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추억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성장소설이 수채화 같네~

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잠옷을 입으렴/추억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성장소설이 수채화 같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나와 관련이 된다면 대수로워집니다. 타인에겐 무의미한 이야기가 나와 연관이 된다면 소중해집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소중하겠죠.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남들 보기엔 별개 아닌 내 유년의 기억을 돌아보며 나를 성장시킨 한때였음을 상기했답니다.

소설 주인공 둘녕과 수안, 두 이종사촌 자매지간에 이뤄지는 우정이 귀엽기도 했다가, 그 이상의 애정이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공감하기도 했어요. 

엄마가 가출한 후 아버지와 살던 둘녕은 모암마을 외할머니 집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이모들, 외삼촌, 이종사촌 동갑내기인 수안과 함께 살게 됩니다. 엄마의 가출이 외할머니와 이모들에겐 책임감과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했을까요?

어려운 형편이지만 외가에서는 둘녕을 수안과 같이 대우하려고 애씁니다. 같은 종류의 잠옷을 입히고,  걸스카웃 활동도 같이 하도록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속내엔 둘녕 엄마의 가출 유전자가 수안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지고 있죠.

어쨌든 둘녕은 비록 외갓집이라지만 낯선 곳에서 외갓집 식구들과 어색함 속에서 새로운 가족 형태를 이뤄갑니다. 역시 또래라는 것은 더욱 친밀하게 만드는 매개체인가 봅니다. 처음엔 어색하던 관계가 함께 놀이 친구가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함께 유년기의 추억을 공유하게 됩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둘도 없는 자매지간이 되고 나아가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키가 큰 둘녕과 키가 작은 수안의 키 차이만큼 둘의 성장 속도는 달랐기에 두 사람의 관계엔 틈이 생기고 균열이 나면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둘녕은 수안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느끼게 되죠. 그렇게 좀더 나이가 들면 모든 과거는 행복했던 추억이 되나봅니다. 

 책 속에서는 과거의 풍경, 과거의 사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문학 이야기가 많아서 『슈티펠만의 아이들』,  『목화마을 소녀와 병사』, 『새벽의 하모니카』,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부엌의 마리아님』 등 유년의 동화들도 만날 수 있고, 계몽사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클로버문고, ABE문고 등 추억의 출판사들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내 유년의 추억이 겹쳐지기도 했어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좋아하는 시인들도 만날 수 있었어요. 

더구나 용각산, 맥소롱, 원기소, 미야리산과립 등  만병통치약이 든 외할머니의 문갑 풍경을 보며 외할아버지의 문갑 풍경도 떠올렸답니다.  마당보다 낮은 재래식 부엌, 여름밤 모기를 쫓아내던 마당의 모깃불, 타자기 등 옛 물건들이 어렸을 적에 본 내 외갓집 풍경과도 흡사해서 놀랬답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둘녕을 따라가다보면 그리운 추억의 보따리를 푸는 느낌입니다. 마음이 아픈 둘녕과 몸이 아픈 수안을 보며  우정과 사랑 차이는 끌림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유년의 좋은 기억들은 나를 성장시켰음을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이미 2012년에 나온 작품이 재출간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읽을 거리가 된다는 의미겠죠?  이도우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지만 한 편의 성장소설이 시골을 배경으로 이뤄지기에 한 편의 동화같기도 하고, 옛 시골 풍경을 닮은 수채화 같기도 했어요. 열한 살 소녀의 시점과, 서른여덟의 원숙한 여인의 시점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이뤄지기에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재미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