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재와 키완 - 두 아이가 만난 괴물에 대한 기록, 제1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75
오하림 지음, 애슝 그림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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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며칠째 리뷰를 못 쓰고 있었다. 첫째는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알 수 없어서이고 둘째는 내가 제일 난감해하는 시간여행 이야기가 나와서이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시간여행 이야기만 나오면 그 모순성 때문에 몰입이 안 된다. 그렇긴하지만 이 책을 그냥 흘려보내긴 뭔가 아쉬웠다. 느낌이 너무 색다르다. 난생 처음 본 곳에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다니는데 깨보니 꿈이었고 그 꿈이 너무 생생한 느낌?

'나'라는 화자는 '오랜 친구'에게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넣어둘 수가 없는 이야기라 '나'는 쓴다고 했다. 대신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들은 그대로가 아닌 이것저것 바꿔서 쓴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 책은 진실이 아니지만 어쩌면 진실이 아니라는 게 진실이 아니어서 진실일 수도 있다는....?? 들은 이야기를 각색해 쓰고 있으므로 '나'는 전지적 시점에서 순재와 키완, 그리고 필립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끔 엉뚱하게 본문에서 "내가 말했다" 하는 식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아, 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책이다.

순재는 전학 온 키완과 친구가 되었다. 키완의 본래 이름은 백기완이다. 부모님을 잃은 기구한 사연과 함께 키완이 된 아이에게 순재와의 우정은 너무나 소중하다. 하지만 순재는 늘 그렇지는 않았다.

기묘하고 불편한 인물 필립. 이 아이는 왜 순재를 못마땅하게 주시하다가 "너는 어차피..." "너는 절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어." "너는 말야, .....너는 .....다른 애들 다 되는 열 살도 될 수 없어!" 라는 섬뜩한 소릴 못참고 내뱉는 걸까? 이 친구의 정체가 궁금한데 나중에 알고보니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온 로봇이었다. 제작자는 80대의 로봇공학자 백기완 박사. 박사는 무슨 임무를 지워서 이 로봇에게 시간여행을 시킨 걸까? 로봇은 임무를 완수했을까?

보통 시간여행자는 과거 시점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흐름을 바꾸지 않는(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르려면 필립은 박사의 지시에 불복해야 한다. 그것이 박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박사의 의도대로 이루어진다면? 으아아아아 그때부턴 나도 모른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시간여행이니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난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끝에서 두번째 장, 순재와 키완이 끌어안고 목놓아 우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순재는 왠지모를 불길함과 공포에 지쳐 있었고 키완은 어린 나이에 당한 엄청난 고난에 질려 눌려 있던 슬픔과 외로움이 그순간 고개를 들었다. 키완은 "순재야, 죽지 마아!" 하며 순재를 안았고 순재는 눈물이 터진 키완을 "울지 마, 울지 마...." 하며 안아주었다. 그렇게 두 아이는 서로에게 가장 깊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실 이전까지 순재는 키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박사가 준 임무를 띠고 온 필립이나 '나'가 키완의 고마움을 일깨워줘도 순재에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나중에 나를 구해주는 사람은 꼭꼭 아주 많이 좋아해야 하는 거"냐고 물으며 힘들어 한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나도 좀 그랬다. 그 말이 맞아서.

하지만 둘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눈물을 흘렸고, 마지막장엔 작가의 의도로 짐작되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 아홉 살짜리 아이 하나를 잃어야 한다면 아주 나쁘지 않은 조건이야. 당신은 그걸 생각하면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해."
- 순재가 진정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도, 로봇도 아닌, 비정함 그 자체였다. 괴물은 우리 안에서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린다. 잡아 먹히기는 쉽고, 떨쳐 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아, 쓰고 보니 작가의 육성이 그대로 들어갔다는 느낌. 굉장히 강하다.)

그러고보니 한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앞에서 말한 시간여행의 모든 장치를 끌어들인 작가의 스케일이 정말 크다. 시공간을 넘어 소중한 한 생명. 이걸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괴물'이 된다.

이 책은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두 번째 읽을 때면 아마 많은 조각들을 고쳐 놓아야 할 것이라 짐작한다. (뭐 꼭 두 번을 읽어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한 번 읽은 느낌도 중요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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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2018-12-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네요~~~ 읽을 수록 또 읽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