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지 박람강기 프로젝트 8
모리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인세로 수백억을 번 작가 모리 히로시는 사실 자기는 글 쓰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전문적인 작법 교습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공하였는가? 그는 작가로서 돈을 벌기 위해서  1. 참신한 글(시장이 원하는 글)을 써라 2. 계속 써라 고 말한다. 나는 그의 소설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지만 그가 말하는포인트를 이 에세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방식과 그걸 글로 풀어내는 실행력이 아닐까 싶은데...우선 이 글만 하여도 단순히 '인세수입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대중들의 말초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출판계가 돌아가는 비지니스 원리를 간략히 담고 있고 그에 더하여 자신의 작품관 직업관도 담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성공의 원리까지 간략히 전하고 있으니 실용서.자기계발서.에세이.자서전 등등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렇게나 온갖 분야를 가로지르는 지멋대로 성격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지라 좀 얼떨떨하기는 하였으나 우선 너무 재미있잖아! 역시 인세로 부자가 된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다.


사실 한국 출판계와 일본 출판계는 그냥 다른 세상이기 때문에 이 책에 담긴 작가의 수지타산 이야기가 한국독자에게 실용적 정보로서 기능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전자책 시장으로 가면 판매부수가 적어도 인세비율이 월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작가로서 수입 측면에선 종이책 출판만큼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작가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나에게 인세로 200억쯤 벌었다는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 같았으며(...) 그런 비현실성 때문에 더 재미있었다. 인세로 10억쯤 번 한국작가가 작가로서의 생계에 대해 글을 썼다면 이렇게 재미지진 못했을 터... 자본주의 경제에선 사이즈가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모리 히로시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 돈의 규모를 떠나서도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소설을 쓰는 행위를 노동으로 정의하고, 노동으로 얼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사고방식이 신선하다. 모리 히로시는 애초에 자신이 소설을 쓴 동기 자체가 부수입을 얻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소설을 쓴 시간과 책으로 얻는 인세수입을 계산하여 자신의 노동이 시급으론 한 천만원쯤 된다고 말하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또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 작가가 있었던가? 소설가의 에세이나 소설가의 작법에 대한 책이 넘쳐나지만 이런 접근으로 자신의 일을 바라본 작가는 없었다. 단순히 책을 팔기 위한 기교로서 돈돈 거리는게 아니라는 건 그의 글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나는 내 작품이 만화로 제작되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든 드라마로 제작되든 전혀 참견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 달라지더라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형편없는 작품으로 제작되었다고 해도 원작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원작은 더 재미있어라고 수군거리며 홍보해 줄지도 모른다."


돈도 간절히 바라고 구하는 사람이 모을 수 있다고...이 정도로 책을 팔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2차 창작으로 자신의 작품이 훼손될까봐 부들부들하는 구태의연한 작가들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2. 한 인간으로서의 깊이있는 사유가 글 곳곳에 배어 있다. 요즘 에세이가 넘쳐나지만 진짜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서 볼만한 깊이는 없어서 짜증이 팍 난 상태였는데 별 기대도 않은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인사이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성공한 작가들은 대개 그런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돈을 쏟아부을 뿐, 일반적인 사치를 부릴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늘 남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목돈이 들어오면 나도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다, 즉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조건이 그를 성공으로 이끄는 예가 많다. 그런 논리로 보자면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철도덕후인 그는 그래서 성공한 뒤 자기 집에 실제 사람이 탈 수 있는 철도를 만들어 기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자신의 세계에 확신이 있어야 성공하는 것이다.



3. 쓸데 있는 소리를 한다. 뜬구름 잡듯 '꿈을 잃지 마세요!' '자신을 믿으세요!' 이딴 소리 안하고 정말로 작가로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와 전략에 대해 냉정하게 조언을 한다. 이책이 진정 실용서로서 가치를 가진다면 구체적인 인세 수입의 액수보다는 이런 조언의 유용성 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출판이라는 영역의 문턱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지고 있지만, 많이 팔기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있을 수는 없는 시절이다. 판매 부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늘려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작가 스스로 궁리하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출판사는 거기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다. 그 사람보다 더 잘 팔리는 작가를 찾아내는 쪽이 더 쉽기 때문이다. "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 이것 말고는 홍보할 길이 없다고 봐도 좋다. 따라서 첫 작업 때는 의뢰한 측이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건네줘야 한다. 가격에 걸맞지 않은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홍보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생산할 것, 그리고 마감을 지킬 것. 1년에 한 작품을 쓰는 식으로 느긋하게 창작해서는 설사 그 한 작품이 히트하더라도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소설가 지망생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첫 작품을 발표한 뒤 그 반응을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일단 투고했으면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등의 한가로운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인터넷에 공개한 경우라도 반응 같은 걸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즉시 다음 작품을 집필해야 한다. 그것이 발표작에 대한최선의 지원 사격이기도 하다."



작년에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도 있다. 업으로서 소설가를 택했기 때문에 작품 자체의 퀄리티 뿐 아니라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도 동등하게 중요성을 부여하고 상당부분 기술한 반면 모리 히로시는 비지니스적인 전략에 더 집중한 느낌이고, 잘 팔리는 글을 쓰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하우'의 영역이라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는 다시 또 새로운 책을 내기 위한 세그멘테이션 전략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독자가 그렇게 느낀다는 건 모리 히로시가 이 책을 얼마나 잘 썼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지. 요즘 그렇고 그런 에세이에 물려 짜증이 난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참신했고 그냥 뭣보다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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