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람은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는 이유.

나의 하나님이여, 이렇게 당시에 나는 아무도 속이지 않으시는 주님의 판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의지해서 사람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은, 대중들에게 훨씬 더 인기 있고 유명하였던 저 전차 경주자들이나 검투사들에 대한 나의 감정과 너무나 달라서, 나는 그 웅변가를 유독 진지하고 열렬하게 찬양하였고, 내 자신도 그런 식으로 찬양을 받고 싶었는데,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연극배우들도 찬양하고 사랑하였지만, 사람들이 연극 배우들을 찬양하고 사랑하는 그런 식으로 내가 사람들로부터 찬양받고사랑받기를 원하지는 않았고, 도리어 그런 식으로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유명해지지 않는 편이 더 낫고, 그런 식으로 사랑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미움을 받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혼은 하나인데, 그 어디에 이렇듯 서로 다른 무게를 지닌 다양한 종류의 사랑들이 산재하여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어떤 것을 객관적으로 미워하지는 않지만, 내 자신이 그렇게 되는 것은 싫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은 또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물론, 사람이 훌륭한 말(馬)을 아무리 아끼고 사랑하더라도, 실제로 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그런 논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연극배우를 사랑하는 경우에는 그대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연극배우를 좋아했으면서도 내 자신은 연극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은 끝도 없이 깊은 심연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는 사람의 머리카락들을 다 세시고, 주님의 허락 없이는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지만, 사람의 머리카락을 다 세는 것이 사람의 마음의 감정이나 움직임을 헤아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입니다.

이제 나는 내가 그 웅변가를 사랑했던 것은 사람들이 찬양하는 훌륭한 재능들이 그 사람에게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열렬히 찬양하였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확신을 가지고 주님께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당시에 그를 찬양하였던 바로 그 사람들이 그를 찬양하기는커녕, 도리어 그의 재능들에 대하여 험담을 하고 경멸하면서 그를 비판하였다면, 내 속에 서는 그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뜨거운 열정이 불타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 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이 그 웅변가를 찬양하는 비판하든, 그가 지니고 있던 재 능들은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 사람 자신도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의 감정만이 달라진 것일 뿐입니다.
확실한 진리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지 않은 영혼은 허약하기 짝이 없어서, 견고히 서지 못하고, 힘없이 픽픽 쓰러져 버리고 맙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갖가지 추측만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폐부에서 "말(言)"이라는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우리의 영혼은 그 바람의 향방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전후좌우로 요동치고, 거기에 가려서 빛이 희미해져서, 진리가 우리의 눈 앞에 있는데도, 그 진리를 볼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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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수백년 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뜬구름 같은 저 거짓된 부를 누리기 위해서는 뛰어난 웅변술을 익혀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선생님들에게 복종하여야 하는 것이 소년으로서 올 바르게 사는 것이라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듣고서,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온갖 비참하고 불행한 일들과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목적으로 나는 공부를 배우기 위하여 학교에 보내졌지만, 사실 이 가련한 자는 공부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고, 그런데도 학업을 성취하는 속도가 느릴 때면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어른들은 소년들을 그런 식으로 훈육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그 동일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저 괴롭기 짝이 없는 가시밭길을 닦아 놓은 까닭에, 우리도 그들을 뒤따라서, 아담의 자손들에게 수고와 슬픔을 더해 주는 그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여, 우리에게는 기억력이나 학습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나이에 걸맞은 그런 능력들을 우리에게 충분히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부하는 것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하였고, 그래서 벌로 매를 맞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벌 준 선생님들도 노는 것을 좋아한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였지만, 어른들은 자신들이 빈둥거리거나 노는 것은 "일"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놀면,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야단치고 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동정하고 어른들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이 일을 지켜 본 사람들은, 내가 공부해야 할 나이에 공놀이나 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한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내게 매 맞는 벌을 내린 것은 합당하고 옳은 일 이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나이에 그렇게 억지로 공부를 한 탓에,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더 부끄럽고 지저분하게 "놀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나를 때린 선생님도 나보다 더 낫게 행한 것이 있었습니까? 그 선생님도 동료 선생님과 시시한 문제로 논쟁을 벌이다가 지면, 내가 친구와 공놀이를 하다가 졌을 때 보다도 더 심하게 분해하며 자존심이 상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나의 소년기를 청년기 때보다도 훨씬 덜한 두려움 가운데 보냈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고, 특히 강요에 의해서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강제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지만, 만일 강제로 시켜서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분명히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러한 강제는 내게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라는것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면 그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나를 강제로 공부하게 한 어른들도 결코 잘한 것이 아니었지만, 오직 나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내게 선이 되게 하시고 유익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나에게 강제로 배우게 한 것들이 장차 내게 어떤 식으로 유익하게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어떻게든 출세해서 부귀 영화를 누려야 하겠다고 하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인데, 그러면서도 그것을 천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느끼지도 못하고 너무나 당연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카락도 다 세시는 주님께서는, 나에게 강제로 공부를 시킨모든 사람들의 잘못은 나를 위해 사용하셔서 내게 유익이 되게 하셨고, 공부하기를 싫어하였던 나의 잘못은 내게 벌을 주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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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 겨울날 지난날 그런 눈부신 때를 가졌다는 달콤한 추억이 없다면 그는 진작 얼어 죽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얼어 죽는 사람은 추억이 없었던 사람이라고 했다지만 그것은 바로 독고민을 두고 한 말일시 분명하다. 마음이 추우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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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안 수업 - 어떻게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보는가
윤광준 지음 / 지와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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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은 생각보다 더 획일적이다. 아파트 안 모두 똑같이 생긴 공간에서,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듯 하다. 무섭다.

유럽의 도시를 가보면 우리와 불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밤길가에 비치는 불빛은 하나같이 편안하다. 가로등의 불빛도, 건물 곳곳에 달린 조명도, 창을 통해 비쳐 나오는 실내의 불빛도 낮고 차분하고 따뜻하다. 어디에도 과잉된 빛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조명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처음 개척한 이는 늘 한탄하곤 했다. 조명은 무조건 밝아야한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디자인을 생각하는 사회는 ‘양‘이 아닌 ‘질‘을 생각하는 사회다. 아파트 시공업체가 달아놓은 천편일률의 조명 아래 사는 사회와 각자가 원하는 조명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의 풍경은 매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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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환 2019-02-09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니가 조명이 너무 밝다고 징징대던거였군
 

예술만큼 창의적 시도와 노력을 집약하는 분야는 없다. 예술은 구체적 용도가 없다. 용도를 지니는 순간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상품은 팔리지 않으면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거꾸로 예술품은 반드시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팔리지 않아도 실패라 하지 않는게 예술의 불문율이다. 자유롭게 무슨 짓을 하든 용서되는 인간 세계의 유일한 일탈통로가 예술인 것이다. 그런 만큼 새로움만이 최고의 선으로 인정받는 게예술이다. 비록 외면받는다고 해도 예술가의 작업은 도발적이어야 한다.
뻔한 것을 반복하는 일은 죄악이다. 뒤집고 흔들고 바꾸고 부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지 모르는 새로움만이 희망이고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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