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셰익스피어
안치운.호영송 지음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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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같은 아름다운 때가 한국 연극계에 다시 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특별한 때는 잘 기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 p. 14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읽고, 영문학적 관점에서 쓰여진 글들을 보고, 또 무대에 올려진 이야기들을 보고 있지만 한국 연극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다룬 극들에 마음을 빼앗긴 요즘, 동국대 연영과에 입학해 이해랑 선생에게 배웠다는 작가 호영송, 중앙대 예술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호서대 예술학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라는 연극평론가 안치운 두 사람이 집필한 우리들의 셰익스피어를 접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에 맞추어 쓰인 이 책은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인 1964년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은 철학의 언어로 치장되고 논리적인 발전을 따라 나아가지만, 그 핵심은 바로 '존재being'와 '없음nothingness'이다. 셰익스피어는 바로 그 존재론을 무심코 극장에 와서 그저 좀 재미난 궁정 극을 보려는 관객들에게 기대 이상의 주제와 놀라움을 던져준다. 이는 좋은 의미의 당혹스러움이며 놀라움이다. 연극의 참 본질이 관객의 잠자던 머리를 깨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p. 49 


1964년에는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있었다는데 그 당시에는 한국의 경제가 많이 침체되어 있었고, 연극계는 극장다운 극장도 제대로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서울에 공연장 다운 공연장 두 군데 뿐이었고, 호영송 작가는 그래서 86석의 객석을 보유한 전용 소극장이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전용 소극장이라 자랑이었다고.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해랑 예술극장에 들러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한 여름 밤의 꿈 등에 대한 대사를 보고 듣고 있기에 묘한 감상이 들었다.



셰익스피어는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옆에 지금 살아있다. 그는 강렬한 고전이다. 이데올로기와 피부의 색깔을 넘어서는 매혹적인 무엇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 - p. 90 


영구성이 보장되는 작품이란 없음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이런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점은 단순하면서도 큰 보편성을 얻고 있는 점이라고 하는 호영송 작가.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극작가라는 직업이 인기 직종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극작에 정진했고, 평판을 얻고, 연극을 좋아하는 왕을 만나 다작을 한 행운아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신앙, 비극과 희극 작품에 대한 견해, 한국 연극의 방향성 제시 등 다양한 관점에서 본인의 가치관과 일화 등을 곁들여 14편의 에세이로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한국 연극의 셰익스피어 수용과 관련한 연대기 연구다. 일제강점기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셰익스피어 작품 번역과 연극 공연을 시간 순으로 다루었으며, 관련 문헌들을 기초자료로 삼았다. - p. 191 


1부의 에세이 14편이 끝난 후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등 몇 가지 시각 자료를 수록한 뒤 이어지는 2부에서는 연극평론가 안치운의 연구를 보여주고 있는 우리들의 셰익스피어.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한국 연극은 셰익스피어 수용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셰익스피어가 불리던 다양한 이름과 점유하던 계층, 당대 비극적 상황과 셰익스피어의 문학성과의 결부, 수용 태도와 방식 등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한국 연극에서 지금까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공연하고 있는 이유는 희곡 언어, 배우의 소리 언어의 유려함에 있다. - p. 278 


그 이후로도 변화하는 사회 상황에 따라 우세한 극들이 달라지는 점도 재미있었고, 저항정신과 교육운동의 영향으로 공연된 셰익스피어의 20편 극 중 13편이 학생극이었다는 한국전쟁 전, 해방 이후 더욱 전문적이고 분석적인 면모를 갖훈 해방 이후, 다양한 접근과 적극적 연출작업이 이루어지던 1960-70년대, 정치극으로 수용되던 1980년대, 기존의 형태에서 변형을 시도하고 해체적 관점이 구체적으로 작업이 되던 1990년대까지 변화하는 사회 상황에 따라 수용 태도도 재미있고 우세한 극이 달라지는 점도 재미있었던 연극평론가 안치운의 한국 연극의 셰익스피어 수용. 1부와 2부 모두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안치운, 호영송 두 사람의 우리들의 셰익스피어. 그의 작품을 넘어서 다양한 관점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 이 작품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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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김현화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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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유골. 

현 남편, 히데오가 아니다. 

전 남편, 다다토키를 말한다. - p. 11


아내는 남편을 증오하지만 남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알뜰하게 보살피며 겉으로는 평범한 아내의 겉을 뒤집어쓴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사랑하는 척을 하는 이유는 뭘까? 아키요시 리카코의 소설 작열의 극 초반부부터 가와사키 사키코의 속은 열감으로 들끓고있다. 아기 때 이미 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유일하게 남은 아버지마저 뺑소니로 시신으로 돌아오자 가와사키 사키코는 세상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분명한 뺑소니였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용의자를 추정하자니 흉흉해지는 마을 분위기에 큰아버지조차 사건을 덮어버리자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고 홀로 수사를 계속 주장하던 사키코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스피드가 빨라지면서 높아지는 소리와 박자를 맞추듯이 내 몸에 여전히 남은 진동의 여운이 아픔을 가해 숨이 막혔다. 어둠 속에 녹아가는 후미등을 배웅하면서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 70


아키요시 리카코의 소설 작열에서 홀로 자립할 수 있는 시기가 되자 더한 지원 없이 바로 자립한 사키코는 독립의 해방감에 젖어 또래 학생들과는 다른 겉모습을 꾸미고, 그 때문에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 사키코는 금발에 피어싱까지 했지만 어딘지 그런 불량스러운 모습이 어설퍼보이는 다다토키를 만나게 되고, 둘은 우연히 대화를 나누다가 발견한 공통점에 동질감을 느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귀고, 결혼을 하기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이런 다다토키마저 시체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증오하는 상대를 곁에 두고 충동을 억누르며 사랑하는 척해야 하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다. 결코 저물 리 없는 증오라는 태양에 온몸이 타들어 갔고 절망의 사막에 맨발이 달구어졌으며 분노의 화염이 몸속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열하는 지옥 속에서 악착같이 나가갔다. 언젠가 이 업보가 집어삼키겠지. 히데오를. 그리고 나를. - p. 149 


세상에 단 둘 뿐이지만 기댈 곳이 있어 얻은 행복은 그만큼이나 쉽게 사라져버린다. 심지어 남편이 투자사기에 연루되었으며 사기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추정된다는 증거들을 보게 된 홀로 남은 사키코는 망가지지만, 이 죽음에서 사고나 자살이 아닌 살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폐인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용의자가 붙잡히게 된 상황. 거기서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을 얻었다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겠지만.. 여론이 이상하게 움직여, 피해자인 남편의 과거가 파헤쳐져 비난을 당하고, 집안에 몰려온 기자들에 의해 자신마저 악의 섞인 글로 고통을 받는 것은 물론,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용의자가 풀려나자 사키코는 삶에 미련을 버린다. 이 아키요시 리카코의 작열은 이런 배경을 가진 사키코가 기회를 접하고, 전 남편 다다토키의 용의자 현 남편과 결혼하면서 시작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 죽었는데 믿을 수 없는 사실이 계속 밝혀지고 모두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과거에 아버지 사건처럼 더 이상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 그런데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면 누구라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조심해야겠네. 완벽하게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예상치도 못할 때 뜻밖의 장소에서 파편이 튀어나와 다치기도 하는 거 보니 말이야. - p. 230


남편의 복수를 위해 강행한 살인범과의 결혼이었지만 현 남편 히데오와 서서히 같이 있는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지고, 남편의 여동생이자 중병을 앓고 있는 아키코에게 진심으로 돌봐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더라도.. 거의 마지막까지도 긴가 민가 아리까리하다가 결말부에 밝혀지는 진실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훅 꺾여버려서 사키코와 히데오가 모두 안타깝게 느껴졌다. 한 여름, 초반부터 결말부까지 몸을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나조차 타오르는 것 같던 아키요시 리카코의 작열. 오직 복수만을 위해 달려가던 사키코의 점차 달라지던 심리가 와닿던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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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정원
닷 허치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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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빅터는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편광 유리에 대서 여자애 등에 어린 문양과 번들거리는 사진을 번갈아 살핀다. 저 여자애만 이런 문양이라는 사실 말고 특이한 건 없다. 색상도 문양도 하나같이 달라도 기본적인 건 모두 똑같다. - p. 13


한 사유지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인 이 곳에서는 세 명의 남자와 13명의 소녀들이 발견된다. 실종된 아이들도 발견되고, 그 중 유명인의 아이가 특정되어 상황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와중에 남자들은 다쳐 입을 열 수 없고, 여자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모두가 그 중 한 명의 소녀 '마야'와의 대화만을 원한다. 열여섯 살부터 스무 살이 안 된 소녀들과 등이 드러나는 드레스, 그리고 그 등에 그려진 커다란 날개 문신들. 딱 봐도 사건임이 분명한 이 일에 FBI가 마야와의 인터뷰를 시작한다. 도입부가 흥미로웠던 닷 허치슨의 소설 나비정원.


"그 사람이 정원사예요." - p. 20


마야의 담담하지만 생생한 묘사 덕에 실제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라 읽는 내내 소름끼쳤는데, 역시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정원사와 나비들. 닷 허치슨의 나비정원에서 정원사는 25명이라는 제한된 숫자를 정해두고 자신만의 나비를 찾는다. 자신이 원하는 나비를 찾으면 유리정원으로 납치하고, 등에 문신을 새겨 화려한 나비로 만들고, 유린한다. 문신에 이상이 생기거나 수집품으로써 가치가 사라지면 정원에서 사라지게 되고, 이상 없이 특정 나이를 지나는 시점에 박제되어 복도 진열장에 보존된다. 그렇게 잔혹한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면서도 정원사는 나비들이 정원사를 사랑하길 원하고,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고,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여긴다. 이런 진술을 들으며 FBI는 마야가 온전한 피해자인지, 혹은 어느 정도 사건에 개입된 가해자인지를 가늠한다.


아저씨는 내가 집을 잃은 아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쓰레기처럼 도로변에 버려졌더나 자동차에 치여서 죽는. 하지만 나 같은 아이들은? 우리 같은 아이들은 집을 잃지 않아요. 집을 절대로 잃지 않는 족속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일 거예요.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늘 정확히 알아요. 어디에 가면 안 되는지도. - p. 144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동시 진행되는 인터뷰라 아직 나비들에 대한 정보는 완전하지 않아, 마야의 나이도 정체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갇혀있다가 세상으로 나온 상태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불안한 기색이 조금도 없다는 점, 모든 소녀들이 마야와 대화하기만을 원한다는 점, FBI와 마주하고 있음에도 편안한 상태라는 점이 마야를 의심하게 만들어 빅터와 에디슨은 마야의 방식으로 진술되는 인터뷰를 들으며 사건의 실체에 대해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정원사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건 아무런 소용도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거예요. 우리는 그 이유를 알 필요가 없었어요. 그 내용만 파악하면 되는 거였어요. - p. 155


사건은 끔찍하지만 처음부터 진상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 충격이 강-강-강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진술이 이어지며 점점 명확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그라데이션 같이 충격이 번져오던 소설. 관련 트라우마가 없음에도 읽다가 덮었다가, 읽다가 덮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트리거가 있다면 무조건 피해야겠지만 이렇게 섬뜩하고 환상같은 스릴러가 취향이라면 반대로 무조건 읽어야할 것 같은 닷 허치슨의 나비 정원. 유리 정원이라는 동떨어진 공간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 방관자적인 시선에서 읽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현실에 벌어지고 있음직한 묘사 덕에 몰입감이 대단했다.


다 끝난 것 같은 때조차, 정원사는 그대로 머물며 날개에다 입김을 불더니, 한 바퀴 다 돈 다음에 기도하듯 다정하게 키스하며 또 돌다, 전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나는 정원사가 우리를 잡아다 만든 나비는 정말 지랄맞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나비는 훨훨 멀리 날아갈 수 있잖아요. 정원사 나비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뿐, 조금도 날아갈 수 없는데요. - p. 206


처음 유리 정원에서 눈을 뜬 마야가 왜 그 때부터 침착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탈출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폐쇄된 정원 안에서 어떻게 탈출을 할 수 있었는지, 정원사의 두 아들은 또 어떻게 관계되었는지. 이런 것들을 따라가다보면 사건 뿐 아니라 사건을 풀어주는 마야의 삶을 따라가게 되는데 기괴한 곳에서도, 그리고 유리 정원에 갇히기 전에도 소녀들에게는 삶이 존재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된다. 사건은 언젠가 종결이 되겠지만 많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고통을 이겨내고 평온함이 가득하기를. 단 한번도, 절대로 울 수 없는 아이였던 마야도 행복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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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더 원더 킬러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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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이상한 일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사전에 수수께끼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수수께끼를 죽이는 앨리스, 명탐정 '앨리스 더 원더 킬러'니까요. - p. 7


앨리스 더 원더 킬러라는 제목에서 우선 솔깃해지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한 워낙 많은 작품들이 쏟아지고, 그런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워낙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토,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도 좋아해서 눈이 안 갈 수가 없었다. 하야사카 야부사카는 실제로 앨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열 살짜리 명탐정을 희망하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앨리스가 10살이 되는 생일에 겪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밝혀내고 싶은 것이 탐정의 습성. - p. 15


하야사카 야부사카의 앨리스 더 원더 킬러에서는 장래에 명탐정을 꿈꾸는 앨리스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어머니와 부딪히고, 탐정인 아버지를 따르고 있다. 생일날에도 참고서를 다섯권이나 선물로 주는 어머니에게 반발한 앨리스는 아버지가 편지로 최고의 수수께끼를 준비해줬다고 하는데서 뛸듯이 기뻐하게 되는데. 그렇게 만나게 된 코모란트 이그리트라는 사람은 흰토끼를 연상시키는 알비노 청년. 가상현실로 만들어낸 앨리스 시리즈를 변형한 수수께끼 게임의 테스트 플레이를 앨리스가 맡게 된다.




♪ 그녀 사전에 수수께끼란 없지 

♪ 하트 여왕님이야말로 전지전능한 절대자 

♪ 그러니 의심해서는 안 돼 

♪ 아무 생각도 하지 마 

♪ 여왕님만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어 

♪ 그러니 우리는 수수께끼를 모두 죽여 없애자 

♪ 비로소 탄생하는 명명백백한 세상 

♪ 하트 여왕님이야말로 전지전능한 절대자 - p. 127 


하야사카 야부사카의 앨리스 더 원더 킬러는 앨리스가 풀 수 있는데 조언을 줄 수 있는 흰토끼가 함께한 채 밀실탈출게임, 아기유괴사건, 다잉메세지를 남긴 살인사건, 알리바이 트릭을 이용한 살인사건, 흰토끼와의 술래잡기까지 총 다섯 가지의 수수께끼를 제시한다. 하지만 흰토끼가 게임에 관한 설명을 한 것과 게임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 체셔 고양이가 나오는 등 의심스러운 점들이 보이는데.. 이런 미스터리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수수께끼를 열심히 추리해서 풀어나가는 앨리스.




여왕이 전지전능하기 위해서 이 세계에 그녀가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wonder)가 없어야 한다. 여왕이 독재를 펼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의심(wonder)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그녀는 wonder를 모조리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 시작으로 추리소설과 퍼즐책을 불태워버리는 것이다. 수수께끼를 죽인다. 나와 똑같은 말을 하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다. '수수께끼를 죽이는 앨리스'인 나는 정정당당하게 수수께끼와 맞서서 없앤다. 그러나 여왕은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말살한다. 나와 여왕은 극과 극의 존재인 것이다. - pp. 250-251


그런 와중에 수수께끼 놀이를 하지 못하게 하는 하트여왕과 탐정의 꿈을 막는 어머니가 겹쳐보이며 점점 앨리스는 극과 극의 존재인 하트여왕에게 분노를 가지게 되는데.. 하야사카 야부사카의 앨리스 더 원더 킬러의 다섯 가지 수수께끼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하고, 이 다섯 문제는 앨리스에게 한 가지 감정을 가지게 만들고 있었다. 이면에 있는 진실은 이 책의 제목과도 연관성이 있다. 의외성이 있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소설 하야사카 야부사카의 앨리스 더 원더 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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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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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백 개의 초를 켜 두고 이야기 하나가 끝날 때마다 하나씩 꺼 나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리는 점점 어두워지고 마침내 백 번째 이야기에 다다르면 어둠에 휩싸여 진정 괴이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미시마야의 특이한 괴담 자리에서는 가게 안쪽에 있는 '흑백의 방'으로 한 번에 한 명, 또는 한 무리의 이야기꾼을 부른다. 마주 앉아서 귀를 기울리며 듣는 이도 한 명이다. 거기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결코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 pp. 9-10


괴담 시리즈라고 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눈물점. 100개의 이야기가 완성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나므로, 99개의 이야기로 완성짓겠다고 하는 이 미시야마 시리즈는 미야베 월드 제2막이라고까지 한다고. 이번 소설 눈물점에는 4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고, 한 권에 이 정도 갯수라고 하니 평생의 과업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전 미시야마 시리즈에서는 원래 '듣는 역할'이 미시야마의 주인 이헤에의 조카 오치카라는 여성이었다고 하는데,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이유로 '듣는 이'는 이헤에의 차남 도미지로로 바뀌었다고. 그리고 내가 읽은 '눈물점'의 화자가 바로 도미지로인 것이다.




솔직하고 마음씨가 착하며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후계자가 아니니' 도련님'이라고 자칭하는 도미지로. 

오치카가 괴담 듣는 일을 했을 무렵, 우연한 인연으로 미시마야에 들어와 괴담 자리의 호위 역할을 맡은 오카쓰. 

도미지로가 어렸을 때부터 미시마야에서 고용살이를 해 온 고참 하녀 오시마. 

앞으로 이 세 사람이 이야기꾼을 맞이하여 새로운 괴담 자리의 막이 열린다. - pp. 10-11


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눈물점 속 세계에서는 괴담 자리라는 것이 독특한 모임까진 아닌 모양이다. 괴담 자리란 한 곳에 모여 사람들이 밤새도록 괴담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일컫는 말인데, 미시마야의 괴담 자리는 한 번에 한 명, 또는 한 무리의 이야기꾼만을 부르고, 듣는이도 한 명이기 때문에 특이하다는 평을 듣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 '듣는 이'가 괴담에 특출난 사람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닌게, 그냥 읽으면 살짝 오싹하고 말 이야기를 들으면서 청자인 도미지로는 보통 사람보다도 무서워 하고 있던 것. 청자가 괴담에 특히 강하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독자들에게는 친근함이 느껴져서 일부러 마련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이런 독특한 괴담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하면 어딘가 입 무겁고 조용하고, 그렇지만 동요가 없어 웬만한 이야기나 현상으로는 놀라지 않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던 나라서 이 설정이 꽤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가슴이 술렁거리지 않는가. 대체 무엇이 '시작된' 것일까. - p. 44


이야기 중 첫 번째는 이번 소설 눈물점의 표제작인 '눈물점'이었다. 도미지로와 안면이 있는 '하치타로'가 이야기꾼으로 와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책에 실린 네 가지 이야기 중에 특히나 기묘한 느낌이 들던 회차였다. 첫째 형수가 둘째 사위를, 둘째 형수가 셋째 누나의 남편을, 딸이 아버지를 덮치게 되는 망측한 일이 연달아 벌어지는데, 이 일이 발각되면 일을 벌인 여성은 기절하고 그 일 자체를 싹 잊어버린다. 그리고 사건 전에 그 사람들에게 눈물점이 생겼다가, 사건이 발각되면 눈물점이 떨어져 나가는데 이 괴이한 인과를 아는 것은 막내딸 뿐.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시름시름 앓던 누군가는 목숨마저 잃어버리고.. 원인을 알 수 없이 겪게 되는 이상한 일이라 더 찜찜한 느낌이 들었는데 눈물점의 정체를 마지막까지 알 수 없어서 이야기를 전부 읽고 나서도 끝까지 읽은 느낌이 나지 않아 더 기억에 남는다.




"저희 집만은, 여자는 아무도 이 꽃놀이에 낄 수 없었어요." 

기묘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 p. 127


그런가하면 두 번째 시어머니의 무덤은 참 고약한 이야기. 특별한 이유 없이 며느리를 심하게 구박하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죽일까 겁이 난 아들과 남편의 합의에 의해 갇히게 되는데, 그 안에서도 저주를 하며 죽음에 이른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아이고 며느리도 누군가의 귀한 딸인데 진짜 미쳤나보다, 하고 혀를 차고 넘겼을텐데 이 괴롭힘과 저주가 죽고 나서도 저주처럼 따라붙는다니 이쯤 되면 무서울 노릇이다. 어느 곳이나 벚꽃 명소는 있다지만 스미다 제방이라는 곳은 그림같은 풍경으로 마을 차원에서 묘지로 조성된 언덕에서 꽃놀이를 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그러나 기묘한 이유로 가가리야의 여자는 이 지상의 극락 같은 풍경은 볼 수 없는데.. 참 전말이 씁쓸한 이야기였다.




처음에 힐끗 보았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해질녘의 어스름 속에서, 어떻게 기모노의 줄무늬나 조리의 발가락 끈까지 또렷하게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저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귀신이나 요괴임에 틀림없다. - p. 252 


세 번째 동행이인은 가메이치라는 파발꾼의 이야기인데, 가족을 잃고 슬픔을 떨치기 위해 먼 거리로 나간 파발행에서 이상한 게 따라붙어버린다. 붉은 어때띠를 매고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채 미끄러지듯 따라붙은 이 남자는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손은 축 늘어뜨린채로 가메이치의 뒤를 쫓는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빠르던 느리던 가메이치의 속도를 유지한 채 계속 따라오며 무슨 짓을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미칠 노릇인 셈. 가메이치의 빠른 발로도 떨쳐내지 못한 이 남자를 달고 다니는 동안 가메이치의 그림자는 보통사람에 비해 엷어지고 있기까지.. 이 망령은 대체 무슨 연유로 가메이치에게 붙어다니는 걸까 싶었는데 여기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가까운 사람을 잃은 슬픔은 이겨내기 어렵기에 여운이 남는다.




눈 앞은 벚나무 숲이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안개의 바다 속에 두툼한 꽃들이 펼쳐져 있다. 진자부로는 놀라서 숨을 멈추었다. 때마침 안개가 크게 후퇴하자 벚나무 숲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꽃보라가 춤을 춘다. 어제로 매화의 만개는 끝나고, 오늘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다니. 역시 이곳은 이 세상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다르다. - p. 465


마지막 이야기인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은 가미카쿠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가미카쿠시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봤는데, 이 단어의 뜻은 사람이 사라졌다가 어느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오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신선이 바둑 두는 걸 구경하다가 홀려 몇 십년 후 돌아왔다던지, 비슷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기에 놀랄만한 소재는 아니지만 그 사라졌던 기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도 본인은 삼년 정도 다녀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며칠밖에 지나지 않아 놀랐다고 하는데.. 이 인물이 아닌 같이 사라졌던 다른 진자부로라는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는 서서히 시작되어 사라졌던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 옮겨진 후, 그 공간은 어떤 곳이고 또 어떻게 헤쳐나오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게 된다. 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 세상이 아닌 기묘한 공간에 나도 함께 갇혀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나는 이 미시야마 시리즈를 이번 '눈물점'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기에 이전 시리즈인 흑백, 안주, 피리술사, 삼귀, 금빛 눈의 고양이 다섯 권도 궁금해진다. 워낙 이런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미야베 미유키의 대업이라는 미야베월드 제 2막 미시마야 시리즈 이전 권을 먼저 다 읽고, 앞으로 나올 시리즈도 따라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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