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그 짙은 역사와 경승의 향기 문화와 역사를 담다 6
홍종흠.조명래 지음, 강위원 사진 / 민속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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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국가의 제사 대상이 되었던 다섯 산악을 오악이라 한다. 토함산(동악), 계룡산(서악),지리산(남악), 태백산(북악)이 동서남북에 포진하고 그 중앙에 팔공산(중악)이 아버지산(부악)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그런데 양적으로 방대하고 질적으로도 뛰어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빼어난 경승을 안고 있는 산맥과 같은 스케일의 팔공산만이 오악 중에서 유일하게 국립공원에서 제외되어 있다. 소위 TK라고 칭해지는 대구·경북 지방이 대통령을 여럿 배출했다는 허망한 자부심에 취해 자기 향토의 소중한 보물을 너무 등한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 팔공산의 방대한 문화와 역사, 빼어난 경관과 희귀한 생태자원의 진면목을 밝힌 책을 반가운 마음으로 접했다.  평소 팔공산에 관심이 많아 이미 발간된 책들을 거의 다 보았지만 뭔가 마음에 차지 않은 점이 많았다. 대부분이 현상나열식으로 서술했거나 지명과 지리를 중심으로 엮은 것이어서 팔공산의 표면과 이면에 깃들어 있는 진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팔공산의 역사자료와 고문헌을 상세하게 섭렵하고 현장을 답사해서 팔공산의 전모를 깊이 있게 보여 주었다. 문화유산과 경승의 디테일이 꼼꼼하게 기술되어 있고 그 디테일들이 덩어리를 이루면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유명한 갓바위 부처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있는 판석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위시한 해설들에서는 자연석으로 기술되어 있어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팔각의 판석에 3단의 문양을 새겼는데 중앙에 둥근 보주 형태의 문양이 있고 그 주위에 구름무늬를 장식한 보개(寶蓋)라고 하였다. 새로운 것을 알았고 다른 곳에서도 보이는 이런 정확한 디테일의 기술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되었다.    

    

 

머리 위에 판석을 이고 있는 갓바위 부처

 

또 불교의 유적만 있는 줄 알았는데 팔공산 자락의 한티마을에는 한말 천주교 박해 당시 숱한 순교자가 나왔고 유적들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어 천주교의 성지가 되어 있다고 했다.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은 사실이다. 팔공산은 불교와 천주교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조선 왕들이 원찰을 지어 지금도 숱한 유물을 간직하고 있고 왕의 태실이 2개소나 간직되어 조선 왕들이 성산으로 대접하였다는 사실도 상세하게 밝혀 놓았다. 문장이 정확하고 문체가 유려해서 막힘없이 읽힌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압도적인 수량의 사진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려 360여 점의 사진이 실렸는데 흔히 보는 삽도 수준의 질을 능가하는 좋은 이미지들이 빛을 발한다. 사진 전문가가 촬영한 '작품' 수준의 사진이라 그런 것이리라. 본문의 왠만한 사항들은 다 사진으로 나와 있어 글을 읽으면서 이미지들을 볼 수 있으니 실물을 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구태여 단점을 말한다면  책 가격이 조금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좋은 내용과 전부 칼라로 된 방대한 사진들을 접하면 그만한 가치를 인정하리라고 본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작품' 수준의 사진들을 몆 점 감상하기로 한다. 전부 강위원이 찍었다.     

 

 

팔공산의 파노라마

 

 

 

묘봉암에서 바라본 팔공산의 운해. 뒤로 영천과 보현산이 보인다.

 

 

 

부계에서 바라본 팔공산. 능수벗꽃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왕봉 아래의 알바위. 뒤로 팔공 연봉이 도열하고 있다.

 

 

 

북지장사 입구의 송림.

 

 

 

김유신 장군이 수련하였다는 중악 석굴 위에서 서식하는 만년송.

 

 

 

가마 바위의 노송. 바위를 뚫고 나온 듯 힘찬 모습으로 팔공의 봉우리들을 아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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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발라 - 핀란드의 신화적 영웅들
엘리아스 뢴로트 엮음, 서미석 옮김 / 물레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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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구입한 책 중에서 한 권을 택하라면 단연 이 책이다. 번역돼 나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린 책이기  때문이다. <칼레발라>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때문이다. 황천(저승)의 검은 강인 투오넬라를 묘사하는 무겁고 음울한 음의 반주 위에 검은 강을 유유히 유영하는 백조의 노래가 잉글리쉬 호른으로 쓸쓸하고 신비롭게 울려 퍼지는 것이 음습하고 황량한 북쪽의 정서를 전해 주는 것 같아서 매력이 있었다. 알고 보니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인 <칼레발라>에 바탕한 4개의 교향시 모음곡인 <레멘카이넨 조곡>중의 한곡이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칼레발라>에 대한 문헌을 찾아 보았다. 거칠고 위협적인 대자연을 배경으로 선과 악으로 상징되는 두 세력간의 투쟁, '삼포'라는 신비로운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여정과 다툼이 골격으로 되어 있었다. 줄거리를 살펴 보니 투쟁에 따르는 싸움을 해도 다른 북구의 신화 모양 피비린네 나는 살육의 이미지가 난무하는 폭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칼이 아닌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주술적인 대결이 많았다. 마술적인 언어로 칼은 물론 엄혹한 자연의 법칙까지도 복종시키는 것이 흥미로웠다. 

 

<칼레발라>는 시골 의사 출신인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o"nnrot, 1802-84)가 핀란드의 동부, 특히 칼렐리아 지방에서 구전으로 전승되어 온 민요를 수집, 집대성하여 50장, 22,793행의 서사시로 1849년에 발간한 것이다. '칼레발라'는 '칼레바 지방'이라는 뜻인데 서사시의 주인공들인 음유시인 '베이네뫼이넨', 대장장이 '일마리넨' 바람둥이 청년 '레멘카이넨'이 거주하는 상상 속의 장소이다. 이 '칼레발라'에 대응하는 것이 '포욜라'인데 북쪽에 있는 춥고 엄습한 땅이다. 여기에는 샤먼적인 여자 마녀 족장인 '로우히'가 산다. 이 양자의 대결을 큰 골격으로 '삼포'를 장악하려는 여정과 다툼, 구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여기에 더하여 농부와 포수, 어부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구체적이고 서정적으로 함께 형상화되어 있다.

 

<칼레발라>의 발간은 핀란드의 문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하여 핀란드 사람들은 자기 언어에 대한 자부심, 자기 사회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게 되었다.  거기에 담겨 있는 민족 정서는 핀랜드의 문화, 예술에 영감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칼레발라>를 주제로 한 갈렌-칼렐라(Akseli Gallen-Kallea)의 그림들과 시벨리우스의 많은 음악들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이미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이 책이 지금 우리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역자(서미석)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상업성이 없는 이런 서적을 출판한 출판사 <물레>의 용단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번역은 John Martin Crawford가 역자인 영역판을 텍스트로 했다. 핀란드 원어가 아니고 영어본의 번역에 아쉬움을 표할 수도 있지만, 핀란드어본으로부터 옮길 수 없는 역량이 우리 번역계의 실정이라면 중역이라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의 기준을 '번역문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술술 읽히느가'에 두는데, 이런 점에서는  우리는 좋은 역자를 만난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번역 문투가 전혀 없고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인 글처럼 자연스럽게 읽힌다. 역자에 의하면 처음에는 원문 택스트 그대로 전부 운문 형태로 번역을 했지만, 방대한 분량을 운문으로 소개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되어 편집자와 협의를 거쳐 산문과 운문을 결합한 형태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이 대작의 용이한 접근을 위한 방편의 하나로 그렇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운문에서 산문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부자연스럽지 않은 점에서 역자의 힘씀이 느껴진다.

 

책의 처음에 나오는 주한 핀란드 대사의 추천사에서 <칼레발라>에 대한 핀란드 사람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칼러로 된 11점이나 되는 갈렌-칼렐라의 '칼레발라' 그림도 볼 만했다.  부록으로 붙어 있는 <칼레발라의 줄거리>, <등장하는 신, 세명의 주인공과 로오히>, <용어해설과 지도>, <칼레발라 연구를 위한 자료>, <칼레발라 해설> 등은 <칼레발라>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료였다. 이 번역본의 출판을 기점으로 전문이 운문으로 된 번역본과 핀란드어본으로부터의 역서가  앞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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