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4



스포일러 있음


 시놉시스만 봤을 땐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는데 작년에 출간된 일본 추리소설 중 <명탐정의 제물>과 함께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라 읽게 됐다. 원래 소문에 끌려 부화뇌동하는 걸 지양하는 편이지만 가끔 이렇게 속는 셈 치고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뭐든 결국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 모르는 법이라니까. 이 소설이 그랬다. 시놉시스만 보면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탈출이 불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다룬 추리소설이었지만 그 안엔 꽤나 기발한 설정과 디테일한 추리, 그리고 뒷맛이 아찔한 결말이 있어 간만에 흡족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작가가 1993년생으로 나와 동갑인데 이만한 작품을 쓰고 바다 건너 독자에게 인정도 받는구나 싶어 질투를 넘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었다. 일단 문장력이 아직 서툰 편으로,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페이지는 없지만 대다수의 문장이 단지 추리를 위해 서술됐다는 느낌이 강해 문학의 묘미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드문드문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는 골때리는 상황이며 슈이치와 마이의 대화, 희생에 대한 작가만의 사유 등이 인상적이었지만 어딘지 얕게 묘사됐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빨리 범인과 범인의 동기를 밝혀내야 하는 조급함이 등장인물 못지않게 작가에게도 있었는지 기껏 흥미로운 소재와 화제를 꺼내놓고도 제대로 갈무리 짓지 못해 아직은 분량의 완급 조절이 숙련되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전개가 속도감 있다며 좋아하겠지만, 이 작품이 문장력과 소설적 구조가 평범하거나 부족하다는 지적을 이구동성으로 당하는 걸 보면 이 부분은 조금 더 발전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반대로 말하면 추리에 집중을 다한 작품인 만큼 범인이 살인을 세 번이나 저질러야 했던 동기와 이 범인을 지목하기까지의 추리 과정이 빈틈이 없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의 스케일에 비해 범인을 지목하는 소거법의 근거가 너무 소박하다는 것이 처음엔 조금 시시하게 느껴졌지만 탐정역을 맡은 인물의 추리나 작품의 복선이 디테일해 이내 감탄하며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반전! 난 이 소설이 반전의 묘미를 제대로 구사한 것만으로 작품과 작가에게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됐다.


 누누이 말하지만 좋은 반전이란 주인공과 독자의 믿음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반전이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의 반전이 딱 좋은 반전에 속했다. 희생하는 자가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생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반전과 그 반전을 감추기 위해 저지른 세 번의 살인도 모두 합리적이라 통쾌하면서도 산뜻하기까지 했다. 그 반전을 슈이치에게 전하는 심보는 전혀 산뜻하지 않았지만.

산뜻하긴커녕 까놓고 말해 기분 더러웠지. 사랑이 좌절된 것도 모자라 자책하며 죽었을 슈이치를 생각하면 마이는 정말이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범인이다. 굳이 슈이치를 위로하자면, 설령 슈이치가 마이를 위해 남았다가 같이 생존했다 하더라도 이후 그 둘의 행보가 마냥 좋을 것 같진 않다. 이건 가정에 불과하지만 생존을 위해 마이가 벌인 행동과 그 행동을 재빠른 두뇌 회전과 연기력으로 완수한 걸 보면 만약 슈이치와 마이가 같이 가정을 꾸릴 시 그건 그것대로 굉장히 불안하고 위험한 일이라 본다. 훗날 슈이치가 마이의 마음에 안 드는 날에 이른다면 마이가 슈이치를 제거하는 건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 쉬운 일일 테니까... 내가 너무 과몰입한 걸까?

 이게 다 절망적인 결말 때문이다. 슈이치의 마음을 테스트한 것이나, 그 테스트의 결과를 굳이 통보하는 마이의 모습은 그녀가 생존을 위해 저지른 세 번의 살인보다 더 무섭기 그지없었다. 방주에 타기 위해 저지른 짓이야 백 번 양보해 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방주에 타지 못한 사람을 조롱하거나 침을 뱉는 건 경우가 다르잖은가. 마이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녀도 슈이치에게 기대가 컸는데 그만큼 배신감도 컸기에 그랬을 테지만... 이것 참 곱씹을수록 뒷맛 사나운 결말이다.


 최근 작가의 데뷔작인 <교수상회>가 출간됐고 현지에서도 이 작품처럼 성경 속 소재를 차용한 작품이 출간했다고 한다.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라 앞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도 국내에 많이 소개될 듯한데 <방주>의 결말이 인상적이었던 만큼 다른 작품도 속는 셈 치고 펼쳐볼 것 같다. 다음엔 <교수상회>를 읽을 예정인데 기대되는군.

영화에도 나오잖아.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자기는 연인이 있다든가 가족이 있다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그거, 가족이나 연인이 없으면 죽어도 된다는 소리잖아. 이 세상 사람 모두에게 인권이 있다미나, 개중에서 희생자를 뽑는다면 제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뽑히겠지?
그건 데스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지혜나 체력이 모자란 사람이 탈락하는 데스 게임이 있잖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건, 그것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일 아닐까? - 23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9



 코로나 시국 때 읽었으면 여행에 대한 이 작품의 사유와 낭만에 훨씬 깊게 빠져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가 있긴 했었나 싶을 만큼 해외여행을 가볍게 떠날 수 있게 됐고 그렇다 보니 이 책의 단편들도 가벼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이야기로 다가왔다.

 단편마다 소개되는 디저트의 레시피나 유래를 통해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이 사건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이 작품집의 주요 골자인데,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깊이도 얕고 너무 초보적으로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끝맺어져 상당히 허무했다.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분량이 적거니와 이야기의 초점을 카페와 디저트에 맞춘 탓에 스케일에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스케일도 문제지만 주인공의 포지션이 애매하다는 것도 몰입을 저해시키는 큰 단점이었다. 주체적인 역할이 아닌 화자에 그치는 정도인데 패턴이 똑같고 주인공의 과거사나 캐릭터성, 주변인들과의 캐미가 지나치게 평범함을 지향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오히려 몰입의 여지가 적었다. 탐정역을 맡은 마도카도 마찬가지다. 수록작마다 비중이 들쑥날쑥하고 서서히 드러나는 과거사도 본격적으로 다뤄지려다 작품이 싱겁게 마무리돼서 이래저래 탐정역이라 말하기엔 애매한 캐릭터긴 하다.

 게다가 결말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너무 뜬금없거니와 그 반전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페인의 디저트 아로쓰 꼰 레쩨Arroz con leche가 동원된 것도, 그 반전을 서술하는 작가의 연출도 어딘지 유치해서... 2006년부터 모교인 오사카 예술대학 문예학과의 객원 부교수로 지내고 있다는데, 내가 그 학교 학생이면 교수님의 이러한 작품을 읽고 전과를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여담이지만 문예창작과 졸업생으로서 말하는데 이는 내가 실제로 학창 시절 숱하게 했던 고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카페에 가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중 주인공과 카페 사장과의 우정에 대한 서술은 보기 좋았는데, 단골 손님과 카페 사장이라는 애매한 관계가 소설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으로 표현됐는지 의문이 든다. 매월 1일부터 9일까지 여행을 가서 그 여행지의 디저트를 가게에 선보인다는 컨셉은 대단히 마음에 들어서 그런 카페가 실제로도 있으면 좋겠단 생각은 했지만, 열 편의 수록작 내내 그 컨셉이 서사적으로 훌륭하게 작용하기보단 단지 세계 디저트를 소개하기 위한 일종의 설정 정도로만 기능해서 독자 입장에서 낭만 그 이상의 감탄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열거하면 열거할수록 아쉬움만 가득한 작품이다.

 곤도 후미에는 한때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새크리파이스>의 덕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젠 그 정도 작품을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걸까? 최근 작가의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 위주로 읽은 것 같은데 찾아보니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도 몇 편 출간됐더라. 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작가 이름만 믿고 펼쳤다가 낭패인 작품일 순 있지만 그것도 결국 펼쳐봐야 알게 될 일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4



 요시다 슈이치 작가 스스로 감히 대표작으로 단언할 만한 작품이며 나 역시 10년 전에 읽었을 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작가는 아직도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 여길까? 나는 올해 1월 초에 이 작품을 다시 펼쳤지만 다 읽기까지 자그마치 2개월이 넘게 걸렸다. 여러모로 진행도 더뎠고 더 이상은 새로울 게 없고, 또 무엇보다 사건의 진상을 훤히 알고 있으니 이 작품의 사유를 다시 읽어내려가는 것이 더없이 지루하게 느껴진 탓이다. 이런 감상은 주로 트릭과 반전을 내세운 추리소설을 다시 읽을 때 들곤 하는데, 범죄를 다뤘을 뿐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인데 사유가 지루하다니, 한 번은 끊고 다시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안쓰러우면서 환멸을 느끼게도 하는 입체성이 '가관'인 소설이었다. 평소라면 압권이라 표현했겠지만 이번엔 가관이라 표현하고 싶다. 사실상 피해자의 아버지를 제외하면 다들 너무 이해불가할 만큼 돌발적인 언행을 저지르는데 작가는 그에 대해 충분한 분량을 할애해 묘사하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라고 무마하는 느낌이었는데, 도망친 것도 무고죄를 저지르려는 것도 자수하려다 만류하거나 도피를 하는 것도 외로움을 느껴 서로에게 다가갔다가 배신하는 전개 등 일련의 전개나 묘사가 완급 조절이 들쑥날쑥한 터라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됐다.


 조금이라도 딴생각을 하면 전개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예측불허했는데, 좋게 말하면 그만큼 등장인물들 하는 짓이 입체적인 걸 넘어 픽션치곤 대단히 현실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악인'은, 적어도 우리 상식으로 바라보면 꼭 법의 테두리 안팎의 여부로 깔끔하게 판별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적절한 연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안에서 이리저리 가치관을 흔들어대는 터라 주제의식이나 내용이나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전에 읽었을 땐 외로운 과거사를 가진 유이치가 가여웠고 경박한 게이고가 역겨웠고 요시노는 살해당한 건 불쌍하지만 일종의 자업자득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작품의 청승 떠는 것 같은 시선이 부담없이 흡수돼 무려 10점이나 줬으나 지금은 오히려 이 모든 캐릭터들의 언행이 불편하게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유이치와 함께 도피 행각을 한 미쓰요의 경우 그녀의 과거를 내 기준에선 작가가 충분히 다뤘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모든 행동이 다소 작위적으로 다가왔고 때문에 최후반부의 대사도 아무런 여운을 안겨주지 못했다. 여운은커녕 약간 오그라들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가혹한 평이려나.


 과거와 달리 내가 이 캐릭터들보다 나이가 많아졌기 때문인 걸까? 내가 다 포용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으며 감정적으로 행동하니 공감이나 동정보단 차갑게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반면교사로 삼게 됐다. 훗날 두 번째 읽고서 이렇게나 박하게 평하리라곤 10년 전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이 작가의 <퍼레이드>와 <사요나라 사요나라>, 그리고 <요노스케 이야기>와 함께 정말 좋아한 작품인데 이 작품들도 지금 다시 읽으면 별로일까? 작가의 젊은 감각과 통찰력을 좋아했는데 이번엔 유독 젊기보단 얕게 느껴졌다. 한때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으나 나도 성향이 많이 바뀌었는지 아무리 두 번째 읽은 작품이라지만 인상이 많이 달라져 일종의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다. 정말 영원한 팬심이란 없는 모양이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 439p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 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 되는데 말이야. - 44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7



 아마 이 작품이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 가장 가혹한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출판사 소개 문구에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도시 오슬로'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작품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시리즈 첫 작품인 <박쥐>에서부터 해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픽픽 죽어나갔지만 이 작품은... 이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더는 예전만 같지도 않고 바로 전작인 <목마름>을 읽은 게 벌써 3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초반부터 단숨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몰입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작가가 해리를 괴롭히기 위해 작위적으로 사건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비슷한 유형의 비극을 시리즈 내내 다루니 알게 모르게 식상해져 충격이 오래 가지 않은 것이다. 또 해리가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유력 용의자들이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안겨줄 만큼 유력 용의자라기엔 어딘지 모양 빠지는 작자들이라 그리 긴장감이 일지 않았다. 아무리 허탕을 치는 거라지만, 나중에 무고하다고 밝혀지더라도 용의자로 등장을 한다면 어느 정도 그럴싸한 모습이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선 긴장감을 영 주지 못했는데... 전엔 안 그랬잖아요, 작가님?


 오히려 수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힘든 해리의 골때리는 상황이나 수사를 거듭할수록 해리가 해리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더 압권이었는데 이게 굉장히 느릿느릿 진행되기에 인내심이 많이 요구된다. 내가 봤을 때 670페이지는 확실히 과했고 개인적으로 음악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잡담은 분량이 너무 많이 할애된 감이 있으며 어쩐지 유치했다.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긴 하지만 이마저도 추리소설의 소품으로썬 공정성이 다소 결여돼 읽기 무가치한 부분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허리 부분은 이래저래 불안정했지만 머리와 꼬리는 훌륭했다. 초반의 몰입도는 아까 말했듯 대단했고 결말은 진짜 가혹하고 기구하기 이를 데 없어 더없이 해리가 불쌍했다. 자업자득이라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독자인 내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치가 떨릴 정도인데 당사자는 어떨까? 시리즈가 장기화되면서 내심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생각이 들던 와중에 던진 초강수를 보고 작가에게 감탄... 보단 독하단 생각이 앞섰다. 후속작이 노르웨이에선 출간됐다던데 벌써부터 걱정이군. 해리가 또 얼마나 산전수전을 겪을는지 원.


 워낙에 중간 부분이 지루해 이제 이번 12편을 마지막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에 작별을 고해야 하나 싶었지만 충격의 결말을 접하니 아직 시리즈의 명운은 남아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편까지 이어질까 궁금하면서 걱정도 되는데... 문득 1편부터 다시 읽고 싶어졌다. 내가 <스노우맨>과 <박쥐>를 10년 전 군대에서 처음 읽었다. 그때 노르웨이란 나라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전역하고 나서 돈을 모은 다음 <스노우맨>을 들고 노르웨이를 여행했다. 그 노르웨이 여행은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 생각한다. 반대로 가장 아쉬운 선택 중 하나는 노르웨이를 고작 열흘만 여행을 갔던 것이고.

 아무튼 그런 내게 있어 이 시리즈는 누가 뭐라 해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시리즈다. 그러니 끝까지 읽고 싶다. 괜히 박수 칠 때를 놓쳐 흐지부지 끝나는 건 바라지 않는다. 후속작이 나오기 전까지 전작들로 복습을 해야지. 점점 전작의 내용이 후속작에 중요하게 작용하니 허투루 읽으면 나만 손해인 것 같다. 당장 이 작품만 해도 <목마름>의 어떤 전개가 아주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으니까.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후속작이 출간하는 그날까지 시리즈의 방대한 세계관을 다시금 빠져들어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가족 1
사토 아이코 지음, 곽미경 옮김 / 강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11


 이 작품의 원제는 '바람의 행방'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추상적인 제목이다 보니 '도쿄 가족'으로 바꿔 출간한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도쿄 가족은 다소 평범하니 내 생각엔 절충안으로 '가족의 행방'으로 국내에 출간됐으면 어땠을까 싶다. 뿔뿔이 흩어지는 작중 요시미네 가족 구성원, 좁힐 수 없는 세대 차이로 인해 가까운 듯 멀어져가며 다시 가족이란 이름 아래 모이는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었을 것 같은데.

 정말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을 뽐내는 주인공들, 시대의 문제와 세대별 인물들의 심리를 어색하지 않게 묘사하는 작가의 통찰력과 필력, 그리고 이 인물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인간미 넘치는 시선은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읽음에도 빛이 바래지긴커녕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10여년 전에 읽었을 때도 좋았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읽으니 더 좋았던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나오키상을 받았어도 이상하지 않았겠는걸? 아, 작품의 저자 사토 아이코는 이미 1969에 나오키상을 수상한 베테랑 중에 베테랑 작가다. 1923년생이면 살아계시다면 올해로 100년은 넘게 사신 걸 텐데...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사실상 이 작품 하나밖에 없고 - <마흔, 이렇게 나이들어도 괜찮다>라는 자기계발서가 하나 있다... - 인지도가 워낙 없으니 앞으로도 작품을 접할 일이 요원해 보인다.


 부모가 이혼한 요시미가 그 자신도 알게 모르게 위축돼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정말 남일 같지 않았던 것을 시작으로 교실에 벌어지는 왕따 같은 문제에 둔하고 외면하려는 쓰레기 같은 교사 아오야기, 왕따 주도자인 가노의 역겹고도 일그러운 언행, 요시미의 삼촌인 고지와 할아버지 조타로가 자신들의 직업인 교사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 등 내가 감정이입하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라서 적지 않은 분량인데다 이미 접한 내용임에도 마침 처음 읽듯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 이를 테면 왕따라든가 학력 만능 사회와 같은 분위기는 결코 하루 아침에 해결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과연 이 소설이 나름대로라도 답을 낼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하며 읽어내려갔다.

 작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자 등 여러 세대의 다양한 입장에 놓인 여러 인물의 심리를 자연스럽고도 능수능란하게 그려내지만 역시 작가 자신과 가장 비슷한 또래인 노부코와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에서 두각을 보인다. 그전까지 노부코는 조타로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면서 정작 조타로가 홀몸으로 시골에서 잘 살아가고 정작 자신은 혼자인 삶을 기대만큼 못 누리자 열폭한다거나, 아니면 아들과 손자와의 대화에서 겉돌거나 지레짐작하며 호들갑을 떨면서 새로운 며느리인 지카를 구박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 며느리 미호와 만났을 때 뒷담화를 하는 등 이래저래 호감형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이 본격적으로 조명되자 노부코 세대에 속하는 여성 전체에 형언할 수 없는 동정심이 일었다. 남편에 복종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온 탓에 습성이 그쪽으로 고정된 것이나 그럼에도 가족 내지는 삶에 대한 의지만은 꺾이지 않은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 세대의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진정으로 가까워지긴 힘들겠지만 내 윗윗세대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 한편이 저릿해졌다.


 노부코 얘길 했으니 조타로 얘길 빼놓을 수 없지.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걸작'으로, 이 시대에 다시 환생한 돈키호테이자 동시에 시대를 역행하는 '사나이'다. 일본은 전쟁에 패해선 안 됐다거나 여자는 그래서 안 돼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철밥통이지만 그의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고 거친 교육관이나 인생관엔 철학과 인간애가 있어 마냥 경멸하기엔 망설여지는 캐릭터였다. 개인적으론 아까 위에 언급한 쓰레기 같은 교사 아오야기나 왕따 주도자인 가노가 조타로에게 참교육을 당하는 전개를 기대했는데 그런 사이다 전개는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전개는 조타로 못지않게 의협심이 강한 지카에 의해 자주 연출됐다. 뒷일을 좀스럽고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말과 행동이 먼저 나가는 조타로와 지카는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많은 반작용을 낳지만, 오늘날 세상이 지나치게 복잡해진 걸 생각하면 이처럼 단순한 인물들의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그런 단순함이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의 행방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요시미의 새엄마인 지카가 일반적인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계모상과는 아주 상반되게 철딱서니 없는 캐릭터인 것도 매력적이었고 오히려 요시미의 아버지 겐이치를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며 한심하게 묘사한 것도 재밌는 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아버지가 아오야기나 가노보다 더 답이 없는 인물인데 이런 하찮은 남자가 잘도 요시미의 엄마인 미호와 결혼한 것이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의문인 지점일 정도다. 센스 있는 전처를 그리워하거나 손이 많이 가는 후처 때문에 고부갈등이 생기는 것을 지겨워하는 내면 묘사가 어찌나 한숨을 유발하던지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다. 이렇게 자기 철학이고 줏대도 없는 사람이 제일 문제다. 조타로가 아들한테 실망해 시골로 간 것도 이해가 간다. 조타로가 가족을 결집시키는 가장이라면 겐이치는 정반대다.


 요시미의 친엄마인 미호가 이혼 후에 겪는 사랑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가장 이질적인 이야기였다. 그녀는 요시미와 모자 관계라는 끈은 이어져 있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앞으로 요시미네 가족과 인연은 없을 것이니 선이 그어진 듯 전혀 다른 이야기가 풀어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미호의 포지션이 참 현실적으로 묘사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아직까지 서양만큼 가족 관계를 쿨한 듯 따뜻하게 선을 지켜나가는 건 참 어색한 일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허물이 없는 관계를 지향하기에 이처럼 남인 듯 남이 아닌 관계, 결국 미호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엔 함께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커리어 우먼으로 잘 살아갈 것이고 요시미와 모자관계는 전보다 소원해진다 하더라도 결코 단절되지 않을 것이다. 설마 그 이후에도 이상한 남자한테 휘둘리는 건 아니겠지? 만약 후속작이 나온다면 거기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궁금하다. 물론 다른 캐릭터들도.

 찾아보니 2022년에 작가의 작품 중에 <凪の光景>이라는 작품이 출간했는데 뜻이 '잔잔한 바다의 광경'이라고 한다. 설마 후속작인 걸까? 본작품에서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대신에 미래 세대를 향한 애정을 드러낸 만큼 후속작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후속작이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 순 있지만 이 작가의 필력이라면 그런 일은 없으리라 단언한다. 딱 한 작품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이 책만 봐도 내공을 알 수 있어서 추후에 소개될 작가의 다른 책도 기대가 된다. 과연 더 소개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로 고생한 걸 비교해봤자 별 도리 없어. 알아달라고 하는 쪽이 억지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 말은 하고 싶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고생이랑 우리가 겪어온 고생은 다르다고.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서로 알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지. 기대를 버리는 거야. 철저히 고독해지는 거야. 결국 악착같이 살아야 돼. - 2권 5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