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리커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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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한순간도 죄책감이나 불안함 없이 행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경은 인정했다. 은지의 말처럼 이경과 은지드너무 비슷한 사람들이었고, 그 이유 때문에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어지만 제대로 헤엄치지 못했으며 끝까지 허우적댔다. 누구든 먼저 그심연에서 빠져나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순간이었다. 은지와 함께했던 기억은 하루하루 떨어지는 시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부서져 흘러가버렸고, 더는 이경을 괴롭힐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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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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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어린 시절부터 유명 브랜드(랄프 로렌) 옷을 입고 유학을 가
박사과정 중이던 종수 (너무나 여성스러운)는 취미로 스케이팅을
즐기는 담당 교수로부터 ‘이 길이 아니니 그만두라‘라는 말을 듣고 수치심과 분노로 친구들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야반도주한다.
어린 시절의 랄프 로렌처럼.

고등학교 시절 잠시 사귈 뻔했던 친구 수영의 청첩장을 보고
‘랄프로렌에게‘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조르는 편지를 함께 쓰던 기억을 떠올린 그는 1년이란 시간 동안 미국에 더 머물면서 자료조사를 한다. 이 부분이 너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무리 부모님이 부자라 하더라도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은 주인공이 체류비는 어떻게 구했으며 박사 과정이 아무리 힘이 들어도 교수의 말 한마디에 그만두고 엉뚱하게도 잠시 사귈 뻔했던 결혼한 여자친구의 관심사인 디자이너를 조사하느라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다니 이게 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던 거 같다. 게다가 책날개에 소개된 예쁜 작가의 모습 때문인지 종수가 아닌 보미가 책을 쓰기 위해 퇴짜를 맞아가며 랄프로렌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는 모습이 떠올라 정작 주인공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읽는 내내 나에게 종수는 여자다운 면모를 보인 남자이고,
종수가 조사 도중 잠시 사귈 뻔했던 섀넌과의 하룻밤은 너무 어색했으며 박사 과정을 중단한 종수의 체류 여비가 늘 걱정이었다. 부모님이 부자였지만 자식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혹은 체면 때문인지
성급히 유학을 보낸 거였기에 담당 교수로부터 일방적으로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차마 알리진 못했을 것인데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마련한 것일까?

이 소설은 ‘1954년에 조셉 프랭클을 만나는 랄프로렌‘이 존재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약 1년 동안 나는, 아니 저자는 그 세계를 관찰하고,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그들의 얼굴과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애써왔음이 여실히 보이고 있다. 어느 정도는 성공했고 어느 정도는 실패했다.
너무 과도한 바람일 수 있지만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각자의 망원경으로 자신만의 ‘랄프로렌‘과 ‘조셉 프랭클‘을, ‘새 넌 헤이스‘ 와 ‘잭슨 여사‘를, 그리고 ‘종수와 ‘수영‘을 떠올리며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면 아마 저자는 무척 행복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소설가는 굉장히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우주인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저 멀리 낯선 행성의 작은 불빛을 응시하고 마침내 그 속에서 그 ( 혹은 그녀)의 얼굴 표정을 발견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혹은 그녀) 때문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때때로 안도하기도 하며, 한숨을 쉬고 화를 내기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물론 누구나 자주 실패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을 때가 있다. 망원경이 고장 났을까 봐,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서 그들 표정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지나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잠시였지만, 어쩌면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내 그런 걱정에 휩싸여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행복한 삶을 부여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나는 소박한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내가 ‘매우‘, ‘멀리‘ 존재하는 그 세계가 진짜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기를, 또한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대들은 그 세계를 살아가는 내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마음으로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떻게 견디며 무엇이 삶의 원동력을 주었는지. 그래서 행복과 불행 중에 고르자면 어떤 순간이 많았는지, 그나저나
‘랄프로렌‘이라는 브랜드를 떠올리면서 이와 비슷한 브랜드가 연상이 됐는데 그 브랜드는 ‘올리비아 로렌‘이다. 아마 내가 추측하건대 그 브랜드도 사람의 이름을 따온 것이 아닐지. 그렇다면 어쩌면 ‘랄프로렌‘의 가족일 수도 있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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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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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널 위해, 그리고 지금의 내 친구들을 위해 책을 한 권 썼어
잘 쓰는 사람만 보느라 스스로 나아질 기회를 날리지 말았으면 좋았을걸.
십 년 전의 나야, 그만 울고, 그만 울라고
글을 쓰려면 울게 아니라 글을 써야 한단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 그래,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지금보다 나이 지거나 그러진 않겠지.
그러니까 울지 말고 글을 써야 해.
십 년 전의 널 위해 그리고 지금의 내 친구들을 위해 책 한 권 제대로 쓸 수 있으면
좋겠어. 잘 쓰는 사람만 보느라 스스로 나아질 기회를 날리지 말고 글이 안 써진다고 위축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누구라도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P.27 내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기‘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쓰기‘라는 어떨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이유, 불편한 이유, 싫어하는 이유다.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에서는 특히 세 가지가 중요한 데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길게 쓸수록 좋다. 그 표면적인 ‘이유‘가 거짓말일 때가 많아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진을 찍고 책을 읽고, 친구들 만나 수다 떠는 것이다.
한 해 한해 저물어 갈수록 우리는 나이 들어가고 젊은 시절은 사라져가기에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서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 게 좋은 것, 그게 이유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라고 하면 쓸 수 있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쓰라‘고 하면 거북할 것 같은 기분이 먼저 들지도 모른다. 일단, 나는 인내심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짧게 쓰는 게 아직은 좋다.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 않고 쓰는 거라면 거짓말이라도 무언가 쓸 수 있다는 게 좋은 거니까.

P.52

많이 읽는다고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아예 안 읽는다면 애초에 멀쩡한 글을 쓸 확률이 낮아진다. 어휘력이 부족해지고, 가용한 문장의 형태가 단순해진다. 뿌리내리고 살 땅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나는 책을 읽는다. 사랑해 마지않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는 문장을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한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며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기도 한다. 이런 자기애는 글 쓰는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다.
글 쓰는 사람은 대체로 자기혐오에 익숙하지만.

→공감한다. 많이 읽는다고 좋은 글을 썼다는 사람, 본 적 없다.
아예 안 읽고 시간만 흘려보내기에 1분 1초가 아깝다고 생각하기에 글을 쓰든, 책을 읽든
뭐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책 읽기를 게을리하면 어휘력도 낮아져서 글을 쓸 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길러지지 않는 어휘력으로 써 내려간 글은 단순해지지 않고 복잡해진다.
그리고 마치 여행길에서 길을 잃은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 나는 글을 쓰면서
적어도 자기 혐오감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행위를 사랑한다.

P.133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없어서 내가 쓴다.
남이 읽어주는 것은 그다음의 행복이다. 일단 쓰는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쓰고자 하는 대로 써지지 않는 고통이 있고, 그래서 퍼붓는 노력이 있고, 더디지만 더 나은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남이 알기 전에 그 매일에 충실한 나 자신이 먼저 안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서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런 힐링이 되는 글을 쓰기까지 그는 쉽게 쓸 수 있었을까?
자신이 그만큼 힘든 시간을 겪었기에 진정 위로가 되는 글을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도 있다. 물론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많지 않ㅇ나서 쓰는 거긴 하지만. 남이 읽어주는 건 그다음의 행복인 거고, 내가 쓰는 글에서 즐거움이 존재하고 쓰고자 하는 대로 써지지 않는 고통을 충분히 감내해 가면서 더욱 퍼붓는 노력이 깃들 수 있는 것이리라. 더디더랃 더나은 형태의 결과물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남이 알기 전에 그 매일의 충실한 시간을 함께 한다.
자신이 내 글의 첫 독자이기 때문이니까

P.157

상처에 대해 쓸 수 있다는 말은 상처를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언제가 되면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서두르지 말자. 이것은 이기고 지는 배틀이 아니다.

→잊을 수 있는 상처였다면 기꺼이 글로 옮길 수 있었을 것이고, 상처라고하기엔 그보다 더 큰 상처가 많아서 상처라고 할 수도 없지 않았을까.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알게 된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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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남아 있는 사람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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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

안정을 쫓아 결혼한 뒤 호시탐탐 그로부터 빠져
나올 기회를 엿보는 기혼자들의 이율배반적인 욕심이란.
결혼 생활에는 가식과 연기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진술은 그러고보면
제법 핵심을 찌르는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뭣도 모를때 하는 거야. 최부장이 지금 나이에 시집가면
오히려 손해야. 신혼 재미는 커녕 가자마자 시부모 병수발 해야 할지도 몰라.˝ 나는 유부녀들의 모순된 넋두리를 이해하는 편이었지만
미혼이어서 뭘 모른다는 식의 어조에는 짜증이 났다.
피차 서로의 삶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간으할텐데.
내 경험은 왜 관점으로서 존중되지 못하는 걸까?
꼬리를 무는 생각에 지칠 때쯤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이대로 평생 혼자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양가 없는
사람과 평생 살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는 능력만 있으면 평생 혼자 살아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가식과 연기가 결혼생활에 필요하다는 그 공통된 진술이 핵심을 찌르는 발언이라는것에 어느정도 공감은 되는데
나는 그걸 견뎌내지 못했으며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안정을 쫓기 위함이 아니라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선택한 것이 결혼이었지만 아이만 생기지 않았다면 결혼은 다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혼은 뭣도 모를 때 하는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나는 결혼 생활에 직접적인 경험을
해왔던 내 생각은 두 번 다시 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p.57 <안경>
˝언젠가 …시를 쓰다가 이게 안경을 쓰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보이는 것이 보이게 되는 신비랄까, 새로움을 경험하게 되니까요. 그러고보니 안경과 시는 ‘쓰면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그리고 하나를 더 보태자면 안경을 쓰는 일은 사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빠질때는 콩깍지가 씌여져 상대의 단점도 장점으로 보이다가도 그 콩깍지가 벗겨질때면 내가 알던 그 사람의 낯선 모습을
보게 되는 신비랄까. 새로울 것도 없는 모습도 달리 보여지는 점이 안경과 시와 ˝쓰면 보인다‘라는 공통점에 끼워넣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p.88 <치앙마이>

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상황에서 입 밖으로 나온 사랑한다는 말이 그 전까지 말없이
전해지던 감정을 온통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지. 어쩌면 끝이 보이니까 더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살다보면 어떤 순간이 너무도 완벽해서 오히려 슬퍼질 때가 있단다. 왜냐하면 그토록 완벽한 순간은 일생에 단 한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거든. 그래서 아줌마는 후회없이 꿈을 꿀 수 있었다.

→아직 나에겐 그 완벽한 순간이 찾아오지 않은 걸로 봐서는
끝이 보이기까지 미처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의 것을 빼앗아 사랑을 나눈들 그 시간이 정말 완벽할까? 후회없이 꿈을 꿀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순간은 내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랑할수없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p. 124 <우리가 잠든 사이 >

나는 누군가를 일평생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넘어지더라도
혼자 넘어지고 싶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을테니. 그것이 칼날로 바뀌어 상대를 찌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나 역시 그랬었다. 나 혼자서 책임지기에도 버거운데 누군가를
일평생 책임져야 하는게 부담스러워웠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으니까. 넘어지더라도 혼자 넘어지는 게 나으니까.
그렇지만 세상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았기에 나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도피한 것이다. 그것이 ‘결혼‘이라는 거였다. 서로를 갉아먹는 상처가 되는 줄도 모른채 말이다.

p.138 <나의 이력서>

소영은 그간 주영을 남자 없이 못 사는 애라며 한심해했지만,
정작 주영이 볼 때 그런 제 언니야말로 제대로 된 사랑 한번
해본적 없는 불쌍한 여자였다
주영을 등지고 누운 채 소영은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서 남자 없이 못 사는 여자가 있는가하면 여태껏 제대로 된 사랑 한번 해본적 없이 살고있는 여자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좋은 사람이 나타나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문제되지 않는다.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만난 것뿐이니까
그것이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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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리커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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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8​

은지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한순간도 죄책감이나 불안함 없이 행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경은 인정했다. 은지의 말처럼 이경과 은지는 너무 비슷한 사람들이었고, 그 이유 때문에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었지만 제대로 헤엄치지 못했으며, 끝까지 허우적댔다. 누구든 먼저 그 심연에서 빠져나와야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순간이었다. 은지와 함께했던 기억은 하루하루 떨어지는 시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흘러가버렸고, 더는 이경을 괴롭힐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갔다.

=>수이와 헤어져 있는 동안 이경은 은지와의 관계에서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을것이다.
둘은 너무 비슷했기에 서로에게 쉽게 빠져들었지만 깊은 심연에서 제대로 헤엄치지 못해 허우적댔을것이다.
누구하나 먼저 빠져나오면서 그 관계는 마침표를
찍었다. 은지와 함께했던 기억이란 하루하루 떨어지는 시간의 무게를 버텨내지 못해 부서져 흘러가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동안 이경은 수이를 잊었을까
수이와는 이대로 정말 끝인걸까? 이경을 괴롭게 한 건 은지와 함께했던 기억일까
아니면 수이에 대한 어떤 죄책감이든지 불안함이었을까

p.60

그곳에는 ‘김이경‘, 그렇게 자신을 부르고 어색하게 서 있던 수이가, 강물을 바라보며 감탄한듯, 두려운듯 ‘이상해‘라고 말하던 수이가, 그런 수이를 골똘히 바라보던 어린 자신이 있었다. 이경은 입을 벌려 작은 목소리로 수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강물은 소리없이 천천히 흘러갔다. 날갯죽지가 길쭉한 회색 새 한마리가 강물에 바짝 붙어 날아가고 있었다. 이경은 그 새의 이름을 알았다.

=>그저 친구로서의 감정은 아니었겠지,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 먼저였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 감정을 알지 못한다.
이해할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날갯죽지가 길쭉한 회색 새 한마리를 보고 어쩌면 수이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얕게 내뱉은 목소리로 불러본 이름을 강물이 삼키는듯 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불러준적이 있었는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게 된다.

p.189

˝자살한 사람은 어떠니? 너희 하느님은 자살한 사람도 혼내고 벌을 주고 그러시니.˝
미주는 가만히 테이블을 바라봤다. 미주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었고, 나는 좀처럼 입을 열 수 없었다.

=>하느님이 자살한 사람을 혼냈다면 어쩌면 조금더 이겨내려는 마음보다 자신의 삶을 끝내 져버린 것을 무책임하다고 느껴서였을까?
자살한 사람도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제3자가 봤을때 그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그저 의지가 나약해서이거나 무책임하게 느껴졌을지라도
그들은 그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p.202
그 애가 얼마나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을 했을지, 그때 자신과 주나가 했던 행동이 얼마나 끔찍한 짓거리였는지도, 미주는 그 사건으로부터 일 년반이 지나서야 솔직히 인정할 수 있었다. 진희가 자길 버린게 아니라 자기가 진희를 버렸다는 사실을 미주는 그제야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던 건 어쩌면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것이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미주나 주나가 자신을 예전처럼 아니,누가 뭐래도 자신의 편이 되어줄거라는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주나 주나가 했던 행동이 진희에게 얼마나 끔찍한 짓거리에 해당하는 일인지 알지 못했을지도, 그것이 진희를 자살로 내몬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허나 그것이 그런 이유가 정말 죽음으로 밀어붙인걸까
진희도 죽음으로 미주나 주나에게 끔찍한 짓을 했음을 자신은 알까?

p.282
간단한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하민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잘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이런 말만 반복하는 자신을, 무슨 기분이냐고?
그게 뭐가 중요하지?그렇게 대답하고는 사실 자신이 자기 감정에 대해 아는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역시 그랬다. 내 자신이 그래도 누구보다 내 감정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질문에 어떤 답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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