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의 작은 역사 -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20가지 불온한 것들의 목록
김성환 외 지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 / 천년의상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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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위에 금지가 있었다. 는 말은 그 형태가 낯설지 않다.

종교적 선언 같기도 한 이 문구를 시작으로 

20가지 금지의 작은 역사를 목록화했다. 


마치, 굳이 방송 3사로 나눌 필요없이 결말이 뻔한 연말의 각종 시상식처럼, 

나오리라 생각했던 주제들이 나오다가 어랏? 싶은 얘기들도 나온다.

그만큼, PC함(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민감성이나

트렌드와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지 감지하(고자하)는 안테나의 예민함에 따라

사람들에게 '당연히' 금지되어야 할 것, '아직은' 금지되어야 할 것 혹은

절대 금지되지 말아야 할 것들의 스펙트럼은 무한히 넓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되면 이 책을 쓴 사람들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누구이며, 왜 이 20개의 키워드를 골랐을까?


저자들의 면면과 그들이 낸 책들(여기에 제목은 적지 않지만)은 다채롭다.


한국 현대소설을 전공하고, 비교문화학의 관점에서 

한국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는 김성환님.

한국 기술문화와 서브컬처를 연구하며 

한양대 ERICA 교과목 '기계비평'의 기획자며 인문학협동조합 총무이사 오영진님.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이며 법학을 전공한, 

법사회사와 법문학, 법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이소영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천정환님.

한국 근대문학, 문화론을 연구하는 허민님.


이들은 인문학협동조합으로 뭉쳐 기획하여 신문에 연재한

<금지를 금지하라> 시리즈의 글을 고치고 묶어 책으로 출판했다.


한국에서 금지 또는 금기시 되는 여러 가지 사상, 풍속, 사생활 영역의 것들을

그것의 역사, 규범, 문화정치를 살펴보는 것으로

한국 사회의 자유와 다양성의 규모를 가늠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모난 돌이 정 맞는' 곳이고 '튀는' 존재들에게 가혹하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외치는 사람들은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주류에서 벗어난 것들은 때때로 영웅시되다가

곧 지나친 관심과 관심(에 따르는 사랑과 지지)에 부응하기를 바라는 

사회적 '예의범절'을 강요받고 제도를 따르도록 (혹은 이끌 모범이 되도록) 요구하다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징벌하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스타를 만들고, 망가뜨리며 다른 스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라면 ~ 해야 한다' '~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의 

개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 '금지'의 프로세스가 아닐까 한다.


부당한 금지를 완전히 금지하고,

낡은 금지를 영원히 박물관 안에 가두고

'차별 금지'를 법으로도 보장받고 싶다는 필자들.


사랑의 자유, 평등을 누리고 

권위주의와 유교적 가부장제의 잔재를 멀리멀리 쫓아내고픈

괴짜와 튀는 '이상한'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면 좋겠다는 

그들의 발제는, 모두가 쉽게 고개를 끄덕일만한 말랑말랑한 주제(갑질 같은)부터

어쩌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버리는 편리함으로

편견과 배척, 차별과 구별을 기꺼이 하며 그 댓가로 얻는 익숙함, 안정성,

즉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어느 정도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주제까지 다룬다.


독자가 자신이 '깨어있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이것만은..'하는 순간 왜 이런 금지들이 여전히 이 세상을 지배하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금지들이 건재한 이유도, 

그것을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존재들 때문이고

나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과정이 책 읽는 동안 반복된다.


작가들이 다룬 '금지 철폐'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스스로에게 여전히 '금지령'을 내릴 수 있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이 내가 사는 사회 속에서 억압과 차별로 작용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도 그런 고통을 받고 있거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다 또렷하게 응시하게 만드는 책 <금지의 작은 역사>


2019년을 시작하며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생각해보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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