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 곤충기 2
앙리 파브르 지음, 김진일 옮김, 정수일 그림, 이원규 사진 / 현암사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제2권. 파브르 인생의 역경과 새로운 터전에서 피어나는 연구에 대한 열정.



#인생역경
열아홉에 신임 교사가 될 만큼 똑똑했고 평생을 교사로 보낸 장 앙리 파브르. 지금 우리가 보기엔 안정된 생활로 보이지만 당시엔 공장 노동자보다 못한 급여를 받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교수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생활고를 감당할 수 없어 거절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 그에게 교사로서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실질적인 경험과 사실을 중시했던 파브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도 똑같이 했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종교적 색채와 성차별이 남아있던 당시 사회에서 여학생들에게 호기심이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런 호기심을 불어넣은 교사인 파브르는 학부모들에 의해 파면당한다. 모든 것을 잃고 부당하게 쫓겨난 파브르는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도움으로 세리냥 아르마스에 집을 구하게 된다. 2권의 내용은 여기서 시작된다. 곤충기 집필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2권 내용
2권의 내용은 1권 마지막에 나온 사냥벌과 연결되어 단독생활을 하는 구멍벌류나 가위벌류에 집중되어 있고 그 벌들에 기생하는 가뢰과 곤충이 조금 나온다. 우리가 ‘벌’하면 흔히 생각하는 꿀벌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고 그 다양성에 놀랍다. 이들은 ‘과‘나 ‘종‘에 따라 다양한 생활방식이나 먹이를 가진다. 특히 사냥벌이 먹이를 마취시키는 것은 아주 과학적이다. 벌에 따라 잡는 먹이가 다르고 그 먹이에 따라 마취를 해야 하는 신경계의 위치나 횟수가 다르다. 벌들은 자신의 먹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고 그들을 산채로 보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에 대해 파브르는 마취 전공의들이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라며 칭찬한다. 파브르는 그때까지만해도 사냥벌들이 먹이에 방부처리를 할꺼라는 추측을 관찰과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다.



#동물행동학
파브르는 동시대에 살았던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생물학인 박물학이 생명체를 해부하여 관찰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곤충을 사랑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생명체를 연구할 때 살아 움직이는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험론자였다고 볼 수 있다. 파브르의 이 생각은 현대의 ‘동물행동학’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활발하지 않지만, 최재천 교수님과 같은 분이 하시는 방식이 여기에 속한다. 생명체를 해부해서 세포 단위로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고 생명을 이어가는지는 행동 관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겸손과 열정
파브르의 연구나 주장 중 상당 부분은 실패했거나 잘못되었다. 하지만 그가 중요한 점은 과학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실험을 통한 사실만을 받아들였고 가설에 대해선 항상 신중하게 말을 고른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면서 그의 그러한 겸손한 태도가 항상 눈에 띈다. 그와 함께 그는 끊임없이 궁금해한다. 그의 끝없는 호기심과 상상력은 밀과 다윈 뿐 아니라 (시인) 프레데리크 미스트랄과 같은 문인들도 자극시켰던 것 같다. 겸손과 열정. 파브르와 함께 기억해야할 자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 한 사람의 이야기.


#자신의 과거를 찾아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읽을 책들이 많아서 미루다가 우연히 줄거리를 듣곤 관심이 커져 버렸다. 기억을 상실한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니 주인공에겐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찾을 수 있을까? 찾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 겉으로는 추리물이지만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내용이라 박진감보다는 슬픔이 스며 나는 작품이었다.




#기억상실자의 탄생
__
P9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은 과거가 없다. 과거가 없다는 건 현재의 자신을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건 과거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내 이름, 내 나이, 나의 성격,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래서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듯이 과거의 바탕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에겐 자신을 표현할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현재 자신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도의 상태는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최고의 문장이며 환상적이다. 곱씹을수록 기억을 상실한 한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한낱 실루엣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상실자의 탄생이다.


#인생은 깜박이는 점
최근에 ‘시간‘에 관한 책에서 과거란 (그리고 시간이란) 기억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영역, 그러니깐 외부 세상에 실재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뇌 속에 존재하는 영역이라는 내용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과거는 기억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기억할 수 없다면 우리의 과거도 사라진다.
나는 내 과거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부분도 꽤 많을 것이다. 과거를 잊어버린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아가며 A에게도 대입해보고 B에게도 대입해보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찾아 나간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개인의 일생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일종의 대화이지 않을까. 과거가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거라면 더더욱 그럴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의 역사는 현재의 나에 의해 끊임없이 재단되고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인식하는 우리에겐 인생은 선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현재만 실재하는 거라면 우리의 존재는 선이 아닌 점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각자가 이 세상에 굵은 선을 남기길 원하지만, 결국 우리는 점인 걸까. 이진순 작가님의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에서의 표현처럼 우리는 제자리에서 한순간 반짝이는 점인 걸까. 저 우주 속 별과 우리 몸의 성분이 같다는데 그 삶의 형태마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상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단순히 (개인의) 기억상실 말고도 시대의 상실도 함께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도 길게 하고 싶지만 이만 줄이려고 한다.
소설에서 2차세계대전은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면서 그 단서들은 뒷부분에 나온다. 나는 시대 상실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불과 할머니, 할아버지 때 이야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안고 산다는 건 어떠한 고통일지 짐작하기 힘들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의 나도 사라지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장
윤이형 외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광장은 어떻게 변해왔으며 나의 광장은 어떤 모습일까


#전시회 소설집
단편 소설집 <광장>은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전시용으로 반짝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도록‘의 비용을 생산적인 곳에 투자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단순히 전시품 모음집의 형태와 기능을 넘어 그것 자체가 ‘전시 작품‘으로 승화되었다는 점이다.


#첫문장
윤이형 | 저는 그 방식에 동의할 수 없는데요.
김혜진 | 우리는 그 집에서 2년 8개월을 살았다.
이장욱 | 코끼리였어요.
김초엽 | 아무도 마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박솔뫼 | 운동장을 뛰다 보면 농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네다섯 명이서 늘 몸을 부딪치며 농구를 하고 있었다.
이상우 | 안녕하세요. 나가유미 씨. 오래간만입니다.
김사과 | 나 딸을 낳아요.


#소설가가 그린 광장
<광장>은 작품마다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고 ˝광장˝을 주제로 한 소설집이다. 각각의 소설도 전시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모든 작품이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윤이형, 김혜진, 김초엽 작가님의 광장이 기억에 남는다. 윤이형 작가님의 작품은 연대의 방향성과 온라인 속 광장을. 김혜진 작가님은 사랑하는 이와의 소통과 파롤의 광장을. 김초엽 작가님은 소외 집단과 저항의 광장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것들은 우리 현실과 연결되기도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광장
요즘 나에게 ‘광장‘이라고 하면 몇 해 전 사건 때문에 정의 실현이나 저항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뒤이어 고대에 소크라테스가 매일같이 찾아들었을 아고라 광장도 생각난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는 아주 이질적이다. 한 목소리로 외치는 모습과 서로의 주장을 논박하며 자신의 소리를 높이는 모습. 광장은 인간 사회를 추동하는 협동과 대립이 피어나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21세기는 이런 광장들이 잘게 쪼개어져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어느 광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간이 더 늘어난 것이다. 가끔은 모순되는 주장을 다른 광장에서 다르게 할 때도 있고, 같은 주장이라도 광장에 따라 다른 반응을 받을 때도 있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우리의 광장도 (그리고 나 자신도) 파편화됨을 느낀다.


#윤이형 작가님 광장
오픈 채팅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광화문 광장에 초대형 ‘복합 집회 문화 공간‘을 만들 거라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주인공이 속한 만화가 단체도 이를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하자는 취지로 오픈 채팅방에 모이게 되는데, 시위 방식을 놓고 의견충돌이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시위 방식에서 ‘현장 시위‘와 ‘여론 형성‘이라는 두 방향성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작가님의 다른 소설 <작은마음동호회>에서도 나타난다. 전에 북토크에서 들은 이야기를 복기해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촛불집회 당시 작가님의 경험과 죄책감이 녹아든 작품들이다. 그래서 글 속의 고민들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오픈 채팅방이라는 공간 그리고 광장이라는 상징이 재미있는 지점이면서도, 의견 충돌과 분리주의로 나아가는 내용 전개는 조마조마하고 날것의 현실을 보는 씁쓸한 마음으로 읽었다.


#대립
살면서 수많은 의견대립을 겪어 왔지만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는 방식이란 없었던 것 같다. 각자의 상황과 경험이 다르기에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단정 지을 수도 또, 지금의 결정이 시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음을 안다. 타인을 볼 것도 없이 10대의 ‘나‘와 20대의 ‘나‘를 되돌아보더라도 갈등이란 게 얼마나 간교하고 하잘것없는 에너지 소모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그걸 알면서도 또 다른 갈등에 대비하고 대립한다. 이러한 알량한 깨우침과 모순의 반복은 나를 가볍게 만들 뿐이다. 언제쯤이면 마찰 없이 받아들이는 그런 내가 될 수 있을까. 나를 이기는 게 가장 힘들다.


#외형 #표지디자인
소설책이 아닌 디자인책에 쓰일 법한 북디자인을 적용했다. 먼저 천 느낌의 소재와 받침 ‘ㅇ’을 광장의 모습처럼 형상화한 것이 멋졌다. 표지의 글씨가 자연스레 벗겨지는 느낌도 상징적이면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본문의 여백이나 다듬새는 투박하지만 외형의 디자인은 멋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리학의 눈으로 본 시간


#카를로 로벨리
뉴필로소퍼를 읽다가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의 인터뷰를 보고는 이 분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란 책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나는 ‘시간‘에 대해 궁금했기에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이 책을 구입했다.


#루프양자중력
미시세계의 이론인 양자이론과 거시세계의 이론인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을 연구하시는 분이라 설명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글 스타일이 감성적이어서 그나마 느낌적으로 넘길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저자의 주장을 정확히 알려면 이론들을 조금씩 알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시간과 존재
시간은 유일하지도 않고,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방향성도 없으며, 규칙적이거나 일정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변화(시간)의 핵심은 사물이 아닌 사건의 연결일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일 뿐이며 ‘미래’란 엔트로피가 증가한 결과일 뿐이지 둘의 관계에서 흐름이란 없다고 말한다. 많이 혼란스럽다. 시간에 유일성, 방향성, 독립성이 없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흐름 자체가 없다는 생각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시간을 보내며 글을 써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면 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 순간의 생각들로 이루어진 내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살고 있는데 이 현재의 감각은 무엇일까? 음악이 흐르고 태양이 이동하고 잔 속의 커피가 비워질는 것은 환상일까. 나는 찰나의 깜박임인가 영원의 순간인가. 모든 것이 허무하다.


#점의 시간
우리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주장은 순간순간의 합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연속적인 ‘선‘이 아니라 흩어진 ‘점‘이라는 것이다. 이걸 보고 원자의 핵 주변을 도는 전자가 생각났다. 예전엔 전자가 일정한 궤도로 돈다고 여겨졌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전자는 순간이동을 하듯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왔다갔다하며 돌고 있더라는 것이다.(도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순간 존재하는 것일지도) 즉 일정한 공간 안에서 확률로서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시간도 그런 거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우리를 본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첫 문장]

(들어가는 말 중) 가만히 멈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P200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순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서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세계적이 아니라 지역적이다.

P208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시간이라는 것도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공간, 우리 신경들의 연결 속 기억의 흔적들에 의해 펼쳐진 초원이다. 우리는 기억이다. 우리는 추억이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갈망이다. 기억과 예측을 통해 이런 식으로 펼쳐진 공간이 시간이다. 때로는 고뇌의 근원이지만, 결국은 엄청난 선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필로소퍼 2019 6호 - Vol.6 :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6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시간에 대한 다양한 생각.


#뉴필로소퍼
작년에 잡지 뉴필로소퍼를 알게 되었다. 한 호에 하나의 주제로 철학적 내용을 담은 잡지다. 이번에 읽은 6호는 ‘시간‘을 다루고 있다. 철학 잡지라고 해서 어렵고 난해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주제로 쓴 가벼운 에세이도 있고,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연대별로 정리한 내용도 있었다. 역사, 문학, 과학, 논쟁 등 시간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접하며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시간
요즘 이걸 읽고 나서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다. 의식하지 않고도 숨을 쉴 수 있듯, 시간도 당연하게 존재하고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잡지의 여러 내용 중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세 가지다. 1)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나 문학이 많다는 것과 2) 현재의 기업들은 ‘소비자의 시간을 얼마나 잡아 두느냐‘가 최고의 화두라는 것, 그리고 3) 과학적으로 봤을 때 시간의 정체는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마지막 과학 이야기인데 양자역학으로 들어가면 더 모호해진다. 어쩌면 시간이란 여러 층이 중첩된 상태일 수도 있고, 반대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P133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사라지는 시간을 ‘크로노스 chronos’라고 불렀어요. 요즘 말로 하면 ‘시계로 잴 수 있는 시간’을 뜻하는데, 이런 시간은 지나가 버릴 뿐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크로노스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뜻하는 ‘카이로스 kairos’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했어요. 카이로스는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리는 것 같은, 우리가 애타게 바라고 평생 기억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뜻하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크로노스를 낭비하는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잡다한 일로 인생을 채운다면 카이로스를 낭비하는 게 돼요. 자,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질게요. 여러분은 어떤 시간을 낭비할 건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