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미
비페이위 지음, 백지운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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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미는 영화를 좋아했지만, 어머니는 좀처럼 보려 하지 않았다. 전에 위미는 속으로 불평하곤 했다.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영화 볼 생각이 안 난담.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사람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실 영화라는 것은 가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흰 천 쪼가리 앞에서 북적거리다니. 그냥 천 쪼가리일 뿐인데. 그것이 춥고 더운 것을 어찌 알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위미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음을 느꼈다. 마음이 차가워진 것이다. 마음이 한번 얼면 그만큼 더 자라는 법이다. 사람이란 이런 식으로 한 차례 한 차례 나이를 먹어가고, 마음도 한 차례 한 차례 죽어간다. 세월과는 아무 상관 없이.

긴장이 담긴 어색한 즐거움과 혼란이 알게 모르게 점점 비밀로 발전해갔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비밀이란 감동적인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따스한 향기처럼 번져나간다. 비밀은 그 비밀의 깊은 곳으로 서서히 침투해 들어가기를, 천천히 뻗어나가기를 갈망한다. 어느 정도까지 들어가면 비밀은 조용히 방향을 바꾼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정돈될 수 없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간다.

마음을 정하자 오히려 느긋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하루를 살면 하루치를 번다.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치고 나니 나중에는 잠도 잘 오고 입맛도 살아났다. 밥도 맛있고 국수도 맛잇고 만두도 맛있고 땅콩도 맛있고 무도 맛있다. 뭐든지 다 맛있었다. 끓인 물도 아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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