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판 머리말 중에서...
철학의 의무와 순수이성.
우리 지성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작동 원리인가, 아니면 그것이 경험을 벗어나 무엇을 얼마만큼 인식할 수 있는가인가?
이성의 작동원리는 의외로 본질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현대 신경과학은 본질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가?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생긴 환영(幻影)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설령 대단히 칭송되고 애호 되던 망상이 소실된다 해도 말이다. 나는 이 작업에서 면밀함에 크게 주목하였고, 그래서 여기에서 해결되지 않은 또는 적어도 해결을 위한 열쇠가 제시 되지 않은 형이상학의 과제는 하나도 없다고 감히 말한다. 사실 또한 순수 이성은 완전한 통일체여서, 만약에 그것의 원리가, 그의 본성으로부터 그 자신에게 부과된 물음들 하나에라도 불충분하다면, 그것은 언제라도 내던져 버려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그 원리는 여타의 물음들 어느 것에도 충분한 신뢰성을 얻어 확장되지는 못할 터이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언뜻 자못 우쭐대고 불손해 보이는 나의 주장에 대해 경멸 섞인 불쾌한 표정을 짓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가령 영혼의 단순한 본성이나 제일의 세계 시초의 필연성 같은 것을 증명했다고 자칭하는, 아주 뻔뻔스런 기획의 여느 저자들의 주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온건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저자들은 인간 인식을 가능한 경험의 한계너머까지 확장하는 일을 스스로 떠맡겠다고 나서는 반면에, 나는 겸허하게이런 일은 전적으로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요, 그 대신에 나는 단지 이성 자신과 그것의 순수 사고만을 다룬다고 고백하니 말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지성이라고 일컫는 능력의 근원을 밝혀내고, 동시에 이 지성사용의 규칙들과 한계들을 규정하기 위해서, 내가 초월적 분석학의 제2장에서 순수 지성 개념의 연역이라는 제목 아래 수행한 것보다 더 중요한 연구는 없다. 나는 이 일에 가장 많은 노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그것은 희망한 대로 보상 없는 노고는 아니었다. 그런데 상당히 심오했던 이 고찰은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한 면은 순수 지성의 대상들과 관련해서 순수 지성의 선험적 개념들의 객관적 타당성을 입증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일로, 바로 그렇기에 그것은 나의 목적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것이다. 또 다른 면은 순수 지성 자체를 그것의 가능성과 그것 자신이 의거하고 있는 인식 능력의 면에서, 그러니까 순수 지성을 주관의 관계에서 고찰할 것을 노린 것인데, 이 해명은 나의 주목적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나의 주목적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중요한 문제는 지성과 이성이 일체의 경험을 벗어나서 무엇을 얼마만큼 인식할 수 있는가이지, 사고하는 능력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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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더 많이 알면 너도 나한데 이런 거 저런 거 강요할 거야? 다른 사람들처럼?"
"그럴 가능성은 있을 거야.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다 이것저것 서로 강요하면서 살아가니까."
"하지만 넌 그러지 않을 거 같아. 왠지 알 수 있어. 나는 강요하거나 강요받거나 하는 일에는 꽤 권위가 있거든. 넌 그런 타입이 아냐. 그래서 너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 그거알아? 세상에는 이런 거 저런 거 강요하고 강요당하길 좋아하는 사람도 꽤 있다는 거. 그러면서 강요한다는 둥 강요당한다는 둥 하며 요란을 떨잖아. 그런 걸 좋아하는 거야. 그렇지만 난 안 좋아 해. 안 하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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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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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마음이 자체를 거느리지 못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말했다. 음식의 참다운 맛을 아는 사람은 폭식을 하지 않으며,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은 폭식가임을 면할 길이 없다.
시의원 나리가 바다거북 요리를 대할 때 갖는 탐욕스러운 식욕은 한청교도가 통밀빵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발견될지 모른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천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먹을 때의 탐욕스러운 식욕이 그를 천하게 하는 것이다. 음식의 양이나 질이 문제가 아니고 감각적인 풍미에 빠지는 자세가 문제이다. 먹는 음식이 우리의 동물적생명을 유지하는 양식,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고무하는 양식이 되지 못하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벌레들의 양식이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냥꾼이 자라나 사향쥐나 다른 야만스런 짐승 고기를 좋아하고, 귀부인이 송아지의 족발로 만든 젤리나 바다 건너에서 온 정어리를 좋아한다면 이 두 사람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가 사냥감을 잡으러 물가로 가는데 비하여 그녀는 먹을 것을 찾아 저장실로 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그 두 사람이 그리고 여러분이나 내가 어떻게 이처럼 먹고 마시면서 세월을 보내는, 더럽고 천박한 생활을 해나갈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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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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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험에 관하여...

-낚시와 사냥을 가라. 날마다 멀리, 더 멀리, 또 더 멀리. 그리고 시냇가이든 난롯가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쉬어라. 그대의 젊은 날에 조물주를 기억하라. 새벽이 되기 전에 근심에서 깨어나서 모험을 찾아 떠나라. 낮에는 다른 호수에 가 있도록 하라. 밤이면 뭇 장소를 그대의 집으로 삼아라. 이곳보다 넓은 평야는 없으며, 여기서 하는 놀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대의 천성에 따라 야성적으로 자라라. 여기 있는 골풀이나 고사리처럼 말이다. 그것들은 결코 영국 건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천둥이 울리면 울리도록 내버려두라. 그것이 농부의 수확을 망칠우려가 있다 한들 그게 어떻단 말인가? 그것은 그대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사람들이 수레와 헛간으로 피할 때 그대는 구름 밑으로 대피하라.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소유하려 들지 마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사고팔고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녁에는 꼬박꼬박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기껏해야 근처의 밭이나 길거리로부터 돌아오는 것이며, 그곳은 집에서 나는 소리가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자신이 내쉰 공기를 다시 들이마시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시들고 있다. 차라리 아침저녁 때의 그들의 그림자가 그들이 매일 걷는 걸음보다 더 멀리 뻗쳐 있다. 우리는 매일 먼 곳으로 부터 집에 돌아와야 하겠다. 모험을 하고, 위험을 겪고, 어떤 발견을 한 끝에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성격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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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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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집주인은 나에게 자기 신세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이웃의 어느 농부와 계약을 맺고 늪을 개간하는 일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삽과 늪지대용 곡괭이를 써서 늪을 개간하면 1에이커당 10달러를 개간비로 받고, 또 그 땅을 1년 동안 비료를 써서 경작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조건이었다. 얼굴이 넓적한 아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불리한 계약을 맺었는지 알지 못한 채 그의 곁에서 즐거운 마음으로일을 해온 것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경험을 토대로 그를 돕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근처에 사는 이웃 중 한 사람이라는 것과 낚시나 다니며 빈둥빈둥 노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나 자신도 일을 해서 먹고산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밝고 깨끗하고 아담한 집에 살고 있으며, 그의 집처럼 낡은 집을 1년 동안 세내는 금액만을 가지고도 내 집을 지었으며, 그도 원한다면 한두 달 안에 궁전 같은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더니 존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아내는 양손을 허리에 대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들 부부는 자신들에게 그런 생활을 시작할만한 넉넉한 밑천이 있는지, 또 일단 시작하면 그것을 계속해낼 만한 산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 같았다. 그런 생활은 그들에게는 추측항법에 의해 배를 모는 것과 같아서 어떻게 해서 항구에 도착할지 뚜렷한 방법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그들은 아직도자신들의 방법대로 용감하게 인생에 달려들어, 얼굴을 직접 맞대고 물어뜯고 할퀴고 있으리라. 인생의 거대한 기둥들에다 잘 듣는 쐐기를 박아 갈라놓은 다음 하나하나 부수어 해결해가는 기술을 갖지 못한 이들부부는 마치 엉겅퀴나무를 다루듯 인생을 거칠게만 다루려고 한다. 하 지만 그들은 엄청나게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 존 필드는 안타깝게도 계산 없이 살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이 미국에 건너온 것을 잘한 일로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이곳에서는 차와 커피와 고기를 매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다운 미국은 그런 것들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활양식을 자유로이 추구할 수 있는 그런 나라여야 하며, 또 노예제도나 전쟁을 국민이 지지하도록 국가가 강요하고, 그런 물건들을 사용하는 데서 직접 간접으로 초래되는 쓸데없는 비용을 국민이 부담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없는 나라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마치 그가 철학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또는 철학자가 될 의향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이런 이야 기를 그에게 진지하게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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