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86
볼레스와프 프루스 지음, 정병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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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 대해서라고요? 그러나 저를 몰랐잖아요?
-알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아가씨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백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자주 듭니다. 누군가에 대해 자나 깨나생각하면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집니다.

어리석은 계집애들. 그들은 생각하겠지, 부자 남편도 잡고, 잘생긴 애인도 생겨서 소원을 이루었다고...어리석은 것들. 그들은 모라. 늙은 남편도 빈털터리 애인도 곧 싫증이 나고, 조만간 진실한 사람을 사귀고 싶을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럴 때 그녀가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나? 팔아 버렸던 매력을 혹은 스타르스키 같은 사람으로 오염된 마음을,,,? 한번 생각해 봐요. 그들은 사람들을 알기 전에 틀림없이 비슷한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을. 그전에 아주 고결한 사람을 마나게 되더라도 그녀는 그런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늙은 부자나 무례한 건달을 택하겠지. 그런 결혼에서 인생을 허송하다가 언젠가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때에는 이미 너무 늦었거나 또는 가망 없는 일이지. 내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남자들이 그런 인형 같은 여자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지.

이그나치 제츠키 이 늙은 바보! 너는 상상하고 있나 나폴레옹의 후손이 권좌에 오르고 보쿨스키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을 하게 되고 또한 그가 정직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되리라고? 이 나귀 머리처럼 미련한 친구야. 생각하고 있나, 못된 사람들이 당분간은 잘되고, 정직한 사람들이 잘못되어도, 결국에는 못된 사람들은 수치스럽게 되고, 정직한 사람들은 명예롭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상상하는 거야? 그렇다면 너는 바보 같은 상상을 하고 잇는 거야! 세상에 질서는 엇ㅂ어. 정의도 없고. 있는 것은 투쟁이야. 그 싸움에서 좋은 사람들이 이기면 좋은 거고, 나쁜 사람들이 이기면 나쁜 거지. 좋은 사람들만 보호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고 상상하지는 마라. 인간들은 나뭇잎 같은 거야. 바람이 불어서 잔디 위에 떨어지면 잔디 위에 누워 있는 거고, 바람이 진흙탕 위에 떨어뜨리면 진흙탕에 처박히는 거지.

-또 들은 것이 있어. 보쿨스키가 청혼했다면서...
-그래, 말해 줄게. 그가 청혼했어! 나를 볼 때마다 청혼해. 나를 보면서, 나를 안 보면서, 말하면서, 말이 없으면서...

그 재산은 내가 일해서 번 것이 아니라, 이겨서 번 것이지요. 모험적인 도박사처럼 판돈을 배로 늘려 가면서 10여 차례 이긴 것이지요.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절대로 위조 카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 그 말 은 맞지 않아요 보쿨스키 씨. 우리는 당신에게 호의적이었고 당신을 존중했소.
- 존중....! 공작님께서는 제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존중이 어디에 근거하고 당신들 사이에서 나에게 어떤 위치를 보장하는지? 사스탈스키씨, 니빈스키씨 심지어 한 번도 일해 본 적이 없고 돈이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스타르스키 씨가 당신들의 존중 정도에서 나보다 열 단계 높지요. 제가 하려는 말은,,외국 뜨내기는 누구나 쉽게 당신들 살롱에 들어갈 수 있지요. 그러나 제 경우는 어땠습니까. 저에게 맡긴 돈에 대해 15퍼센트 이자를 지불하고 그곳에 입장할 수 있었잖습니까! 제가 아니라 그들이, 그 사람들이 당신들의 존중을 누렸고 공평하지 않은 특혜를 가졌습니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는 우리 가게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보다도 가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만일 그 금속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발견하게 되면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닌가...? ... 그럼 어떤가? 최악의 경우에도 나는 발견을 위해 노력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 일에는 가치 있는 용도가 없는 재산과, 목표 없는 삶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여기 방구석에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혹은 카드놀이로 멍청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는 전례 없는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일 아니겠는가?

그 사람은 지금까지 이성적으로 행동하면서 산 적이 없어요. 점원일 때에는 발명가와 대학을 생각했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는 정치 놀음을 시작했지요. 나중에는 돈 버는 대신 학자가 되었고, 빈손으로 바르샤바로 돌아왔지요. 민첼 부인이 아니었으면 아마 그는 굶어 죽었을 겁니다. 드디어 그는 돈을 벌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상인으로 번 것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바람둥이로 소문난 여자의 숭배자로서 번 것이지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는 돈과 여자를 가지게 되자, 두 가지 모두를 버렸어요. 지금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어요? 당신이 현명하다면 말해 보세요. 바보, 완벽한 바보! 현실에 없는 것을 끊임없이 찾는 순수한 폴란드 피의 낭만주의자...

당신도 전형적인 낭만주의자입니다. 다만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기회가 적었을 뿐이지요.

낭만주의자들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지요. 오늘날의 세계는 그들에게 맞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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