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동생들을 소개시켜 준다며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제비집 요리 해줄게요." 무서워서 못 먹는다 했더니 여자 몸에 좋다며 꼭 만들어주겠단다. 나는 중국 사람의 집에는 제비집 하나쯤은 당연히 있는건가 싶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먹어보기로 하였다. 


남자친구네 집엔 같이 사는 사람도 있고 또 언제든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아서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니 꼭 열한켤레의 남자 운동화와 한 켤레의 슬리퍼 그리고 나의 가죽 슬링백 구두 한 켤레가 오밀조밀 모여있게 되었다. 내가 손님이라는 이유로 가만히 앉아 쉬는 동안 네명의 젊은 남자들이 야채를 씻고 면을 삶고 육수를 내고 상을 펴고 분주히 일을 했다. 예쁜 풍경이었다. 


식사가 시작되고 술이 돌자 한 동생이 나에게 이 고기 좀 먹어보라고 내민다. "이제 뭐에요?" "그냥 고기에요." 내가 반쯤 먹자 쳐다보던 동생들이 "누나 그거 오리 혀에요!" 하고 깔깔 웃는다. 남자친구가 만든 시금치 무침과 땅콩소스냉면도 먹었다. 굳이 오늘 준비할 필요는 없었지만 내가 얼마나 요리 잘 하는지 봐야겠다 했더니 준비한 음식들이다. 8시에 시작한 중국식 식사는 새로운 손님이 오고 종류가 다른 술이 테이블 위를 차례대로 돌며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돈 이야기, 장사와 사업 이야기, 가족 이야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중국식 예절들을 하나씩 보고 듣고 배웠다.


밤이 깊어 드디어 자리가 정리되고 남자들이 요리를 준비할때처럼 다같이 일어서서 정리를 하는데 나는 또 손님이라서 또 술이 취했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의 침대에 길게 누워 바깥의 그릇소리 물소리 발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들어와 내 옆에 앉더니 말했다. "우리 결혼할까요?" "...저 밥도 못하는데요." "밥은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예쁜 딸 두 명 낳고 싶어요. 저는 아이한테도 존댓말을 할 거에요. 반말은 할 줄 모르거든요."


지금까지 외국 남자들을 만날때는 이국의 사람이 주는 그 이국적인 정서와 느낌이 좋았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며 자유롭다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와는 한국어로 대화하고 이국적인 느낌보다는 나보다 한 세대 앞선 다른 시대의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느낌이 있다. 그에게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경로이고 나에겐 아직도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다정한 가부장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아내 어떤 엄마가 될지 모르겠다. 그는 처자식을 위해 기꺼이 고생을 할 사람이지만 나는 내 산후우울증을 상상만 해도 괴롭다. 


남자친구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했었다. 언젠가 나는 아 예전에 중국 남자랑 사귀었었고 그 사람 보겠다고 이 동네까지 와서 걸은 적이 있었다고, 그런 추억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지금까지의 연애는 모두 새드엔딩 혹은 새드도 되지 못할 무미건조한 엔딩이라 해피엔딩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남자친구에게는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가 귀여워서 웃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어서 집을 사야 한다며 새벽까지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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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5-1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라일라님. 좋네요. 정말 좋아요...

2017-05-27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달 2017-05-2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남친이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프로포즈인 것 같은데, 그냥 웃음으로 무마하는거라면..NO인건가요? ^^

LAYLA 2017-05-27 00:50   좋아요 0 | URL
아직 사귄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서로를 잘 몰라요. 남자친구는 제가 허락할때까지 기다린다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