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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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한 증오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가짜 그리스도는, 그 사자가 그랬듯이 유대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먼 이방 족속에서 나오는 것 도 아니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 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성자 중에서 이단자가 나오고 선 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호르헤가, 능히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나름의 진리를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허위로 여겨지는 것과 몸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 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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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의 선은 읽히는 데 있다. 서책은 하나의 기호를 밝히는 또 하나의 기호로 되어 있다. 기호는 이렇게 모여서 한 사상의 모습을 증언하는 게다. 이를 읽는 눈이 없으면, 서책은 아무런 개념도 낳지 못하는 기호를 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런 서책은 벙어리나 다를 바가 없다. 이 장서관은 원래 서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이다만 이제는 그 서책을 묻어 버리고 있구나. 이 장서관이 부정과 죄악의 수채 구멍이 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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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보아도 나는 그들 중 누가 옳았는지 모르겠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면 열정의 불길도 사라지고, 그 불길과 함께 진리의 빛으로 여겨지던 것들도 사라진다.
이제는 먼지가 되고 재가 된 한 여자의 아름다움을 놓고 싸운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아가멤논과 프리아모스 중에서 누가 옳았는지를 지금 와서 무슨 수로 시비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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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서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 을 가지지’ 말고(고전4:6),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마 22:37,39). 모세가 창세기의 그 말씀들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든지 간에, 그것이 사랑에 관한 이 두 가지 계명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과는 다른 것을 모세가 말한 것이라 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많은 말씀들을 기록한 것이나 우리가 그 말씀들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둘 다 사 랑에 관한 두 가지 계명을 위한 것인데, 이렇게 성경의 말씀들로부터는 아주 많은 지극히 참된 견해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서, 그러한 견해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모세가 의도한 것이라고 경솔하게 단정해 버림으로써, 위험천만한 논쟁과 다툼을 불러일으켜서 그러한 사랑을 파괴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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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양심이 큰 상처를 입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럼으로써 양심은 온갖 상처에 대해 보다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자네 말대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도록? 맙소사. 책을 읽어 행복할 수 있다면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책이라면 아쉬운 대로 우리 자신이 쓸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해주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깨는 도끼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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