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inted Veil (Paperback)
서머셋 모옴 지음 / Vintage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못생긴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남자로서 매력이 없는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요즘이야 여성에 대한 상품화.대상화의 반발로 남성의 외모도 일부러 꼬집는 '미러링'이 흔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남자의 외모를 따지는 건 경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젊은 여자들 사이에선 '잘 생긴게 최고야' 란 말이 유행어처럼 떠돌지만 그런 소리 하다가 엄마에게 등짝 맞은 젊은 여자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여주인공 키티의 인간적.내적 성장에 초첨을 맞춘 작품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난 키티는 잘 나가는 남자를 만나 부모의 기를 세워줄것이란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지만 정작 결혼 적령기가 되자 적당한 신랑감이 나타나지 않는다. 사교 시즌은 철마다 해마다 속절없이 지나가고 결국 당시로선 빼도박도 못할 노처녀인 스물다섯이 된 키티는 자신보다 못 생겼단 이유로 부모의 사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둔한 여동생이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 약혼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고, 굴욕감을 견디지 못해 아무 남자라도 만나 결혼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된다. 이때 월터가 그녀에게 청혼한다. 월터는 홍콩에서 근무하는 정부소속의 세균학자로 키티와 엇비슷한 키에 육체적인 매력으로 따진다면 그리 끌릴 부분이 없는 남자이다. 성격적인 면에서도 말이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며, 항상 주변과 자기자신을 의식하는 약간은 불편한 남자이다. 하지만 키티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런던에서 여동생의 호화로운 결혼식을 보느니 어서 홍콩으로 떠나는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월터는 키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키티는 그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사랑을 받기만 한다는 것에 별 죄책감도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기에 월터가 주는 사랑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다. 키티에 대한 월터의 사랑은 부인에게 다정한 말투로 말을 걸고 자기 전 따뜻한 눈길로 키스를 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번잡한 홍콩의 길거리에서 부인과 마주치면 자신의 실크햇을 벗어 정중히 인사를 할 정도로 부인을 사랑한다. 실크햇을 벗어 인사를 했다는 한 문장의 묘사는 월터의 성격과 월터의 사랑을 응축하여 보여준다. 세상 어느 남편이 그리 극진히, 정중히 아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겠는가.


그리고 키티는 건장한 몸에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는 홍콩 총독부 차관 찰리와 불륜에 빠진다. 불꽃튀는 남녀간의 사랑은 처음 경험하는지라 키티에겐 새로운 인생인것만 같다. 그리고 불륜남 찰리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커질수록, 자신의 남편인 월터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약간이 경멸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야 그저 자신을 극진히 대하는 약간 불편한 남편이었지만, 불륜에 빠져 사랑의 원리를 알고나니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라는- 자신을 더 사랑하는 월터는 언제든 자신의 뜻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진 것이다. 서사에 있어서 중요한 묘사는 아니지만 이런 묘사를 볼 때 서머싯 몸의 대단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불륜중인 아내가 오히려 남편에게 의기양양해질 수 있는 이런 심리를 세상 누가 꿰뚫어 볼 수 있을까? 

 

키티의 불륜이 발각되었을 때 키티는 월터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유부남인 찰리 또한 가정을 버리고 자신에게 와 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터는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는 키티의 멍청함에 질려 버린다. 이 부분에서 명대사가 나온다. 번역서를 읽을 때 밑줄긋기를 해 두었는데 원서로 다시 읽어도 이 부분워 파워풀함은 정말 대단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지 않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 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내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물론 불륜남 찰리는 자신의 가정을 버리지 않는다. 키티는 깊은 절망을 느낀고 월터가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는 메이 탄 푸 라는 곳에 지원하자 딸려가는 신세가 된다. 키티는 월터가 불륜에 대한 앙갚음으로 자신을 죽이고자 메이 탄 푸로 데려가는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메이 탄 푸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키티의 내적인 변화를 통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영화화된 인생의 베일에선 메이 탄 푸 에서의 생활을 꽤나 로맨틱하게 그려낸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서로를 적대시 하던 월터와 키티는 어느 시점에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며, 서로의 장점을 깨닫고 다시금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하지만 원작 소설에는 그런 로맨틱한 암시가 전혀 없다. 월터는 꽂꽂한 자신의 성품 그대로 키티를 절대 용서하지 못하고 그녀를 무시한다. 키티는 그런 그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이는 남자로서 그를 사랑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월터가 인간으로서 얼마나 좋은 자질들을 지녔는지, 자신에게 준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 것이었는지 키티는 깨닫고 인간적으로 성숙해가지만 그렇다 하여도 월터를 남자로서 다시 사랑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메이 탄 푸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 키티는 이번에는 다른 시각으로 불륜남 찰리를 보게 된다. 자신의 남편에 비해 이 남자는 얼마나 천박하고 품위 없는 인간인가. 다시 보니 나이가 들고 살이 찐 이 남자에게 내가 끌렸었다는게, 매달렸다는게 믿을 수가 없다. 키티는 메이탄푸에서의 경험이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믿는다. 자신이 찰리와 단 둘이 있게 되자 다시 그의 육체적 매력에 끌려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많은 고통과 깨달음 뒤에도 그녀는 다시 잘생긴 남자에게 끌리고 만 것이다. 밀려오는 자기혐오 속에 키티는 다시 또 한 번 내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키티가 자신의 남편이 얼마나 진실한 사람이었는지 깨달은 이후에도 다시 불륜남과 동침한다는 설정은 무척 충격적이고 파격적인데 책을 번역판으로 처음 읽을 때는 그것이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묘사라 생각하였다. 자신의 과오를 알면서도 또 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원서로 재독을 하니 음 이게 나약함인가? 싶었다. 이번에 개인적으로 더 다가온 것은 인간의 이상적 자질에 대한 존경은 성적인 매력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란 것이다. 못생긴 남자가 아무리 인품이 고고하고 똑똑하고 성숙하다 하여도 내가 당장 자고 싶은 건 천박한 구리빛 피부의 몸 좋은 남자다. 키티가 내적인 경박함을 극복하였음에도 또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지적인 성장과 육체적 끌림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 서머싯 몸이 은근슬쩍 담고자 했던 그의 통찰이 아니었을지.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에 도덕과 규범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키티가 자신을 자책하는 묘사도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키티가 한 걸음 더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서머싯 몸이 하고자 했던 말을 짐작해 볼 뿐이다.  


내가 요즘 진절머리 내는 예술 작품은 여자 인생 갈아서 만드는 예술작품이다. 여자 인생 망치는 내용으로 인생에 대한 교훈을 전달하려는 작품들을 보면 그 진부함과 폭력성에 넌더리가 날 지경인데 역시나 서머싯 몸은 레베루가 다르다. 그의 주인공은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꼬인 인생일지 모르나 오히려 인생이 꼬일수록 인간으로서의 성숙함이 더해가고, 여자라는 것 때문에 그녀가 얻는 인생의 교훈이 제한되지도 않는다. 키티가 저 징글징글한 사건들을 통해 얻은 교훈이 고작 '남자는 역시 외모보단 능력이군' 정도였으면 지금까지 고전으로 내려오지 않았을 터. "여자가 남자에게 끌리지 않는 건 매력이 없는 남자의 탓이죠." 이런 조의 대사도 있었는데 이것도 참 기억에 남는다. 보통의 사고방식, 시대의 한계에 갖힌 작가였다면 저런 대사를 써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서머싯 몸의 작품은 몇몇 대표작만 번역이 되어 있는데 단편선 등 더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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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2-1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읽고 나서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아직도 못보고 있네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LAYLA 2017-02-15 02:36   좋아요 0 | URL
저는 번역본->영화->원서 순으로 보았고 약 5년의 시간에 걸쳐서 보았는데 영화와 소설은 다른 작품같은 느낌이고...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아무래도 달달함을 추가할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에선 남주인공이 꽤나 잘생기고 키도 훤칠해서 ‘저런 남자를 왜 사랑하지 않는단 말이냐!‘ 이런 잡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찰리는 반면 너무 못생겼구요 흑흑 어쨌든 영화도 재미있으니 시간되실때 한 번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