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야행 - 불안과 두려움의 끝까지
가쿠하타 유스케 지음, 박승희 옮김 / 마티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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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읽었다. 논픽션이 이토록 재밌다니 놀라웠다.

이 책은 일본의 한 탐험가가 어둠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장장 4년간의 시간을 들여 준비한 끝에 감행한 북극 지역 장정을 기록한 수기다. 탐험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수차례에 걸쳐 근처 오두막에 생필품을 비축해 놨는데 후원 없이 사비 5천만원을 쏟아부었다니 극지방에 대한 탐험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열정적으로 겪어내고 싶었던 어둠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낮과 밤에서의 어둠이 아니라 문명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북극에 인접한 원시 자연 그대로의 어둠, 마치 검은 망망대해 같고 우주 공간에서 홀로 유영하는 듯한 어둠이다. 태양이 한겨울 동안 자취를 감춘 곳, 오직 변덕스럽고 희미한 달빛에 의지하여 생존을 해나가야 하는 공간. 또한 암흑의 공간은 작가가 책 도입부에 서술한, 우리가 탄생하기 이전에 몸담궜 어머니의 자궁 속과 같다.

어두움은 삶과 죽음을 아우르면서 새로운 빛과 생명을 기다리는 원시적 환경이다. 빛이 있을 때 시공간은 삼차원적으로 구체성을 띠며 현실성을 띠는데, 그 빛이 있기 전의 어둠,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기 전의 어둠 속의 전율이 책 속에 펼쳐진다.

저자는 용감무쌍하게 인간의 삶 저편에 있는 어둠에 대해 탐험했고 생생한 필치로 수기를 써내려갔다. 영하 40도 이하의 혹한과 암흑 속 모호한 지형, 식량부족으로 생과 사가 갈리는 절체절명의 모험 가운데 특유의 유머와 인간 심리의 모순에 대한 관조도 드러나 있어 읽는 동안 즐거웠다.

탐험이라는 것이 지구상에서 새로운 지역을 발굴하여 지도에 넣는 일은 예전에 다 끝난 작업이라 의미가 없고, 질적으로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극야 체험을 탐험 테마로 잡은 것으로 보았을 때 저자는 남다른 것에 대한 도전정신이 충만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내용 중에 본인은 인간 시스템 바깥에서의 탐험이 진짜라고 생각해 GPS를 사용 안 했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엔 어쩔 수 없이 전화로 이누이트 마을의 사람에게 일기 예보를 부탁하거나 가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위성전화하는 솔직한 모습, 결국 인간 시스템에 편입했다는 고백도 보인다. 

다만, 개인적 수기이기는 하지만, 식량확보를 위해서 사냥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일단 잡은 후에 어떻게 처리했는지 안 나와 있어서 아쉬웠다. 연료가 많았다고 하니 인간으로서 생고기 상태로는 섭취 안 했을 텐데 어떻게 조리하였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또한 단독 탐험으로 암흑 지방을 부유하면서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고독감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한계 상황에서 생존이 급선무라 고독이고 뭐고 생각할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일 거라고 추정한다. 중간에 한 번 썰매를 끄는 이누이트의 개 '우야미릭크'와의 공존관계 -마치 과거 크로마뇽인과 늑대에서 가축으로 진화한 개의 관계처럼-로 인해 고독감이 줄었다고 나와 있으나 그래도 인간적인 고독이 절절하게 없었을지 궁금하였다.

전체적으로 내용과 문장력 면에서 충분히 재미와 사색할 거리를 주는 탐험 수기였다. 저자의 다른 탐험기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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