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내가 사들인 책들 8

 

책쟁이로서 나의 고민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으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가 아니다. 집에 사놓은 책 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서 읽지가 고민이다.

 

그런데도 책 사모으기 열병은 멈추지 않는다. 여름과 태풍 링링 아니 광풍이 모두 지나가 버렸는데도 말이다.

 

자신만의 책읽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책쟁이는 신문에 소개되는 책 소개도 빠지지 않고 지켜본다. 아무래도 신간 위주다. 이번 주에 한겨례에 소개된 어떤 책에 실린 일러스트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정작 그 책의 제목도 모른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책에 소개된 책 중에서 호기심 가는 책들이 있다는 게 중요할 뿐.

 

지난 토요일날 주문한 중고서적 네 권이 오늘 오후에 도착했다. 어제 아침에는 부지런히 인근 램프의 요정을 매장을 털러 갔다. 바버라 킹솔버의 <포이즌우드 바이블>과 제니퍼 이건의 <>이 타겟이었다. 후자는 분명 그전에 사둔 것 같았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산 것으로 추정된다. 그게 문제냐.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는 무려 세 권이나 산 것을. 종교, 아프리카 대륙 콩고에서 생활 정말 내가 혹할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춘 소설이 아닌가. 아니 어찌 이 소설의 존재를 지금까지 몰랐는지 모르겠다. <>은 순전히 최근에 읽은 제니퍼 이건의 <맨해튼 비치> 때문에 역주행을 위해 산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선 순위에서 조금 밀린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파스칼 키냐르의 책 두 권을 데려왔다. 프랑스어의 기원을 추적한다는 <눈물들>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거 자못 흥미진진하다. 프랑크 제국의 샤를마뉴 그리고 투프-프아티에 전투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염통이 벌렁대기 시작한다. 중세 최고의 기사 롤랑의 전사 부분에서는 정말... 말을 말자. 탁탁 치고 나가는 기술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r장황한 서술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감동을 먹일 수가 있구나 싶어진다.

 

앤 패칫, 절판된 마이클 셰이본의 책 두 권 그리고 천개의 파도. 한겨레 일러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들의 책 몇 권을 저렴한 가격에 업어왔다. 나의 책탑은 나날이 쌓여가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들은 정리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결정장애는 계속된다. 도대체 누굴 버리고, 누굴 데려 간단 말인가하는.

 

일단 추석 시즌에 책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아마. 부디 더 사지 않게 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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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9-11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멋찌다 레삭매냐님 추석잘 보내시고 건강 잘 챙기세욧!

레삭매냐 2019-09-11 17:41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

무더운 추석이네요.

카알벨루치님도 건강한 추석되세요.

서니데이 2019-09-11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내일부터 추석연휴예요.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9-11 21:43   좋아요 1 | URL
이제 슬슬 명절 기분이 나네요.

날이 좀 더 선선해졌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초딩 2019-09-12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석매냐님 행복한 추석 되세요~ 항상 서재 방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9-09-13 08:53   좋아요 0 | URL
초딩의 방문도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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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5일은 일본 패전 74주년이었다. 자신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거부하고 있는 전범국가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새로운 동아시아 패권을 위한 경제전쟁을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는 기존의 1965년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태평양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통사적으로 다룬, 1970년에 발표되어 이듬해 미국 퓰리처상에 빛나는 존 톨랜드의 대작 <일본 제국 패망사>(원제는 떠오르는 태양”)의 출간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전쟁국가의 망상을 저버리지 못하는 아베 정권의 기원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톨랜드의 논픽션은 정확하게 짚어낸다.

 

톨랜드 저자는 1936225게코쿠조라고 명명한 장에서 일왕(천황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고 싶지 않다) 지지한다는 일단의 젊은 황도파 청년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으로부터 태평양전쟁의 기원을 추적한다. 사실 전쟁은 1931년 만주사변이라는 이름으로 만주 주둔 일본 관동군 출신 이시하라 간지의 주도 아래 진행 중이었다.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내항 이래, 일본은 탈아입구라는 구호 아래 근대화를 추진했다. 메이지 유신은 부국강병이라는 기치로 군국주의 일본의 탄생을 예고했다.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연합한 삿초동맹으로 토막에 성공한 근대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연이은 승리로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특히 러시아와의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 이라 옥키덴트에 눌린 오리엔트의 기념비적인 승리로 꼽을 만했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가 레벤스라움이라는 이름으로 동방 진출을 도모해서 슬라브 민족의 노예화 그리고 러시아 정복이라는 대망을 꿈꾸었다면,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의 꿈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 대륙 진출이라는 센고쿠 시대 오다 노부나가의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황도파 청년들은 이미 일본 정국을 장악한 군부의 실세들이 좀 더 강력한 제국주의 정책을 실시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서 쿠데타를 기획했다. 군부의 일부 세력들은 그들의 대의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대세는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황도파의 쿠데타 당시, 3, 5대 조선 총독을 지낸 총리 출신 사이토 마코토가 청년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보다 강력한 군국화를 주장하는 황도파들을 제압하고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지만 1년 뒤, 중국의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한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네덜란드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 초반의 형세처럼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을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난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들을 잇달아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항복을 거부하고 충칭으로 임시수도를 옮기고 지구전에 돌입한다. 이른바 용과 사무라이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이때부터 일본의 패전은 확정된 게 아니었을까.

 

대전쟁(1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제국의 뒤를 이어 세계제국으로 태평양 경쟁에 뛰어든 미국은 자신들의 미래 시장으로 점찍은 중국이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전략적으로 원하지 않았다. 일본의 명분 없는 전쟁을 비난하면서 비밀리에 장제스 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히틀러의 나치 부대가 블리츠크리크로 폴란드 전역을 석권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40년 구데리안과 로멜이 이끄는 독일 기갑부대가 프랑스를 패배시키자, 일본은 재빠르게 힘없는 프랑스 비시 정부의 인도차이나 식민지들을 접수했다. , 과연 미국은 그런 일본의 팽창주의를 허용할 것인가?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때 일본의 후원자였던 미국은 경쟁자를 넘어 가상의 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운명의 1941622, 독일은 마침내 불가침조약을 맺은 러시아를 침공한다. 파죽지세로 서부 러시아를 휩쓴 독일 전쟁기계의 빼어난 활약에 고무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연전에 맺은 삼국동맹에서 자신들만 소외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일본 해군의 지미파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생산력을 잘 알고 있기에 미국과의 전쟁을 가능하면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고착된 중국전선 상황을 타파하고 싶었던 일본 육군 지도자들은 미국 정부의 가혹한 평화협상 조건에 경악한 나머지 물불 가리지 않고 개전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내 일본 자산 동결 조치, 전략물자 수출 제한 그리고 막판의 석유 금수조치가 최후의 결정타가 아니었을까. 톨랜드에 따르면 일본 군부는 미국 정부에 상당한 양보를 할 의향이 있었지만, 중국에서 일본군의 전면 철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한편으로는 평화협상을 진행하면서도 동시에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이미 일본군의 암호를 대부분 해독하고 있었던 미국 지도자들은 일본의 이런 이중적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개전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다만 언제 그리고 어디냐는 문제만 남았다.

 

사실 개전까지 상당한 부분을 톨랜드 저자는 할양하고 있는데, 일본 제국의 흥망사에서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전쟁 자체에 관심 있는 나같은 독자가 아니라면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대성공이었다. 다만, 훗날 미해군의 주축이 되는 항공모함을 격침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흠이긴 했지만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과 나구모 강습부대가 이룬 전과로 미 태평양함대에 상당한 타격을 가하고, 일본은 그동안 동남아시아에서 그들이 원하던 침략전쟁을 수행할 시간을 버는데 성공했다.

 

개전 초기 일본군의 주공은 세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마무라 히토시의 자바 공략, 혼마 마사하루의 필리핀 진공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 진격이었다. 사실 전쟁 초기 일본군이 상대한 적군은 식민지 질서유지를 위한 2선 부대가 전부였다. 영국은 본토 방위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동양의 진주라 불린 요새이자 전략 거점인 싱가포르를 방위할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대영제국에게 싱가포르 함락은 어쩌면 또 다른 제국의 몰락을 상징했는지도 모르겠다. 필리핀 총독이었던 맥아더는 꼴사납게 자신의 책임을 다른 웨인라이트에게 떠넘기고 호주로 도주해 버렸다. 아무리 봐도 맥아더의 군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실제와 너무 다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비교적 자유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지휘관이었던 혼마 장군이 바탄의 죽음의 행진 때문에 전후 교수형을 당한 장면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전범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초반에 일본에게 한 방 먹은 미국은 손 놓고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둘리틀 특공대를 조직해서 도쿄 공습에 나선다. 개전 이래 연전연승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미국의 복수전이었다. 진주만 기습의 성공으로 자신감에 고취된 일본 해군은 이번에는 거의 도박에 가까운 작전에 나서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태평양전쟁의 변곡점이 된 미드웨이 해전이었다. 역사가 언제나 그렇듯, 간발의 차이로 엇갈린 행운의 여신이 보낸 우연 그리고 일본군의 동태를 정확하게 판단한 미군 정보부대의 활약으로 일본군의 다음 목적지가 미드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미군은 19426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벌어진 전투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해군에게 항공모함 아카기, 히류, 소류 그리고 카가 4척 격침이라는 궤멸적 타격을 가했다. 미 해군을 미드웨이로 유인해서 격멸하겠다는 야마모토 사령관의 작전은 실패하고, 역으로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기도부타이휘하 항공모함들을 적에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더 치명적인 사실은 진주만 기습을 경험한 유능하고 숙련된 함재기 조종사들을 잃었다는 점이다. 함재기와 조종사의 손실, 모두 일본으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피해였다.

 

미드웨이 해전이 바다 전쟁의 승부령이었다면,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전투는 육지에서의 기점이었다. 일본 대본영에서도 역시나 승세를 잡은 미군의 반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그들이 생각한 최남단의 과달카날(일본명 가다루카나루)에서부터 시작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과달카날 전투는 194287일 시작되었고, 6만에 달하는 미군 병사들이 전선에 투입되었고, 31,000명의 일본군 중에 2만 명이 죽었다. 일본군은 과달카날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처음부터 미해병대에게 빼앗긴 헨더슨 비행장을 되찾기 위해 대단위 부대를 투입해서 초전에 승부를 걸었어야 했는데, 미군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소규모 부대를 투입해서 소모시켜 버렸다. 그동안 미군은 계속해서 병력을 증원하고 산더미 같은 보급물자로 일본군을 압도했다. 결국 그들은 중기관총 같은 화기로 무장한 미군 진지로 야간에 훗날 반자이 돌격으로 알려진 무모한 진격을 시도하다 결국 일패도지해 버렸다. 중국 전선에서 작전의 신으로 칭송받은 쓰지 마사노부 중좌가 작전에 참가해서 연속된 오판으로 1만 명의 장병의 목숨을 헛되게 만들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을 괴롭힌 적은 미군뿐만이 아니었다. 말라리아와 부족한 보급 물자로 일본군은 녹색 지옥에서 사방에서 날아드는 미군의 포탄과 총탄 뿐 아니라 굶주림과도 싸워야 했다. 보급 문제는 태평양전쟁의 모든 전선에서 고질적 문제였다. 일본군의 주식은 밥이었는데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곳으로 미군의 포화가 작렬했으니 말이다. 현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작전 참모들은 그놈의 세이신(정신) 타령을 했지만, 맨손과 허약한 육신으로 잘 쉬고 잘 먹은 미군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과달카날 3차전에서는 만주에 주둔 중이던 관동군 정예 2사단까지 동원했지만 패배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더 슬롯으로 알려진 수송로에서 미해군에게 격침당하는 수송선의 피해도 일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승리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속히 손절하고 퇴각해야 했지만, 도쿄의 대본영은 패전 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것에만 연연했다. 망하는 조직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한편, 미군 역시 일본의 해군과 육군처럼 전쟁의 향방을 정하는데 있어 이견을 보였다. 맥아더로 대표되는 미육군은 방어가 두터운 뉴브리턴의 라바울을 건너뛰고 뉴기니를 거쳐 맥아더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필리핀 진공을 주창했다. 대신 해군은 개구리 뜀뛰기 전법(leapfrog)이라 명명된 작전으로 솔로몬 제도를 제압하고 마셜 제도, 길버트 제도 그리고 마리아나 제도를 거쳐 타이완으로 가는 주공을 원했다. 1942년 미영소 연합군은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엘알라메인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미드웨이와 과달카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전세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여전히 유럽 대륙에서 제2전선을 열어 소련에 대한 독일의 압박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태평양전쟁을 도맡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맥아더의 공력 루트보다 태평양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공력 루트가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적은 피해로 일본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뉴조지아 그리고 부건빌을 제압하는데 성공한 니미츠 부대의 다음 목적지는 길버트 제도 타라와 환초의 베티오섬이었다. 베티오섬의 수비 사령관 시바자키 케이지 소장은 토치카와 벙커 그리고 참호로 잘 무장된 채, 미군의 상륙에 대비했고 미군 해병대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항복을 수치로 여기는 일본군은 죽는 순간까지 미군에 저항했고, 미군 지휘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병력 손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계속되는 사이판, 오키나와 그리고 이오지마 전역에서 미군은 더욱 강력한 일본군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과 미국이 맞붙은 태평양전쟁은 끝없는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선박이 격침되고, 숱한 함재기들이 수장됐다. 총동원 체제에 돌입한 미국의 가공할 만한 생산력을 일본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과달카날 이래 일선의 병사들에 대한 보급은 고질적 문제였다. 뉴기니 전역에서도 그리고 뒤이은 필리핀 전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보급할 물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해권과 제공권을 미군에게 모두 빼앗긴 상태에서 수송선을 띄우는 일은 거의 자살행위였다. 군부 주도 아래, 제 아무리 민간 수요를 억제하고 오로지 전쟁을 위한 생산에 박차를 가해도,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엄청난 생산력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처음부터 개전에 반대했던 게 아닐까.

 

한편, 일본이 동남아시아 제국을 침략하면서 내세운 대동아경영권의 허실은 곧 드러났다. 각국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일본은 해방자로 자처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구미 식민제국을 대신한 새로운 지배자였을 뿐이었다. 개전의 이유가 미국의 각종 금수 조치를 타개하고, 천연자원 획득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일본 제국의 본질을 깨달은 현지인들이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협력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나마 일본이 승기를 잡았을 때는 잠잠했겠지만, 각지에서 일본군이 연달아 미군에게 패배하면서 그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선전한 아시아 민중에 의한 대동아경영권은 처음부터 일본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위장하기 위한 선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전쟁의 무대는 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이었다. 사이판마저 미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제국의 심장부 도쿄까지 보잉사에서 새로 개발한 슈퍼포트리스 B-29 폭격기의 공습권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절대방어선을 주창하던 일본군의 저항이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판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 미군의 침공에 대비하겠다는 일본 대본영의 전략은 수송작전의 참담한 실패와 원래 사이판에 투입되기로 되어 있던 중국 대륙의 관동군 부대가 국민당 부대의 선전으로 중국 전선에 묶이게 되면서 빈약한 병력으로 7만 명에 달하는 미군 상륙부대를 상대하게 되었다.

 

타라와 전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군은 막강한 육해공군력을 동원해서 철저하게 일본군 진지를 포격 및 폭격해서 저항하고 저항을 누른 뒤 상륙거점에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는 미군을 상대로 그다지 의미 있는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옥쇄 돌격이 이어진다. 그리고 진주만 강습부대를 이끌었던 나구모 주이치 중장을 비롯한 수비대 고위 지휘관들은 자살한다. 다른 전역과 달리 사이판에는 당시 25,000명 가량의 일본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동안 일본 정부의 미영귀축이라는 선전에 속아 집단자살이 이루어지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톨랜드는 당시 생존자의 증언을 논픽션에 담아, 사실성을 극대화시켰다. 사이판 실함으로 도조 히데키 내각이 붕괴되고, 역시 조선 총독을 지낸 군인 출신 고이소 구니아키가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제 일본은 별다른 반전 역시 패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편 육군의 대표선수 맥아더는 전략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 필리핀 공략으로 개인적 복수전에 나서게 된다. 민다나오와 레이테 그리고 루손을 해방시키겠다는 맥아더의 전략은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연합군 수뇌부가 최종 목표로 설정한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대전략 차원에 판단해 볼 때, 무의미한 작전이었다. 태평양의 모든 제해권과 제공권을 미국이 장악한 마당에, 필리핀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래 전, 히틀러가 현지 사수를 고집하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낭패를 당했던 것처럼 일본의 군 지휘부 역시 비슷한 오류를 필리핀 전선에서 범했다. 그리고 자그마치 33만 명이나 되는 일본군이 1944년과 1945년 필리핀 전역에서 죽었다.

 

어쨌든 필리핀을 사수하기 위해 대본영에서는 말레이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맹장 야마시타 도모유키를 필리핀 방면 사령관으로 파견한다. 총리대신 도조와의 불화로 싱가포르 함락 이후, 소련군의 남하를 대비한다는 핑계로 만주에 가 있던 야마시타 대장은 그렇게 사지로 들어갔다. 2-26사건을 일으킨 황도파의 중심인물 중의 하나가 야마시타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도조가 그를 기피한 것도 황도파 쿠데타의 주역이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전쟁이 끝난 뒤, 야마시타는 마닐라 대학살의 책임을 물어 교수형 당했다.

 

뒤이은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1억 총옥쇄 본토결전을 주장하는 대본영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이오지마는 슈퍼포트리스 B-29의 폭격 기점으로 일본 본토 공격에 꼭 필요한 전략거점이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일본 역시 19446월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을 수비대 사령관으로 파견해서 미군의 내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달부터 이미 미군은 폭격과 함포 포격으로 침공을 준비한다. 한편, 상륙군의 교두보 확보 시점을 가장 취약하다고 판단한 해군은 구리바야시의 상륙군을 최대한 내륙으로 유인해서 일인십살(一人十殺)하겠다는 기존의 일본군의 방어계획과 전혀 다른 전술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그리고 세 개의 비행장 수비와 바다 위에 떠 있는 미군 함정에 대한 공격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는다. 구리바야시는 함께 수비에 나서야 하는 해군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어서 타협을 하면서도 토치카와 벙커, 참호 그리고 지하 교통로를 건설해서 그야말로 이오지마를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과달카날 이래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일본군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옥쇄 돌격도 수비대 사령관은 금지했다. 1945219일부터 한 달 정도 진행된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과 미군의 사상자는 총 5만 명에 달했다.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지 미군 지휘부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막대한 사상자를 낸 미국은 결국 일본의 조기 항복을 유인하기 위해 유럽 전선을 끝낸 소련에게 대일전쟁에 참전할 것과 신형 폭탄의 사용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미군 지휘부가 194511월로 예정된 규슈 상륙을 감행했을 시, 미군 피해가 백만 명에 달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에 놀란 나머지 TNT 폭탄 2만 톤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을 일본의 8번째 큰 도시이자 군항이 위치한 히로시마에 투하하기로 결정한다. 히로시마에서만 무려 2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뒤이어 당시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마지막 원자폭탄을 나가사키에도 투하했다. 결국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일본 군부는 포츠담 회담에서 결정된 무조건 항복을 수락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인데, 일왕의 항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단의 근위사단의 청년 장교들이 다시 한 번 궁정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상명하복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던 일본 군부가 이끌었던 태평양전쟁이 하극상으로 시작해서 하극상으로 끝났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일본 제국 패망사>에서 아쉬운 점은 임팔 작전으로 알려진 일본군의 버마 침공 작전이 상대적으로 너무 간략하게 다뤄진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10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대륙에 묶어둔 중국 전선에 대한 부분도 태평양 전선의 기술에 비해 부족한 점도 눈에 띈다.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전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했다는 비판은 오류다. 만약 중국 대륙 전체를 일본군이 장악해서 불필요해진 병력들이 필리핀 전선이나 솔로몬 제도의 격전지에 투입되었다면 맥아더나 니미츠의 승리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원폭이 전쟁을 종전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정작 일본 군부를 원폭보다 더 심하게 압박한 것은 만주 전선에서 소련군의 개입이었다는 진술도 유의미한 역사적 사실의 발견이었다. 소련군은 딱 일주일 싸우고,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비롯한 숱한 전리품을 챙길 수가 있었지 않았던가. 아마 역대 전사에서 이보다 남는 장사는 없었을 것 같다.

 

오래 전 소설 <대망>으로 유명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태평양전쟁>(5)을 읽었다. 일본 종군기자 출신 극우 인사가 쓴 거의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라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태평양전쟁 전개의 대강의 흐름과 디테일에 대해 파악할 수가 있었다. 이번에 다시 만난 존 톨랜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과 달리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비교적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일본 제국의 패망을 추적한다. 서방에서 승승장구하는 독일이 세계정복이라도 하면, 자신들에게 떨어질 떡고물이 하나도 없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에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사로잡혔다. 그래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미국관의 전쟁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시작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기회주의적 모습에서 태평양전쟁의 실체가 보였다. 패전 74년이 지나 다시 평화헌법을 버리고 전쟁국가로 거듭나려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군국주의의 유령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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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05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되게 잘 찍으셨어요. 진짜 책에서 연기나는 느낌인데요??

리뷰 잘 쓰신 거야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1:46   좋아요 0 | URL
사진은 아침에 출근 하기 전에 막찍...

워낙 책의 분량이 방대해서 잊어 버릴
까봐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리뷰를 작성
했네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19-09-05 15:27   좋아요 1 | URL
앗, 정말요! 책에서 불난 줄 알았어요.ㅋㅋㅋ
근데 전 못 읽을 것 같습니다.ㅠ

2019-09-05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3:10   좋아요 0 | URL
분량이 아주 방대합니다 ~
속으로 이거 물량작전으로 퓰리처상
을 받은 게 아니야 할 정도로 말이죠.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9-05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유럽/아프리카 전선과 태평양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리라는 계산도 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들이 동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중국 내륙, 남으로는 미얀마, 북으로는 만주에 걸쳐 전선을 확대시켜 고립되었음을 생각해본다면, 레삭매냐님께서 지적하신 강박관념과 오판 그리고 탐욕의 결과가 일본 군국주의자 스스로를 묶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19-09-05 13:13   좋아요 1 | URL
아주 명징한 지적이십니다 !

감당할 수도 없는 전선의 무리한 확대
가 결국 일본 패망의 원인이었다고 생
각합니다.

주변에 우호적인 나라들은 하나도 없
고 오직 적들만 쌓아 두었으니 이기
는 게 더 이상했을 것 같습니다.

초란공 2019-09-05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무모한 전투를 개인적인 복수의 기회로 삼았던 맥아더는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 같단 생각이 드네요.^^;;

레삭매냐 2019-09-05 13:26   좋아요 1 | URL
재작년엔가 내 <모비 딕>을 읽어
보겠노라고 생각하고 기세 좋게
시작은 했지만 정작 다 읽진 못했
더라는.

맥아더는 정말 문제적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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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제니퍼 이건의 <맨해튼 비치>가 출간되어 호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책에 대해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그동안 작가의 책들을 사 모았지만 정작 다 읽는 데는 실패했었다그리고 다시 기회가 왔다이번에는 볼스테드법(금주법시절의 갱스터대공황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여성 전시노동까지 다루는 역사소설이라고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우선 제니퍼 이건은 방대한 스토리 전개를 위해 다양한 층위의 내러티브 설계를 촘촘하게 준비했다. <맨해튼 비치>에는 우선 가족 서사가 전면에 등장한다. 1934년 이제 막 금주법이 풀렸지만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덮친 대공황(The Depression)으로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특히 주인공 애너 케리건의 집에는 더더욱 그랬다한 때 호시절을 누리던 애너의 아버지 에디는 바닥까지 몰락해서 지금은 갱스터 친구 더니의 백맨(검은 돈의 운반자)으로 입에 풀칠하며 살아간다.

 

중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둘째 딸 리디아의 존재는 그에게 죄책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다그놈의 돈이 없어 리디아를 데리고 외출도 못하고무엇보다 애너가 좋아하는 바다를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게 애너는 항상 마음에 걸린다설상가상으로 집안이 이런 판국에 아버지 에디는 소설이 시작된 1934년으로부터 3년이 지나 모든 곳으로부터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도대체 무슨 일이 에디에게 벌어진 걸까제니퍼 이건 작가는 무심코 하나의 미스터리를 툭하고 던진다하지만 이것 역시 정교한 내러티브의 일환일 따름이다.

 

소설의 세 번째 주인공에 해당하는 이탈리아계 갱스터 덱스터 스타일스가 등장할 차례다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소년 보호소 출신으로 암흑계에서 성공해서 잘 나가는 은행가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아 승승장구하는 갱스터다덱스터의 집이 있는 맨해튼 비치에 소설 초반애너와 에디가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그리고 에디의 실종이 덱스터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도 작가는 암시한다애너에게 맨해튼 비치라는 공간은 어쩌면 순수한 욕망의 상징 같은 장소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나 1942년이 되었다먼로주의를 고집하던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전쟁에 휘말려 들 수밖에 없었다총력전으로 모든 건장한 남성들이 조국을 위해 자원입대해서 전쟁터로 향한다그렇다면 후방에서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위한 군수품은 누가 만들 것인가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여성들의 노동력이 필요해진 시절이었다우리의 주인공 애너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브루클린의 해군공창에서 검수를 하는 직업을 얻게 됐다애너의 노동으로 번 수입으로케리건 집안은 간신히 유지되었다그리고 동생 리디아의 삶도.

 

이제 애너와 갱스터 덱스터의 접점이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가 관점이다내러티브 직조의 달인인 제니퍼 이건 작가는 정말 빼어난 실력으로 텐션이 줄어들 때마다 뻥뻥 터지는 획기적인 사건들로 텐션과 독자들의 집중력을 고도로 유지하는데 성공한다애너가 욕망하는 장소인 맨해튼 비치로 덱스터의 도움으로 리디아를 데려가는 장면부터 시작해서리디아의 갑작스러운 죽음어머니 애그니스의 고향 미네소타행당시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다이버로서의 도전에 이르기까지 정말 빠른 속도의 전개가 도대체 소설을 읽는 내내 멈추지 않고 소용돌이친다.

 

뉴스릴처럼 간간히 들려주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이야기로스토프 해방전하르코프 공방전 그리고 무르만스크 수송작전 같은 세계사적 변곡점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긴박했던 당시 상황들을 상상하게 만들어준다덱스터의 장인 아서 베링거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미래의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전망은 사후약방문 격이긴 하지만놀랍다그러니까 이미 미국의 엘리트 계급들은 전후 미국의 약진과 그들의 후손이 누릴 부와 영광을 미리 예견했다는 것이지 않은가 말이다.

 

프랭키 Q의 종복이었던 덱스터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던 자신의 갱스터 사업들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원했으나장인과 주인 모두에게 배척당하고 결국 용도폐기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부지불식간에 오로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비롯된 애너와의 관계도 그의 파멸에 한 몫을 했던 게 아닐까자신의 딸에게 충실하라는 장인의 계명을 지키지 않은 덱스터에게 과연 할 말이 있을 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소설 전개상 압권 중의 하나는 죽은 줄 알았던 애너의 아버지 에디의 부활이었다전시 상선단의 일원으로 대서양을 지나 인도양에까지 도달한 에디의 배가 유보트의 어뢰를 맞아 피격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영국령 소말릴랜드까지 흘러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동시에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겠다며 뉴욕의 바다 속으로 침잠해 가는 애너의 용기에도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이 정도 내러티브라면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하지 않은가 말이다불운한 가족서사갱스터전쟁다이빙전시노동 그리고 치명적 유혹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이야기 틀이 아니던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의 파괴적인 군사력을 상쇄해 버린 미국의 압도적 생산력에 대한 찬가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애너 케리건과 로즈들의 전시노동으로 만들어진 리버티선으로 대륙 너머로 출정나간 미군들과 동맹국들에게 탄약과 보급품을 무한정으로 만들어냈고에디 케리건으로 대변되는 용감한 상선대 역시 바다의 늑대무리인 독일의 유보트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에 뛰어 들었다독일과 일본의 전쟁기계들도 미국이 보유한 무시무시한 전시 생산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면전쟁에서 이길 승산이 없다는 걸 개전 전부터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대영제국의 총리는 자기 어머니의 나라를 전쟁에 끌어 들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백맨(bagman)으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클래식한 스타일의 갱스터 덱스터의 옴부즈맨이 되었던 에디에게도 변명할 거리는 있었을 것이다이제 간신히 대공황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중증 장애를 가진 리디아를 부양할 방법이 없었다갱스터 세계의 모든 것을 파악한 그가 덱스터와의 위험한 거래에 나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게 된다.

 

제니퍼 이건이 구상한 방대한 역사소설 <맨해튼 비치>의 중심에는 금기에 도전한 여성 다이버가 우뚝 서 있다이 내러티브의 마술사는 엄청난 리서치와 인터뷰를 통해 1940년대 전쟁 중에 있던 미국 브루클린 해군공창의 모습과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들을 다채롭게 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처음 두터운 소설의 첫 장을 펼쳤을 때의 육중한 느낌은 중반을 지나 독서의 속도감이 붙기 시작하면서후반으로 갈수록 조바심을 내게 만들었다과연 제니퍼 이건의 전작들은 어떤지 기억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녀석들을 찾아 역주행에 나서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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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9-06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72쪽이나 되는군요! 금기에 도전한 여성 다이버가 등장한다니, 저도 이 책 읽어봐야 겠어요. 몇 해전에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을 좀 힘겹게 읽은 기억이 있던 터라 이 책을 살까 말까 계속 망설이고 있었어요.

레삭매냐 2019-09-06 21:20   좋아요 0 | URL
전 <깡패단의 방문> 무척 기다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못 다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다시 도전해 보려구요.
근데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
더라구요 ㅠㅠ

다락방 2019-09-07 00:01   좋아요 1 | URL
저만 읽기 힘든 게 아니었군요!!
 
처칠, 끝없는 투쟁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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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될 때부터 고대하던 윈스턴 처칠의 짧은 전기를 읽었다. 저자는 독일 출신 저널리스트 제바스티안 하프너다. 이 책은 처칠이 죽고 난 뒤, 2년 후인 1967년에 발표되었다. 히틀러의 전격전으로 전 유럽이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마지막 보루였던 영국마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던 절망적 상황에서 패전의 위기를 승리로 이끌어낸 정치가 처칠의 다른 면을 나는 이 평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주 어려서 꽤 두꺼운 처칠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젊은 시절 처칠이 보어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게 된 그의 본질은 반혁명주의자에 뼛속까지 제국주의자였다는 점 정도.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대영제국의 총리였던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전시 총리로 거국내각을 이끌었지만 전후 총선에서 패배해서 실각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17세기까지 근원을 올라가는 말버러 공작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윈스턴 처칠은 영국 귀족 자제들을 위해 준비된 엘리트 코스를 수행하기 위해 매질 지옥으로 알려진 사립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는 모국어인 영어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라틴어를 비롯한 다른 과목에서는 낙제생이었다. 개인의 개성을 말살시키고, 오로지 체제에 충성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는 이름의 횡포가 수세대를 거쳐 입증되었다는 점이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혹독한 시기를 버틴 처칠의 뚝심과 불굴의 의지가 어쩌면 이 매질 지옥에서 탄생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인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던 그의 부친 랜돌프 처칠 역시 한 시대를 주름잡은 풍운아였다. 스캔들로 아일랜드에 유배를 당했던 랜돌프는 토리 민주주의라는 기발한 정책으로 보수당 혁신의 기수로 등장한다. 물론 그의 호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고, 정치적 자살 같은 행위와 요절로 후계자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거의 망나니 낙제생에 가까웠던 처칠의 운세는 약관의 나이에 기병 소위가 되면서 풀리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고난 전사였다. 쿠바, 인도 그리고 수단의 전장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1898년 영국 최후의 기병 돌격이었다는 옴두르만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19세기 전사의 전형이었다. 한편, 종군기자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첫 정치도전인 하원의원 선거에서 보기 좋게 떨어진 젊은 처칠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보어전쟁이었다. 종군기자로 참가한 보어전쟁에서의 맹활약은 그의 정치적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 그가 정치인이 되자마자 한 일은 바로 기회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당적을 갈아치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정치 철새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일이었다. 훗날 다시 보수당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이런 이유로 해서 자당 의원들에게도 믿을 수 없는 기회주의자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쨌든 정치 천재 데이빗 로이드 조지 밑에서 장관직을 연달아 맡으면서 젊은 정치가 처칠은 승승장구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점 중의 하나가 처칠이 자유당 내각에 있으면서 시행한 굵직한 사안들에 대한 디테일이 이 책에는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본위제 부활과 노조파업에 대한 강경대응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책을 참조해야할 것 같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해군장관으로 대전쟁’(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슐리펜 계획을 꿰뚫어본 혜안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실전에서 갈리폴리 전투에서의 육해군 합동공격 실패는 처칠의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그 후 계속해서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예전 같은 영화는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전사로서 처칠은 전쟁에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 평화로운 시절에 그의 존재는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그가 한량 생활을 하는 동안 유럽 대륙에서는 커다란 변화들이 발생했다. 러시아에서 발생한 볼셰비키 혁명에 제국주의자 처칠은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과 일란성 쌍생아 같았던 독재자 히틀러의 나치즘이 독일을 휩쓸었다. 어떤 면에서는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처칠은 히틀러의 인종주의와 약자를 압제를 견딜 수가 없었다. 계급적으로도 처칠은 신사였고, 교육을 통해 유전된 도덕률이 그를 세계의 데몬과 맞서 싸우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우리에게는 승리의 “V”로 각인된 위대한 정치가 처칠의 과대평가된 지점들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처칠에게 국가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조국을 내던져서라도 히틀러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명제가 더 중요했다. 그보다 한수 위였던 정치 천재들인 로이드 조지와 체임벌린이 구사한 유화정책은 노동당과 인도에서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하지만 도무지 욕심을 채울 수 없었던 히틀러에게는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대전쟁으로 한 세대가 소멸하고, 제국의 여력을 까먹은 영국으로서는 도저히 새로운 전쟁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전시 거국내각의 총리가 된 처칠은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총력전에 돌입한다. 전사였던 노년의 총리에게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은 희생되어야 했다.

 

하프너 작가는 처칠의 유효성을 19406월부터 일 년 정도로 잡고 있다. 세계사에서 처칠의 중요성은 딱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사실 육지에서 독일을 상대한 것은 영미군이 아니라 동쪽의 소련군이었다. 194112월의 모스크바 공방전 그리고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세는 연합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처칠은 소련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했고, 유럽 대륙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남부전략(북아프리카-이탈리아-트리에스테-)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전선에서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의 막강한 독일군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전진이 지지부진해지고, 2전선을 열어 달라는 스탈린의 거듭된 요청을 더 이상 연기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전쟁 초반 독일 전쟁경제의 목줄을 조르기 위해 실시했던 나르빅 작전의 실패도 총사령관 처칠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스 원정의 실패는 또 어떤가. 자신이 구상한 남부전략이 실패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자, 처칠은 스탈린과 단독으로 유럽의 지도를 만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스는 영국이, 루마니아는 스탈린이 그리고 전쟁의 원인이자 자신들이 해방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폴란드는 서방으로 넘기는 딜을 서슴지 않는다. 처칠은 어디까지나 대영제국의 존속과 조국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다. 영국의 애국자일지는 몰라도 세계적 정치지도자라는 기존의 위상과는 너무 다른 게 아닌가 말이다.

 

저자는 냉정하게 히틀러의 몰락이 이제 기정사실이 되자, 전쟁에서 처칠이 할 일이 없어졌다고 기술한다. 전쟁 후반 영국 대신 전쟁의 주역이 된 미국이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동쪽으로 진군해 엘베강에서 소련군과 만나게 되면서 전쟁은 끝났다. 미국과 소련이 전면에 부상했고, 대영제국은 예전의 영화를 뒤로 하고 몰락했다. 처칠은 전사로서 강인한 인내와 끈기로 조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했다. 주저하던 미국의 루즈벨트를 설득해서 결국 군수품 지원과 참전을 이끌어냈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결국 전쟁에 승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영국 시민들은 처칠이 전후 수습을 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갈리폴리 패전 때처럼 모두가 처칠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1951년 불사조처럼 부활해서 두 번째 총리의 자리에 올랐지만 노쇠한 정치가가 할 일은 없었다.

 

독일 출신 이방인으로 비교적 객관적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윈스턴 처칠의 공적 뿐만 아니라 실책 그리고 본질적 삶에 대해 적나라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국가를 영도하는 지도자로서는 손색이 없었지만, 평화 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기회주의적 독재자의 모습 때문에 적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과 비슷한 내면세계를 지니고 있던 운명의 숙적 히틀러를 쓰러뜨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처칠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자 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가 그동안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실에 관한 전후사정을 알게 된 점을 가장 큰 수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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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 - 전민식 장편소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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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아베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으로 일본과 경제전쟁으로 기해년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민간의 자발적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 안사고 안가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반성과 사과가 없는 전범국가 일본과의 평화공존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326년 전,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 세기가 흐른 뒤 조종의 강토인 울릉도와 독도 지킴이에 나선 상인이자 어부 안용복의 이야기를 그린 <강치>를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건 위정자들이 아니었다. 고종이나 순종이 국권이 침탈될 때, 백성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가. 아니다. 동학운동으로 일본군에 맞서 싸운 건 농민들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또 어떠했는가. 임금이 조정을 버리고 몽진을 가자, 의병이 나서서 왜군에 맞서 싸웠다. 위민이야말로 성리학을 주창하는 선비 사대부들의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 그런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평화 시에 양반 행세를 하며 반상의 도 타령하는 게 그네들의 모습이었다.

 

팩션인 <강치>의 역사성을 알아보기 위해 국역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숙종 연간에 등장하는 소설 <강치>의 주인공 안용복은 모두 11번 숙종실록에 등장한다. 1693년 계유년 봄에 울산에서 도해금지령을 어기고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 박어둔과 안용복 2인을 꾀어 납치했다는 기록으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한다.

 

당시 39세의 외거노비 출신 상인이자 어부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를 마음대로 출입하면서 등잔에 쓸 기름과 고기 그리고 가죽을 얻기 위해 독도에 사는 강치를 마구잡이로 살육하는 왜인들의 잔악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조국의 자원은 물론이고 조종의 강토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왜인들에게 택견으로 저항해 보기도 하지만, 동료들을 구하고자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순순히 납치되기에 이른다.

 

이어 오키섬, 요나고와 돗토리 그리고 나가사키와 쓰시마를 반년 동안 아우르는 간난신고를 겪게 된다. 그 와중에 쇼군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하고 일본인들의 울릉도와 독도 출입을 금지하는 서계를 발급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문제는 귀국길에 일본 본토를 지배하는 쇼군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쓰시마 도주의 농간으로 서계를 강탈당하고 안용복과 박어둔은 본국 초량으로 귀환한다.

 

조국의 기개를 왜국에 가서 드높인 안용복이었지만, 지역을 담당하는 동래부사에게 안용복은 도해금지령이라는 지엄한 국법을 어긴 범죄자일 뿐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충무공 이순신이 간신의 모함에 걸려 백의종군하게 되고,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 맞서 모든 것을 희생한 의병장들의 최후가 연상되지 않는가. 아무리 도해금지령이 조선의 백성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곤장 100대에 유배형까지 당하게 된 안용복의 심정이 과연 어땠을까.

 

사실 팩션 <강치>의 정점은 여기까지가 아니었을까. 쓰시마 도주의 악행에 대한 소송과 쇼군의 서계를 되찾겠다는 의지에서 실행된 두 번째 일본행은 무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소설적 밀도도 현저하게 격감되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기존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서 <강치>를 썼다고 하는데 조선 대표선수로 위장하기 위해 공직을 사칭하고, 두 번째로 도해금지령을 어기는 장면에서는 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귀국 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천민 출신으로 국법을 어기고 외교 문제를 초래한 안용복에 대한 처벌 문제로 조정은 두 파로 나뉘어 격론을 벌이는 장면은 대미를 장식할 만했다. 안용복의 사단을 일죄(사형)로 다스려야 한다는 영돈녕 윤지완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성리학적 질서를 최우선으로 하는 조선에서 국가 질서를 어지럽힌 안용복을 용서한다면 추후에 벌어질 기강문한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주장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파로 등장한 영부사 남구만은 안용복을 처형할 경우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쇼군이 내린 왜인들의 울릉도 독도 해금령이라는 쾌사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결국 주상이 두 개의 공과 실을 가감해서 안용복을 유배형에 처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를 짓는다.

 

첫 번째로 안용복이 일본에 납치되었을 때, 숱한 왜인들의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 우선 일본인 뺨치는 일본어 실력이다. 무역을 하는 상인으로 자신들과 별다를 게 없을 정도의 언어 능력을 가진 안용복이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어떨까. 탁월한 택결 실력과 사무라이들도 감탄할 만한 정상급 무술 실력을 갖춘 이가 나는 어부요라고 말하는 걸 그대로 믿는 게 더 우습지 않을까. 2차 도일에서는 사맹들과 일단의 용병들을 지휘해서 폭풍 속에서 세키부네를 맹렬하게 추격하는 리더십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 정도라면 조선 슈퍼히어로급 선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주목한 것 중의 하나는 이상룡이라는 초량 바닥에서 한다하는 행수급 토착왜구의 존재다. 왜인들의 잔악한 행동과 횡포는 그렇다 치고, 그들에게 협력해서 동래 지역 밀무역은 물론이고 살인교사와 안용복의 의붓동생 선화 납치에 가담하는 등 왜인 못지않은 악행을 일삼는다. 거상 오다에게 부역해서 돈을 벌고, 한양의 두둑한 뒷배를 둔 악당은 조정의 법망을 비웃으며 자객을 고용해서 안용복에게 보복을 실행한다. 가상의 인물 설정이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작금의 현실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가 막힌 상황들에 딱 맞아 떨어지는 모를 정도였다. 학자로서 말도 되지 않는 연구로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매국적인 선동도 문제지만, 그런 선동에 아무런 비판 없이 부화뇌동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더 걱정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소설의 제목으로 뽑은, 그렇게 일본인의 손에 멸종된 독도 강치들의 운명은 조국이 지켜줄 수 없었던 조선 민초들에 대한 비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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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8-28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레삭메냐님 제목이 더 좋아요. 또 다르게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에휴.... ㅠㅠ

레삭매냐 2019-08-28 13:05   좋아요 0 | URL
하하 ~ 제 속 마음을 읽으셨나요.

역시나 단발머리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