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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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올해 처음 본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후배 녀석은 정말 아주 오래 전의 일들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들처럼 그렇게 나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10개월 전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나의 기억도 그 녀석이 수정해 주었다.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만족스러웠다. 좀 추워서 집에 오는 길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뭐 정도는 감수해야지.

 

주말행사인 도서관 방문을 했고, 난 세 권들의 책들을 빌렸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만 읽을 수 있는 만화를 좀 읽었다. <앨런의 전쟁>은 분량이 좀 있는 책이라, 다음에 가서 또 읽는 것으로. 그래도 한 60쪽 정도 읽었나 보다. 간만에 마스다 미리의 책이 눈에 띄어 골라 읽었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그전에 심심한 그림체의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들을 계속 읽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0년차 서점 직원인 쓰치다 신조가 주인공이다. 나이는 32. 도쿄에 작은 공간에 서식하는 초식남이다. 연애는 6년인가 7년 전이 마지막이라고. 당연히 설정은 성실하고 마음에 따뜻한 친구다. 이 책이 나온 게 9년 전이니 또 지금의 서점 상황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출판시장과 서점은 동반 몰락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걸 집어 삼켜 버린 너튜브와 각종 OTT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극 중에서 마스다 미리는 쓰치다의 입을 빌려 왠지 흔들리는 전철에서 문고본을 읽는 어른들의 모습이 참 멋졌다는 말을 무심코 내던진다. 어제 약속 장소로 가는 전철 안에서(만원 전철이라 무엇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유디트 헤르만의 신간 <레티파크>를 가방에 담아 갔지만 정작 읽지는 않고 대신 핸드폰 게임을 했다. 2023년 한국의 전철 풍경은 그랬다.

 

얼마 전, 신문에서 서점에 들러 책을 사는 충동구매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문제는 주변에 그럴 만한 서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서점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신간 소설 대신 참고서와 문제집만 즐비하다. 왜냐구? 소설책 판매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갔던 경인교대 근처에는 서점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인데 말이다. 이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책과의 연결점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뭐 대충 잡아 2014년의 일본에서는 그래도 월급날이면 주머니가 두둑해진 월급쟁이들이 스스로에게 보상해 주기 위해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그러던 시절이었나 보다. 왠지 낭만이 느껴지지 않나 싶다. 월급날이면 서점의 매출이 올라갔다는 말이 좀 신기하게 다가왔다. 정말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로구나. 요즘에는 주머니에 돈이 생겨도 책을 사지 않는다구요 마스다 미리 씨. 그리고 보니 나는 소소하게 공모주 청약으로 번 돈을 책 사는데 쓰고 있구나 싶다. 지난 금요일에 번 돈으로는 옆지기에게 타코 플래터를 사주었다. 다음주에 혹여 공모주로 조금 벌게 된다면, 이달에 나올 예정이라는 존 밴빌의 <케플러> 펀드에 응모하고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쓰치다 씨는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소시민의 전형이다. 보통 혼자 먹는 저녁 메뉴로 할인된 장어 도시락을 기대하기도 한다. 거기에 나마비루까지 한잔 곁들인다면 아마 더 바랄 게 없겠지. 나도 아까 마트에 들렀다가 몰슨 비어가 4캔에 7,000원이라고 해서 잠시 혹했다. 지난주에만 두 번이나 달렸는데 당분간 자제해야지 싶어서.

 

서점 직원으로 아마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쓰치다 씨는 자기 인생의 의미에 생각하는 멋쟁이다. 우리는 보통 그런 생각을 잘하지 않으면서 살지 않나? 어려서 읽은 SF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빗대 우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스다 미리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서사라면, 왠지 작가의 심리 상태에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쓰치다는 후배 마쓰다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일들을 무람하게 해낸다. 서점 고객을 찾아 간다거나, 다른 서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좌석 배치 혹은 동화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을 자신의 서점에도 도입하는 건 어떻겠냐며 점장을 설득하기도 한다. 책을 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 서점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프로젝트가 아닐지.

 

요코하마에서 병으로 고생하시는 큰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래는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역기 사람 좋은 쓰치다 씨는 큰아버지를 찾아가 쓸데없는 이야기로 웃기기도 한다. 병이 나으면, 긴자의 맛집을 찾아가자고 했던가. 병상의 큰아버지는 큰어머니에게 조카가 좋아하는 장어덮밥을 사오라고 부탁하신다. 병실에선 먹는 장어덮밥은 맛있지 않았다고 돌아오는 길에 쓰치다는 회상한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마쓰다가 주선한 미팅은 완벽한 실패였다. 미팅에 나온사키에게 쓰치다는 호감을 표현하지만, 사키는 결혼할 애인이 있고 대타로 나온 거라고 말했다. 아니 이런! 그런데 정작 마쓰다의 애인이라고 생각했던 야요이가 여자사람친구였고 쓰치다에게 관심을 보여 둘은 영화도 보고 연애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첫날 쓰치다가 야요이에게 대담한 제안(?)을 해서 독자를 놀래키키도 한다. 어라 이 친구, 이런 면이 다 있었네하고 말이다.

 

뭐 이 정도면 내가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서 읽은 것들에 대한 대강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시간에 쫓기며 관내열람 전용 만화를 보고 낮잠을 늘어지게 잔 다음, 일어나 교촌에서 허니콤보 치킨을 주문해서 실컷 먹고 나서 낮에 본 만화에 대한 소소한 감상들을 적는다. 그거면 된 거다. 그런데 설거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손등이 많이 텄다. 핸드크림을 발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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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12-03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주식으로 돈을 버시는 분이셨군요 레삭매냐님 존경♡ 직장 근처에 큰 서점이 있어서 가끔 점심시간에 책을 사곤 했었는데(현저히 줄었다는 충동구매 일인;) 최근 그 서점이 폐업을 했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3-12-03 22:17   좋아요 2 | URL
아닛 누가 보면 목돈을 버는 줄
알갔습니다.
그런 건 아니고, 아주 소소하게
초큼 책값 정도 모으고 있답니다 ^^

새로 회사가 이사간 곳에 K문고
가 있어서 저도 점심 먹고 나서
가끔 구경간답니다. 새책 구경하
는데 제격이지요.

서점의 폐업, 그저 안타깝습니다.

2023-12-04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4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12-06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핸드크림 어디거 쓰시나요?
치킨 먹고픈 마음이 들게 하네요.
잔잔한 이야기인듯 보입니다.

레삭매냐 2023-12-06 10:58   좋아요 1 | URL
저는 아트릭스를 사용한답니다 ^^
집에도 하나, 사무실에도 하나
그리고 차에도 비치해서 며칠
동안 죽어라 쳐발쳐발했더니
손등이 다 나았답니다.

어젯밤에 먹다 나은 허니콤보 치
킨에 샘 애덤스 비루 한 깡 했습
니다.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세계사를 흔든 패전사 이야기 - 유튜브 채널 패전사가 들려주는 승리 뒤에 감춰진 25가지 전쟁 세계사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윤영범 지음 / 북스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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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튜브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절이 왔다. 이제는 너튜브로부터 책으로 진화하는 그런 시절이 되어 버렸다. 사실 <패전사>는 예전에 빌레르 보카주 전투를 다룬 콘텐츠로 이미 접했지 싶다. 무장친위대 소속 SS 전차지휘관이었던 미하엘 비트만의 신들린 활약에 아마 넋을 놓았더랬지. 어떻게 아무리 독일군의 티거 전차가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영국군 전차여단을 무력화시킬 수 있단 말인지.

 

세상은 승리만 기억할 뿐, 패배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쓰라린 패배의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승리보다 패배가 훗날 더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전쟁에서 그런 점을 배우게 된다면 그건 비극이다. 인명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지휘관의 명령과 고집 때문에 수십만의 병사들이 전장에서 죽어나간 게 불과 100년 전의 일들이다. 아니 전쟁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된 진주만 공격을 예를 들어 보자. 중일전쟁으로 광대한 중국이라는 전장에 발이 빠져 버린 일본에 대해 태평양에서 서로 이해가 충돌하던 미국은 전쟁을 그만 두고 철군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군부가 조종하는 일본 정부는 그럴 수가 없었다. 19417월 일본군이 비시 정부의 식민지였던 남부 베트남에 진주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은 미국내 일본 자산의 동결, 그리고 일본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물자인 석유금수조치를 취하면서 좀 더 강경하게 중국에서 철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연합함대 총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처음에는 대미개전에 반대했지만, 미국의 석유금수조치로 앉아서 죽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결국 기동부대를 진주만에 전개하게 된다. 미국도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안일한 대응으로 결국 진주만에서 정박 중이던 태평양 함대의 상당수가 격침되고 파괴되었다. 일본군이 무리를 해서라도 진주만에 대한 3파 공격에 나섰다면, 확실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고 미국은 진주만에 침몰한 전선들을 인양해서 곧 반격에 나서게 된다. 항모전단이 진주만에 없었던 것도 천운이었다. 미국의 진주만 패전은 패배가 아니었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 성공은 완벽한 성공도 아니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후, 파죽지세로 파리를 해방하고 독일의 심장부로 진격해서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영국군 원수 몽고메리의 야심찬 계획이 바로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겠다는 마켓가든 작전의 기본 얼개였다. 몽고메리는 우선 노르망디 상륙 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국 82, 101 공수부대와 영국 1공정사단을 마켓 부대로 네덜란드 요충지에 강하시켜 교량을 확보하고, 지상에서 영국 30군단이 전차로 밀어 붙이는 가든 부대로 서부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던 독일군을 일거에 섬멸하겠다고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를 설득했다.

 

원대한 계획이었으나, 이 또한 처절하게 실패한 작전으로 판명되었다. 현지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들이 수집한 정비를 위해 2개의 독일 SS 기갑부대들이 집결해 있다는 정보를 영국군은 애써 무시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인 아른헴 대교(영화 <머나먼 다리>의 배경)를 영국 1공정사단인 붉은 악마들이 악전고투 끝에 성공적으로 확보했지만, 후속부대인 30군단의 진격이 독일군의 치열한 저항에 요격되면서 결국 실패했다. 연합군이 압도적인 공군력을 이용해서 공중 보급에 나섰지만, 대부분의 물자들이 독일군에 수중에 들어갔다. 훗날 영국군을 포로로 잡은 독일군들이 연합군이 공중에서 보급한 보급품으로 적군과 싸우는 수지 맞는 장사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마켓 가든 작전>은 처음부터 너무 낙관적인 전개를 기대했기 때문에, 작전이 실패할 경우 어떻게 한다는 플랜 B에 대한 구상도 없었다고 한다. 경무장한 소수의 공수부대가 독일군의 기갑부대를 상대한다는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전투가 그렇듯, <마켓 가든 작전> 역시 지휘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애꿎은 병사들만 전장에서 소모된 경우였다. 아니 성공하면 오히려 이상한 작전이 아니었을까.

 

진주만 기습 후, 말레이 앞바다에서 벌어진 영국과 일본의 말레이 해전 역시 전쟁사의 흐름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전은 거함거포 위주의 포격전이 중심이었다. 세계의 바다를 제패한 영국은 해상에서 압도적 전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해 왔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역시 적어도 바다에서는 영국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함재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해전은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미 진주만에서 항공모함이 주축이 된 기동함대로 재미를 본 일본은 이번에는 영국을 상대로 자신들의 혁신적 기술과 전략을 시험대에 올렸다.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 전투기 조종사들은 훈련과 실전을 통해 얻은 실력으로 미영 연합군을 압도했다. 본국이 독일과의 사활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동방에 주력 부대를 파견할 수가 없었던 영국은 그래도 동양의 양대 진주(홍콩, 싱가폴)로 불리는 거점 가운데 하나인 싱가폴을 방어하기 위해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를 파견했다. 하지만, 먹잇감을 발견하고 그야말로 벌떼처럼 달려드는 일본 함재기의 공격 앞에 대영 제국의 전함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본국에서 두 전함들의 격침 소식을 듣고 전시 수상이었던 처칠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훗날 비슷하게 일본이 자랑하던 거함 야마토와 무사시가 비슷한 궤적을 겪게 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비교적 가까운 사례인 20056월 네이비 실이 투입된 레드윙 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탈레반 2인자 아흐마드 샤를 암살하기 위해 투입된 네 명의 네이비 실 정찰조의 위치가 탈레반 전투원들에게 노출되면서 적들의 공격에 노출된 대원들의 이야기다. 악전고투 끝에 마이클 머피 중위가 무선전화로 본부에 구조 요청하는데 성공했지만, 결국 탈레반의 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한다.

 

애초에 정찰 대원들이 아프간 민간인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자신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그들을 처치해야 한다는 논쟁부터 시작해서 본부와 무전연락이 두절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고립된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했던 동료 대원들이 탄 치누크 헬기가 탈레반의 RPG 공격을 받고 추락하면서 헬기에 탑승했던 대원들이 모두 전사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론 서바이버>라는 영화가 8년 뒤에 제작되기도 했다. 마크 월버그가 연기한 마커스 러트웰은 부상당한 채, 현지 파슈툰 사람인 모하메드 굴랍의 도움을 받아 구출되었다.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실제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연기를 스턴트 없이 직접 연출했다고 했다던가.

 

너튜브 패전사에는 나오지만 책에서는 빠진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독일군이 처음으로 맞붙은 시디부지드 전투와 카세린 협곡 전투도 주목할 만하다. 토치 작전으로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미군이 약체 비시 정부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다가, 정예 독일군과 처음으로 상대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쓴맛을 제대로 보게 됐다. 모래먼지가 이는 사막에서 전차 운용을 해본 적이 미군의 기동부터 시작해서, 미군 지휘관 로이드 프레덴덜은 처음부터 너무 안일하게 독일군을 상대했다.

 

미군이 독일군과의 첫 교전에서 당한 쓰라린 패배에서 교훈을 얻었다가 이 패전의 주된 서사다. 난 그런데 그 점보다 패튼 장군의 사위가 포로가 되었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결국 패전 무렵에 가서야 포로생활에서 풀려난 패튼의 사위는 훗날 장인보다 더 많은 별을 단 사성장군이 되었다던가.

 

다양한 패전의 서사 속에서 내가 읽어낸 것은 전쟁은 반드시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9-19 합의파기로 한반도에 다시 무력충돌의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반대한다. 어떤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는 사실을 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지 그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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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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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었다. 어제 인천에 갔다가,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바로 <베니스의 상인>이었다. 기록을 찾아 보니 지금으로부터 딱 12년 전에 같은 책을 읽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가고, 독자의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게 되는가 보다. 지금으로부터 또 십년 뒤에 <베니스의 상인>을 읽게 된다면 어떤 감정일지 자못 궁금하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는 간단한다. 베니스의 거상 앤토니오의 절친 바싸니오는 벨몬트의 후계자인 포오셔 양에게 청혼하기 위해 거금 3,000다가트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결혼도 그 당시에는 어쩌면 사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혼 사업에 뛰어드는 이를 위해서는 투자비가 요구된다. 학자이자 군인인 바싸니오는 사람은 좋지만 그런 거금이 없다. 앤토니오 역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다 위에 띄워 놓은 상태다. 전 세계에서 향료와 비단을 실은 배들이 베니스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앤토니오는 고리대금업을 하던 유대인 상인 샤일록을 증오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자금을 융통한다. 그리고 자신을 모욕하는 앤토니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샤일록은 90일의 약속 기간을 정하고 만약 자금 회수 일정을 지키지 못한다면, 앤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취한다는 보증서를 작성한다.

 

이 보증서는 처음부터 악랄한 샤일록의 계략이었다. 처절한 복수를 원하는 그에게 3,000다카트의 12배가 되는 36,000다카트도 필요 없다. 오직 그에게 필요한 건 앤토니오 심장 부근의 살 1파운드다. 정말 살벌한 계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야만스러운 계약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계약의 쌍방이 알고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앤토니오는 계약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사태는 파국으로 흐른다.

 

희곡의 다른 축에서, 자금은 융통한 바싸니오는 포오셔의 작고한 아버지가 마련한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고 마침내 포오셔의 남편이 되는데 성공한다. 이제 자신의 은혜를 갚을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보니, 그전에 포오셔는 모로코 군주의 피부 색깔 때문에 그가 배우자의 관문을 통과하지 말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그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인종차별주의적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포오셔의 이미지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페넬로페이아의 그것과 유사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영국 출신 구혼자에게는 이탈리아 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나. 그 장면에서는 또 제노포비아가... 아 너무 PC만 추구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쨌든 포오셔는 바싸니오에게 언약의 반지를 건네 주고, 어떠한 경우에는 그 반지를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런데, 이런 설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앤토니오가 샤일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자신의 살점 1파운드를 떼낼 위기에 처한 것처럼, 바싸니오 역시 포오셔가 건네준 반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빌드업은 고전의 전형이라고 봐야 할까. 터부는 반드사 깨져야 하고, 깨진 터부가 불러온 운명의 소용돌이가 긴장감을 창출하는 내러티브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자비 대신 복수만을 울부짖던 샤일록은 벨라리오 박사의 추천을 받은 법률전문가(포오셔의 변장)의 등장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처음에 사람들이 요청한 대로, 원금이나 그 이상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았다면 별 문제 없이 끝났을 재판의 진행이 자신의 명예와 평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재산까지 송두리째 날리게 만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번에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으면서 샤일록이 정말 원한 것은 자신의 사업을 위협하는 경쟁자의 제거가 아니었나 싶다. 중세/근대 시대 고리대금업은 선량한 기독교인들이 할 법한 사업이 아니었다. 저주 받은 유대인들이나 하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모양이다. 고리대금업을 천시하고, 원금에 대한 이자보상을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앤토니오가 샤일록의 눈에는 정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바싸니오는 앤토니오를 양심적 상인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는 정말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향료와 비단 수입이 엄청난 수지가 남는 장사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전 재산을 그런 방식으로 투자하지는 않았다. 앤토니오가 샤일록을 통해 바싸니오에게 결혼 준비금을 융통해 주는 순간, 앤토니오의 모든 재산들은 바다 위에 불확실한 상태로 떠있었다. 만약 폭풍니나 해적에 의해 난파되거나 납치되었다면 앤토니오는 정말 알거지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샤일록의 딸 제시커도 아버지의 뜻에 거슬러 다이아몬드 일체를 가지고 사랑의 도주행에 나서지 않았던가. 아무리 이교도의 딸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일탈은 허용되지 않았으리라. 중세 내내 탄압받던 유대인들을 이교도로 몰아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라는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에서 앤토니오의 심장 부근에서 살점 1파운드를 떼내겠다고, 샤일록이 시퍼렇게 칼날을 가는 장면이야말로 셰익스피어가 빌드업에 성공한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절정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자초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앤토니오가 덤덤하게 받아 들이겠다며 친구 바싸니오에게 말하는 장면은 희극적이기도 하다. 만약 사태가 그대로 진행됐다면, 친구의 도움을 받아 포오셔와 결혼하게 되는데 성공한 바싸니오가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으리라. 그가 진정 양심적인 학자이자 군인이었다면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친한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렇기 때문에 아내 포오셔가 나서서 조금은 사기가 연루(?)된 현명한 방식으로 해피 엔딩으로 이끌어 가지 않았던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그동안 제목 <베니스의 상인>이 악랄한 유대인 상인 샤일록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다시 읽어 보니 멍청한 상인 앤토니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상당히 중의적인 의미가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상인이 추구하는 목적인 이윤이 샤일록이 집요하게 구가하다가 결국 패가망신한 복수에 우선하고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셰익스피어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래 고전은 원래 이렇게 다시 읽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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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26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 예전에 읽었는데 살을 베어가겠다는 말이 나오죠.ㅋ

레삭매냐 2023-11-26 18:58   좋아요 0 | URL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정확하게 어디라고는 명시되어 있지
않고 그저 살 1파운드라고 되어 있더
군요.

그걸 샤일록이 무기 삼아 심장 부근
에서 살을 베어가겠다고...

법규정 적용의 허술한 점을 정확하게
타격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감 2023-11-26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으으 이거 진짜 재미있습죠.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더라는.

레삭매냐 2023-11-26 18:59   좋아요 1 | URL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섞여 있
어서 그런지 말씀해 주신 대로 매력
뿜뿜이었습니다.

앤타이-세미티즘은 그 시절부터 존재
했었나 봅니다.

새파랑 2023-11-26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전은 다시 읽어야 하는 법이군요~!! 레삭매냐님 리뷰 읽어보니 이 책 엄청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3-11-26 19:04   좋아요 1 | URL
대략의 줄거리들은 알고 있었으나
또 새롭게 보이니, 역시 고전 파워
가 아닌가 싶습니다 :>

페넬로페 2023-11-26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단순히 느꼈던 권선징악의 결과와는 다른, 훨씬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유대인을 사악하게 몰아가는 법과 관습들이 지독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레삭매냐 2023-11-26 22:21   좋아요 1 | URL
말씀해 주신 대로, 저도 단순하게
권선징악으로만 보았는데 다시 또
읽어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
습니다.

기독교 중심 사회에서 유대인들을
이교도로 보고, 십자군 전쟁 때도
그랬지만 유구한 차별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전집 2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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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달이 지나, 이번 주말 달궁 독서모임 출격할 때가 되었다.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백 쪽 남짓한 책이라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판단착오였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칼비노가 대단한 작가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투르크와의 전쟁이 벌어졌고, 테랄바 출신 화자의 외삼촌 메다르도 자작은 보헤미아로 황제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쟁터로 출발한다. 오스만 투르크의 비엔나 침공은 1529년과 1683년 두 번 있었다. 사실 <반쪼가리 자작>에서 판타지 서사의 개시를 예고하는 투르크의 침공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어쨌든 전장에서 메다르도 자작은 투르크군의 포탄에 맞아 몸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억세게 운이 좋게 응급조치를 받은 메다르도 자작은 반쪽의 몸으로 생환하는데 성공한다.

 

자 이제부터 소설은 판타지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최전선에서 들것에 실려 테랄바로 돌아온 반쪼가리자작은 순식간에 악마의 화신으로 변신한다. 기존의 선한 부분은 대포에 맞아 날아가 버린 모양이다. 테랄바의 영주로 공정한 재판을 행해야 하는 자작은 그야말로 독재정의 진수를 보여준다. 재판에 회부된 약탈자들도, 그리고 그들을 고소한 피해자들도 모두 사형에 처해 버렸다. 농민들이 세금을 제 때에 내지 않아도 자작은 무조건 처형으로 응수했다. 어쩌면 칼비노는 이 지점에서 법치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싶었나.

 

참 그리고 보니 그전에 아버지 아이올포 자작도 잔혹한 행위를 일삼는 불구 아들의 횡포에 놀라 비명횡사해 버렸다. 그리고 자작은 자신을 어머니처럼 키워준 유모 세바스티아나도 문둥병으로 몰아 추방해 버렸다. 반쪼가리 자작의 폭정은 계속된다.

 

이탈로 칼비노 작가는 1차 세계대전에서 비록 전승국이 되었지만,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가 집권한 이탈리아의 암울한 현실을 반쪼가리 자작의 폭정이라는 설정에 녹여낸다. 그렇다면, 소설 도중에 등장하는 위그노들은 누구인가. 아마 기근과 페스트에 시달린 보통의 이탈리아 사람들을 상징하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작의 조카인 화자는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기록한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파시즘에 맞서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던 공산당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들은 대의명분과 민중의 지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었다. 칼비노 역시 공산당원이었다. 하지만, 서방세계에서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선거로 집권하는 것을 좌시할 수가 없었다. 결국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방에서는 기존의 파시스트들이 극적으로 변신한 우파의 집권을 지원했다. 전후 일본과 서독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몸의 오른쪽 부분만 남은 반쪼가리 자작의 만행이 도를 더해 가고 있을 때, 투르크군의 대포에 맞아 산산 조각난 것으로 알고 있던 자작의 나머지 반쪽이 등장한다. 그리고 보니 그전에 양치기 소녀 파멜라에게 영혼을 빼앗긴 사악한 반쪼가리 자작이 그녀를 성으로 잡아가겠다고 협박을 했던가. 자작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숲속의 동굴에 숨어 사는 길을 택한 파멜라. 그리고 그런 파멜라에게 세상의 소식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맡은 게 바로 화자라고 했던가. 그 장면에서는 무솔리니 정권에 저항하면서 무장투쟁에 나선 빨치산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조금 진부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나머지 반쪼가리 자작의 성격은 정확하게 사악한 반쪼가리 자작의 그것과 정반대였다. 이런 설정은 분열하고 갈등하던 이 둘이 만나 결국 결합하게 된다는 건, 루키노 비스콘티 같은 네오리얼리스트들에게는 그야말로 판타지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던 서사가 비극이 아닌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아쉬웠다. 어쩌면 이 소설이 발표되던 1952년의 시대적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 갈등과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된 방식이 전통의 결투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근세적 발상이라고나 할까. 결투에 나선 둘 중의 하나는 끝장이 나야 마침표를 찍는 방식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문제해결이 아니라, 아예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소를 제거시키는 방법이 옳은 것일까. 결투 무대에서 온전하지 않은 육신으로 상대방에게 파멸적 일격을 가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상이한 자아들의 자기분열적 모순을 이탈로 칼비노는 극대화시킨다. 만약 누군가 이 장면을 스크린에 담는다면,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인터메조를 BGM으로 깔면 좋지 않나 싶다. 아주 느린 연출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한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 또한 나란 인간의 한계인 것을.

 

[뱀다리] 또다른 문제적 인간들인 기술자 피에트로키오도와 의사 트렐로니, 한센병 환자 갈라테오에 대해서는 토요일날 좀 들어 봐야지. 다시 들어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인터메조는 웅장하고 짜릿하다.

 

[인용 104페이지]

 

그렇게 테랄바에서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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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1-09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을 통해서 왠지 레삭매냐님께서는 언변이 출중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독서모임에서는 읽고 생각한 것을 잘 정리해 말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이탈로 칼비노 작가의 작품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관심 가져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3-11-10 00:41   좋아요 3 | URL
출중한 언변까지는 아무래도 무리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가 봅니다 ^^

그래서 보통 독서모임에서 할 말들을
적어 가곤 한답니다. 물론 대개 처음
에 의지와는 다르게 돌아가지만요.

저는 15년 전에 <왜 고전을 읽는가>
라는 살벌한 책으로 칼비노 작가를
처음 만나고 나서 두 번째인가 싶습니다.

서니데이 2023-11-09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 소설가의 책들은 가끔 낯선 판타지 느낌이 들어요.
아마도 우리 나라와는 다른 문화라서 그런 거겠지 싶기도 합니다.
이 작가는 유명한데도 읽은 책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다음 기회엔 조금 더 찾아봐야겠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11-10 00:42   좋아요 1 | URL
말씀해 주신 대로, 그 동네 사람들이
판타지물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곰돌이들이 시칠리에서 사람과 싸
우기도 하구요...

감사합니다 꾸벅 -

그레이스 2023-11-16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비노는 세 권 정도 읽었는데 요 책은 아직입니다.
내용이 흥미롭네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3-11-16 18:14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이 칼비노의 두번 째
책이었답니다.

뭔 도시인가도 하나 개지구 있
는데, 상당히 철학적인 책이라
는 말을 이번 모임에서 얼핏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로 처음
만났는데, 너무 어려워서 ㄷㄷ
 
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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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트 기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너튜브 <역전다방> 태평양전쟁 편을 통해서였다. 사실 난 해당 프로그램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곳곳에서 전투에 대한 소개를 기대했지만, 역전다방 4인방은 자세한 전투의 개요 대신, 전쟁의 전반적인 흐름과 새롭게 개발된 전쟁무기 같은 기술을 소개해 주더라.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막대한 전비를 들여 개발한 슈퍼포트리스 B-29와 원자폭탄이 과연 전쟁 종결에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이 책의 말콤 글래드웰은 묻고 있다.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의 발전은 전쟁의 흐름까지 바꿀 기세였다. 훗날 미공군의 주축이 되는 맥스웰필드의 이른바 폭격기 마피아들은 상대를 압도하는 공군력만으로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신조를 가졌다. 과연 그랬을까?

 

지금은 레이더 항법장치와 GPS의 발전으로 정밀폭격이 가능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까지만 해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히틀러 정권의 2인자였던 공군원수 헤르만 괴링은 루프트바페를 동원해서 유럽대륙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영국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런 영국 항공전에서 전혀 교훈을 배우지 못한 미국의 폭격기 마피아들은 공군력을 동원해서 적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문제적 인물이 바로 폭격조준기를 발명한 칼 노든이다. 그러고 보니 역사의 진보는 칼 노든 같은 괴짜와 집착의 결합에서 나온 무엇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도 정밀폭격이라는 신화에 집착한 폭격기 마피아들은 도무지 포기할 줄 몰랐다.

 

태평양전선에서 일본군을 상대하던 헤이우드 핸셀과 커티스 르메이는 전혀 성향이 다른 캐릭터들이었다. 전자가 폭격기 마피아의 이상을 대변하는 몽상가였다면, 후자는 전형적인 실천적 인물이었다. 적을 패배시킬 수 있다면, 르메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실전형 장군이었다. 그런 점에서 르메이는 적국의 생산수단을 무력화시키는 고고도 공중폭격이라는 원래의 의미 대신, 하버드 대학에서 개발된 네이팜탄을 이용해서 민간인까지도 쓸어버리겠다는 전쟁광 같은 인물이었다. 결국 미국의 전쟁지도부는 핸셀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호전적인 르메이를 배치시키면서 일본에 대한 대대적인 공중폭격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폭격기 마피아들이 독일에서 볼베어링 산업을 마비시켜 나치 독일의 전쟁의지를 꺾기 위해 시도한 슈바인푸르트와 레겐스부르크 폭격의 효과 역시 미비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들의 신조는 꺾이지 않았다. 효과적 전쟁의 수행이라는 폭격기 마피아들의 의도는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폭격기 마피아들의 신조였던 고고도 정밀폭격의 신화는 사실 효과가 없었다는 게 전후에 상세한 보고서로 입증되었다. 르메이크는 인도 콜카타에서부터 험프(히말라야 산맥)를 넘어, 청두 그리고 일본 본토 공격에 나섰지만 폭격의 효과는 미미했다. 특히나 청두에 연료 공급을 위해서는 1리터를 위해 12리터를 사용해야 하는 아이러니와 직면했다. 험프를 넘다가 항공기 손실은 물론이고, 폭격기에 탑승한 항공병들도 무수히 죽어나갔다. 적의 생산시설에 심대한 타격을 가한 것도 아니었다.

 

르메이는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무리를 해가면서 작전을 수행해 나갔다. 수십억 달러를 들여 개발한 슈퍼포트리스를 그냥 놀릴 수는 없었다. 이 논리는 나중에 핵폭탄 사용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나중에 수정주의 역사가들의 전후 연구에 따르면, 원자폭탄을 두 방이나 맞고서도 끝까지 저항하던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 낸 결정적 요인은 바로 극동에서 150만 소련군의 참전이었다. 일본의 패전이 뚜렷해져 가는 상황에서, 굳이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할 이유가 있었을까. 소련군의 참전과 더불어 기존의 해상봉쇄만으로도 충분히 일본의 패망은 예견되었다. 심각한 기아에 직면한 일본 사람들을 위해 파란 눈의 쇼군 맥아더는 1945년 말에 막대한 양의 식량공급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네이팜탄이 하버드 대학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저자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한 사탄의 경우를 들어 핸셀과 르메이를 비교하기도 했는데, 기가 막힌 비유가 아닌가 싶다. 몽상가는 유혹을 거부했지만, 당장 실적을 군부와 수년간에 걸친 전쟁에 지친 시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했던 실천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구나 르메이는 적국에 대한 무차별 폭격에 대해 주저하던 자신의 전임자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도교대공습에 나서기에 앞서, 작전 목표를 전달받은 슈퍼포트리스 조종사들의 항의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우리의 맹목적 실천가는 그들의 항의를 가볍게 무시해 버렸다. 전쟁에서 미국이 졌다면, 바로 전쟁범죄로 처벌받을 만한 그런 명령이 아니었을까.

 

지난달에 사서 조금 읽다 다시 집어 들었는데,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가독성 하나는 가히 최고였다. 그리고 그동안 보고 들은 것들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효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역시 독서는 이런 점에서 종합적 배움과 깨달음의 최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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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1-06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는가 봅니다. 저는 전쟁사는 영...ㅠ
이러고 저러고 지간에 전쟁이나 어떻게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소식을 듣는 것도 괴롭더군요. 덕분인지 러-우 전쟁은 잠잠한 것 같기도 한데...
말에 의하면 전쟁은 그동안 만든 무기를 소모시키기 위한 거란 말도 있던데
그러기엔 인간은 참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ㅠ

레삭매냐 2023-11-07 21:02   좋아요 1 | URL
전쟁사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라 종종 읽는답니다 ^^

이 분은 전사가도 아닌데, ‘집착‘
으로 글을 쓰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소위 말하는 전쟁상인들은 항상
자신들이 애써 만든 무기들을 소
진할 그런 전쟁을 원한다고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전쟁 대신 평화가
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