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머린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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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리뷰의 제목을 <찰스 밍거스 그리고 오코노미야키>로 뽑으려고 했다그냥 느낌 있게일본 추리소설에는 유난히 재즈와 그 재즈를 연주하는 재즈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더라좀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통경찰의 밤>을 읽었는데 비슷한 주제라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무면허 교통사고를 저지른 소년을 감별소로 이송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소년의 이름은 다나오카 유마상습범이고 이번에는 차로 치인 사람이 죽었다이사카 고타로는 간단하게 다나오카가 왜 사고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다루지 않는다그는 이미 이 업계의 이름난 고수가 아닌가.

 

작가는 자신이 준비해 놓은 십년 전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십년 전초등학교 시절 다나오카군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친구 에이타로를 잃었다그 때의 트라우마가 작동한 걸까. <서브마린>의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법원 조사관이 등장할 차례다하나는 화자 격의 무토 씨다른 한 명은 민폐왕 진나이 씨다전자가 아주 정상적인 그런 스타일의 조사관이라면진나이 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날티나는 조사관이다게다가 아주 뻔뻔하기까지 하다반면진중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싸나이기도 하다.

 

이사카 월드의 주인장은 단선적인 이야기만을 독자에게 서비스하지 않는다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야마다 슌이라는 이름의 고등학생이다요 발칙한 녀석은 인터넷의 신비하고 영롱한 세계에 빠져서 협박을 하다 현재 시험 관찰 중이다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오야마다의 캐릭터를 통해 이제 이사카 월드가 전개할 도대체 우리가 원하는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핵심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오야마다의 예리한 분석으로 진나이와 무토 콤비는 초등학교에서 벌어질 뻔한 끔찍한 사건을 예방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한다그렇다고 방심하지 말지니작가 선생은 과연 독자의 머리 위에 서 있다중반에 조금 늘어지는 맛이 없지 않았지만후반에 준비한 비장의 깜짝쇼는 과연 이사카 고타로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판단하고 감당할 수 있을까아무리 소년범이라고 하지만사람을 죽인 이가 과거를 감추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물론 쉽지 않은 과제다그래서 고수가 준비한 반성하는 캐릭터 와카바야시가 빛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후반으로 갈수록 매끄러워지는 진행 그리고 아련함을 남기는 결말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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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크 에프 그래픽 컬렉션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에밀리 캐럴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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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학교 다니면서 많이도 맞았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히지가 않는구나. 그런데 딱히 무슨 이유로 맞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수업시간이 떠든다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문제를 제대로 못 풀었다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맞은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매를 맞아서 해결될 문제였나. 그리고 학교에서의 체벌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두 없어져 버렸다. 로리 할스 앤더슨과 에밀리 캐럴의 멋진 그래픽 노블 <스피크>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은 멜린다 소비노다. 9학년 메리웨더 고등학교 신입생인 모양이다. 미국의 학제를 모르니 9학년이 정확하게 몇 살인지 모르겠다. 멜린다는 학교에서 왕따소녀로 통한다. 모두가 그녀의 존재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발을 걸고, 휴지를 던지고 못살게 괴롭히는데 모두가 한 마음이다. 이유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제시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이유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 그래픽 노블이 목표하는 지점으로 보인다.

 

멜린다는 친구도 없이 지루한 학교생활을 버텨야 한다. 점심시간도 즐겁지가 않다. 누구도 그녀와 함께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슬 드러나는 진실의 가닥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카일네 집에서 있었던 파티에서, 멜린다가 경찰을 부르면서 모든 게 틀어진 모양이다. 멜린다의 학교생활은 엉망진창으로 흘러간다. 미술 선생님이 주신 나무 그리기 과제 정도만 받아들일 뿐이다. 당연히 성적도 수직으로 추락한 모양이다. 또래 친구 사이에서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녀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 참전용사로 추정되는 역사 교사 넥은 최악이다. 수업시간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데이빗 페트라키스라는 친구가 강하게 항의를 시작한다. 대다수는 불의를 못본 척한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 소설의 핵심을 풀 수 있는 단서가 있는 게 아닐까. 학교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마야 안젤루의 책을 금서로 지정한다. 그녀는 이제 멜린다의 우상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놈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멜린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의 고통스러운 회상을 통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왜 멜린다는 자신이 잘못한 일도 아닌데 그 일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흉포한 포식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그런 멜린다가 절실하게 느끼는 고통의 본질에 접근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되돌아온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격렬한 저항을 시도하는 순간 멜린다는 비로소 고통으로 해방되게 된다.

 

멜린다에게 조력자들이 많이 필요했지만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교사들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실을 스스로 가둘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슬아슬한 위기를 벗어나 엔딩으로 치닫는 구성은 <스피크>의 백미였다. 저자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의기투합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통을 딛고 도약하는 멜린다의 승리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픽 노블이 갖는 놀라운 흡입력에 371쪽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다시 한 번 정독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에 등장하는 마야 안젤루, 줄리아 알바레스, 나다니엘 호손 같은 작가의 작품이 갖는 함의에 대해서도 말해보고 싶지만, 안젤루 여사의 자전적 글 외에는 읽어본 게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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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2-18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멋진 리뷰에 두근두근@_@;

레삭매냐 2019-12-18 13:43   좋아요 1 | URL
바보만들기에만 치중하는 교육현실에
대한 슬픈 조망도 들어 있는 수작이
라고 생각합니다.

강추합니다.

psyche 2019-12-20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래픽 노블로 나왔군요.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미국은 동네마다 학제가 달라 그런지 그냥 1학년에서 12학년까지로 쭉 쓰더라고요. 같은 6학년도 어디서는 초등학교이고 어디서는 중학교이고 그렇거든요. 그래도 보통 고등학교는 4년이라 9-12까지가 고등학생이고 나이로 보면 9학년은 한국의 중3이라 보면 됩니다.

레삭매냐 2019-12-20 10:53   좋아요 1 | URL
역시 그만큼 지방분권의 나라라는
말이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의 학제는 복잡한 것 같아요.
우리와는 달라서 그럴까요?

이제 곧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을 읽을 계획인데, 교육 문제에 대
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psyche 2019-12-20 23:01   좋아요 1 | URL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은 처음 들어보는데 책 소개보니 흥미롭네요. 레삭매냐님은 정말 다양한 책을 읽으시는 거 같아요. 대단하세요.
 
어린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정명수 옮김 / 모모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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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체육선생님의 로맨스를 들으면서였다. 상당히 로맨틱했던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책을 당시에 읽었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 나중에 읽었겠지.

 

그 유명한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그림으로 시작되는 생텍쥐페리의 소설은 아무래도 어른이들을 위한 우화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드니 나에게 정말 소중한 건 바로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어린 왕자>를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고, 그 어떤 예외도 없다. 그게 정답이다.

 

젊어서는 사실 시간을 마구 낭비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지만. 그 시절에는 사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 시간은 넘쳐 났지만, 무언가 하고 싶은 소망이나 꿈을 이룰 수 있는 돈은 아예 없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그 두 가지가 충족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을 그리고 시간을 투자할 관계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 슬프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 소설에서 어린 왕자는 장미정원에서 만난 여우와 아마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지.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일부러 외면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남은 장미꽃에게 길들여졌고, 사막에서 지난 1년 동안 헤매고 있던 어린 왕자와 만난 화자인 나도 그에게 길들여져 버렸다.

 

소설에서 말하는 길들임이란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관계의 형성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은 그놈의 시간의 투자 없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리라. 이제 이러저러한 이유로 새로운 관계나 혹은 예전에 소중했다고 믿어온 관계들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나로서는 오롯하게 독서의 즐거움이 삶의 유일한 낙이 아닐까 싶다. 오래 지기들을 만나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한다. 아니 그 시절에도 또 전의 과거들을 논하며 우리는 즐거워했던가.

 

그리고 보니 소설 속의 화자도 6년 전, 어린 왕자와의 일을 회상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소중한 장미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면 그들처럼 모름지기 시간을 넉넉하게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투자한 시간이 달려갈 시간의 여백이 이제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저만 아는 장미와 싸운 어린 왕자는 별들을 주유하는 여행길에 나선다. 그가 만나는 이들은 모두 어른이들이다. 어린 왕자의 눈에 어른이들은 모두 무지무지하게 이상하다. 어른이들의 일상이 어린 왕자로 대표되는 아이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나도 가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개념들을 꼬맹이에게 설명하려면 애를 먹을 때가 있다. 세상 헛살았군 헛살았어. 내가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걸 설명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니라며 자위한다.

 


술꾼과의 대화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알코올 중독의 수준까지 가진 않았지만, 술꾼의 상태는 아마 그런 게 아닐까. 모든 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술꾼의 진술. 그런데 뭘 잊기 위해서? 내가 부끄럽다는 걸. 그리고 다시 왜 부끄러운가, 내가 술을 마신다는 게. 이거야말로 완벽한 뫼비우스의 띠로다. 난 술에 취하기 위해 술을 마셨었는데. 그리고 교조주의적인 지리학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지구별 여행에 나서게 되는 어린 왕자. 이놈의 포스트모던 시절에는 내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게 문제가 아닌지 어쩐지 싶다. 아니 어쩌면 모든 문제의 근원이 그것일 지도.

 

연락이 뜸한 아는 동생이 책을 달라는 느닷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보고 싶어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친구가 아닌데, 과거에 적립한 시간들 때문에 그런 뻔뻔함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아마 다른 사람이 그랬자면 벌컥 화부터 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서로 길들여진 기분 좋은 뻔뻔함에 나는 동생에게 무슨 책을 주어야 하나 책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이런 우리의 관계들을 무언가 보이는 것들로 정량화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나에게 그런 관계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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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12-12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화로 알고 있던 책들 중 종종 어른이 되어 읽어보면 아이들 보다는 어른이 봐야 제대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요. 2019년은 2018년보다 빨리, 2020년은 2019년보다 빨리, 그렇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9-12-12 07:15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 말씀이 왜 이리
와 닿는지요. 그 끝에 가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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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운전을 하던 시절, 접촉사고를 냈었다.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멀쩡하게 서 있는 차를 부주의로 들이 받았으니. 다행히 인사사고는 없었고, 100% 나의 과실로 처리했다. 그 다음에는 사고 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 사고가 날 뻔 했으나 정말 종잇장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빗겨간 적도 있다. 모든 건 순간의 판단이 빚어낸 실수에서 비롯된다.

 

1991년에 발표된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통경찰의 밤>을 만났다. 모두 6건의 교통사고와 연루된 사건들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내가 여섯 편의 단편에서 뽑아낸 핵심 주제는 사소한 실수에서 발화된 교통사고 그리고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적 응징에 나선다는 점이다.

 

<천사의 귀>에는 교통사고로 오빠를 잃은 앞을 볼 수 없는 소녀가 맹인 특유의 기억력과 청각을 이용해서 사건 해결에 나선다는 설정이다. 놀랍다. 초 단위의 기억력을 자랑하는 소녀 앞에 교통경찰들은 무너진다. 여기에 단점은 우리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작가는 파고든다. 가해자도 그리고 피해자도. 소녀 나호의 도움으로 사건이 해결되는가 싶지만, 후반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이 대기하고 있다.

 

나의 경우처럼 정지 상태의 차를 들이 받아 100%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가해자의 경우,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을 덜기 위해 발뺌을 하기 마련이다. <중앙분리대>에서도 그렇게 법망을 빠져 나가려는 가해자에게 사적 응징을 가하는 설정이 등장한다. 실제 현실세계에서도 수년 전에 일가족이 노상주차 때문에 큰 사고로 이어진 경우가 있지 않은가. 길 위에서 벌어지는 대응 불가한 상황들은 정말 답이 없어 보인다. 법과 원칙을 잘 아는 이들일수록, 법망의 빈틈을 이용해서 빠져 나가는 수가 많다는 걸 우리는 현실에서 잘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선택적 정의는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험한 초보운전><건너가세요>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책에서 줄기차게 제기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사적 응징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실 가해자의 양심에 호소하지 않는 이상, 아마도 소설 속의 그들처럼 반성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상실을 교묘하게 이용한 피해자의 복수도, 유지를 자신의 별장으로 유인해서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서 너도 한 번 당해봐라는 식의 보복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통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리지 말아 줘>는 교통사고와 관계된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하루미와의 불륜을 아내에게 걸린 사이토는 아내를 죽이기 위해 내연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마신 커피 캔을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아무 생각 없이 내던진다. 문제는 그 캔에 맞아 뒤따라 달리던 차에 탔던 여성이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됐다. 이것도 하나의 교통사고일까. 인사사고라면 몰라도 교통경찰들의 반응은 어디서나 뜨뜨미지근할 따름이다. 사이토가 마련한 범죄계획은 엉뚱한 피해자에게 적용되고, 피해자 커플은 범인 추적을 포기하지만 역시 우연의 작용으로 사이토의 범죄가 발각되고 처벌을 받게 된다. 반전과 결국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단죄에까지 거의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역시 타인에게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경고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작이다.

 

마지막 <거울 속에서>. 야무진 예비신부 야스코와 하와이 신혼여행을 앞두고 있는 오다 형사는 교통사고로 스쿠터 운전을 하던 19세 청년이 죽는 인사사고를 맡게 된다. 평범해 보이는 사건에서 무언가 의심쩍은 상황을 접한 오다는 적당하게 마무리된 사건을 파헤쳐 결국 진실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단서는 우측통행이라는 한 단어였다. 추리에 살을 붙이고, 가설에 대입해서 마침내 완벽 범죄로 위장될 뻔한 사건을 명쾌하게 밝혀내는 장면에서는 속이 다 시원했다. 마지막에 하와이에 가서 렌터카는 그만 두자는 제의로 마무리하는 장면이 얼마나 멋지던지.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는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선택적 정의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공평무사한 정의를 원한다. 과연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그러할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통경찰의 밤>의 피해자들처럼 사적 응징에 나서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명인에게는 시스템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다만 그것은 운영하는 이들의 생각이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일 뿐. 그래서 집행자들이 가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정의의 집행자 행세를 그만 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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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2-06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십년전에 당했던 사고가 다시 떠올라 보글보글 끓었네요^^; 외제차 모는 싸모님이었는데 본인 잘못은 인정 않고 다짜고짜 제 차의 남루함을 지적-_-

레삭매냐 2019-12-06 19:13   좋아요 0 | URL
일단 차사고 시 목소리를 우렁차게
울려 퍼지게 하라는 속설을 맹신하
신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겠죠 아무래도. 엔딩은 싸모님이
너무 하셨네요...

단발머리 2019-12-07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드디어!
레삭매냐님 방에서 제가 아는 작가를 만났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전 히가시노 게이고는 안 읽어봤는데 남자2인이 몰아서 읽었던 터라 왠지 가깝게 느껴지네요.
소설 속에서 사적 응징은 항상 독자를 통쾌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현실은 그럴수 없고 그래선 안 되니까 그런것 같기도 하구요.

레삭매냐 2019-12-07 22:38   좋아요 0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사적 응징
이나마 소설이 다뤄주는 맛에 추리
소설을 읽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
을 해봤습니다.

transient-guest 2019-12-12 0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차종으로 기선제압하는 이상한 짓은 한국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건 좀 이상한데 사실 자동차사고 뿐 아니라 사회 곳곳의 사건들 속에서 보면 자신의 직업이나 가족 중 누군가의 직위/직업을 내세우기도 하고 사는 곳을 내세우기도 하고, 좀 이상해요.

레삭매냐 2019-12-12 07:20   좋아요 1 | URL
지난 두 번의 보수정권 동안 사람
들의 의식구조가 그전과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아무런 의식 없는 천박한 자본주의
가 만개하여 모두가 물질만능주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아닌가 싶습
니다.
 


 

추위를 뚫고 아침에 출근했다.

왜 이렇게 추운 건가 그래. 사무실은 히터가 빵빵하게 돌아가서 여긴 다른나란가 싶을 정도다. 발밑에 놓인 히터까지 가동하니 온 몸에 뜨뜻한 기운이 샘솟는 그런 기분이다.

 

설레발리스트 경비대장님이 업된 목소리로 나에게 무언가 도착했다고 관리실에서 찾아 가라신다. 뭐지? 나한테 올 책들은 이미 어제 다 도착했는데...

아하, 북디파지터리에서 주문한 원서가 도착한 모양이다.

한 웅큼의 잡다한 서류들과 책택배를 끌어안고 계단을 오른다.

동료가 막판 연차를 쓰는 바람에 업무가 더블업이 되어 버렸다. 아 지겨워라...

부디 빨리 돌아오시길.

 

책은 케빈 배리의 <탠지어행 야간 보트>였다. 반가운지고.

이번 부커상 수상작으로 내가 밀던 책이었는데 아쉽게도 롱리스트에서 전진을 멈추었다.

이번엔 두 작가가 공동수상을 했다는데. 아무래도 노벨문학상보다 레베루가 떨어지다 보니 출간은 하세월이 되겠지.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책들은 밤새워 번역과 출간 작업에 나선 모양이던데...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출판계의 마케팅 스트래티지는 별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탠지어행 야간 보트>에도 부커상 롱리스트라는 딱지가 떡 하니 붙어있다. 우리가 책띠지를 두른다면 외국에서는 요런 스타일로 가는가 보다.

 

난 하드커버 매니아다. 무조건 하드커버를 애정한다. 딱딱한 재질의 책이 아주 마음에 든다.

외국책에는 후기니 설명이니 하는 게 전혀 없다. 214쪽으로 딱 떨어진다. 다른 요소들은 모두 제외하고 책의 본질로만 승부하겠다는 걸까.

소설은 모두 1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요 정도 분량이라면 소장각으로 모시기 보다는 도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글 소설이라면 한 나절이면 끝장날 텐데 아무래도 외국어다 보니 오래 걸리겠지.

, 사은품은 북디파지터리에서 주는 종이 북마크 하나 덜렁. 수년전에 샀지만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코팅기를 돌려서 코팅이나 해볼까. 아서라, 할 줄도 모르면서 망치지나 말자.

 

연인은 떠나 버렸고,

딸래미는 실종되었다.

그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탠지어로 향하는 스페인의 알헤시라스에서 아프리카 탕헤르로 가는

야간 보트를 기다리는

두 명의 아일랜드 갱스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덤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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