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위의 여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32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어내는데에는 적잖은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존 파울스의 지성미 넘치는 글이라 할지라도 600페이지는 쉬운 분량이 아니다. 학부생 때 김영하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 책을 언급한 것을 보고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하숙방에서 졸린 눈으로 부득부득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몇 페이지를 볼 때 잠이 확 깨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도. 그 기억 하나로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열린책들에서 페이퍼백 절판시킬 때 서점을 돌며 사둔 1권짜리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집에 있었거든...(지금은 2권으로 분권되었다) 저걸 사뒀으니 한번은 읽는게 책에 대한 도리가 아니겠냐며. 


대략 7-8년 전과는 세상이 달라졌고, 나 역시 달라졌기 때문에 그런지 소설을 생각보다는 덜 지루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한량 귀족 찰스와 동네의 창녀 쯤으로 업신여김 받는 사라의 사랑은(빅토리아 시대에는 고상하게 그런 여자를 '동정'한다고 말한다) 지금 보니 꽤나 도발적이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이하는 스포일러가 너무 많습니다) 원래 이 소설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긴 했지만 다시 보니 충격적인 클리셰 파괴가 더 눈에 잘 보인달까? 원래 부잣집 도련님과 가난한 여자의 사랑이란 모름지기 남자가 여자의 미모에 눈이 멀어 매달리고 구애하고 처녀성을 빼앗고 그래서 여자를 신데렐라로 만들거나 아니면 여자 인생 말아먹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 소설은 두 남녀가 첫눈에 호기심을 느꼈다는 암시는 있지만 어쨌든 계속 들이대는 건 여자 주인공 '사라'이다. 이미 약혼녀가 있고 체면을 중시하는 남자 주인공 찰스는 어떻게든 이 여자를 떼내려고 하지만 사라는 집요하고 치밀하게, 연기까지 해 가며 찰스를 궁지로 몰고 자신에게 오도록 꼬신다. 가장 압권은, 사라가 눈물을 머금으며 자신이 사실 프랑스 중위와 사랑에 빠졌었고 그와 동침했지만 그는 결혼 약속을 저버리고 달아난 사기꾼이었다고, 자신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처로운 사연을 털어놓는데 그런 그녀를 믿고 도와주다 사랑에 빠진 찰스가 순간의 정욕(?)을 참지 못해 동침을 하고 보니 사라는 사실 처녀였던 것. 여기서부터 소름이 돋는다. 빅토리안 시대의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 그것도 돈 같은 세속적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정복감 성취감 등을 위해 서슴치 않고 자신의 순결에 대해 거짓말을 줄줄 늘어놓는다는 건 내가 지금껏 목도한 작가의 상상력 중 가장 대단한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첫날밤으로 완전히 사라에게 홀린 찰스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하겠다 다짐하지만 그녀는 종적을 감추어 버린다. 빅토리안 시대의 곤 걸이라는 건 내가 붙인 은유적 제목이 아니다. 정말로 소설 속의 그녀는 사라져 버린다. ... 그런 사라를 못 잊어 마음의 병을 얻은 찰스는 파혼하고 숙부의 유산도 받지 못하게 되고 넋이 나간 사람이 되어 유럽을 몇 년이나 유랑하는데 (빅토리안 시대에 귀족의 브로큰 허트란 무엇인가...) 런던에서 사라와 비슷한 여자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부리나케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가 혹시 달아날까 조바심 내며 조심조심 찾아간 곳에서 드디어 그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나를 유혹하고 왜 나를 버린 것일까. 


수년만에 만나 이제라도 함께 하자고 말하는 찰스에게 그녀는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전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그 이유는 첫째...제 과거 때문이에요. 전 고독에 길들여졌어요.저는 늘 제가 고독을 혐오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고독을 너무나 쉽게 피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러자 제가 고독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전 누구하고도 인생을 같이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대로 있고 싶어요. 아무리 친절한 남편, 아무리 너그러운 남편이라도 남편은 결혼 생활에서 제가 다른 여자, 아내로서 적당한 여자가 되기를 기대할 거예요. 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존 파울스의 소설은 기존 전통소설의 전형적인 플롯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큰 인정을 받는다는데 이 대사 하나하나도 정말 너무 예쁘지 않나요? 지금까지 사라 이 미친년이라고 욕하던 나도 이 순간에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해서 거의 울 지경이 된다. 존 파울즈는 신내림이라도 받은걸까. 어찌 20년대에 태어난 남성이 여성의 타자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런 대사를 써낼 수 있는걸까. 나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자 주인공 찰스는 빅토리안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을 맡고 있기 때문에 사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는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당신은 여성이 창조된 목적을 거부할 수는 없소. 당신 말대로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자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단 말이오?" 그리자 사라는 답한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건 물론 당신 잘못이 아니죠. 당신은 정말 친절한 분이세요. 하지만 저를 이해할 수는 없어요."(You do not understand. It is not your fault. You are very kind. But I am not to be understood.)


최근의 페미니즘 열풍 덕택에 이 책을 보는 나의 감상이 더욱 풍부해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라의 주체성에 대해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사라는 여자에게 꼭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라는 귀족 남자의 돈이나 작위에 큰 관심이 없다. 사라는 찰스와 결혼해 팔자 고치기 보다는 그냥 혼자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대로 살고자 한다. 이것은 이 소설 전체의 커다란 덫이고 이 사회에 던지는 큰 물음이다. 우리는 이런 중세시대의 여성상에 대해 '상상'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600페이지 내내 줄곧 물어왔던 것이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걸까 하고...마지막에 가서 그녀는 한 마디로 정리한다 "난 원래 그런 여자야. 나를 이해할 생각은 하지마"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라라는 캐릭터의 급진성에 유쾌한 충격을 받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사라 같은 여성은 상상하지 못하는 '내'가 바로 사라가 존재하기 힘든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찰스는 어찌 되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최소한 사라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정도의 지적인 직관을 가지고 있었음은 감안할때 가슴은 상처받았다 하더라도 조금은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을까 싶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사라" 쯤이랄까. 사라는 자신의 마음은 결코 그에게 주지 않았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데에는 누군가의 무엇이 되기 위함보다 더 큰 목적이 있음을 -내 인생 내 멋대로 살기 위해-, 그리고 여자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님을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찰스가 비관에 빠지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존 파울즈의 마지막 서술로 짐작할 수 있다. '인생이란 결코 하나의 상징이 아니며, 수수께끼 놀이는 한 번 틀렸다고 해서 끝장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하나의 얼굴로만 사는 것도 아니며, 주사위를 한 번 던져서 원하는 눈이 나오지 않았다 해도 체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런 소설은 널리 읽혀야 한다. 600페이지를 견딜 가치가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6-12-08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십년쯤 전이었나, 이거 엄청 재미없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 다시 읽으면 확 다르게 다가오겠네요. 이 책은 아마도 팔지 않은 것 같으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LAYLA 2016-12-08 20: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락방님
엄청 재미없게 읽은 기억->백푸로 정확하실 겁니다 껄껄
사실 다시 봐도 인내심이 필요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번역자 분이 고생하며 열심히 하신거 같다는...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흑흑 락방님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재독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자강 2016-12-0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시작하기가 두려워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