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Coool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오래 전, 독서 모임에서 야마다 에이미(이하 영미 씨로 표기)<소울뮤직 러버스 온리>를 읽었다.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지만, 여튼 무척이나 도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주말, 종로로 달궁 모임을 출격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중고서점에 들러서 올랜도 파이지스 교수의 두툼한 역사책 하나 그리고 우리 영미 씨의 소설집 <120% COOOL>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스타의 <쏘 쿨>이란 노래가 생각나는 건지.

 

모두 9편의 소설이 담긴 이 책은 1994년에 발표되었다. 대략 영미 씨가 35살 정도에 쓴 책이 아닌가 싶다. 지난 이틀 동안, 그야말로 간만에 읽어 보는 독특한 스타일의 연애소설에 빠져 버렸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발칙하고 도발적인 콘텐츠의 가독성은 탁월했다고.

 

무려 30년이나 시간이 흘러 이제 그녀가 구사하던 도발적인 섹슈얼리티를 이제는 SNS나 너튜브를 통해 많이 접하게 되어 조금은 무덤덤했다고나 할까. 다만, 영상 콘텐츠가 아닌 문학 그러니까 글로 접하는 서사는 또다른 느낌이 들었다. 영상 콘텐츠가 자극적인 비주얼에 집착한다면, 역시 문자로 만들어진 책의 그것은 보다 심오한 차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나 할까.

 

사실 허겁지겁 콘텐츠를 소화하다 보니, 정확하게 어떤 에피소드에서 어떤 서사가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좀 헷갈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태생적 게으름으로 다시 찾아 보고 그런 것도 귀찮다. 게다가 또 바로 읽기 시작한 영미 씨의 다른 작품과도 헷갈린다고나 할까. 어쨌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감상을 간단하게나마 써보고자 한다.

 

각 단편의 딸린 영어 제목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게 된다.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는 정의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불가사의한 감정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시도한다. 가끔 그런 사랑은 어쩌면 광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지. 삼십대 중반의 영미 씨가 구사하는 사랑에 대한 언어는 상당 부분 몸의 대화에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뉴욕에서 만난 부잣집 도련님 가미가제 씨와 만나는 순간, 이 둘이 언제 관계를 하게 되나 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힌다. 왜냐면, 영미 씨의 작품의 서사는 대개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 영미 씨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작가는 아니었지. 뉴욕이라는 밀레니엄 캐피탈에 이방인처럼 부유하는 주인공은 펜과 종이로 글을 끄적이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나 어쨌나. 루크라는 이름의 흑인도 만나고 또 벨기에 출신 색소폰을 들고 다니는 남자를 만난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진짜 영미 씨가 체험해 본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 이런 야릇한 상상력이야말로 30년 전에 영미 씨가 구사하던 발칙한 서사의 원형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한참 만나던 남자 친구(?)의 침대 맡에서 머리핀이나 립스틱을 발견하고 결국 관계를 정리하는 내용의 단편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렇지, 그건 하나의 메시지였지. 나라는 존재를 상대방 혹은 연적에게 알리는. 아마 이런 설정은 여성 작가가 아니라면 도저히 잡아내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아마 편지나 쪽지 같은 방식이었다면 좀 진부하게 느껴졌겠지. 하지만, 그런데 어쩌면 자신의 분신 같은 물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건 하나의 시그널이라는 거지. 내가 여기 버티고 있으니 너는 물러나라는. 그런 점에서 바로 ""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화자의 모습 역시 쿨했다.

 

입술이 나비로 변태하기 전의 애벌레라는 설정은 또 어떤가. 영미 씨, 단편의 상당 부분은 "우연"이라는 요소에 기대고 있다. 우리 삶에 진정한 우연이 존재했던가? 우연히 만난 사람과 갑자기 결혼에까지 도달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그런 과정들이 영미 씨 소설에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된다. 그리고 결혼의 주체인 둘은 서로 사랑하지도 않는단다. 그런 우리의 일상과 평범함을 거부하는 게 바로 영미 씨 소설들의 진정한 매력일 지도 모르겠다. 매일 벌어지는 일상에 종속된 우리야말로 그런 일탈이 주는 즐거움과 쾌락에 소설로나마 언제라도 경도될 수 있다는 준비태세, 아마 이런 재미에 계속해서 영미 씨의 소설에 빠져 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화 작가로 등단하기 위해 준비하는 동거남을 위해 그가 쓴 원고를 들고 여성지 편집자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자신의 수입으로 도저히 주문하기 어려운 값비싼 음식을 직장 상사를 이용하는 주인공. 부유한 중년의 늙다리 아저씨는 노골적으로 밥값을 하라고 채근한다. 아이고 추잡스러워라. 그 다음 주자인 편집자에게 자신처럼 예쁜 여자를 만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낯 뜨거운 자기 피알을 내던진다. 그리고 예의 편집자에게 한 수 배우고 돌아온 주인공은 남친에게서 드디어 자신의 만화가 연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자신이 품고 있는 욕망의 정체를 타인의 통해 알게 되는 것 또한 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미 씨는 우리 독자에게 계속해서 "니가 사랑에 대해 뭘 아는데?"라고 서사의 변주를 통해 반복해서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내가 사랑에 대해 아는 게 뭔데. 영미 씨는 구사하는 평범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우리 영미 씨가 창조해낸 소설의 주인공들은 일상의 금기나 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볍게 넘어 버린다. 두 번 생각하지 말고, 한 번 행동하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자신이 감정이 지시하는 대로, 그 다음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고. 어제 도서관에서 영미 씨의 책을 세 권 빌려왔다. 당분간 영미 씨의 책들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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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26 1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온지가 꽤 되네요. 심지어 절판까지...?!
일본계 미국인인가요? 한국식 이름 좋네요. 영미.
암튼 이리 쓰시니 관심이 가네요.

달궁 모임 가시는군요.
카페엔 이렇다할 소식이 없어 안 모이는가 보다 했는데...

레삭매냐 2024-02-27 07:48   좋아요 2 | URL
야마다 에이미 작가의 판권이
다 소멸되었는지 모두 절판의
운명이...

한자로 詠美로 쓰더라구요.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예명인진
모르겠으나 작가답다는 생각이.

넵, 꾸역꾸역 모이고 있답니다 ^^
카페는 폐허가 되었다는.

그레이스 2024-02-28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미가제 ㅎㅎ
신의 바람?
이름이 재미있네요^^

레삭매냐 2024-02-29 15:08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아마 작가의 개인
적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재
구성한 것 같은데... 실명 대신
神風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자목련 2024-02-28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재밌게 읽고 놀라기도 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레삭매냐 2024-02-29 15:11   좋아요 0 | URL
무려 3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여전히 재밌고 놀랍기도 하고
그러네요.

서니데이 2024-03-07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마다 에이미 오랜만이네요. 요즘엔 몇년 전보다는 일본소설을 조금 덜 읽는 편이라서 그런지, 이전에 보던 이름들이 반가워요.
레삭매냐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4-03-09 09:37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영미 씨
책이었는데, 재밌었답니다. 매운맛은
여전했다는.

내친 김에 다른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
서 읽다 말았네요. 마저 읽어야 하는데
말이죠.

모쪼록 즐거운 주말 되시길.

moonnight 2024-03-09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야마다 에이미의 전작주의자가 되어 출판된 건 다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던 작가네요@_@;; 요즘은 책 안 내시는가 궁금하군요. 레삭매냐님 덕분에 떠올립니다^^

레삭매냐 2024-04-01 23:09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솔뮤직 러버스 온리>
읽고 나서 가히 충격을...

그런데 계속해서 읽다 보니 왠지 비슷
하다는 느낌에-

말씀해 주신 대로 요즘에는 신간을 내
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타니오스의 바위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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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린 아민 말루프의 대표작 <타니오스의 바위>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 걸출한 소설에서 저자는 자신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아부 키크 말루프라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어쩌면 소설 <타니오스의 바위>는 그를 위한 추모의 글일 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레바논의 산악 마을 크파리야브다라는 마을에 타니오스의 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었다. 이제는 거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타니오스 키크라는 인물이 어떻게 태어나서 무슨 일을 했는가가 바로 이 소설의 고갱이다. 크파리야브다 출신으로 보이는 화자는 세 가지 정도의 전거를 통해 근 200년 전의 일들을 추적한다. 하나는 마을의 게브라이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전승, 두 번째는 엘리아스라는 수도사가 남긴 <산악지대 연대기> 그리고 방랑장수 나데르의 <노새 몰이꾼의 잠언> 정도가 되겠다. 영국 출신 목사이자 교사 스톨튼이 남긴 서한들과 기록도 참고한 모양이다.

 

크파리야브다 마을의 지도자는 족장 프란시스다. 족장이라는 명칭부터 이미 전근대적이지 않은가. 3세기 가량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아온 크파리야브다 마론파 정교도 영주인 프란시스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영주의 기본 임무인 세금 징수와 병력 동원에 있어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게 처신한 결과가 아닐까. 다만 한 가지 큰 흠은 그의 바람기이다.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마을 여자들을 희롱하는 낙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는 인근의 유력 집안인 그랑 조르드 가문의 아내를 들이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바람기가 죽은 건 아니다. 그렇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이 때 등장하는 여인이 하나 있었으니 절세미녀 라미아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의 주인공 타니오스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미 그 때 유부녀였는데 다른 사람이 아닌 프란시스 족장의 집사이자 심복 게리오스의 아내였다. 도무지 절제를 모르는 남자였던 족장은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틈을 타서 라미아와 사통했고, 그 결과 사생아인 타니오스가 태어났다. 아기의 이름을 족장이 아바스라고 지어주는 바람에 난 사단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소년 타니오스가 무럭무럭 자라나던 시절, 마을의 어느 미치광이 소년이 그를 키크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바람에 타니오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문제가 된 것이다. 게다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영주의 아들 라드에게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도 종복 노릇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뿔이 나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족장 프란시스의 무분별한 방탕함이 서구 열강의 레반트 침략과 동일선상에 서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영국과 프랑스로 대변되는 서구 열강들은 근동 지방에 침투해서 유럽대륙에서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의 연장전을 치르고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라들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감내라 대추 내라고 주장한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오스만 터키의 이집트 총독 메흐메트 알리가 종주국에 반기를 들고 도전장을 내서 이집트-오스만 전쟁이 두 번이나 레반트 지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영국 출신의 제레미 스톨튼 목사는 침략의 선봉에 서서 정교도 사회인 레바논의 산악지대에 학교를 열었다. 같은 신을 모시면서도 서로를 이교도 취급하는 장면이 참 낯설었다. 중동을 맡은 영국의 폰손비 경은 밀사 리처드 우드를 파견해서 족장의 아들 라드와 타니오스를 영국 학교에 의탁하게 하는 치밀한 전략을 개시한다. 제국주의자들은 확실히 자신들이 침략할 지방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그에 따른 세부지침의 실행까지도 거의 완벽했다. 그들이 파견한 밀사 리처드 우드는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로 족장과 나란히 미사에 참여했다. 리처드 우드는 훗날 불행의 씨앗이 되는 장총을 족장의 아들 라드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 그전에 바람난 사위 족장 프란시스를 징벌하기 그랑 조르드의 장인은 대부대를 이끌고 크파리야브다 마을을 방문해서 그야말로 메뚜기 떼처럼 마을의 양식과 가축들을 거덜냈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족장 아내의 친정에 대한 반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한편, 대주교의 사주를 받은 소년 라드는 스톨튼 목사의 아내에게 두 번이나 모욕을 주면서 결국 학교에서 퇴교 당하게 된다. 불똥이 튀어 타니오스도 같이 학교에서 잘리게 되었는데, 단식투쟁으로 영국 학교에 계속해서 다니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타니오스. 그의 반골 기질이 이때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레반트 산악지역은 중세 십자군 전쟁 때도 그랬지만, 1830년대에도 그 전략적 중요성은 대단했다. 이집트의 파샤 메흐메트 알리가 오스만 터키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을 수중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 지역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대주교가 이집트 편에 서면서, 족장 프란시스의 호시절은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족장은 교묘하게 당국의 세금 징수와 병력 징발을 피해갔지만, 실제적인 병력을 동원한 압박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집사였다가 횡령으로 재산을 챙긴 루코즈가 족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세월이 변했다는 반증이었다.

 

루코즈는 교활하게 타니오스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딸인 아스마의 사위로 삼아,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감언이설로 소년을 미혹한다. 하지만 아스마에게 눈독을 들인 족장의 아들 라드가 청혼을 해오자 냉큼 그의 청혼을 허락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타니오스는 그야말로 눈이 뒤집혀서 사생결단에 나선다. 그동안 아버지로서 거의 존재가 희미했던 게리오스가 나서서 사태를 중재해 보려고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대주교는 루코즈의 딸 아스마를 라드도 타니오스도 아닌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키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게리오스는 족장에게 받은 영국 밀사가 준 장총을 가지고 대주교 저격에 나선다. 일격필살의 탄환 한 발로 대주교의 양미간을 꿰뚫은 게리오스는 아들 타니오스를 데리고 망명길에 나선다.

 

스포일러고 뭐고 모르겠다. 독자제현의 호기심 해소를 위해 나머지도 다 까발려야겠다. 망명지 사이프러스의 파마구스타에서 도주할 때 챙겨온 넉넉한 자금으로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내는 게리오스 부자. 타니오스는 거리에서 만난 여인 타마르(과일이라는 의미라고 한다)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녀석, 남자가 된 건가? 하지만 아버지 게리오스는 수장(에미르)이 파견한 비밀정보원의 유혹에 빠져 고향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천우신조로 아버지와 같이 배에 오르지 못한 타니오스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교수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그렇게 사라져갔다.

 

예전에 그리스 기행문 <마니>에서 패트릭 리 퍼머 작가가 밝혔다시피,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피로 피를 씻는 복수극은 그 동네의 일상이었다. 이집트 점령군 아델 에펜디의 앞장이가 된 루코즈는 그의 명령으로 병력을 동원해서 이웃 사흘라인의 사이드 베이크를 공격해서 그를 죽였다. 사흘라인 사람들이 복수의 칼날을 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이프러스에서 여전히 망명 생활을 하던 타니오스에게도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다. 영국은 함대를 동원해서 레바논 산악지대를 장악하고 있던 수장들을 정벌하러 나섰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국식 교육을 받은 타니오스는 유용한 길잡이였다. 아마 이런 때를 대비해서 그들은 현지의 유력한 자제들에게 영국식 교육을 시켜 제국주의 첨병으로 삼았던 게 아닐까. 수장에게 치욕적인 명령을 전달하고, 자신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 타니오스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대주교를 저격한 아버지와 함께 도망칠 적에는 그렇게 꼴사나웠는데, 증세와 병력 징발 그리고 무기 압수 정책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신망을 잃은 이집트와 협력자들을 몰아낸 해방군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타니오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솔로몬의 그것과도 같은 현자의 재판이었다. 족장을 내쫓은 배신자 루코즈를 어떤 식으로 처벌 하냐가 문제였다. 사이드 베이크의 아들인 카흐탄은 당장 루코즈를 처형하라고 성화고, 그래도 그놈의 정 때문에 한 때나마 사랑했던 아스마를 생각해서라도 추방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들이 타니오스의 내부에서 격렬하게 충돌한다. 잠시 억류해둔 감옥에서 결국 비극이 발생하면서 영웅 타니오스는 종적을 감춘다.

 

아민 말루프는 소설 <타니오스의 바위>를 통해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족장의 사생아라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소년 타니오스가 치열한 삶의 투쟁과 고민 끝에 한 명의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도 녹록하지 않다. 하긴 우리네 삶이 언제 그렇게 만만했던 적이 있었던가. 저자의 고향인 레바논 산악지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전제적 통치 아래 살던 이들의 비합리적이지만, 현재 자신들의 삶만 영위해 준다면 작은 불편 따위는 감내할 수 있다는 지역공동체가 품은 고루한 인식에 대한 분석도 예리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킬 듯한 제국주의 서세동점의 시대에 레반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제국의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던 인도의 안전확보를 위해 19세기 내내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던 영국은 레반트 거점 확보가 중요했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레반트 지역에서 정치권력에 우선해서, 민중들의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종교의 중요성을 일찍이 파악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협력할 이들의 양성을 위해 서구식 교육과 사고를 이식할 현지 인재 발굴에 열심이었다. 당근과 채찍으로 현지 기득권층을 포섭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탁월했다. 산악지대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고, 이집트와 오스만 터키가 전쟁을 벌이면 궁극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집트는 영국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영국은 프랑스 기술로 건설된 수에즈 운하로 지중해에서 인도로 가는 안전한 통행권을 확보하면서 제국의 영광을 한 세기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이런 당대 레반트의 복잡한 상황을 중년의 노련한 아민 말루프는 신화와 전승을 이용한 연대기로 훌륭하게 풀어냈다. 다시 한 번 이 작가의 작품에 반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타니오스의 바위>는 지금까지 만난 아민 말루프의 작품 중의 최고다. 세상에 허명은 없다고 공쿠르 수상작의 위용일까. 이런 우수한 작품이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없었다. <타니오스의 바위> 재출간에 이어, 더 기쁜 소식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레오 아프리카누스>가 조만간 나올 거라는 소식이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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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2-15 0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신간으로 떠서 호기심을 가지고 봤는데 재출간이군요. 재출간되자마자 바로 읽으셨네요. 작가 이름이 낯익었는데 매냐님한테 들었나보네요. 강추하시니 저도 찜합니다.

레삭매냐 2024-02-15 10:18   좋아요 1 | URL
아주우~ 오래 전에 나온 책인데
출판사에서 작가의 판권을 새로
계약한 모양입니다.

작년 가을에 <사마르칸트>에
이어 계속해서 작가의 책들이
나오고 있네요.

말미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레오 아프리카누스>가 가장
기대주입니다.
 
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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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어딘가에 있는 쿠르초 말라파르테의 <망가진 세계>를 결국 찾지 못하고 도서관에 빌리러 갔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키크니 작가의 에세이집 <일상, 다 반사>와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이 반납 카트에 놓여 있는 걸 봤다. 명절에 에드워드 P. 존스의 <알려진 세계>를 사서 읽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희망도서로 신청했더라. 뭐 그런 거지.

 

나에게 이제 인스타는 정보를 취득하는 하나의 창구가 되었다. 좀 더 스피디하게. 그리고 좀 더 깊은 정보가 알고 싶다면 너튜브를 뒤진다. 사실 키크니 작가도 인스타 피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양반, 갬성 넘치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인가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신 바 있다. 초반의 서너컷은 유머로 빌드업을 한 다음, 마지막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인스타 팔로우들의 갬성을 한껏 자극하는.

 

그냥 그런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작가의 내면에 좀 더 도달하게 되었달까. 그러니까 5.3KG돼한의 건아의 태어나 농구를 좋아하고, 만창과에 진학한 살벌한 인상의 청년이 그림으로 세상고 맞짱을 뜨는 이야기가 <다 반사>의 주를 이룬다. 비즈니스 미팅의 긴장감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났다. 어라, 그리고 보니 연달아 읽고 있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작가생활>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 같다.

 

어쨌든 프리한 고독랜서로서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과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장면 그리고 자신이 항상 부족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항상 부족과 결핍 그리고 불안 속에서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보니 얼마 전, 인스타 피드에서 본 거창한 행복이라는 목표 대신 조금만 행복의 기준을 낮춘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어느 현자의 말이 기억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떤 행복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고. 행복조차 경쟁이 된 것 같아 보이는 SNS 월드에서 그런 소소한 행복은 피드로 올리기에 어쩌면 좀 쪽팔리는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암튼 그렇게 소소한 일상으로 빌드업을 마친 작가는 자신의 백그라운드를 조용하게 들려준다. IMF로 집이 망하고 언제나 건강하실 것 같았던 어머니가 뇌경색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시게 된 스토리는 참 그랬다. 아마 어쩌면 그 시절을 경험한 탓에 우리는 더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정년이 보장된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하루하루 일하다가 때가 되면 은퇴하는 게 꿈이었던 소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이 문을 닫고 아무런 보호장치 하나 없이 그야말로 약육강식 자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내던져지게 되었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키크니 작가 역시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서 선배 네 명과 작은 월세집에서 살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큰형님은 호주로 도망치다시피 2년간 워홀을 가셨다고. , 듣기만해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사정이지 싶다. 그래서 홀로 가정을 보살펴야 했던 무게감에 대해서도 키크니 작가는 그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다. 되짚어 보니 그가 구사하는 모두의 마음이 훈훈해지는 빌드업 서사가 어쩌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에세이의 어디선가 발견한 덤벼라 세상아라는 구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인스타 피드로 만나는 짤과 이렇게 나름 긴 호흡으로 가는 에세이집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느낌이다. 다음에 도서관에 다시 가게 되면, 그의 다른 책들도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 오늘 도서관에 가는 날인데 명절이라 휴관이다.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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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빵빠라빵 여행
야마모토 아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나도 빵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인가 아침에 빵을 먹게 됐다. 오늘도 내일 아침에 먹을 소보루 빵을 한 개 샀다. 나의 일용할 양식이지. 즉석 수프로 같이 먹으면 좋다. 며칠 전에 새로 뚫은 모찌모찌 빵집은 맛과 가격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전에도 한 번 방문하러 간다고 들렀다가 못 찾았었는데 말이지. 식빵은 쫄깃쫄깃했고, 다른 빵들도 먹고 싶은 게 많더라. 그렇다고 해서 야마모토 아리들처럼 빵을 먹겠다고 핀란드와 덴마크까지 갈 여력은 없고.

 

책을 쓰기 위한 소재 발굴이라는 점에서 야마모토 일행의 북유럽 빵 순례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빵을 매개로 해서 이런 책을 쓸 수 있단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아주 치말하게 준비를 한 것 같지도 않다. 대충 핀란드에서는 호밀빵이 대세지라는 모토를 가지고 갈 수 있는 곳들에 위치한 동네 빵집들을 타격한다. 내가 이런 방식의 즉석 여행을 좋아하잖냐. 청년 시절에는 주로 그런 식의 여행을 했지만, 지금은 체력이 달려서 아무래도 힘들지 싶다. 또 모르지, 그렇게 낯선 곳에 가서 또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오냐며 마구 달리게 될지 말이다.

 

데니시 브레드의 본고장이라는 덴마크 코펜하겐을 거쳐,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한 야마모토 일행들은 바로 빵 흡입에 들어간다. 아니 그전에 기내식부터 빵을 뜯었던가. 아무리 빵이 좋다고 하더라도, 배가 부른 상태에서 계속해서 그렇게 빵을 먹을 순 없지 않나 그래. 어쨌든 그런 나의 노파심을 뒤로 하고 이들은 백야의 나라 핀란드에서 수도 없이 빵을 뜯는다. 바로 이거지!

 

사실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힘든 그런 여러 종류의 호밀빵 베리에이션을 뒤로 하고, 이들은 관광에도 열심이다. 수도 헬싱키에서 기차로 12시간이나 걸리는 산타클로스 마을도 방문한다. 패기가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북극권에 위치한 산타클로스 마을을 야간열차를 타고 달려간다. 다시 한 번 멋지다. 대신 산타 할아버지와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 게 3천 엔이라고 해서 패스하고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고. 나의 옆지기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그건 해야 했다고. 나 역시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언제 또 그럴 기회가 있을까.

 

핀란드 제2의 도시라는 탐페레 기행도 흥미롭다. 유명한 무슨 돔을 찾느라 고생을 하기도 하고, 타워에 위치한 저명한 빵집에 가겠다고 거의 절벽을 오르는 장면도 재밌었다. 고생 끝의 낙이라고 그렇게 올라간 곳에 위치한 빵집에서 먹는 빵에 대한 추억은 나중에 생각해도 정말 황홀하지 않았을까.

 

다음 코스는 덴마크다. 불과 어제 읽은 책인데, 왜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들은 생생하게 다가오는데 덴마크는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버터를 대략 50% 정도 사용한다고 하는데, 덴마크에서는 60%를 써서 더 부드럽다고 했나. 아니 그게 핀란드였나 어쨌나. 덴마크로 가기 위해 이른 체크아웃을 해야 해서 푸짐한 빵이 제공되는 조식 뷔페를 포기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거리는 이들의 조바심도 재미에 한 스푼을 더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빵을 안주 삼아 호텔에서 먹겠다고 사온 맥주가 알고 보니 사과술이었다는 에피소드도 재밌었다. 이름도 잘 모르고 또 맛도 모르지만, 그래도 타국의 식문화를 이해하려는 그네들의 노고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어찌 이름도 모르고 무엇으로 만든 지도 모르는 빵들이 다 맛있었을까. 입맛에 맞지 않는 빵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자세가 참 인상적이었다.

 

내친 김에 무슨 일본 각지 먹부림을 다룬 만화도 잠시 봤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타카기 나오코의 <일본 식탐여행 한 그릇 더!>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먹방 이전에 이미 일본에서는 이런 만화 먹부림이 유행이었던가. 그렇게 유행은 돌고 도는가 보다. 한 시절을 풍미하던 가성비 최고라던 먹방도 이젠 트렌드가 지나지 않았나 말이다.

 


(지난 주에 예전부터 한 번 가보려고 하던 모찌모찌브레드, 가격도 착하고 빵도 맛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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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07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빵순인데 ㅋ
새로 생긴 빵집 꼭 들어가봐요
맛있다고 소문난 곳은 찾아가보구요
여러모로 몸이 고생중입니다
책 에피소드들 재밌네요 ^^

레삭매냐 2024-02-08 09:52   좋아요 1 | URL
오오 대단하십니다 ~

저도 아침마다 빵을 먹는답니다.
오늘 아침에도 빵 묵었어요.

오후에 일찍 끝나면 다시 모찌
모찌 브레드에 가볼라구요 :>
빵여행 재밌더라구요.
 
그럼에도 여기에서
실키 지음 / 현암사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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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2주 전에 빌린 책들을 내일까지 반납하라고. 거의 어지간해서는 연체하는 법이 없다. 읽지 못한 책이라면 당연히 반납을 해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연장해둔다. 2주 전에 만난 실키 작가의 <그럼에도 여기에서>라는 그래픽노블이다. 읽던 책인데, 리뷰를 쓰기 위해서라도 그전에 읽은 걸 싹 무시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기시감에 더 빨리 읽을 수가 있었다. 이제 리뷰까지 쓰고 나면 반납하는데 마음이 가벼울 것 같다.

 

어려서 인도유학을 떠난 작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림체부터가 뭐랄까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의 습작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작가의 개인 기록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완성품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좀, 그렇다. 소외와 괴리라는 단어들이 떠올랐고, 반바지와 고기가 금지된 인도 현지기숙사의 억압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일천한 나의 경험에 의하면, 나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 보지 못한 작은 도시 그리고 더 작은 마을 출신들이 혐오와 차별을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원천적인 두려움이 혐오와 차별을 생성한다고 추론해 본다. 나와 같은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프랑스 현지에서 일상화된 그런 차별을 경험한 작가는 바로 맞받아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처음에는 언어적 장벽 때문에 그 다음에는 나의 안전이 최고라는 생각에 그들과 말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사실 피곤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기에서>에 나오는 가족 관계 개선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사실 작가가 제한적으로 보여준 무언가 삐걱거리는 가족 관계의 전모를 그리기란 쉽지 않다. 그런 장애물들을 뛰어 넘어, 가족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의 소모와 갈등들을 유추해 볼 따름이다. 나는 가족에게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나의 가족이 원하는 바를 다 수행하는 유형일까? 나와 그닥 원만하지 않은 관계 유형인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의 아버지는 역시나 아버지로서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러셨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누구나 인생에서 아버지는 처음이겠지만 말이지. 전부는 다 알 수 없겠지만, 이렇게 어렴풋이나마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2020316일은 프랑스에서 그 유명한 록다운, 그러니까 봉쇄령이 실시된 날인가 보다.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서구 선진국들이 그렇게 우악스러운 록다운을 실시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 되돌아보면, 그 시절에도 우리는 전국적인 봉쇄령 없이 모두 일터에 악착까지 나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부의 통제에 따라 모두 마스크를 쓰고 생업전선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가.

 

마스크 품절과 손소독제 사재기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로 내 소중한 엉덩이를 보호하겠다는 발상이 참으로 눈물겨웠던 시절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메르스와 코로나 같은 역병의 시기도 이겨냈으니 그 무엇인들 이겨내지 못할 게 없겠다라는 자신감이 차오르기도 한다. 물론 실키 씨는 멀리 타향에서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고독 내지는 소외와 싸워야 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때문에 억울하게 중국 사람들로 몰려 다시 차별과 혐오를 당해야 했던 사실은 좀 안타까웠다. 그게 내 탓이냐? 역병의 시기에 그런 합리적 사고와 행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었는지도.

 

실키 씨의 요리 특강도 재밌다. 한국식 식재료를 구할 수 없었던 프랑스 앙굴렘(?) 같은 곳에서 직접 연어장이나 김밥 그리고 만두를 해먹는 패기에 박수를 보낸다. 오래 전에 자취하던 시절, 나의 끼니는 유통기한이 지난 신라면과 버거킹 와퍼가 책임졌었는데 말이지. 김밥을 한사코 스시로, 그리고 만두를 라비올리라고 부르는 프랑스 친구들의 언행이 결국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보고 들어 습득하게 된 익숙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유한한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국이라면 어디에서나 파는 냉동만두를 구할 수가 없어, 모든 재료를 구해서 직접 만드는 장면이 짠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밀대로 만두피를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만두소가 터지는 슬픔과 좌절을 알랑가 몰라 그래. 얇게 편 밀가루 반죽 위에 스텐 공기로 찍어 둥그렇게 만두피를 만들곤 했었지. 나중에 공장에서 만든 기성품 만두피의 등장에 사실 좀 놀랐긴 했었다.

 

어쨌든 책 반납하기 전에 책도 다 읽고 이렇게 리뷰까지 다 써서 만족한다. 실키 씨는 요리를 창작의 고통에 비유하기도 하던데, 맞는 말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재료들을 가지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즐거움이야말로 작가들에게 주어진 사명일지도.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들을 아주 열심히 소비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 거지. 하나 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잘 살자라는 문구도 좋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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