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할아버지 1
네코마키 지음, 오경화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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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뱅크스의 <거리의 법칙>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출동했다. 평일 오전의 도서관은 한산했다. 연세 드신 분들이 책상에 앉아서 신문을 보시고 계셨다. 나도 지난주에는 도서관에서 보수언론의 사설을 읽었지. 요즘은 모든 기사를 온라인으로 소비하다 보니 진짜 신문은 집에서 거울 닦을 때만 사용하게 된다. 콩으로 만든 인쇄잉크로 찍은 어느 신문은 품질이 정말 좋더라. 화장실 세면대 거울 닦는데 아주 유용하다. 세면대 얼룩이 뽀득뽀득 잘 닦인다.

 

843 분류 코드로 가서 <거리의 법칙>을 찾다가 우연히 네코마키 작가의 <고양이와 할아버지>라는 만화책과 조우했다. 이런 게 도서관의 참맛이 아닌가 말이다. 권수 제한으로 다 빌릴 수 없었고, <거리의 법칙><고양이와 할아버지> 두 권을 빌려서 집으로 향한다. 룰루랄라~

 

2년 전에 요시에 상과 사별하고 외롭게 일본의 어느 섬마을 사는 은퇴한 교사 다이키치 씨가 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기에 게으르고 귀차니즘의 정수 같아 보이는 고양이 타마(사부로)가 다이 씨의 보살핌을 받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작고하신 요시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홀로 남게 될 남편 다이 씨를 타마 녀석에게 부탁했다고. 확실히 네코마키 작가는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방법을 잘 아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모든 썰들을 왕창 풀어 헤치지는 않는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아주 조금씩 그렇게 50년짜리 이야기 보따리를 슬슬 풀어주신다.

 

다이 씨의 이웃에는 고양이라면 질색하는 어릴 적 시절 동무 이와오 할아버지가 산다. 다이 씨가 입시 준비를 해서 교사가 되었다면, 이와오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아버지의 배를 탄 평생 뱃사람이다. 지금도 배를 띄우고 바다에서 숱한 물고기를 기력 좋게 낚아 올리신다. 그런 그의 주변에 동네 고양이들이 득시글거리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다이 씨와 오랜친구 이와오 씨가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 회를 떠서 사이좋게 마루에 걸터 앉아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는 장면은 참 보기 좋더라. 그리고 어느새 주변에서 슬슬 모여드는 냥이들. 할배들만 먹지 말고 자신들에게도 좀 나눠 주라는 눈길 레이저빔을 내쏜다. 이와오 씨가 주섬주섬 물고기들을 잘라서 아기 냥이를 비롯한 고양이 친구들에게 인심 좋게 한턱 쏜다.

 

요시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홀로 남은 다이 씨의 주변을 고양이 타마가 지킨다. 장성한 아들은 대처에 나가 살림을 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아버지를 대도시 자신이 사는 곳으로 모시고자 하지만, 우리의 다이 씨는 단박에 거절한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이웃에서 농사지은 완두콩으로 조촐하게 밥도 짓고, 컵청주도 즐기고 그야말로 미니멀한 삶을 즐긴다.

 

문제는 나이든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뜬다는 점이다. 직접 농사지은 무를 공급해 주던 삿짱도 하늘나라로 떠나고.. 지금 1편에 나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2편에 나오는 이야기인지 좀 헷갈리지만 어쨌든 다이 씨도 큰일(?)을 치를 뻔한다. 매일 같이 들리는 우체국 아저씨의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한다. 만화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네 인간이 삶이 마주하게 되는 생로병사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요시에 할머니와 만남도 아마 다른 고양이 녀석이 이어주었던가? 묘생 10년차의 타마도 아기 고양이 시절, 할머니가 구해줘서 다이 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소심한 남자 다이 씨가 요시에 씨에게 청혼하는 방식도 참 예스럽더라.

 

심장이상으로 쓰러져서도 자신 이상으로 타마를 걱정하는 다이 씨의 모습에서 과연 타마가 그에게는 반려묘 이상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에서 이런 잔잔한 이야기들을 퍼올리는 네코마키 작가의 실력에 감탄했다. 해가 마루에 든 날 좋은 날, 다이 씨와 타마가 같이 마루에서 낮잠을 즐기는 시퀀스는 과연 명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쇼와 시절, 마을에서 차출된 젊은이들이 남양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을의 댕댕이들이 희생양이 되어 끌려가는 장면도 애처롭더라. 무지막지한 권력을 행사하며 아무 의미 없는 전쟁을 계속하던 일본 군부와 정치 시스템을 비난하는 대신, 애꿎은 댕댕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지. 섬마을 특유의 고립감과 미신적 발로가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추락한 미군 비행사의 금발머리를 연상시키던(귀신?) 신원미상의 인물이 록밴드 가수를 꿈꾸던 동네 청년이었던가 어쨌나.

 

올해 9월까지 9권이 번역 출간된 <고양이와 할아버지> 시리즈를 검색해 보니 2016년부터 1년 주기로 한 권씩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75세 다이 씨가 85세 정도 된 모양이다. 아니 그렇다면 타마가 20살 정도 되었단 말인가? 할아버지의 무병장수도 그리고 냥이 타마의 활약도 앞으로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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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2
자크 스트라우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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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크 스트라우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을 그리고 새로운 문학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작가의 책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도전 의식이 뿜뿜하는 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이 책은 민음사 모던 클래식에서 나온 책인데, 절판됐다. 절판돼서 이제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자크 스트라우스의 <구원>의 원제를 해석하면 <잭 필제의 수상쩍은 구원> 정도가 될 것 같다. 제목에 등장하는 것처럼 주인공은 바로 11세의 소년 잭 필제다. 이 발칙한 꼬마 녀석은 9살 때부터 마스터베이션의 세계에 잠입했다. 그리고 요하네스버그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 수지 마피사를 자신의 제2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이 녀석이 진짜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우선 주인공 잭 필제의 인종적 배경으로 말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 빌럼은 변호사 출신 법조인이다. 나중에 사형 제도가 폐지된 다음에는 판사가 된다. 그는 아프리카너 그러니까 보어인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영국인이다. 그러니까 잭은 어려서부터 남아프리카라는 문제적 국가에 사는 하이브리드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보어전쟁을 치를 정도로 아프리카너와 영국인들은 앙숙이었지. 그리고 그 밑에는 그들 공통에게 차별받는 흑인들이 있었고. <구원>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점 중의 하나는 십대 초반의 꼬맹이들이 자신의 엄마 뻘 되는 흑인 아주머니의 노동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때는 1989년 그러니까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공산주의가 몰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은 자신들이 보호령이라고 생각하는 나미비아 건너 이웃나라 앙골라의 좌파정권이 불안하기만 했던 모양이다. 러시아 아니 그 당시 표현으로는 소련인들은 그들에게 악마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남아프리카 백인 정권은 앙골라에서 MPLA 정권을 상대로 정글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던 조나스 사빔비의 UNITA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다.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설적 우파 게릴라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의 이름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사실 사빔비라는 이름 때문에 책읽기를 멈추고 한참 동안, 그의 생애에 대해 조사하기도 했다. 오래 전, 신문 기사와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을 다룬 너튜브 영상들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 걸 보면 마냥 너튜브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발칙한 꼬마 잭 필제는 붉은 베레모의 전설적 게릴라 투사 사빔비에 마음에 빼앗겼던 모양이다. 사빔비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이 리뷰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 무난해 보이던 꼬마 잭의 일상에 수지의 아들 퍼시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왠지 꼬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수영장에서 혼자 재미(?)를 보던 잭은 퍼시에게 수치스러운 순간을 들키게 되고, 퍼시를 쫓아내 버리고 만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을까? 결국 수지의 곁을 떠난 퍼시는 대형 사고를 치고 잭이 자신에게 제2의 엄마라고 생각하던 수지마저 필제 가정을 떠나게 된다.

 

사빔비에서 갑자기 엔딩으로 치달아 버렸지만, 그 와중에서도 잭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백인 가정에서 하녀로 일하던 이들이 좋아서 백인들의 뒤치다꺼리를 했을까? 전혀 아니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유색인종들이 할 수 있는 그것 밖에 없어서였다. 그래서 수지는 아들 퍼시에게 그렇게 종합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가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 것이었다. 대학 진학이 성공적인 삶을 보장하지 않을 진 몰라도, 퍼시처럼 대형사고를 치는 건 최소한 막아줄 수 있을 거라는 주술적 믿음에서 말이다.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보니 잭의 친구 아버지도 뱀에게 물려 갑자기 죽었다고 했던가? 아니면 자신의 아버지 빌럼이 독사 블랙 맘바에게 물리는 환상을 겪었었나. 인종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상이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수지 아줌마는 잭에게 나중에 자신이 죽으면 무덤을 화려하게 꾸며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걸 확인해 보려면 다시 책을 뒤적여 봐야 하는데 귀찮다. 어떤 이미지들은 이렇게 정확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의 기억의 저장고에 남게 되는 건지도. 이 또한 내 맘대로 그리고 오독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잭의 절친 페트뤼스네 가정은 전형적 보어인 가정을 소설에서 대변한다. 영악한 페트뤼스는 친구 잭에게 세상살이의 실전을 그대로 보여준다. 쇼핑몰에서 점잖은 백인 아주머니들을 도와주고 부족한 용돈벌이를 하는 법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페트뤼스였다. 이 녀석들 하여간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보잘 것 없는 여성적 이미지의 페트뤼스였지만 움 프릭(페트뤼스의 아버지)과 함께 나선 사냥에서는 개코원숭이의 얼굴 반쪽을 날려버리면서 진정한 아프리카너로 거듭나게 된다.

 

이 장면은 소설의 어디선가 잭의 누나 리사가 바닷가에서 상어잡이 아저씨와 대판 싸우는 장면과도 일맥상통하는 그런 기시감이 들었다. 이것을 문명과 야만의 충돌이라고 봐야 할까? 잭의 아버지 빌럼까지 나서서 드잡이질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소년 잭 필제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이다. 왜 아프리카너들은 남아프리카의 땅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그 땅의 원주인들은 따로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돌아갈 고향의 뿌리를 잃어버린 이들이 새로운 안식처라고 그곳을 정하고 나름대로 만든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고약한 방식의 차별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작가의 표현대로 모든 것이 비정상인 나라에서 구원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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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1-10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모던 클래식을 사랑하시는^^

새로운 작가에 도전하시는 ^^

그런데 9세에 마스 ㅌㅂㅇ션 세계에 진입한 이 꼬마는 하이브리드 정체성 때문에 손해 본적은 없었나요? 특권(의식)만 누리고 살아도 괜찮았던 삶으로 상상이 되어서요.

매냐님의 도전정신 반의 반만 따라가도 훨 바빠질 것 같아요 모던 클래식 1권도 안 읽어본 저!

레삭매냐 2024-01-10 22:35   좋아요 1 | URL
세상에 십수년 전에 모클이 나왔을 적
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다가 이제
사, 점점 절판이 되어 가는 마당에 뒷
북치는 저란 닝겡...

제 생각에 이 발칙한 꼬맹이의 하이브
리드 정체성은 훗날 작가로서 글감이
적어도 부족하지는 않는 그런 장점을
주지 않았을까요?

어려서는 이도저도 아닌 정체성에
고통(?)받았을 진 몰라도 어쨌든 백인
이었으니 알라님 말쌈대로 다 누리고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초란공 2024-01-10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던 클래식이란 시리즈를 처음 들어본 자, 인사드려요^^ 존 밴빌도 어서 읽어야하는데 말입니다. 잠시 하루키 옹 책들을 읽어보느라 ㅋㅋ 늦어지고 있네요.

레삭매냐 2024-01-10 22:58   좋아요 1 | URL
수년 전부터 모클이 75권을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지라, 독서인들
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못내 아쉬
운 1인이랍니다. 꽤 괜찮았던 기획
이었는데 말이죠.

전 존 밴빌의 <뉴턴 레터>와 <블루
기타>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또다른 8년이 필요할까요...

초란공 2024-01-10 23:00   좋아요 1 | URL
저도 뉴턴 레터는 나오면 바로 사려고요!

그레이스 2024-01-11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듣는 작가입니다.^^
저도 처음 듣는 작가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생기는 편요.

레삭매냐 2024-01-11 09:56   좋아요 1 | URL
아마 더 이상 국내에는 소개가
되지 않을 그런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아공 보어인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지 싶습
니다.
 
폭식 광대
권리 지음 / 산지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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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분양 주택과 임대 주택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정책을 고수하는 단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읽고 있는 자크 스트라우스가 살던 198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에 따른 아파르트헤이트가 존재했다면, 2023년 대한민국에서는 부에 따른 그야말로 치졸한 차별정책이 백주대낮에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프리카너들처럼 우리나라에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왔다.

 

어제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권리 작가의 <폭식 광대>에도 그런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단편이 하나 실려 있더라. 원래는 문제적 표제작부터 시작하려고 했으나... 어쨌든. 제목은 <구멍>. 대한민국의 중심 강남의 어딘가에 위치한 게딱지 마을에 작은 빨간 벌레가 등장하면서 발생한 구멍이 문제였다. 별것도 아닌 작은 벌레들이 지반을 갉아 먹어서 초라한 판잣집들을 연쇄 붕괴시키고 있었다.

 

어느 사회나 별것 아닌 것들이 항상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부에 따른 노골적 차별을 부추기는 언론과 사회 풍조가 나에게는 게딱지 마을을 넘어 그 근처의 백년구에 즐비한 고층 아파트들마저 붕괴시킬 기세의 작은 빨간 벌레와 동의어로 읽혔다.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백년구의 구청장이 이름도 무시무시한 불도저로 바뀌면서 또 다른 욕망이 스물스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재개발이라는 괴물이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게딱지 마을을 불도저로 싹 밀어 버리고 뉴타운 혹은 녹지공원 그리고 천연지하수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불도저 구청장은 선보였다.

 

권리 작가가 구사하는 <구멍>에는 건설 아파트 공화국이 가진 모든 추악한 민낯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되던 말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실체가 솟아오른다. 어떻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씁쓸해지는 모르겠다. 너무 현실을 동조해서일까? 결국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에서는 도대체 이해 불가한 현대 미술계 비판의 장이 열린다. 아무리 예술이 주관적 해석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피카소가 창조한 추상미술이 기득권화된 이래 팝아트 등등 고전 미술만 보고 자란 나로서는 도무지 주석이나 해석을 읽고도 이해할 수 없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난해한 해석으로 미술을 대중과 분리시키려는 그런 음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가 장 콕도를 모방한 게 분명해 보이는 장곡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추적하는 것으로 <광인을 위한 해학곡>은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아니 제목에서부터 예술가들이야말로 광인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선언이 아니었을까.

 

고전 미술가들이 창조를 담당했다면, 최근 현대 행위예술가들은 어렵게 만들어진 창조를 파괴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평론가와 예술가들의 협잡 같은 컬래버도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예술 작품을 파괴하는 파렴치한 행위가 평론가들의 멋진 포장 버프에 힘입어 전무후무한 예술적 행위로 거듭나기도 하니 말이다. 어쩌면 나도 MOMA를 찾아 한편에서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감탄하다가, 또 폴락이나 앤디 워홀의 변기나 수프 깡통 사진을 보고는 또 다른 차원의 격찬(1도 알지도 못하면서)을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 예술은 어쩌면 거대한 자본과 미디어가 총동원된 멋진 사기가 아닐까... 암튼 그렇다고.

 

<해파리>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본 프로인 <폭식 광대>로 속히 넘어가자. 무려 12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긴 하지만 폭식이라는 기괴한 관음증에 현혹된 우리 대중의 실상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좀 유행이 지나긴 했지만, 한 때 먹방이 대유행한 적이 있다. 어마 무시한 음식들을 그야말로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입안에 집어넣는 퍼포먼스에 감탄했던 적이 있다. 무도에서 국수를 흡입한 어느 방송인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도 어마어마한 식성을 자랑하는 이들이 너튜브로 무대를 옮겨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한다. 사람들은 화면에 등장하는 폭식 광대들의 퍼포먼스에 열광한다. 미디어에 공개된 화제는 바로 수익으로 직결된다. 자서전도 대필해서 인세도 벌고, 각종 굿즈들도 만들어서 짭짤한 부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행사장과 미디어 출연 요구도 쇄도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그런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문제는 소설에 등장하는 폭식 광대가 그렇게 허겁지겁 집어삼킨 음식들을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소화가 아닌 저장 방식을 선택(?)했던 폭식 광대는 결국 방송에서 토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폭식 광대의 추락은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우리도 매일 같이 쏟아지는 너튜브 비주얼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그 내용들을 미처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도 어느덧 너튜브 중독자가 되었지만, 의도적으로 먹방이나 여행 콘텐츠는 기피한다. 왜 나의 즐거움을 타인의 그것에 의존해야 한단 말인가. 구독이나 시청으로 그들의 수익에 일조하고 싶은 생각이 1도 없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 먹고(기본적으로!) 잘 사니 무슨 걱정할 필요가 있겠냐고.

 

마지막은 오래 전에 가수 마돈나의 뮤직비디오에서 본 문구로 대신하련다.

타인의 허락에 따라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가련하다.”

 

[뱀다리] <폭식 광대>로 드디어 올해 100권 읽기 돌파했다.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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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2-25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 권 읽기 돌파, 축하합니다!!!

레삭매냐 2023-12-25 23:38   좋아요 0 | URL
가까스로 채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 - 소크라테스에서 갈릴레오까지의 철학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
뱅상 자뷔스 지음, 니코비 그림, 양영란 옮김, 요슈타인 가아더 원작 / 김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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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도서관에서 내일 책을 반납하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라? 무슨 책을 내일까지 반납하라는 거지? 이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서도 읽지 않거나 아니 아예 무슨 책을 빌렸는지디 모르게 된 모양이다.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1>이라고 한다. 아직 펴보지도 못했는데. 그래서 부랴부랴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올해 파이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저자가 노르웨이 사람이니 아마 이 철학개관 소설, 지금은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인 십대 소녀 소피 아문센도 아마 노르웨이 사람이려니 싶다. 철학 개관서로 되게 유명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는 책으로는 만나 보지 못했다. 이럴 때, 그래픽 노블은 치트키로 되게 유용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수수께기 철학자의 편지가 도착하는 것으로 기후변화 시위를 준비하던 소피는 세계 철학의 세계에 뛰어 들게 된다. 철학과 판타지 그리고 그래픽노블의 만남이라,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이 책에 따르면 철학의 기본 덕목은 놀라움 그러니까 경이로움을 느끼는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삶에 있어서 아주 간단한 질문들,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진 걸까?

 

이런 거창한 질문을 던지면 일상의 노동에 찌든 우리들은 아마 대답할 말이 없지 않을까. 한달 전 회사 회식에서 친한 동료에게 무엇 때문에 사는지,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는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난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고. 그리고 우드카빙의 명가 모라나이프를 당근에서 나무 조각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러지 못하는 건 아마도 그동안 우리 사회가, 우리 교육 시스템이 철저하게 암기위주의 교조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우리에게 주입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만약 교실에서 젊은 청춘들의 그런 엄청난(?) 질문들을 대하게 된다면 과연 교육자들은 어떤 대답을 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면 똑 떨러지는 대답을 원하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해마다 그런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데, 왜 우리들에게는 소위 넉넉한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는가? 대표이사만 항상 최대 이익을 챙기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아마 이런 질문을 던졌다가는 바로 다음날 회사에서 자리가 비게 되지 않을까. 늘그막에 이런 심오한 질문들이 마구 발생하는 걸 보면 과연 그래픽노블 <소피의 세계>를 내가 제대로 읽지 않았나 하는 착각에 빠진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대단히 서설이 길었다. 철학의 출발점은 아무래도 그리스가 될 것이다. 여러 고대 철학자들이 책에 소개가 되지만 그중에서도 데모크리테스의 4원소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몇 가지 원소로 구성되었다는 가설,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고 상당히 유물론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다.

 

이성과 감각을 통해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질문을 동반한 사유를 하게 된다. 소피(이름부터 소피아 혹은 필로소피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역시 수수께끼 철학자와 동반한 철학 여행길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배우고 느끼면서 다음 레벨로 업그레이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여성을 불완전한 남성으로 묘사한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각성한 현대여성으로 바로 반박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로 이거지! 결국 깨달은 사람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그런 현실을 그대로 적시한다.

 

다음 수순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등장이다. 델포이 신전에 써있던 말인 너 자신을 알라는 분수를 알거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세상만사를 모두 알 수 없다는 한계를 알라는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라는 격언이다. 그 말인즉, 결국 매사에 겸손하라는 말이 아닐까. 속된 말로 무식한 이가 용감한 법이다. 아니 한 권의 책을 읽고서 맹신적 모습을 경계하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지금도 여전히 철 지난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와 그놈의 지긋지긋한 트리플다운 효과를 앵무새 타령하듯 주술처럼 외우는 나라와 보수 언론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보다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사유와 그런 사유에 기반한 창조적 도약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판타지 회로를 돌려 보기도 한다.

 

다음 계보로 등장한 플라톤의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 철인정치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상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250쪽 가량의 분량에 자그마치 천년이 넘어가는 철학의 유구한 역사를 압축해서 다루는 저자의 패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키니코스학파(혹은 견유학파)의 안분지족하는 삶에서는 미니멀리즘의 향기를 느꼈다. 사악한 쾌락주의자로 매도된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들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도 바울에 이어 초기 기독교의 위대한 교부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개종한 마니 교도였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됐다. 이런 내가 미처 모르고 살았던 점들도 바로 놀라운 경이의 연속이 아닌가 말이다. 이렇게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면 자각한 개인은 나처럼 무언가 더 알고 싶다는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소피 아문센처럼 개인의 성장과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는 게 바로 저자가 철학 소설을 집필하면서 의도한 무언가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존 밴빌의 <케플러>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품고 있던 생각들과 오래된 질문들을 격발시켰던 유사한 동인들을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에서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이거야말로 명징한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이제 철학을 읽을 시간이 되었다는. 그런데 아쉽게도 <소피의 세계 2권은 나와 있지 않더라. 내일 도서관에 가니 원본 <소피의 세계>를 빌려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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왬! 라스트 크리스마스
앤드류 리즐리 지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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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매니아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려서 가요를 듣지 않았다. 왜냐구? 너무 구려서. 그 시절에는 팝송만 들었다. 누군가 가요를 듣는다고 하면, 단체로 다구리를 쳤다. 그 다음에는 헤비메틀에 미쳐 살았고. 또 그 다음에는 클래식의 세계에 흠뻑 영혼을 팔아먹었다. 지금은 다시 아이돌들이 부르는 가요를 즐겨 듣는다. 요즘 아이돌과 오래 전, 팝의 공통점을 가사를 모른다는 점이다. 신기하지. 나의 어릴 적 우상이었던 조지 마이클 형은 이제 고인이 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이건 외전으로,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거리에서 만났다. 들어 보니 내 덕분에 음악에 미친 그 친구는 음악다방을 차렸다고 했다. 아니 이럴 수가. 그 때 나는 죽어라 가요를 듣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에게 나는 배신자였다. 그에게 나의 배신을 알리지 않았다.

 

중고서점에서 <!>의 멤버였던 앤드류 리즐리의 자서전을 보는 순간, 이건 사야돼!가 절로 흘러 나왔다. <라스트 크리스마스>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영국 부시 미즈 시절, 팝스타를 꿈꾸던 두 소년이 만나 훗날 세계적 팝 듀오가 되는 <!>의 태동기가 그려진다. 요그(조지 마이클)는 그리스계 혈통으로 자신의 이름과 외모 특히 그의 골칫거리였던 곱슬머리 때문에 호남자 앤드류 리즐리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그의 절친 미스터 리즐리에 의하면, 요그는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범생이었던 모양이다.

 

둘은 영국 사회에서 약간이방인이었던 모양이다. 미스터 리즐리는 이집트계 그리고 요그는 그리스 혈통의 남자였다. 여튼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청소년들은 밴드를 결성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작업에 들어갔다.

 

요그와 앤드류가 청소년기를 보낸 1970년대말과 198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자 마거릿 대처가 집권한 영국은 무기력증이 휩쓸고 있었다. 세계적 불경기와 민영화 바람으로 영국에서는 대규모 실업과 파업이 일상화되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은 1982년 발표된 왬의 데뷔 싱글 <Wham Rap! (Enjoy What You Do)>의 가사에도 잘 나타난다. 일자리가 있건 없건 간에 하고 싶은 걸 즐기라고.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듣던 유행가 가사에 이런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이야.

 

물론 훗날 세계를 주름잡게 되는 왬이 처음부터 잘 나가는 그런 밴드는 아니었다. 처음에 앤드류와 요그가 만든 밴드 이름은 <더 이그제큐티브>였고, 숱한 멤버 체인지를 겪으면서 듀오로 이너비전과 계약하게 된다.

 

당시 음악계는 MTV의 등장으로 듣는 음악의 시대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왬의 선배격인 듀란 듀란 그리고 스팬다우 발레를 비롯한 거의 모든 밴드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감각적이면서 멋진 그리고 자극적인 뮤직비디오를 만드는데 투자를 아까지 않았다. 왬이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초반부까지만 해도 미스터 리즐리는 곡을 만드는데 있어 요그의 친구이자 음악적 동지였다. 왬의 최고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Careless Whisper>만 하더라도 공동 작사가와 작곡가로 미스터 리즐리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가. 다른 건 몰라도 음악에 있어 욕심쟁이였던 요그(팝스타가 되기 위해 조지 마이클이라는 예명을 정했다)가 친구에 대한 호의를 베풀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명곡을 십대 후반의 청년들이 1981년에 대강의 모티프를 잡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훗날 세계적 싱어송라이터로 발돋움하게 되는 조지 마이클이 이 곡을 만들면서 거의 완벽을 추구하는 바람에 곡의 시그니처가 된 초반의 색소폰 연주자를 11번인가 갈아 치웠다고 했던가. 지금도 절로 곡의 가사가 외워지는 <Careless Whisper>를 대학 시절 어느 맥줏집에서 같이 듣던 동기는 나이트클럽 부루스 타임에 스텝이 쩍쩍 붙는다는 말을 내게 했었지. 그저 이 곡을 노래로만 알았지, 댄스 플로어에서도 즐기는 명곡인지는 그땐 미처 몰랐다.

 

행운의 여신이 왬에게 미소를 보냈고, 1983년에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 <판타스틱>이 영국에서 대성공하면서 비로소 왬이 세계적 밴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소녀팬들의 우상이 된 두 영국 청년들의 야심은 컸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영국 시장의 성공만으로는 야심가였던 조지 마이클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팝의 본토 미국 시장을 공략해야만 했다. 한편, 유명세를 타기 위해 팀의 매니지먼트사에서는 온갖 종류의 자극적 루머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스터 리즐리가 죄인 역할을 맡았다면, 조지 마이클은 성자 역할을 맡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Club Tropicana>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로케이션 촬영지였던 이비사섬에서 조지 마이클은 앤드류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힌다. 자신이 게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1980년대였고, 지금과 또 상황이 달랐다. 유리 멘탈(?)이었던 조지 마이클은 자신들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철저하게 숨겼다. 건강하고 순수한 쾌락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이미지가 그들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팬을 속였던 걸까? 모르겠다, 지금의 기준에서 40년 전의 팝스타들의 행적에 대해 판단하는 게 옳은지 말이다.

 

어쨌든 왬이 세계 정상의 밴드로 우뚝 서게 되는 결정적 음악적 성취는 바로 두 번째 앨범이었던 <Make It Big>1984년 발표되면서였다. 전작 <판타스틱>이 치기 어린 두 청년들의 장난기 이런 그런 음악적 시도였다면, <Make It Big>이 차원이 다른 그런 음악들을 선보였다. 색소폰 전주만 들어도 짜릿해지는 <Careless Whisper>는 차치하고서라도, <Wake Me Up Befor You Go Go>를 필두로 해서 <Everything She Wants> 그리고 <Freedom>의 잇단 대흥행 그리고 전미투어까지 대성공시키면서 왬은 단순하게 영국 밴드가 아닌 그야말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또한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가 합심해서 창조한 왬의 결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고 한다. 차트 성적에 유난히 집착하는 조지 마이클과 달리 미스터 리즐리는 순수하게 대규모 밴드와 함께 하는 투어를 온전하게 즐겼다. 하지만 솔로 아티스트로 불타는 야망을 가지고 있던 조지 마이클에게 왬은 어쩌면 하나의 굴레였을 지도 모르겠다. 밴드에서의 비중도 지나치게 조지 마이클에게 기울면서 두 친구의 불화설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언론의 지나친 관심 덕분에 정상에 섰던 두 친구의 밴드가 결국 해체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둘이 합작해서 만든 <Careless Whisper>는 조지 마이클의 솔로곡으로 발표가 되었다. 미스터 리즐리가 많은 면에서 음악적으로 자신보다 출중했던 친구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였다면 그 또한 이상하지 않았을까? 자서전에서 미스터 리즐리는 상당 부분을 그런 오해들을 해소하는데 할애한다. 어쩌면 이제 고인이 된 친구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왬은 1986628일 웸블리에서 가진 파이널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7년에 걸친 대항해를 마무리지었다. 해체와 더불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조지 마이클은 다음해에 솔로 데뷔 앨범 <Faith>를 발표하면서 레전드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슈퍼스타 친구의 버프를 받았지만, 미스터 리즐리의 솔로 앨범은 폭망했고 그는 영원히 음악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전에 잠시 레이서로서 활동도 했지만 그 역시 그의 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왬의 자서전 <라스트 크리스마스>에서 미스터 리즐리는 상당 부분을 청소년 시절, 왬의 태동기 그리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솔하게 진행한다. 왬 이후에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 그리고 2016년 크리스마스날 날아온 비보를 전하는 것으로 자서전의 대미를 마친다.

 

음악으로만 접하던 어린 시절 우상이 직접 저술한 자서전을 통해 만나는 경험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책에 나오는 노래들을 찾아 다시 듣고, 또 이런저런 감상에 젖었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영국의 평범한 청년들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팝스타가 되겠다는 자신들의 꿈에 도전하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곡/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일자리를 찾아 집을 나가라는 부모님의 명령은 1981년 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이십대의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자신들이 처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노래에 담았고,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그에 반응했던 게 아닐까.

 

인기 절정의 팝스타가 되었지만,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거대한 도전에 나선 조지 마이클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도 마음에 들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머쥔 청년들에게 조언을 건네줄 멘토의 존재가 부재했다는 점도 아쉽게 다가왔다. 특히 조지 마이클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터놓고 의논할 상대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하도 들어서 절로 싱어롱을 하게 된다. 나에게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그런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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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2-23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ham 저도 알지는 못해도 많이 들었는데 와! 요그라는 이름 참 이색적이네요 그리스를 연결해서 상상해 본적도 없었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좋아했던,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네요^^

레삭매냐 2023-12-23 22:59   좋아요 0 | URL
지난 여름에 넷플릭스에서 <왬!>
다큐가 나왔다고 하는데...

저는 넷플 구독자가 아닌지라 아직
도 못봤네요 ^^ 진짜 재밌다고 하
던데 말이죠.

항상 음악만 듣다가 책으로 만나니
또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coolcat329 2024-01-10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혹시 넷플릭스 왬 다큐보셨나요?
초딩 6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조지 마이클이었어요. AFKN에서 faith 뮤직비디오 보고 세상에! 하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ㅋㅋ
내 나이에 보면 안될 거 같은데 보고는 싶고 혼자 흠모했었네요. 어릴 때는 외모가 좀 아니었는데 데뷔하고 섹시해지면서 여성팬이 폭발적으로 늘자 본인도 당황하고 괴로워했다죠.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은 모르니 얼마나 혼자 힘들었을지.

레삭매냐 2024-01-10 12:59   좋아요 1 | URL
아 저도 독서모임에서 저희 동지분께서
넷플 <왬!> 다큐 소개를 해주셔서 보고
는 싶었으나 넷플 계정이 없는 관계로
못 봤네요.

그러니깐요, <Faith> 시절 조지 마이클
은 정말 !!! 쨩쨩쨩 ~ 저도 에프켄에서
뮤비 보고 기냥...

조지 마이클의 성정체성은 책에 보니
이미 1집 <클럽 트로피카나> 뮤비
찍을 적에 앤드류 리즐리에게 고백했
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