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칼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림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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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겨울, 마음을 크게 울리는 멋진 소설을 만났다.

<오직 아이들만 사랑할 줄 안다> 



제목과는 다소 상반된 어두운 느낌의 표지.

아이, 사랑이라는 달콤하고 미소가 절로 나는 예쁜 단어의 제목과는

사뭇 다른 고개를 떨군 아이의 그림자가 작은 비탈을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

흑백으로, 그것도 벽에 비친 모습으로 담긴 표지에서

이 책이 그저 아이다운 발랄함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짐작이 된다.


책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나는 가지 못했어요. 엄마의 장례식에.

 사람들이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해서 집에 있었어요.

 엄마의 방, 침대 옆에."


주인공 브루노는 여섯 살 남자아이다.

소년이기엔 어리고, 아기이기엔 훌쩍 컸지만

어느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를 여읜다는 것은 가혹하고 슬픈 일이다.

심지어 브루노는 죽음을 대면하기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장례식에는 가지 못한다.


엄마의 죽음.

가족들은 모두 장례식에 갔고

자기 혼자 엄마의 흔적이 곳곳에 박혀있는, 엄마의 방 침대 옆에 

오도카니 서 있는 소년이라니.  (생각만 해도 벌써 눈물이 난다.)


브루노의 형과 누나는 엄마를 잃은 슬픔에도 일상을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술에 의지한다.

브루노가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가히 시와 같다.


"슬픔이 나무가 되어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고통이 나를 굳게 해요.

 내 가지에, 내 나무줄기에, 주위의 풀에

 눈물이 어려 있어요.

 왜 나는 더 많이 울지 못할까요?"


 

브루노에게 엄마의 죽음은 수많은 질문으로 남는다.

죽은 엄마에게 "대체 언제까지 돌아가신 채로 있을 거에요?"라고 묻고

잠시 엄마를 잊고 행복한 순간을 보낼 때 조차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요?" 라고 묻는 브루노.


상실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슬픔을 너무나도 명징하고 철학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글솜씨가 아름답고 놀랍고 큰 울림으로 남는다.


이 소설은 프랑스의 가수이자 작사가, 작곡가인 칼리의 작품이다.

그는 유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소설인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가히, 단순하지만 서정적인 문장으로 독자의 감정을 단숨에 사로잡는 글솜씨,

소설이지만, 문장들을 따로 떼어놓으면 시 같은 느낌의 글이

그저 그냥 나온 것이 아니구나, 싶다.


삶의 가장 큰 시련을 겪은 소년의 일상을 아이의 말투로 묘사하여

브루노의 감정을 따라가는데 더 크게 몰입이 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저마다의 고통 속에 잠겨있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고백했지만 무시당하고, 

비슷한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며 새로 사귄 가장 친한 친구와 떨어져

낯선 아이들과 함께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브루노는

어른들의 부당함에 분노하고, 입을 다물고 무언의 투쟁을 하며

여름캠프에서 만난 아이들과 여러 사건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한다.


고통이 성장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인생에서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거부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과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아이의 눈과 언어로 원초적으로 표현하여 아름다운 책이다.


고통 중에서, 다른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상처를 보듬고,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애틋하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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