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724일에 발표된 2019년 부커상 후보작에 대해 디비 보도록 하자.


작년까지는 맨그룹이 후원을 해서 맨부커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올해부터는 후원이 끊어져서 바로 맨을 띠어 버렸다고 한다. 많은 작가들이 맨그룹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닥 문제는 없어 보인다. 예술과 돈의 관계, 그것 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가장 순수하다는 문학까지 자본에 종속되어 가는 게 아닌지 그런 걱정을 해본다. 사실 씨잘데기 없지만.

 

또 시작부터 삼천포였다.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올해 총 151편의 작품 중에 총 13편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영국으로부터 엄청 멀리 떨어진 한국에 사는 독자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도 있고, 마거릿 애트우드나 살먼 루슈디처럼 잘 알고 있는 작가도 있더라. 13편 중에 8편이 여성작가가 쓴 책이라는 점을 어느 유튜버는 강조했다(사실 이 포스팅의 상당 부분을 두 편의 유튜브를 보고 쓴 거라는 점을 미리 알린다).

 


그리고 나서 인스타로 부커 후보작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해마다 롱리스트에 오른 모든 책을 읽는 걸 책읽기 목표로 삼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좀 부러웠다. 일단 간단한 플롯을 제외한 소설의 모든 게 출간 전까지 엄격하게 비밀리에 통제되고 있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속편에 해당하는 <테스타먼츠>는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았으니 열 두편의 소설을 다른 나라 언어가 아닌 자기네 나라 말로 언제라도 읽을 수 있는 그들이 부럽더라. 나는 원서가 있어도 그 책들을 언제 다 읽는단 말인가. 북디파지토리로 호기심 생기는 책 두 어권을 나에 대한 선물로 살까도 싶지만 과감하게 패스. 당장 읽을 책들이 너무 많거든.

 

우선 13편의 선정작부터 소개한다.

 

1. 테스타먼츠 / 마거릿 애트우드 / 캐나다

2. 탠지어로 가는 야간 보트 / 케빈 배리 / 아일랜드

3. 내 여동생, 연쇄살인마 / 오인칸 브레인스웨이트 / 나이지리아

4. 덕스, 뉴베리포트 / 루시 엘프맨 / 미국

5. 소녀, 여성, 다른 나머지 / 버나딘 에버리스토 영국

6. 장벽 / 존 랜체스터 / 영국

7. 모든 걸 다 본 남자 / 데보러 레비 / 영국

8. 잃어버린 아이들의 기록 / 발레리아 루이셀리 / 멕시코

9. 소수의 오케스트라 / 치고지 오비오마 / 나이지리아

10. 래니 / 맥스 포터

11. 퀸초티 / 살먼 루슈디 / 영국

12. 이상한 세상의 1038/ 엘리프 샤팍 / 터키

13. 프랑키슈타인 / 저넷 윈터슨 / 영국

 

어떤 유튜버는 이 13권의 책들 중에서 이미 10권이나 읽었다고 한다. 놀랍군. 아니 그들은 업자인가?

 

장장 반 시간에 걸친 유튜버 방송을 모두 이야기할 순 없고, 내가 들어보고 숏리스트를 넘어 올해 부커 수상작이 될만하다 뭐 그런 책들을 이야기해 보자. 13편 중에 독립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5권이라고 한다. 재작년과 작년에 비해 영국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리는 설렉션이라고 하던가. 그리고 세계적으로 골고루 안배도 되었다는 평이다.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의 책이 두 권이나 포진한 점도 흥미롭다. 예전에 인도가 그랬다면 이제 새로운 세기의 주목할 작가군은 나이지리아라는 말일까.

 

루시 엘프맨의 <덕스, 뉴베리포트>는 자그마치 천쪽에 달하는 책이라고 한다. 과연 이런 책을 누가 과연 도전이나 해볼지 궁금하다.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의 책이 생각나는 걸. 책 좀 읽는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막상 읽은 사람은 없다지 아마.

 

클래식 범주에 들어가는 책으로 이미 부커상을 받아 먹은 살먼 루슈디와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을 꼽을 수 있겠다. 그나저나 아니 아직 출간도 되지 않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이 롱리스트에 오른 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테스타먼츠>는 출간 예정일이 910일인데 그렇다면 숏리스트 발표 이후란 말이 아닌가. 이건 좀 무리수가 아닌가 싶다. 행여라도 숏리스트에 오르게 된다면 대중을 철저하게 무시한 처사가 아닌지 싶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읽어는 보았겠지만, 다른 대다수 독자들은 그렇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시녀이야기>의 속편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15년 뒤, 세 명의 여성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살먼 루슈디의 <킨초티>는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바로 영원한 고전 미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현대판 리라이트(re-write)인 모양이다. 텔레비전 프리젠터와 사랑에 빠진 세일즈맨의 미국 횡단기 정도. 이 책도 아직 시중에 풀린 게 아닌 듯 싶다. 8월말 출간 예정. 트랜스젠더 주인공이 등장하는 저넷 윈터슨의 <프랑키슈타인>도 마찬가지. 한동안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가 유행하더니, 이젠 고전에 대해서도 서슴지 않고 리라이트 도전에 나서는 모양이다. 이미 설정된 강력한 캐릭터를 적당히 바꾸고 현대에 맞춰 개작하는 스타일이 유행인가 보다. 나로서는 좋은 건지 모르겠다.

 

13편의 소설 중에서 유일한 데뷔 소설은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오인칸 브레인스웨이트의 <여동생, 연쇄살인마>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데뷔 소설로 부커상을 먹기엔 역부족이 아닐까 싶다. 흥미롭긴 하지만 해당 유튜버의 추천작은 아니었던 것으로.

 

소개 동영상을 보고 난 뒤의 내가 고른 세 편의 유력 후보는 다음의 세 편이다.


1. 발레리아 루이셀리 잃어버린 아이들의 기록

2. 맥스 포터 / 래니

3. 케빈 배리 / 탠지어로 가는 야간 보트

 


인스타에서 이미 발레리아 루이셀리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기록>에 대한 해외 리뷰어들의 글을 많이 보아서 그런진 몰라도 익숙한 느낌이다. 그동안 스페인 어로 소설을 발표하던 루이셀리가 처음으로 영어로 발표한 작품이라고 한다. 로드 트립 형식의 소설로 아름답게 쓰인 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4년 만에 발표한 맥스 포터의 두 번째 소설 <래니>는 가족 드라마를 기본으로 해서 사회적 이슈를 다뤘다고 한다. 유튜버가 강력 추천하는 소설이라고 하니 더더욱 구미가 당긴다. 좀 더 자세하게 알아 보고 싶어서 맥스 포터의 책에 대한 NPRLA Times 리뷰도 출력해 두긴 했는데 읽어 보려니 막상 귀찮네.

 



두 명의 나이든 아일랜드 갱스터가 등장하는 케빈 배리의 <탠지어로 가는 야간 보트>에 나는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뭐 꼭 이제 아일랜드 선수가 상을 받을 때도 되지 않았나를 떠나 유머가 넘치고 흥미로운 이국의 땅인 탠지어(탕헤르)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해본다. 2011년 데뷔작 <보핸 시티>를 발표한 케빈 배리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급하게 뉴스테이츠먼에 실린 리뷰를 보니 소설의 주인공 둘은 모리스 히언과 찰리 레드먼드, 두 명의 늙어가는 갱스터들이다. 보드빌 듀오 스타일의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유머가 만만치 않다고 하는데 과연.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01810월의 어느 밤. 그리고 1994년의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목이 모로코 탕헤르로 가는 야간 보트지만 공간적 배경은 스페인의 오래된 항구도시 알헤시라스의 페리 터미널이다. 모리스의 딸 23세 딜리 히언도 등장해서 도망 중이라는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왜 그녀가 도주 중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모리스는 터미널에서 자신의 딸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예이츠와 베케트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책을 직접 만나 보지 않았으니 알 도리가 있나. 더블린의 한 극장에서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일년 전에 부커상을 받은 애나 번스의 <밀크맨>이 이제 출간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 롱리스트 작품들은 또 언제 만나 보게 될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맹점. 일단 내가 꼽은 세 권의 책 가격이 USD 50.32, 한화로 환산해 보니 60,821.78원이다. 소장용이라면 당장 사지 말고 좀 묵혀 두었다가 할인 쿠폰이라도 뜨면 살까 고민해 보자.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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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8-21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별 다섯을 주고 싶은 포스팅입니다. 하하하하 ^^;; 다들 빨리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네요.

레삭매냐 2019-08-21 11:07   좋아요 0 | URL
주신 별은 다섯개는 낼름~ 받아 먹겠습니다.

날림으로 올린 포스팅인지라 결국 다시 고치
고 우짜고 했습니다. 너무 글만 있어서 책 그
림도 퍼다 나르고... 분주한 아침이네요.

번역은 하세월인지라 내후년 쯤 기대해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8-21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페이퍼에 별 다섯 드리겠습니다..

레삭매냐 2019-08-21 16: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베리베리 찹찹.

coolcat329 2019-08-21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한 마음으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읽어본 작가가 하나도 없지만 ㅎ 마음은 은근 들뜨는게 누가 뽑힐지 기대되네요.

레삭매냐 2019-08-21 16:11   좋아요 1 | URL
이게 또... 듣도 보도 못한 거의
정보가 없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구요.

어쨌든 이 정도는 노출이 되어야
국내 출판사들도 움직이지 않나
싶습니다.

케빈 배리 고고씽 ~~~

단발머리 2019-08-21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별 다섯개도 더해주세요!!! 기다리는 마음에도 별 다섯을 드리구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9-08-21 16:20   좋아요 0 | URL
오늘 별 포식하는 건가요? ㅋㅋㅋ

어제 우연히 부커상 후보작들에
대해 열심으로 메모하면서 동영상
본 보람이 있네요...

거의 최신작들이라 번역은 좀 늦
을 듯 싶네요.

syo 2019-08-22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력 노력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페이퍼를 쓰셨네요. 제 별 다섯 개 드실 공간은 아직 남아있으시죠?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8-22 13:15   좋아요 1 | URL
부족한 페이퍼에 대한 상찬 감사합니다.

이제 별수집가로 나서야 할 모양입니다.

psyche 2019-08-23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부커상 롱리스트는 덕스, 뉴베리포트가 한문장으로 된 어마어마하게 긴 책이라는 걸 말고는 잘 몰랐어요.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마가렛 애트우드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데 기대가 되기도 하고, 혹시라도 실망할까봐 두렵기도 하고 그러네요.

레삭매냐 2019-08-23 09:17   좋아요 0 | URL
놀랍네요, 1000 페이지나 되는 책이
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니...

아마 그런 이유로 해서 주목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국내 출간은
아무래도 무리로 보입니다.

이승미 2019-08-24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나 하고 아마존을 뒤졌는데, 출간예정이라는 책들이 대여섯권이나 보이는데 그 유튜버분은 어찌 열권을 다 읽으셨을까요? 저도 어렵지 않은걸로 두개 정도 골라서 보려고요 ^^ 포스팅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9-08-25 10:43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점이 참 궁금하더라구요 ~
아마 출판사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

그나저나 리스트에 오른 책들이
속히 출간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아담과 에블린 민음사 모던 클래식 57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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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된 지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패전국은 44년 만에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이 되었는데 패전국가도 아닌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단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 동독 출신 작가 잉고 슐체는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있던 시점에서 동독을 탈출해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서독으로 망명하려던 한 커플의 이야기를 <아담과 에블린>에 담아냈다. 아니 보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서독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21세의 에블린 슈만이었다. 식당 종업원 일을 하는 에비에게 동독은 그야말로 후진 나라였다. 하지만 그의 애인 아담은 이야기가 달랐다. 33세의 헝가리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아담은 노련한 재단사로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전문가다. 그에게는 서독에 갈 이유가 전혀 없다. 단 에비가 문제다.

 

소설은 시작부터 화끈하다. 자신이 옷을 만들어 주던 중년 여성 릴리에게 매력을 느낀 아담은 결국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던 에비는 절교 선언을 하고 아담을 떠난다. 이제부터 아담의 줄기찬 스토킹이 시작된다. 역시 자신감의 발로였을까? 에비가 돌아올 거라고 예상하지만, 배신의 대가는 혹독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누비는 독일판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에비는 서독 출신 생명공학자(, 그는 아마도 영생을 꿈꾸는 과학자였던가) 미하엘 커플의 차를 얻어 타고 벌러톤 호수로 향한다. 기묘한 조합의 나그네들에게 새로운 낙원이었던 헝가리의 벌러톤 호수는 2차 세계대전 막판에 최악의 격전을 치른 곳이 아니었던가. 아담과 이브의 서사에서 어쩌면 뱀의 역할은 미하엘의 몫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담은 우연히 만난 카탸와 동행해서 국경을 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자신을 증명해줄 아무런 신분증도 없이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아담의 행동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돈과 먹을 것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랑은 오로지 에비 뿐이라는 말이 나에게만 공허하게 들리는 걸까. 결국 에비는 서방 세계의 물질을 대표하는 미하엘과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되고 아담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판이다.

 

헝가리의 페피네에 기숙하게 된 일행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페피 아버지가 짓밟힌 헝가리 민주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일까. 1989년 당시 헝가리 사람들은 이웃 독일 난민들에게 국경을 개방하는 파격적인 일을 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렇게 시리아 난민들에게 매몰차게 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독일에 대한 호감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페피네서 새로운 일감을 찾은 아담의 인기를 도대체 식을 줄을 모른다. 공산진영의 동독이 그랬던 것처럼, 헝가리 여성들 역시 아담의 실력을 칭송하느라 바쁘다. 직접 치수를 재고, 자신의 몸에 딱 맞는 맞춤형 재단으로 여성들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그야말로 아티스트로서 아담이 가진 재능이 만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그를 어찌 여성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에비가 아담에게 페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 엉뚱한 질문이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니지 싶더라.

 

결국 낙원을 떠나 물질세계로 들어가는데 성공한 아담과 에비 그리고 카탸. 그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카탸였고, 서독의 대학에 진학해서 새출발을 다짐한 에비가 그 다음 그리고 아무런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날건달이 된 아담이 꼴찌 순으로 행복해 보인다. 아담은 처음부터 자신의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에비를 위해 그 모든 모험을 치른 것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그런데 그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아닌 듯 싶다. 서방세계에서 아담의 자존감은 수직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우선 서독에서는 아무도 재단사가 만든 옷을 입지 않았다. 공산주의 동독이 그나마 인간적인 모양새의 사회였다면, 서쪽의 자본주의 세례를 받은 베씨들은 물질의 노예였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동일한 문화를 공유한 민족이라도 40여년을 떨어져 살았다면 상호간의 이질감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를 유지하는 이념이 다르지 않았던가. 그렇게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은 이방의 공간이 낯설 수밖에 없었으리라. 반면 보다 나은 삶이라는 구호로 무장된 여성 동지들에게 서독은 축복이었다. 기술자 특유의 곤조를 가진 아담이 고작 기성복의 기장이나 고치고 수선하는 일에 만족할 수는 없었겠지.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어야 하는데, 평생 자신이 고수해온 일에 대한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오씨 아담에게 서독은 성경에 나오는 대로 저주였을까 과연.

 

문득 아담은 통일된 독일에서 안녕한지 궁금해졌다.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연금생활자가 된 건 아닌지. 그리고 그렇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일과 고향집마저 떠나게 된 궁극의 이유인 에비와의 관계는 무사한지. 우리보다 한 세대 전에 통일을 이룬 독일도 숱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아직까지도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다. 처음 만난 드레스덴 출신 이야기꾼 잉고 슐체가 그린 통일 독일에 대한 서사는 흥미진진했다. 낙원에서 강제로 퇴장당한 아담의 로맨스는 떫었고, 코미디는 블랙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만만하지 않았고.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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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8-19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담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건 이상한건가요? 아담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비극적인 ㅠ 읽고싶은 책을 또 추가하게 해주셨네요ㅠ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9-08-20 09:17   좋아요 0 | URL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 같아 보이는데요.
제 생각에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아담 같습니다.

모든 액션은 결국 아담의 결정 때문에
이루어지게 되거든요.

연애를 기본 줄거리로 삼고, 통일 독일의
이모저모를 담은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를 봤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킬러 안톤 시거가 산소탱크와 스턴건(혹은 캐틀건)을 들고 설치는 몇몇 장면만이 기억에 날 뿐.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책이 다 절판된 뒤에 뒷북으로 그렇게 책을 읽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절판이라고 해서 더더욱 호기심이 증폭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공간적 배경은 텍사스의 어느 황무지. 베트남 전에서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용접공 36세의 루엘린 모스는 영양 사냥에 나섰다가 횡재를 하게 된다. 마약상들이 서로 총질을 한 끝에 모두 죽은 것이다. 아니 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외면하고 자그마치 24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챙겼던가. 사건은 모스가 챙긴 돈가방과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그전에 희대의 킬러 캐릭터로 선보인 안톤 시거는 자신을 체포한 부보안관을 죽이고 탈출에 성공한다. 시거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닌 무법자다. 돈가방에 트랜스폰더라는 추적기를 단 덕분에 시거는 모스의 소재를 어렵지 않게 파악한다. 아마 누구나 주인이 없어 보이는 그렇게 큰돈을 얻는다면 모스와 같이 행동할 것이다. 나라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그 대가가 죽음이라면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베트남 전에서 한 시절 전사로 보낸 모스는 사신(死神) 같은 시거의 존재와 능력을 몰랐던 점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19살 난 신부 칼라 진을 엘 파소로 피신시키지만 그녀 역시 모스와 함께 얽매인 운명일 따름이었다.

 

소설에서 자신의 감정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물로 에드 탐 벨 보안관이 등장한다. 코엔 형제가 연출한 영화에서는 타미 리 존스가 벨 보안관 역을 맡았지. 모스가 한 세대 전의 전쟁을 대표하는 선수라면, 벨은 두 세대 전의 전쟁, 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 출신의 보안관이다. 그동안 유능하고 충실하게 군민들의 안전 위해 봉사해온 벨 보안관은 막판에 자그마치 9건이나 되는 미제 살인 사건을 뒤로 하고 불명예퇴진을 하게 될 운명이다. 테렐 군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보안관을 무시하며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저지르는 시거의 준동에 늙은 보안관은 어쩌면 예이츠의 시에 나오는 대로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 그가 독백처럼 건네는 말처럼, 그의 조부모들이 온갖 피어싱과 귀걸이 장식을 한 후손을 보았다면 과연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나이든 세대의 경험과 지식을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세대를 거듭하며 전수되어져온 지혜의 사슬은 인터넷을 뛰어넘어 모바일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꼰대들의 진부한 잔소리가 된 것이다. 어쩌면 코맥 매카시가 냉혹한 킬러가 날뛰는 이 소설에서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

 

분열된 아메리카의 실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에도 연이은 총기사고로 전 미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텍사스 주는 총기소유의 자유를 운운하면서 총기 규제 완화에 대한 9개의 법안을 통과시키고 각종 총기류가 사고 이전보다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게 미국의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전문가들이 그런 총기 사고가 났을 때, 총기를 들고 대항하기 보다는 도망치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지만 눈먼 자들에게는 그런 합리적 조언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모스와 시거는 너무 쉽게 총기를 구하지 않았던가. 신분증이 없어도 충분한 돈만 있다면 누구라도 총기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소설을 통해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지금은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여권은커녕 신분증 없이도 국경수비대가 지키는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설정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멕시코 의사에게 이글패스에서 시거에게 맞은 총상을 치료한 모스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국경을 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240만 달러라는 충분한 자금을 지닌 모스는 총기면 총기, 자동차면 자동차 그리고 잠시 머물 숙소에 이르기까지 구하지 못하는 게 없었다. 자본주의 천국 미국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모스는 누구인지 밝힐 신분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코맥 매카시의 서사에는 잡다한 상념들이 끼어들 틈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무미건조해 보이는 서사로 힘차게 이야기들을 이끌어간다. 산소탱크와 스턴건 그리고 산탄총으로 무장한 사신에 가까운 시거는 서사의 중심에 서 있다. 동네 보안관 따위는 우습게 여기고, 간발의 차이로 자신을 사로잡을 뻔 하기도 하지만 그를 해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법집행자에 대한 하나의 모욕이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평범한 시민들을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지키지 못하는 무력한 공권력에 대한 작가 나름의 힐난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도대체 아홉 건이나 되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건만 군 보안관은 무얼 했단 말인가. 평화시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지만, 정작 비상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뒷북만 신나게 치고 킬러 시거의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결국 소설은 끝나 버리고 만다.

 

무엇보다 소설이 개인적으로 권선징악 부류의 결말이 아니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 결말은 너무 전형적이고 식상하지 않은가. 거악을 형성한 악당들은 여전히 세상이 제 것인 양 법을 무시하고 만인에게만 평등한 법이라며 조롱하고 있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고 혐오가 넘실거리는 작금의 세태에 코맥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만큼 들어맞는 소설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히 명작이라 부를 만하다.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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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8-18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맥카시 소설 처음 읽은게 이 책이었는데 그 당시 이해가 안가서 다 읽고 팔았네요 . 대신 영화가 더 재밌더라구요^^ 하비에르 바르뎀의 안톤 시거 연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아이들 방탄가방까지 나오는 미국의 현실이 전쟁터도 아니고 참 끔찍하죠 ㅠ
글 읽고 나니 다시 읽어 볼까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

레삭매냐 2019-08-19 09:10   좋아요 1 | URL
아니 어쩌면 쿨캣님이 판 책을 제가 ㅋㅋ
잠깐 그런 망상을 해보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지만 나중에 시간
이 지나고 나면 또 찾게 되는 건지도 모
르겠습니다.

전 영화를 먼저봐서인지 아마 책 읽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네요... 영화도 다
시 보고 싶은데 시간이 항상 없네요.
 
리훙장 평전 - 중국 근대 대사상가 량치차오, 동시대 실권자 리훙장을 말하다
량치차오 지음, 박희성.문세나 옮김 / 프리스마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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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중국 3대 인물 평전이라는 글을 보고서 이 책을 구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때까지 묵혀 두었다가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분량의 책이 아니라 금세 읽을 수가 있었다.

 

오래 전 대학 강의 시간에 들었던 인물들이 등장하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그 때는 중국식 이름이 아닌 강유위, 담사동이라고 불렀었는데 이제는 캉유웨이, 탄스퉁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이름을 보자니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19세기 말, 중국은 그야말로 서세동점의 시기였다. 부패한 만주족의 나라 청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영국과 벌인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의 실력을 파악한 서구 세력들이 마구잡이로 청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고, 이권쟁탈에 눈이 멀어 있었다. 이러한 사정이 외우라면, 내환은 내부의 반란이었다. 홍슈취안의 태평천국의 난을 그야말로 나라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연이은 염군의 반란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홀연히 등장한 인물이 바로 리훙장이었다.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했던가. 과거에 합격한 진사 출신으로 한림이었던 리훙장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만주족 정권의 한인 관료였던 쩡궈판 휘하에서 태평천국의 난 평정에 투입되어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정적이었던 저자 량치차오는 리훙장에 대해 공정한 기술을 하겠다고 서두부터 공언한다. 어떤 이들은 리훙장이 송대 진회 같은 매국노, 간신 부류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태평천국의 난 가운데 장쑤성 남부를 평정하고 10년 동안 관군의 골칫거리였던 염군을 태평천국의 난을 통해 배운 전법으로 단 1년 만에 진압한 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는다.

 

사실 태평천국의 난에 대한 저자의 기술은 뛰어나지만, 아무래도 중국 지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관군의 진격이나 태평군의 반격 등에 대해 전체적인 조망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리석은 독자의 무지 탓이다. 어쨌든 리훙장은 상하이까지 육박한 태평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전세를 뒤집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태평군의 수도 난징을 점령하라는 조정의 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라이벌의 공을 마지막 순간에 등장해서 채갈 것이라는 오명을 두려워해서인지 어쩐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찰스 조지 고든으로 대표되는 외국인 용병으로 구성된 상승군의 활약도 태평군을 진압하는데 한몫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서구 열강은 태평천국의 난이 발발했을 때 관망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태평군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든의 전임자는 심지어 태평군에 투항하기도 했다고 하지 않던가. 고든이 태평군의 투항을 보증했지만, 반복되는 배신에 질린 리훙장은 투항한 태평군 장수들을 계략으로 모두 몰살시키기도 했다. 이에 화가 난 고든이 총으로 리훙장을 죽이겠다고 나선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별 일이 다 있었군 그래. 태평군의 마지막 지도자 리슈청에 대한 에피소드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 그런 진 몰라도 흥미진진했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가 저술한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에 다시 도전해 봐야 하나 싶다.

 

그 다음 역사의 장면은 리훙장의 양무운동이다. 산업혁명을 거쳐 서구 열강의 선진 문물을 접한 리훙장은 양무 그러니까 서구의 신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운동을 전개한다. 문제는 리훙장의 양무운동은 어디까지나 군사 기술 혹은 무기 도입에 관한 부분이었고,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추동되지 않은 처음부터 한계를 지닌 운동이었다고 량치차오는 냉정하게 비판한다. 그 결과, 청일전쟁에서 한수 아래로 평가받던 신생 일본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고 종이호랑이 신세가 되어, 서구 열강의 이권 침탈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은 리훙장이 막대한 비용과 2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육성한 북양해군과 자신의 회군은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성환전투, 황해해전 그리고 평양전투에서 하나의 통일된 지휘권에 통합되지 않은 청군은 일본군에게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었다. 군의 사기는 물론이고, 무능력한 지휘관들은 적전에서 도주를 일삼았고, 패전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리훙장은 얼굴에 총을 맞아 가면서까지 이토 히로부미와의 치욕스러운 텐진조약 및 마관조약으로 강화를 맺는다. 전쟁배상금과 조선에서의 종주권 상실, 타이완과 랴오둥 반도 할양으로 일본은 제국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 제친다.

 

태평천국과 염군의 반란을 제압한 리훙장의 초반 운은 영웅의 기개에 걸맞은 성공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실력도 있었겠지만, 운도 상당히 작용했다. 반면, 서구 열강의 중국 침탈이 가속되어 가던 중에 실시된 양무운동과 청일전쟁은 노회한 외교관에게 치명적인 실패였다. 량치차오는 계속해서 모든 책임을 리훙장에게 미룰 수 있는지에 물음표를 던진다. 서태후의 독재 아래 망조가 들린 청조정은 이미 대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리훙장 말고 다른 누가 이미 망해가는 청조를 떠받들 수 있었단 말인가.

 

양광총독이라는 한직에 물러나 있던 리훙장은 20세기초 중국을 뒤흔든 의화단의 난으로 발발된 서구 열강의 개입을 무마하는 신축조약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량치차오는 자신과는 정치적으로 상극의 자리에 있었던 라이벌 리훙장에 대한 평전을 공정하게 기록했다. 과는 과대로 그리고 공은 공대로 나름의 편견을 가지지 않고 평가하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 모름지기 학자이지 지식인이라면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던 치욕의 시대를 뒤로 하고, G2 국가가 되어 팍스 아메리카나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의 오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전범으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평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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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8-14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편전쟁 당시 린쩌쉬(임칙서)와 태평천국운동 당시 리훙장이 청조 말을 지탱하던 촉한의 강유와 같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중국 왕조가 멸망할 때마다 백이숙제 이래로 적어도 한 명씩은 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고 했을 때, 리훙장을 그 한 명으로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레삭매냐 2019-08-16 13:43   좋아요 1 | URL
재밌는 장면 중의 하나가 중국사에 등장하는
상중하책을 외국인인지 누군가가 리훙장에게
헌책했다는 겁니다.

당장 독립해서 중국 남부에 신국가를 건설하
는게 상책 뭐 그런 아이디어였는데 항상 그렇
지만 결정권자는 하책만을 고르지요.

결국 중국이 서세동점의 시기에 열강의 먹잇
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그런 썰이 흥미롭
더군요.

겨호님이 지적하신 부분이 아주 정확해 보입
니다. 지난 왕조에 대한 충성 뭐 그 정도로
보면 될까요.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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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명불허전이다. SNS에서 그리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평생 동물학자였던 델리아 오언스가 발표한 첫 번째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아주 읽을 만한 책이라는 소문을 접했다. 그렇다면 내 또 읽어 보지 않을 수가 없지. 새로운 작가에 도전,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던가.

 

다양한 채널에서 주력하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킬포는 주인공 카야 클라크와 바클리코브의 선샤인 보이 체이스 앤드루스의 갈등 그리고 살인 사건이다. 소설에서는 모름지기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기 마련이다. 카야와 체이스의 서사 역시 그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그리고 보다 진중한 이야기는 야생에서 홀로 살아남은 카야의 외로움이 핵심 주제라고 생각한다.

 

1952년과 1969년이라는 17년이라는 세월을 오가며 직조되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는 가족 서사, 유기된 6세 꼬마 카야의 생존기, 인종주의 문제, 늪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야생의 신비로움을 델리아 오언스 작가는 놀라운 필력으로 구현해낸다. 우선 가족 서사부터 한 번 시작해 볼까. 카야의 엄마 마리아는 뉴올리안즈 출신의 잘 나가는 집안 출신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남편 제이크 클라크와 결혼해서 늪지의 판잣집에 사는 신세가 되었을까. 물론 이 이야기들은 소설을 읽다 보면 차례로 등장하게 된다.

 

결국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 포유류 부모는 자식(자그마치 5남매였다)과 남편을 버리고 훌쩍 떠나 버린다. 그리고 다른 자녀들 그리고 카야가 끝까지 믿었던 막내 오빠 조디마저 늪지를 떠난다. 아니 고작 6살짜리 꼬마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마지막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귀향한 상이용사 제이크는 도박과 알콜로 세월을 허비한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이 집을 떠나도, 막둥이 카야에 무슨 옷을 입는지 뭘 먹는지 학교에는 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카야는 꿋꿋하게 생존을 이어간다. 바닷가에서 홍합을 채취하고 물고기를 잡아서 이웃의 점핑 아저씨와 거래를 튼다.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리츠, 성냥 같은 필수품과 보트에 넣을 연료를 장만한다. 유색인 점핑 아저씨와 그의 아내 메이블만이 바클리코브에서 마시 걸이라 불리는 카야를 돕는 유일한 이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들을 아마 늪지 쓰레기라고 불렀지.

 

바닷가 판잣집에 사는 외로운 소녀 카야는 별과 바다를 관찰하는 낙에 살았다. 취학 연령이 되어 맛있는 치킨 파이에 현혹되어 딱 하루 학교에 등교했지만, 카야와 학교와의 인연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늪지에 숨은 카야를 사람들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 대신 그녀는 바닷가에 널린 조개 껍질과 물고기와 새들을 벗 삼아 세월을 보냈다. 혹시라도 엄마가 언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빠 제이크와의 밀월은 얼마 가지 않았고, 제이크마저 어느 날 돌아오지 않으면 카야의 외로움은 평생의 숙명이 되어 버렸다.

 

목사 사모라는 여자마저 카야에게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을 보내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인간은 모두 신의 창조물이 아니었던가. 할 말이 없었다. 백인 꼬마들이 지긋한 나이의 점핑 아저씨에게 돌팔매와 조롱을 건네는 장면은 또 어떤가. 당시 남부에서 유색인들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서술을 작가는 조용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뿌리 깊은 그리고 아직까지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미국 사회 인종주의와 편견을 델리아 오언스는 정확하게 짚어낸다.

 

카야에게도 한 때 좋은 시절이 있었으니 불의의 사고로 엄마와 여동생을 잃은 테이트 워커가 바로 주인공이었다. 오빠 조디의 친구였던 테이트는 늪지로 카야를 찾아와 깃털 게임으로 친구가 된다. 아니 서로 가진 귀한 새들의 깃털을 교환하는 배틀이라고 해야 할까. 소년은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녀에게 글을 가르쳐 준다. 그 과정을 통해 서로는 신뢰를 쌓아가고, 카야는 배움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카야의 컬렉션을 깊이를 더하게 된다.

 

물론 카야의 이런 행복한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생물학자가 꿈인 테이트는 대학 진학을 하게 되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과연 마시 걸인가 아니면 탄탄대로인 자신의 미래인가. 훗날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칭한 테이트의 결정은 후자였다. 다시 한 번 배신당한 카야는 다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침잠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엄마와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도 그리고 모든 마을 사람들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던가. 자신을 배움의 길로 인도한 테이트까지. 할 말이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 매력적인 아가씨로 성장한 카야 옆에 체이스 앤드루스라는 바클리코브의 선샤인 보이가 등장한다. , 이제부터 심각한 갈등이 시작될 차례다. 카야는 우연히 과학 다이제스트에 실린 번식전략에 관한 어느 논문을 읽게 된다. 제목은 <음흉한 섹스 도둑>이다. 이제 바닷가 생물 전문가가 된 카야는 사람들의 관계도 동물들의 그것에 비유하는 법을 알게 됐다. 이 지점은 바로 델리아 오언스 작가의 전공 영역인 동물생태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마을의 자타가 공인한 바람둥이 체이스는 논문에 나온 사기꾼 수컷이었다. 돌아온 테이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카야는 옴므 파탈의 매력에 빠져 뻔한 결말로 치닫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소설과 다른 연대기순으로 스토리를 풀어봤다. 가장 먼저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은 체이스 앤드루스가 소방망루에서 떨어져 죽은 장면을 꼬마들이 목격하는 것이었다. 소설은 그렇게 17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두 가지 사건이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해당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규정한 보안관 에드는 일급살인 혐의로 카야를 체포하고, 마을 사람들의 적대적인 시선 가운데 재판이 시작된다.

 

나를 카야에 대입해 보았다. 어린 나이에 아빠와 엄나 그리고 모든 가족이 나를 버리고 떠났다. 나에게 남은 건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판잣집과 보트 한 척. 나는 글도 모른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걸 새롭게 리셋하고 배워서 살아가야 한다. 절대 가능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그런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야 했던 어린 꼬마의 삶을 위한 투쟁의 기록은 슬픔 그 자체였다. 이어지는 배신의 드라마는 또 어떤가. 도대체 나 자신 말고 누구를 믿어야 한단 말인가. 배움을 통해 들어온 문자의 세계는 하나의 기회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한 테이트의 도움으로 자연에 대한 책을 발표하게 되면서, 카야의 경제 문제는 일시에 해결된다. 더 이상 홍합을 캐지 않아도 먹고 살게 된 것이다. 암컷 반딧불이 신호 변경으로 이종 반딧불을 유혹해서 잡아먹는 이야기, 누구나 아는 암컷 사마귀의 교미 상대자에 대한 카니벌리즘, 야생 칠면조의 집단 생존을 위한 기능을 잃은 동료 살해 내러티브는 의미심장한 단서들을 하나씩 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가 준비한 화끈한 반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델리아 오언스의 첫 작품인가 싶을 정도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굳건하게 하나의 플롯에 짜 넣은 솜씨가 여느 기성 작가 뺨치는 실력이 아닌가. 이 소설에 반한 리즈 위더스푼이 이미 영화 만들기에 나섰다고 하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올해 내가 만난 좋은 책,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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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8-12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다는 소문에 냉큼 사놓긴 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_@;;; 레삭매냐님이 명불허전이라 하시며 별 다섯개를 주시니 얼른 읽어보고싶네요. 초조@_@;;;;;;;;;

레삭매냐 2019-08-12 13:5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꼭 읽으서야 합니다 -
올해의 책으로 부족함이 없답니다.

주말 동안 이 책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할 정도였네요.

역시 폭염이 몰아치는 여름은 독서
의 계절입니다 암요.

2019-08-12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달 전쯤에 이 책을 읽었네요.
작가가 칠십대에 쓴 첫 소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소설이었어요!
무엇보다 작가의 전문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소설에 자연스레 녹아나니 글이 더욱 풍성하여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카야랑 테이트랑 결국 잘 되어서 행복하게 책장을 덮었네요.~ ^^

레삭매냐 2019-08-12 17:29   좋아요 1 | URL
아마 설해목님도 읽었다는 말에
자극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도 사방에서 좋다하는 글들을
봐서 말이죠.

지금 ABC 방송에 나와 인터뷰하는
걸 들어 보니, 요즘 너무 바쁘다고
그리고 새로운 책도 쓰고 있다고
하네요. 대단하신 양반입니다 정말.

아프리카 보츠와나와 잠비아에서
이십 년도 넘게 자신의 연구에 매진
한 진정한 연구자이기도 하더군요.

소설은 정말 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