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공부 - 16개 국어를 구사하는 통역사의 외국어 공부법
롬브 커토 지음, 신견식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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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구사자의 언어공부 방법이라는 캐치한 문구에 현혹되어 집어들었지만 우리는 저자가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이미 사망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 당시는 지금과는 외국어 학습 환경이 전혀 달랐고 외국어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 상황도 완전히 달랐다. 저자가 첫 커리어를 시작할 때 무작정 영어선생 자리를 얻고나서는 학생들보다 2주 정도 먼저 공부를 해 가며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든 감정이란 배신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선 씨알도 안 먹힐 이런 이야기를 보려고 이 책을 산 거 아니거든요... 


외국어 학습법에 관해서도 그리 유용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외국어를 배우려면 최소 일주일에 10시간인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냉정한 이야기에 뜨끔하기는 했지만(의지만 앞설 뿐 학원수강 시간 외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반성)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 외에는 외국어 학습에 관한 큰 팁을 얻을 수 없었는데 그건 저자가 외국어를 공부하던 시대에는 대로 된 외국어 교육기관이나 전문 교육인력이 없어서 그냥 외국어 사전 하나 끼고 사전을 첫페이지부터 정독해나가며 그 언어의 구조를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전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며 언어의 구조를 대충 깨우치고 그 다음엔 외국어로 된 원서를 구해서 무작정 읽어나가고 가끔 운이 좋으면 그 외국어로 방츨되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어 듣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혼자 공부해서 동시통역을 했다고 하니 저자가 언어에 있어서 얼마나 탁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인지 감탄도 되고 동시에 그 시대엔 이렇게 얼렁뚱땅 해서 전문인력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니 동화같은 시절이었군 싶기도 한 것이다...(실제로 동시통역 하며 겪은 여러 실수들도 나온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21세기에 저런 학습법을 사용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영 쓸모없는 책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건 다국어 구사자의 언어를 소재로 한 에세이를 읽는 기쁨이랄까. 언어공부라는 제목 말고 조금 소프트하게 다국어구사자의 에세이 정도로 포지셔닝 했더라면 적당한 기대와 적당한 만족을 이끌어 냈을 거 같다. 사실 순수 에세이라 하기에도 조금 밀도는 떨어진다는 감이 있지만 어쨌든 다언어 구사자의 희소성이 그런 빈틈은 커버할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더 궁금했던 건 저자가 동시통역사로 전세계를 여행한 경험을 담았다는 다른 책이다. 언어 학습 자체에 관해서는 이 시대에 유용하게 쓸 정보가 별로 없으므로 에세이, 시대기록의 차원에서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인데 이 책은 한국판은 물론 영문으로도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 '언어공부'는 언어학습을 즐겨하는 이들이 가볍게 읽을만한 책. 외국어 학습에 대한 실용적인 팁을 얻고자 한다면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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