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어느 신문에 실린 통일보다 경제가 우선이라는 글을 읽고 나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어느새 밤이 되어 버렸네 그래.

 

그 칼럼니스트의 말대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줄창 불러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왜 통일이 소원인 지도 모르고 그냥 그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어릴 적 뇌리에 새겨진 멜로디는 여전한 파워를 자랑한다. 지금도 얼핏 가사가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다.

 

두 번의 보수정권 시절을 지내면서 공동체 의식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 약자인 아파트 경비하시는 분들을 두들겨 패고, 서로 상충하는 이해를 대화보다 물리력을 동원해서 해결하려는 그런 움직임들이 각자도생의 시대가 초래한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는 생각들, 언론을 장식하는 각종 대형 범죄들도 돈으로 무마할 수 있다는 의식이 은연 중에 만연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통일 이야기로 돌아가서, 칼럼니스트는 독일의 예를 들면서 서독의 경제가 동독의 그것을 압도하면서 결국 통일에 이르게 되었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를 맹신하는 스타일의 논리를 전개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시각이 외눈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독일 통일의 요건이 오로지 서독의 압도적인 경제력 뿐이었을까? 서독의 우세한 경제력은 통일의 한 요소일 따름이었다. 우선 서독은 1945년 패전 이후,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과거사 청산을 이뤄냈다. 우선 국가운영을 맡은 고위 공직에서 나치 전범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히틀러의 혹독한 국가사회주의 독재를 경험한 국민들은 다시는 극우 세력이 발붙일 수 없도록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재정비된 독일식 민주주의는 지금까지도 민의를 대변하는 시스템으로 많은 나라들의 지표로 작동하고 있다.

 

동방정책의 선구자 빌리 브란트 총리가 이끄는 서독은 동독 주민들과의 교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독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동독의 공산주의를 압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점들이 45년 분단의 딛고 마침내 통일을 이룩해낸 원동력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36년 일제 지배의 잔재를 청산했던가. 패전국이 아님에도 우린 독일과 같은 과거사 청산을 이루지 못했다. 헌법기관이었던 반민특위의 실패가 단적인 예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두 번의 걸친 군사 쿠데타로 혹독한 독재를 경험했다. 독재자들은 당연히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자신이 없었고, 북한 주민과 교류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북한과의 적대적 공존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걸 깨달은 수구 기득권 세력은 분단의 고착화에 매달렸다. 그 결과 분단 74주년을 맞는 올해도 우리에게 통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기술력으로 세계를 제패한 최고의 제조강국이라는 독일도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는데 어마어마한 재원과 한 세대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소소한 공동체 의식마저 사라져 가는 마당에, 수십 년 떨어져 살아온 같은 민족에 대한 감정이 어느 날 느닷없이 다가온 난민에 대한 거부감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뱀다리] 비슷한 시기에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카더라 뉴스를 기명 칼럼으로 쓴 소설가 뺨치는 칼럼니스트의 패기에도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냥 지인들과의 술자리에나 어울리는 게 아닌가. 깜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공공 대중이 읽는 기명 칼럼으로 발표하다니, 정말 놀랍다. 자신이 아는 부장판사가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데, 그보다 훨씬 더 윗급의 전직 대법원장이 상상을 초월하는 사법농단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걸 보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싶다. 2019년 쉬르리얼리스틱한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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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 0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6-25 10:15   좋아요 1 | URL
역발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데
항상 돈만 보는 천박한 천민자본주의
식 사고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새로 쿳시의 <철의 시대>가 나온 모양이다. 작년 봄,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필두로 해서 그전에 들녘에서 나오던 쿳시의 책들이 재개정판으로 나오는 중이다.

 

그리고 보니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는 읽다 말았네. 어디 그런 책들이 한둘이던가.

 

마저 다 찾아서 읽어야 하는데, 쫌 귀찮다. 새로운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니.

 

작년인가 쿳시의 책들을 좀 읽어 보겠다고 일단 책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 나의 고질병 중의 하나. 뭐 그래도 이언 매큐언의 케이스는 성공했으니. 로쟈 선생이 다음달에 영종하늘도서관에서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와 <칠드런 액트> 강의를 한다고 하던데, 가보고 싶다. 아마 못가게 되겠지. 방법이 없을까나. 그럼 책을 다시 읽어야 하나.

 

<철의 시대>도 그렇게 이미 수집해 놓았던 터라, 오늘 아침에 엉망진창 서가에서 찾아내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나오는 반양장보다 예전 들녘 버전의 양장이 더 좋다. 나는 말이 필요없다 무조건 양장이다. 난 책이 쩍쩍 갈라지는 페이퍼백은 정말 싫다규.

 

새로 나오는 쿳시의 책들은 모두 왕은철 교수가 번역을 맡은 모양이다. 일단 한 역자가 한 작가의 책을 번역하는 건 찬성이다. 다만, 과연 재개정판에서 얼마나 기존 버전과 달라졌는 지는 사실 좀 궁금하다. 이거 울궈먹기 아냐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 그렇다고 새로 나온 책과 하나하나 대조해 가면서 볼 그런 로열티는 전혀 없고. 뭐 그렇다고.

 

어젯밤까지 모시페그의 <아일린>을 읽고 있었는데, 쿳시의 <철의 시대>로 다이빙해 버렸다. 사실 후자는 좀 더 땡기니. 게다가 소장하고 있던 책이라 나의 서가파먹기 프로젝트로서도 그만이지 않은가. 중고서점에서 4,000원 그야말로 별다방 아메리카노보다 적은 가격으로 데려온 모양이다. 아마 10% 할인 받아서 더 깎아서 샀겠지. 적립금으로 산 책이라면 공짜인 셈 아닌가.

 

날이 덥다. 모기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이제 여름이 훌쩍 와 버린 모양이다.

 

[뱀다리] 아침 출근 길에 한 20쪽 정도 읽었는데, 어라 이 책 재밌네. 만사 제쳐두고 이 책부터 읽게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아직 사지 못한 쿳시 선생의 책들이 또 뭐가 있나 뒤져 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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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6-13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저도 저 책을 어디에선가 구해놓고는 잘 모셔만두었는데....ㅋㅋㅋ
중고서점에서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와 <철의 시대>를 잘 데리고는 왔는데 읽지 않는 사이 새단장을 한 책들을 보니 그게 또 욕심이 나고. ㅎㅎㅎㅎ;;;;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

레삭매냐 2019-06-13 11:51   좋아요 1 | URL
작년에 사서 묵혀 두었다가 오늘 아침
에 꺼내서 읽기 시작했는데 흥미진진하네요...

이제 얼핏 쿳시 작가의 스타일이 보이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왜 책을 사서 읽지 않고 묵혀 두는
건지 고 점이 궁금해졌습니다...

stella.K 2019-06-13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재밌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매냐님은 무슨 소설(전문)가의 독법이 느껴집니다.
아마 여느 소설가도 이렇게는 못 읽을 것 같습니다.
이참에 소설에 한 번 도전해 보시죠.
재밌는 책 만나면 신나죠. 사는 게 좀 났고.
그맘 저도 압니다.ㅋㅋ

레삭매냐 2019-06-14 10:57   좋아요 0 | URL
과찬의 말쌈이십...

근데 기분은 무지 좋습니다. 비행기
타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핫하

소설 쓰기,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리네요.
다만 역량이 부족한 관계로 인하야 -0-
 

 

지난 22년 동안 레드삭스의 팬이었다.

 

레드삭스를 86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따라 다니던 밤비노의 저주를 푼 뒤 관심이 좀 떨어졌다.

 

얼마 전, 1986년 시리즈를 말아 먹은 빌 버크너가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들었다. 생전에 보스턴에서 그렇게 욕을 자신 분이었다. rest in peace.

 

저주를 풀기 위해 보스턴 사람들은 벼라별 짓을 다했다. 양키즈 모자를 들고 에버레스트 산에 올라가 태우기도 했고, 지금은 댐 건설로 수장된 어느 마을의 피아노를 물에서 건져다가 치질 않나. 하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굶주렸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럴 수 있다면 다저스-보스턴 그리고 악의 제국이 만날 돌아 가면서 우승하게. 악의 제국이 27번째 우승컵을 거머쥔 게 벌써 십년 전이다. 악의 제국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허우적대는 데도 나머지 전력을 아메 동부 1위를 달리고 있다. 이게 야구다. 불확실성! 아마 주전 선수들이 돌아온다고 해서 전력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 같지도 않지만. 오히려 팀 케미스트리를 박살낼 수도 있다. 그들은 슈퍼스타거든.

 

작년부터 그렇게 말 많던 터론토의 블게주가 마침내 데뷔했지만 어째 성적이 신통치 않다. 콜업 되기 전까지만 해도 리그를 씹어먹을 것 같은 기세였는데. 그런게 야구라는 거지. 어느 기사에서 브라이언 하퍼의 형 브라이언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동생은 리그에서 가장 비싼 선수 중의 한 명이 되어 승승장구하고 있는데(물론 성적은 그렇지 않다), 형은 여전히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를 오간다고 한다. 7년이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메이저리거의 꿈을 버리지 않다니 놀랍기만 하다. 꿈을 좇은 일은 언제나 그렇게 쉽지 않는 법인가 보다.

 

핸진이가 드디어 5월 이달의 투수상을 받았다. 지난 두달 동안의 성적을 보면 국뽕을 빼더라도 마땅히 사이영급이다. 다만 본인도 말했다시피 6개월 짜리 대장정의 초반일 뿐이다. 크리스 세일이 그렇게 맹활약을 펼쳐도 후반에 가서 죽을 쑤면 사이영은 커녕 욕만 먹지 않았던가. 모쪼록 이대로 달려서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고, 대박 FA 계약도 맺었으면 한다. 구속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구종을 장착한 것도 아닌데 예전 매덕스가 그랬던 것처럼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을 드디어 깨우친 것인지 궁금하긴 하다. 물론 야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빌리 빈이 외쳐 대는 운빨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코디 벨린저가 이끄는 다저스 타선이 3연속 월드시리즈 출전을 목표로 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작년 보스턴 우승의 후유증이 오래 가는 모양이다. 에이스 크리스 세일은... 말하고 싶지 않구나. 투수가 잘 던지면 타자들이 물방망이이고, 타자들이 잘 하면 불펜진이 불을 싸지르니 극강 아메 동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있나 그래. 게다가 탬파베이는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예전에 탬파베이 경기는 시시해서 보러 가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이젠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돔브로스키는 무슨 생각으로 강력한 마무리 투수 없이 시즌에 돌입한 건지 모르겠다. 번번히 이길 수 있는 경기들을 불펜진이 말아 먹고 있지 않은가. 작년 MVP였던 무키 베츠도 영 활약이 그렇고. 아마 한 시즌 건너뛰는 성적을 이번에도 거두려나. 영 몸값을 못하는 것 같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FA대박은 커녕 쪽박을 찰 기세다. 불펜이 하도 죽을 쑤니, 절대 계약하지 말라고 했던 크레익 킴브럴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뭐 작년에 우승했으니 이번 시즌은 평타만 쳐도 성공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장마다 꼴뚜기일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시즌 1/3 정도 지났는데 미네소타의 분전이 놀랍다. 이번 시즌에 리빌딩한다고 하지 않았나. 내셔널리그 팀 중에서는 밀워키를 응원하고 있는데 작년 MVP였던 크리스천 옐리치가 이번에도 한 번 더 MVP 먹었으면 좋겠다. 말린즈가 예전 외야수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죽을 쑤진 않았을 텐데. 지터는 그래 말린즈파크에서 새로운 핫독이나 타코 장사로 돈 좀 벌고 계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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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6-05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류현진 경기도 역대 급이었어요.. 지금처럼 계속 기세를 유지한다면 옐리치를 다시 만나도 지지 않을 것 같아요...ㅎㅎㅎ

레삭매냐 2019-06-05 16:42   좋아요 0 | URL
오늘 다저스 수비진 너무 하더군요...
실책을 세 개나 하다니 -

이제 성적은 어느 정도 올렸으니
다음 목표는 상대 팀 에이스와의
대결에서 승리가 아닐까 싶네요.

슈어저나 벌랜더 같이 리그 최고
의 투수들과 대결이 궁금하네요.

카알벨루치 2019-06-06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류현진 진짜 황금시대인듯 합니다 다저스 애들 너무 잘하는데요 근데 보스톤이나 양키스 요즘 조용한듯! 최지만이 있는 템파는 의외더군요 예전보다 MLB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는데 그래도 추신수는 200홈런을 친 최초의 아시아선수가 됐군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9-06-06 07:34   좋아요 0 | URL
텍사스는 추신수와 계약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비슷한 시기에 악의 제국과 계약
한 제이코비 엘스버리 역시 최악의
계약으로 남을 것 같긴 하지만요.

다저스 정규 시즌은 몰라도 포시에 가
면 위력이 감소하는 느낌입니다.
달빛이 아니라
벌런더를 영입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6-06 10:49   좋아요 1 | URL
그때 FA분위기는 추와 엘스베리로 압축되었죠 근데 엘스베리는 넘 하더군요 ㅎㅎ
 


관람일시 및 장소 : 메가박스 청라 15:05

 

일단 고마워요 알라딘, 책만 주시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영화 티켓까지.

 

봉감독의 <기생충>이 스크린 독과점을 하는 바람에 2주 전에 개봉한 <알라딘> 보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극장에 가서 들어 보니, 기생충 아니면 알라딘이라고 하더만. 암튼 스크린 독과점이 영화 산업 발전에 도움이 아니라 독이 될 거라는 생각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특히 상영과 제작이 분리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더더욱.

 

디즈니의 <알라딘>이 실사화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을 했다지. 그런 건 아마 <라이언 킹>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이언 킹도 기대가 많이 된다. 램프의 요정 지니(윌 스미스 분)와 원숭이 아부가 다 해먹었다고 하던데 과연. 이야기는 가족과 함께 항해에 나선 윌 스미스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노래로 불러 달라는 말에, 점잔 빼다가 결국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지금은 배우로만 활동하지만, 1968년생인 윌 스미스는 이미 18세에 프레쉬 프린스라는 예명의 래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니 노래 실력 하나는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빌보드 1위 곡도 두 곡이나 가지고 있더라는.

 

서설이 언제나처럼 길었다. 주인공 알라딘(메나 마수드 분)은 사막의 왕국 아그라바에 사는 생계형 좀도둑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배운 기술이라는 도둑질 뿐이니. 시장에서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주려다 도둑으로 몰린 재스민 공주(나오미 스콧 분)를 돕다가 눈이 맞은 알라딘. 아들이 없는 아그라바 왕국의 술탄은 재스민 공주에게 왕국을 물려 줄 수 없다. 이 틈을 타고 교활한 재상 자파는 왕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민다. 어때 이 정도면 전형적이지.

 

알라딘이 도둑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민한다면, 재스민 공주는 술탄이 될 수 없는 자신의 한계와 싸운다. 한편, 자파는 최고의 소서러(마법사)가 되기 위해 마술램프의 요정인 지니의 힘이 필요하다. 지니는 알다시피 세 가지 소원 밖에는 들어줄 수가 없다네. 개인적으로 영화 알라딘에서 최고의 장면을 꼽는다면 다음의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알라딘이 마술램프의 동굴에서 얻는 장면, 마법의 양탄자까지 등장하니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파는 동굴에서 오로지 마술램프만 들고 나와야 한다는 경고를 하지만, 각양각색의 보물들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가 있나. 원숭이 아부의 선천적인 욕심(!) 때문에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만다. 의외로 거리의 좀도둑 알라딘이 욕심을 내지 않고 자파의 경고를 그대로 따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역시 디즈니 뮤지컬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지니의 도움으로 아브와바인지 뭔지하는 존재하지 않는 왕국의 왕자로 둔갑한 알라딘이 아그라바 왕국에 입성하는 장면이다. 지니의 경고는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확실해 보인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원하게(the more you have, the more you want) 된다는 거다. 당연한 게 아닌가. 돈과 권력이 없다면, 없는 대로 만족하면서 사는 법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그런 돈과 권력이 생긴다면 볼 것도 없다. 문제는 그래도 나름 선한 심성을 지녔던 알라딘마저 재스민 공주와 결혼하겠다는 욕심에 빠져 지니를 램프에서 풀어 주겠다는 약속을 어길 거라는 선언이었다. 돈과 권력이 주는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말인가.

 

자파의 경우에서 보듯, 돈과 권력을 가져서는 안될 사람이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알라딘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신세대 여성관을 대변하는 재스민 공주 못지않게, 흥미로운 캐릭터가 바로 술탄의 경호대장 하킴이었다. 우직한 무장 하킴은 재스민의 아빠 술탄이던, 자파 술탄이던 법대로를 외친다. 왕위 아니 술탄계승권이 없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재스민 공주가 술탄이 된다면 백성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디선가, 가장 가난한 사람의 행복이 지도자가 누리는 행복만큼이라던가 하는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암살당하고, 공주마저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될까봐 걱정한 아빠 술탄의 염려로 궁전에 매여 사는 재스민 공주의 삶이 과연 행복한 건지. 그리고 바보에 가까운 스칸랜드 출신 왕자와 결혼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설정도 참 그렇다.

 

디즈니는 술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슬림 왕국이 분명한 아그라바의 종교적 색깔을 쏙 빼버렸다. 서구 사회에서 요즘 이슬람 근본주의의 테러로 무슬림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런 설정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가 구사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 초반에 윌 스미스가 불러 제끼는 “애러비언 나이트”처럼 환상을 자극하고, 마법사가 정치를 주무르는(이슬람 신정정치에 대한 노골적인 비꼼일까) 미지의 세계를 소재로 삼아 세계 영화판을 주무르는 자시의 이윤을 극대화하겠다는 일종의 세계화 전략이 아닌지 나는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면 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게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영화는 즐겁고 재밌게 봤다. 어디선가 인도 영화라 춤과 노래가 빠지면 안돼서 엔딩에 신나는 춤판을 설정했다고 하는데, 알라딘이 인도 출신은 아니었지 아마. 뭐 또 그러면 어떤가.

 

다시 한 번 고마워요 알라딘. 앞으로 열심히 책 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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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6-03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는 알라딘이 중국인으로 나오더군요. 무슬림 소수민족인가 생각했었네요. 윌 스미스가 램프의 요정이라니 어딘가 잘 어울립니다. 보고 싶네요^^

레삭매냐 2019-06-03 14:15   좋아요 0 | URL
아부와 지니 조합이 예상 외로 좋더군요.

알라딘이 중국 사람이라, 역시나 대단하네요.
 
알라딘 중고서점 영등포역 지하상가점


한동안 알라딘 중고서점들이 마구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매장들은 또 그렇게 문을 닫았다. 비교적 우리집 근처라고 할 수 있는 북수원점이 작년 여름엔가 아마 문을 닫았지. 그전에 타리크 알리의 <살라딘>과 가르보의 절판된 책을 마지막으로 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번에 영등포점이 문을 열었다고 해서 평일을 이용해서 다녀왔다.

 


첫 이미지는 예전에 오함 선생의 <주원장전>을 사러 갔던 동탄점과 비슷해 보였다. 영등포역과 지하로 연결되서 비가 오는 날에 가도 비 맞을 일은 없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원분들이 서가 분류를 맹렬하게 하고 계신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입구 좌측으로 해서 알라딘에서 개발한 굿즈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굿즈에 최적화된 매장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내게 유일하게 필요한 굿즈는 책갈피인데,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굿즈들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나의 책갈피들이여 ~

 

 

 

우리는 왜 서점에 가는가? 바로 책을 사러 서점에 간다. 중고서점에 가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좀 더 괜찮은 품질의 책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 판단을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시간 여유만 있다면 오래도록 서가를 누비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건만, 이제 나에게 부족한 건 시간 뿐이로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시간이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오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던가.

 

 

이쪽은 꼬맹이들의 책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어린이책 서가다. 예전에 거들떠도 보지 않던 어린이책 코너도 요즘에는 자주 들여다 보게 된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라고나 할까.

 

 

바로 들통이 날 거짓말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예전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커피 이야기>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리뷰로도 써서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리뷰는 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다시 한 번 읽고 써야지 싶다. 커피 원산지로 여행을 떠난 미국 아저씨가 아예 커피 농장을 차리게 되는, 공정무역에 대한 글로 기억하는데... 윤리적 소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주는 좋은 글로 기억한다. 근데 커피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게 다 지대 때문이라는 분석은 이제 낯설 지도 않다.

 

 

이날 내가 사려고 서가에서 골라서 독서대에 잠시 쌓아 놓은 책들의 자태다. 사실 가기 전에 이미 내가 살 책들은 이미 간택했다. 주변에서 하도 페르난도 페소아의 책들이,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산문과 시들이 좋다고 해서 대량으로 구입할 요량이었다.

 

난 사실 시는 잘 모르는데. 어쨌든 사서 집에 오는 길에 페소아의 산문에 가차운 시들을 읽기 시작은 했는데... 역시나 그의 조국 포르투갈이나 기타 등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상당 부분 이해를 하지 못했고(민음사에서 나온 시집이었다) 결국 읽다 말았다. 나머지 책들도 아직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하긴 내가 사서 읽지 못한 책들이 어디 한 두 권이던가. 작년에 산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도 이번 주에 다 읽지 않았던가.

 

 

나의 짧은 한시간 남짓한 알라딘 영등포점 방문은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끝이 났다. 아마 더 머물렀다면 상당히 많은 책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으리라. 뭐 뻔한 게 아닌가. 그리고 미처 그곳에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보물들을 만날 수도 있었겠지. 그리고 보니 예전에 분명히 서점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갔지만 구하지 못했던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을 서가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 동네 알라딘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은 요즘 새로 들인 습관 대로 밑줄 좍좍 긋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읽고 싶은 책들을 모두 다 사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신간 수급이 상대적으로 늦어져서 도서관을 마냥 애용할 수도 없고. 관심작의 경우에는 라이벌들이 많아 빌리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책은 사서 읽어야 한다는 결론인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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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6-01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서점 공간이 넓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굿즈 전용 진열대가 서점 공간을 지배해서 내부 분위기가 번잡하게 느껴질 거예요. ^^;;

레삭매냐 2019-06-01 20:05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아무래도 사업을 영이하는
사업체이다 보니, 이윤이 되는 일에
좀 더 궁리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굿즈샵이 그렇긴 하지요.

붕붕툐툐 2019-06-01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서점에 오래 머무를 수록 사고 싶은 책들이 늘어나죠~ 뻔한 일에 공감하고 갑니다^^

레삭매냐 2019-06-01 20:08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아무래도 -
그래서 서점에서는 빨랑 필요한 책만
원래 사려고 했던 책들만 가져가야
하는데...

또 그렇게 뒤지다 보면 왕건이들을 만
날 수 있어서리... 미련을 버릴 수가
없더라구요 ㅋㅋㅋ

bookholic 2019-06-01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들과 자주 가던 북수원점이 없어져서 아쉬워요..^^

레삭매냐 2019-06-01 20:1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는 문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해서 원하던
책들을 데리고 올 수 있어서
좋은 추억으로 남았답니다.

그래도 아쉽긴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