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하나.

스물하나의 나에게 이 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십 분의 일이었고, 성인이 되고 난 이후의 시간과도 같은 양이었다. 나의 선택으로 공무를 만났고, 일상을 나눴고, 내 마음이 무슨 물렁한 반죽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씩 떼어 그애에게 전했으니 공무는 나의 일부를 지닌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와 떨어져 있는 나는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식의 애착이 스물하나의 나에게는 무겁게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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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를 만나기 전,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외로운 곳이었는지 이경은 기억했다.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무리를 이뤄 다니는 아이들과도 좀체 어울릴 수 없었던 기억. 아무리 아이들을 따라 하려고, 비슷해지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이라는존재를 애써 바꿔보려 했지만 불가능했으며, 그렇다고 바뀌지 않는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날 용서해줄래."
수이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널 힘들게 했다면, 그게 뭐였든 너에게 상처를 주고 널 괴롭게 했다면."
이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이경은 수이의 오해에 마음이 아팠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갈망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건데. 용서를 구해야 하는 쪽은 네가 아니라 나라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경은 수이의 그 말이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짐작했다. 수이는 이미 그때 이 연애의끝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지기 직전의 연애, 겉으로는 누구의 것보다도 견고해 보이던 그 작은 성이 이제 곧 산산조각날 것이라는 예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을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용서를 비는 수이를 보며 이경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알지 못했다. 너에겐 아무 잘못이 없어, 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조차 수이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아서였다. 이경은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수이의 동그랗고 부드러운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그건 수이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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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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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는 사건과 그로 인한 깨달음에 대하여...

어느 때이고 숲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놀랍고도 기억해둘 만한 경험이며 소중한 경험이기까지 하다. 특히 대낮이라도 눈보라가 치는경우에는 낯익은 길 위로 나왔더라도 어느 쪽으로 가야 마을에 이르게되는지 알 길이 없다. 자신이 이 길을 천 번이나 지나다닌 것은 알지만그 길의 특징 하나 알아볼 수 없어 마치 시베리아의 길처럼 낯설기만 한 것이다. 밤에는 물론 그 당혹감이란 비할 수 없이 더 큰 것이다.

사소한 걸음을 옮길 때에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나마 늘 수로 안내인처럼 잘 알려진 등대나 해안의 돌출부를 표지 삼아 배를 조종하며, 일상의 항로를 벗어나는 경우에는 근처의 갑얘의 위치를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다. 그래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거나 한 바퀴 빙 돌려지거나 하기 전에는(인간이 세상에서 길을 잃으려면 눈을 감은 채로 한 바퀴 빙 돌려지기만 하면 되니까.) 우리는 대자연의 거대함과 기이함을 깨닫지 못한다. 잠에서 깨어나는 몽상에서 깨어나는, 사람은 그때마다나침반의 위치를 다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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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대하여...

사람을 그의 동료들로부터 분리시켜 그를 고독하게 만드는 공간은 어떤 종류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발을 부지런히 놀려도 두 사람의 마음이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압니다. 사람은 그 무엇에가장 가까이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분명 아닐 겁니다. 기차역이나 우체국, 공회당, 학교, 잡화점, 술집, ‘비컨힐‘ 이나 ‘파이브포인츠‘같이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은 아닐 것이오. 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가 물 쪽으로 뿌리를 뻗듯 우리의 온갖 경험에 비추어보아 생명이 분출되어 나오는 곳, 즉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가까이 살기를 원할 것이오. 사람마다 본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곳에 지하 저장실을 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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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독서를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양서를 읽지 않는다. 우리 콩코드의 문화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 마을에서 극소수의 몇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가 모두 읽고 쓸 수 있는 말로 된 영문학에서조차 가장 훌륭한 작품들이나 그 버금가는 작품들을 흥미를 가지고 읽어보려는 사람들이없다. 이 고장에서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대학물을 먹고 이른바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영문학의 고전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인류의 기록된 예지인 옛 고전이나 경전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을 가까이 하려는 노력은 어디에서 간에 미약 하기 짝이 없다.

나는 우리 콩코드 땅이 배출한 인물들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기를 갈망한다. 비록 그들의 이름이 이곳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내가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끝내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우리는 버릇이 없고 무식하며 천박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책을 전혀 읽지 못한 사람의 무식과, 어린애들과 지능이 낮은사람들을 위한 책만 읽는 사람들의 무식 사이에 그리 큰 차이를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대의 위인들만큼 훌륭해져야겠다. 그러기위해서는 우선 그들이 얼마나 훌륭했던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는소小인종이며, 지적인 비상飛翔에서 일간 신문의 칼럼 이상은 날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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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환 2018-12-1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구문이네요 도연씨 ^^

dyk7929 2018-12-12 16:23   좋아요 1 | URL
기환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