 작가님
처음 만난 작가님인데 작품들이 좋아서 다른 책도 궁금해졌다. 가장 인상적인 건 화자의 감정 묘사다. 작품마다 갈등하는 부분의 감정 표현이 일상의 쉬운 용어이면서 딱 들어갈 말들로만 쓰인 느낌이었다. 작가님의 예리한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을 볼 수 있었다.


#현시대
현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개인 간의 갈등이 만연하고 첨예한 시대를 살아가는 느낌이다. 통신기술의 발달은 개인 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해주고 피드백 받는다. 그러다 보니 나와 다른 의견을 더 많이 만나게 되고 더 자주 갈등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그런 갈등이 늘다 보니 하나의 문제에 깊이 생각하고 이해에 이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작은마음동호회>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서 깊이 생각할 지점들을 제시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약자 속 갈등
우리는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여성 등등 사회 속 약자들을 잘 안다. 하지만 우리 눈에 드러나 있는 약자들이 다 일까?
자신은 아니지만 성소수자 형제나 자녀를 둔 사람. IS로 들어가 버린 자녀를 둔 부모. 성소수자지만 아웃팅을 꺼리는 사람. 성폭력을 당했지만 여러 이유로 밝힐 수 없는 사람.
이렇게 세상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피해자와 연관되거나 또는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기 힘든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은 반대 집단에게도 비난받지만, 자신의 집단 안에서도 외면당하고 보호받지 못한다. 약자 속의 약자. 갈등 속의 갈등. 현대인은 파편화된 개인들 속에서 더 이상 연대할 힘조차 얻지 못한 채 갈라지고 어긋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가 다르다는 것
흔히 하나의 현상만을 보고 그 사람을 또는 그 집단을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흔하다. 나 또한 그런 실수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두가 다 다른 생각과 정체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조금 더 세상을 알아가고 이해하게 된다. 외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위로받는 부분도 있다. 어쩌면 사랑을 주고받는 것과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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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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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깨어나는 목소리를 찾아 엮은 수상작품집


#만남
데뷔 십 년 이내의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 중 선정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 점은 장강명 작가님의 <당선, 합격, 계급>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이번 문학동네 북클럽을 하면서 받아 보게 되었다.


#외부
-어떻게 보면 남녀의 코트 같지만 아닐 수도 있는 것 같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두 코트가 얽혀 있는 모습을 보니 슬픈 관계를 보여준 몇몇 작품들이 생각난다.
-상의 높낮이에 따라 구분 두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출간 1년 동안은 5500원의 보급가로 판매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내부
-수상집의 좋은 점은 작가노트를 통해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적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수상집과 다르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에선 작품당 ‘젊은‘ 평론가들의 해설을 붙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제1회 젊은작가상 심사위원을 맡으신 고 박완서 선생님의 심사평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감상
전체적으로 톡톡 튀고 마음에 자리 잡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젠 사랑의 이야기가 남녀라는 이성을 떠나 다양한 성향으로 쓰여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타인의 성향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평범한 일상에서 더 나아가 그 이면을 다루는 작품들도 좋았다. 다시 한번 음미해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문학동네 수상집’은 처음 읽어본다. 다음 해에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박상영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사랑과 증오, 타인과 나를 넘나들며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던진다. 어머니와 사랑한 사람. 그들 모두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내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플까. ‘우리‘가 될 수 없는 ‘나’이기에 우주처럼 헛헛하고 쓸쓸하다. 결국 인생은 그렇게 아무것도 이해받지 못한 채 굴러간다.



공의 기원
김희선
한 축구공의 역사를 허위로 엮은 이야기. 이 이야기의 주요 포인트는 ‘허위’로 ‘엮었다’는 점에 있다. 처음엔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하지만 이 글은 허구의 소설이다. ‘언론‘이라는 매체의 특성은 불신을 넘어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가 사실이 아닌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허구인 것은 아닐까?



시간의 궤적
백수린
평범하지만 소중한 날들이 있다. 보통 그런 시간들은 내가 깨닫지 못하던 과거에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시간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힘든 유학 시절 만났던 언니는 ‘나’에게 큰 힘이었고, 친절했던 외국인 남자친구는 ‘나’에게 희망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한때다. 결국엔 혼자서 그때 그날을 혼자 회상할 뿐.



넌 쉽게 말했지만
이주란
박솔뫼 작가의 글처럼 연속성이 있는 글이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한 일상을 그린 글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감정도 의견도 없는 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감정이 더 뚜렷하다. 마지막에 ‘석기’라는 아이가 ‘나’에게 욕을 해댄다. ‘나’는 정말 그에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래서 욕을 먹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욕을 먹을만한 상황도 아니다. 그냥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그렇게 돌아갈 뿐이다.



우리들
정영수
다른 두 남녀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다 자신의 옛사랑을 쓰게 되는 이야기다. 사랑을 경험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은 예상 가능한 것들. 그래서 나중에 하는 사랑이 더 빨리 정리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아픔은 똑같아서 누구에겐 평생을 간다. 우린 서로 사랑을 했고 그 시간을 즐겼고 헤어졌다.



데이 포 나이트
김봉곤
성향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겐 사랑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D/N. 영상 기술의 데이 포 나이트 기능처럼 우리 삶의 장면들에도 그 이면의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 장면들을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 이면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걸 잊을 순 없다. 결국 해결 방법은 다시 꺼내어 재생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긴
이미상
입시 열풍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하지만 소설은 그 지점을 더 나아가 사회적인 그리고 인류적인 근본 문제에 닿아있다. 개혁이 안주하는 과정.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반복되는 고통들. 그것은 마치 인간 세상의 틀처럼 과거에도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그 틀을 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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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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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되고 꾸며진 세상 속에 누가 정상일까.



#궁금함
민음사 북클럽을 하면서 선택한 책이다. 너무 유명하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 읽어보려고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뮤지션이자 작가, 책방주인인 ‘요조’가 이 <인간실격>의 ‘요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었어서 ‘과연 어떤 내용이기에 한 사람이 가명으로 쓸 정도일까’-하는 궁금증이 앞서 선택했다.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
요조는 극도의 자기혐오에 빠져있다. 그런데 다자이 오사무가 요조와 정말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소설에 쓴 것 같다. 여러 여자와의 만남, 외도 그리고 자살시도로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 한 인간의 삶이 실제로 그랬다는 것이 놀랍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데 부잣집 도련님이 공산주의 사상에 끌리게 된다. 작가는 평생 자신을 (자신의 위치를) 혐오하며 살았다고 한다. 정확한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그가 쓴 글에서나 여러 번에 걸친 자살이라는 극단적 시도를 보면 진짜 같기도 하다. 그 마음이 진짜였다면 작가는 이 세상을 견디기에 너무 순수하고 여린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순수한 영혼. 제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기엔 세상이 너무 험악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
어느 정도 어린 시기를 지나고 나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걸 알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거나 평생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느낄 때가 있다. 나로 인해 관계에 금이 가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 더욱 뚜렷하게 느낀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내가 참 한심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차라리 사회적으로 어릴 때부터 그런 점을 가르쳐주면 안 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국.영.수를 가르치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그 생각을 바르게 표현하거나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이 개개인에겐 더 필요한 부분이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이 사람의 사고를 키울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했고, 철학교육을 아이 때부터 시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특정 성향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을 모두 컨트롤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현재의 중립이 미래의 중립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름으로 교육의 취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이는 극히 일부일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과 어울려 사는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논리나 구조를 아는 것을 넘어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아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요조’처럼 평생에 걸쳐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인공 요조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융합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굉장히 괴로워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일에 공포를 느끼는 인물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나도 그 두려움을 이해한다. 하지만 요조는 그 두려움의 강도가 죽는 날까지 유지된다는 점은 특이했다. 어쩌면 요조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대를 품고 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겉으론 냉정해 보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믿음이 있었기에 자꾸 상처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_____
P117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P131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광대
타인과의 관계를 거리로 따진다면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결국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면 서로의 ‘거짓된’ 또는 ‘꾸며진’ 모습을 볼(보여 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소설 속의 요조는 이것을 ‘광대짓’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웃기는 광대짓을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엔 비유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되고 꾸며진’ 모습이라면 그게 ‘광대짓’이 아니고 무엇일까. 누구나 이 말에 대해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다만 요조는 이것을 역겨운 일로, 부끄러운 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요조와 우리 중 누가 정상인 걸까?


#실격
요조는 어릴 때 집안 하인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온다. 그 부분이 아주 담담하고 짧게 쓰여 있어서 읽을 당시에는 크게 인지를 못 하고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요조에겐 아주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피해를 본 그가 사람을 불신하게 된 건 당연해 보인다. 소설 말미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성폭행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요조는 아내를 구할 생각도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작가는 누가 보더라도 인간의 자격이 없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마저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답지 못한 인간. 요조가 자신이 인간실격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조금 더 뒤에 가서지만, 실질적으로 요조가 실격된 건 이때였을 것이다.


#만화 인간실격
이토 준지가 쓴 만화 <인간실격>이 있다고 한다. 만화 <인간실격>은 원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 장면으로 시작하고, (총 세 권 중에) 마지막 3권은 이토 준지가 새롭게 그려낸 이야기라고 하니 더욱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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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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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한국 소설가 중 나의 최애 작가님. 작가님의 작품을 다 읽어보겠다는 혼자만의 미션도 가지고 있다. [문학동네 북클럽] 셀렉도서로 이 책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차례
각 챕터 제목을 두 글자 단어로 세 개씩 배열했다. (음악의 3도 화음이 생각나기도..) 작가님은 등장인물들의 삶이 패턴처럼 펼쳐지는 것을 독자가 차례만 보고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 챕터만 두 글자 단어가 아닌데, 그것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일어나는 부분이기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참 치밀하게 짜여진 소설이다.



#그믐
이 소설을 구상하기 전부터 ‘그믐’의 어감(또는 슬픔의 이미지 등)이 좋아서 자신의 작품에 한번 사용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정재승 박사님의 <열두 발자국>도 그렇게 붙여졌다고 함) 그믐달은 새벽에 떠서 해가 뜨기 전까지 잠깐만 볼 수 있는데, 우리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사실은 하루종일 떠 있는 존재다. 그런 그믐의 특성을 그대로 차용했다. (‘차례’와 ‘그믐’에 대한 작가 의견은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 - (2015년 9월 5일 방송분)>에서 참고)
내가 느낀 ‘그믐’의 이미지는 두 가지다. 1)보이진 않지만 정해진 운명(시간)을 의미하는 것과 2)주인공들간의 숨겨진 마음 또는 선악구도의 흐릿함(혼재된 선악 관계)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부제목인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서도 그런 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옳고/그름, 좋고/싫음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뒤섞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스토리 전개가 뒤죽박죽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내용 이해가 잘 되는 건 놀랍다) 시간의 뒤섞임이 드러나는 형식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1) 실수로 <우주 알 이야기>원고가 섞이는 것
2) 이 작품의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진행되는 것
3) 남자 주인공이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 - 전지적 시점
이 세 가지가 잘 어우러져 있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이 <우주 알 이야기>라는 응모작 원고를 바닥에 흘리는 바람에 그 작품의 순서가 뒤죽박죽 섞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 이후로는 내가 마치 <그믐>을 읽는 건지 아니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 <우주 알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 전체가 참 교묘하고 섬세했다.



#시간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 순서대로가 아닌 시간의 앞뒤가 없는 세상. 영화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소설 속엔 ‘인터스텔라’, ‘우주 알’, ‘그믐’과 같은 시간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와 이를 영화화 한 <컨택트>가 많이 떠올랐다. <컨택트>의 언어학자 루이스가 외계인 햅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게 되면서 정해진 운명을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믐>의 남주가 그런 상태이다.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정해져 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용서를 바랄 수 있을까? 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헤어질 사람과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결국 죽겠지만 그 죽음을 앞당길 용기가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다.


_____
P148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같은 말들. 사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그 모든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 폭력, 운명
이 소설을 시간 순서대로 바로 잡아보면 어떤 사건을 향해 나아가는 전개가 아니라 그 사건 이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학교폭력이 있었고, 살인이 일어났고, 수 년이 지나 살인자는 형을 다 살고 나온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살고자 한다. 그 와중에 학창시절 좋아했던 여자와 재회하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죽은 아이의 엄마까지 다시 만나게 된다. 슬프게도 살인자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 여기서 폭력은 시간을 달리하면 다르게 느껴진다.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계속 그 자리를 바꾸게 된다. 마지막엔 결국 각각의 폭력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살인자도, 죽은 아이도, 그 아이의 엄마도, 여자 주인공도 모두 그들이 악이 되는 지점엔 이유가 있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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