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가 싫어요 맹&앵 동화책 9
고정욱 지음, 박재현 그림 / 맹앤앵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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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고정욱 님의 책들을 꼼꼼히 다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님께 막연한 편견과 오해가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말이다. 아이들 책을 고르는 일을 많이 하다보니(별건 아니고 학교 도서관 담당으로 도서관에서 혼자 노는 걸 워낙 좋아해서) 가끔씩 목록을 요청하거나 책을 권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는데, 내 개인적인 취향임을 분명히 밝히고 권하긴 하지만, 그래도 찜찜함은 조금 남는다. 그동안 고정욱 님의 책을 권장도서 목록에 넣은 적은 있지만 누구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거나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읽어준 적은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아주 특별한 우리 형>과 <사랑의 도서관> 정도를 읽고 그것이 그의 작품 전체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작품들이 훌륭하지 않다는게 아니라, 주제의식은 강하나 표현은 약간 밋밋하고 미담사례 중심의 뻔한 결말...? 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냐' 정도로 생각했었던 듯.... 더구나 매우 왕성하게 다작을 하시는 작가라서 한 편 한 편 장고 끝에 나오는 책들은 아니라고 넘겨짚었던 것 같다.


이 글을 보시지는 않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작가님께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고 싶다. 남의 작품을 다 읽어보지도 않은채 함부로 재단한 나의 시건방짐에 대해서.(그렇다고 남에게 떠든 적은 없으니 부디 용서하시길) 그러고 보니 그의 책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이나 <텃밭 가꾸는 아이>를 읽고 '엇, 새로운 느낌이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은 나는데.... 왜 편견은 이제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두 개의 한국 현대사>와 <한홍구의 특강>을 읽고서 친일파 청산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그것을 하지 못한 역사가 얼마나 뼈아픈지를 느끼고 있던 중이었는데, 학교 도서실을 훑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헉! 제목이? 동화 제목이 <친일파가 싫어요>라는 말씀? 


왜 난 친일파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이 제목에는 흠칫했을까? 우리 사회에 정말 잘못된(어떤 이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버린) 공식 하나가 있는데 [친일파 척결을 주장하는 자들=자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들=좌파=빨갱이] 라는 공식이다. 이 공식에 순진한 분들은 그냥 넘어간다. 뉴스에서 친일파 어쩌구 하는 소리가 나오면 순수하고 무던하시고 남에게 싫은 소리 생전 할 줄 모르시는 우리 시부모님은 입을 맞추어 한탄을 하신다."아이구~ 그게 언제적 일인데 여직까지 난리여~ 이제 앞으로 잘 살 생각을 해야지 언제까지 옛날 일로 트집잡을 거여~ 어뜨케 사람들이 싸울 생각밖에 안해~ 자기들은 얼마나 깨끗하다고~" 


"아이구 어머님, 그게 아녀요. 권선징악이 보편적 가치가 되어야 정상적인 사회죠. 우린 친일파 때문에 그게 다 뒤집어졌잖아요. 오죽하면 친일파는 3대가 호강하고 독립운동가는 3대가 굶는다고 했겠어요. 그러니 기회주의가 판치고 옳은 일을 위해서 희생할 사람은 없는거 아녜요. 자손들이 그런 사회에서 살면 좋으시겠어요?" 라는 말을.... 난 하지는 않는다.ㅠㅠ 


이 두껍지 않은 동화책 한 권은 그런 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과 논리와 호소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시골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농사꾼이고,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천용이네처럼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도 한다. 이 마을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이닥쳤다. 이 일대가 일제시대 때 친일파 송병준의 땅이었다고 그의 후손들이 땅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건 것이다.


이후 재판을 하고 판결이 나기까지, 이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의 고단한 투쟁 속에 한국 현대사의 뒤틀림이 그대로 녹아 있다. 정의감과 당위성만으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현실. 저들은 여유있게 비웃는다. 힘없는 자들의 외침은 더욱 처절해진다. 그들이 창자가 끊어지도록 울부짖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분노와 울분의 눈물이 흐른다.


1심에서 패소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절망적이기만 한 결말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이러한 역사를 보고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중요하게 본 것 같다. 이 책을 쓴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추천사에  나오는 한나 아렌트의 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자비가 아니라 정의이다. 정의가 없는 동정은 악마의 가장 강력한 공범자의 하나이다." 이 말이 어느 때보다도 공감이 되는 요즘이다. 자비가 아니라 정의라는 말이 무자비한 보복을 일컬음이 아님은 물론이다.  단지 정의, 그것이다.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불의가 판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 것.


그늘진 곳을 비춰주는 작가의 눈은 정말 중요하고 큰 힘을 갖는다고 나는 믿는다. 고정욱 님은 그것에 사명을 갖고 계신 듯 하다. 그 올곧고 자상한 눈에 존경을 보낸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그의 남은 작품들을 둘러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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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ty 2014-09-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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