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들인날 : 2019년 2월 23일 @종로책방

 

지난 토요일 달궁 모임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지난달에 눈여겨 둔 아름다운 가게 <종로책방>에 들렀다. 그냥 뭐라도 하나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우선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1,2권이 있길래 바로 사들였다. 두 권에 6,000원.

 

다음은 ‘층간 소음’을 주제로 다뤘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음향과 분노> 5,000원.

 

마지막은 교유서가에서 작년에 처음으로 펴냈다는 구드룬 파우제방의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다. 사서 어젯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완전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교훈적이기까지 하니 금상첨화다. 왜 난 이 책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지. 종로책방에 들르지 않았으면 영영 모를 뻔하지 않았나.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공간적 배경은 독일 제국으로 패망으로 치닫던 1944년 8월부터 5월까지 세 계절 그리고 동부 보헤미아의 브뤼넬/볼펜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레닌그라드 전선에 투입됐다가 왼손을 잃고 전역한 17세 소년 요한 포르트너다. 우편 배달을 천직으로 삼은 소년에게 주어진 임무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다.

 

온통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편 배달업무가 지속된다는 것 그리고 요한이 돌리는 검은 편지가 전장에서 죽은 전사자들에 대한 소식이라는 사실이 서글프기 짝이 없다. 구드룬 파우제방 작가는 하인리히 뵐이나 볼프강 보르헤르트처럼 전장의 비극을 기술하는 대신 후방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파한다.

 

평화라면 어떤 종류의 평화도 파멸과 죽음을 의미하는 전쟁보다 낫다는 걸 구드룬 파우제방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한다. 너무 멋진 소설이다.

 

[뱀다리] 이 책은 아마 출판사에서 누군가에게 기증한 책인가 보다. 책에 “교유서가드림”이라고 찍혀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책을 넘긴 흔적도 없으니 말이다. 책에 대한 어느 사연을 추적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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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2-25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레삭매냐님 득템들 보고 찾아보니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가 있지 뭡니까. ㅎㅎㅎ
읽지 않고 고이 모셔만 둔 이 책을 레삭매냐님 덕분에 곧 읽게 될 것 같습니다. ^^

레삭매냐 2019-02-25 10:39   좋아요 1 | URL
아니 이렇게 좋은 책을 소장만 하시고
쓰담쓰담하셨단 말이십니까?

이번 독서 모임에 가서 왜 샀는지조차
모르겠다고 빵!~ 터뜨렸답니다.

뭐 그런 거죠.

뒷북소녀 2019-02-25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도 있는겁니까?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19-02-25 13:48   좋아요 1 | URL
강력추천하는 책입니다 -

이달에는 참 좋은 책들과 함께 하게
되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어제 달궁 모임에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단골 마욤님이 나오시지 않아 쫌 아쉬웠다.

다른 동지들도 나오지 못하신 분들이 있어 아쉬웠고... 선수들이 모여야 모임이 더 재밌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을.

우리 독서 중독자들은 실컷 책 이야기와 주변에서 확성기로 핏발을 세워 대는 모 부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네. 여기가 과연 한국인가. 너무나 초현실적인 현실이 인지부조화되어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제 우리의 타겟은 존 그레이 교수의 <꼭두각시의 영혼>이었다. 이 양반 영지주의론에 비판적인 것 같다가 어느새 현대는 영지주의의 승리였다는 말로 결론을 내는 바람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기독교에서는 절대 이단으로 간주되는 그노시즘에 대해 좀 더 책을 읽어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날 읽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야기도 신나게 했다. 참고 도서가 참으로 많다는 점이... 나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을 추천했다가 어마무시한 분량 때문에 스스로 포기했다. 오이겐 루에의 <빛이 사라지는 시간>도 추천했다가 뻰찌... 나부터 읽다만 책을 마무리지어야지 싶다.


 

모임이 끝난 뒤, 피잣집으로 자리를 옮겨 2차전을 이어나갔다. 술과 피자로 배를 채우면서 신랄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들쑥날쑥하고 책도 안 읽어 오던 색채남의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는 우리 달궁의 고정이 되었다.

 

8시가 못되어 조촐하게 모임을 끝내고 나서 나홀로 아름다운가게 종로책방을 찾았다. 집에 가는 길에 책이라도 한 권 사서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원래는 알라딘 종로점을 가보려고 했지만 귀찮아서 바로 포기.

 

2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데 과연 그 정도가 되는진 모르겠다. 다음은 내가 업어온 책들이다. 책의 회전이 빠른 느낌이 들었다. 알라딘 북플 친구인 폴스태프님이 추천해 주신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 있기에 냉큼 집어 들었다. 각권 3,000원 씩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데려왔다. 컨디션도 굿.

 

내가 가장 먼저 집어 든 책은 바로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였다. 며칠 전 인스타에서 중고책으로 층간소음에 관한 책이냐 뭐 그런 문구를 보고 눈여겨 보고 있던 책인데 내 수중에 들어왔다. 물론 문동 버전으로 가지고 있지만 읽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드디어 읽어야 할 시간이 왔는가.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2018년 교유서가에서 처음으로 나온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였다. 이런 장르의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인데. 그냥 책 제목과 출판사만 보고 사들였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내 취향에 아주 딱 들어맞는 이야기더라. 전쟁과 야만 그리고 반전에 대한 컨텐츠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 거페이 작가의 절판된 <복사꽃 피는 날들>은 작년엔가 김용민 씨의 방송을 듣고 교보문고에서 새책으로 샀는데(물론 읽지 못했다) 억울하다 억울해. 이렇게 중고로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다른 책을 사는 거였는데 캬오~~~ 칼럼 매캔의 <댄서>도 있더라. 중고서점에서 이런 레어 아이템들을 기대하고 가는 게 아니었나.

 

금요일날 읽은 쥴퓨 리반엘리의 <살모사의 눈부심>의 후광 덕분인지 파묵 선생의 <내 이름은 빨강>도 아주 쑥쑥 읽히는 기분이다. 사마온공의 <자치통감>도 마저 읽어야 하는데. 내 전공파트라고 할 수 있는 중국사에 관한 이야기라 그런지 술술 페이지가 넘어간다. 마치 예전에 학습한 내용을 다시 복습하는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나. 파묵 샘의 첫 책이 마음에 들면 어쩌면 또 책을 일단 사들이고 전작 도전한다고 떠들어 댈 지도 모르겠다. 책이나 더 읽다가 자야겠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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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24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크너 한번 도전해보시고 리뷰 기대합니다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2-24 22:55   좋아요 0 | URL
당장에 읽어야 하는 책들이 정리가
되면 ‘층간 소음‘를 다룬 책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여담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포크너를 정말 좋아하
는 것 같습니다.

설해목 2019-02-24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좋은 책들만 데려오셨네요! 중고서점에서 만나는 래어 아이템은 그야 말로 최고죠! ㅎㅎ

레삭매냐 2019-02-24 22:57   좋아요 1 | URL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사들였다면
정말 ㅋㅋㅋ

시간이 가면서 책 보는 눈이 생긴...
다는 건 다 뻥입니다 -

일종의 소확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어제도 책 사러 들어왔다가 친구분에게
집 안에 쌓아 놓은 책부터 읽어야 해
이러고 아무 것도 안 사시고 가시는 분
을 목격했습니다. 존경하는 바입니다.

어느 책의 노예는 카드질을 했습니다.

cyrus 2019-02-25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달궁 뒤풀이 분위기는 여전하네요. 글만 읽어도 뜨거운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

레삭매냐 2019-02-25 16:13   좋아요 0 | URL
이제 노쇠하야 예전 같이 달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즐겁고
재밌는 시간들이었답니다 하 하 하

옛 멤버들이 그립습니다.

coolcat329 2019-02-26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로책방도 중고 서점인가보네요? 조만간 구경가야겠어요. 정말 즐겁고 알찬 하루 부럽습니다.

레삭매냐 2019-02-27 09:04   좋아요 1 | URL
네에이~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8년 동지들과 함께 해서 더더욱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름다운 가게 중에서 중고서점으로 특
화된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 외에도 DVD와 CD 도 상당하더군요.

가격이 알00과 달리 착해서 더더욱 마음
에 들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중고책만 사게 되었다.

새 책은 잘 안산다.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 신간 희망도서를 신청해서 읽는다. 잔뜩 사두기만 하고서 읽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다. 신간도 제법 도서관에서 수급을 잘해줘서 읽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오늘도 중고서점 원정가서 다섯 권을 데려왔다.

일단 로맹 가리의 <흰 개>는 작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긴 했지만 소장각으로 데려왔다.

왠지 올해 안으로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재독이야말로 독서인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마음에 드는 책이어서 읽었지만 샀노라고 자위한다.

 

다음 주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카사노바를 쓰다>. 이렇게 얇고 작은 책인 줄 미처 몰랐다. 판형도 아주 작고, 쪽수도 적다. 164쪽이란다. 올해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기로 했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걸리는 책은 살 것이다라고 핑계를 대본다.

 

그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언 뱅크스의 <말벌 공장>은 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 품절된 책이라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으니 기회가 되면 당근 사야 하지 않을까. 참 핑계도 다양하구나. 상태는 아주 좋다. 마음에 든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다가 책을 펴기는 했으나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인지 어쨌는지 못다 읽고 반납한 기억이 난다.

 

시배스천 폭스의 <바보의 알파벳>도 당당하게 목록에 올랐다. <리옹 도르의 여인>을 읽고 나서 폭스 작가의 책을 모두 읽겠노라고 마음 먹었으니 당연 사야지. 일단 사두고 읽는 것은 나중에, 우리 독서인의 모토가 아닌가. 지난 명절 때 폭스의 책을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자그마치 세 권이나 빌렸으나 결국 읽지 못하고 이번 주 내내 반납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 상태가 좋지 않지만 가격이 너무 착하다. 오늘 낮에 커피빈에서 마신 라떼 한 잔 값보다도 싸다. 라떼 5,800원 책 4,00010% 할인을 받았으니 더 저렴하겠지. 밑줄 좍좍 그으면서 한 번 읽어 보리라.

 

마지막 책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미국은 섹스를 한다>라는 책이다. 이 책이 오늘 산 책 중에 가장 저렴한 레테르를 달고 있다. 단돈 2,600원 커피 한 잔 값도 짜장면 한 사발 값도 안되는 가격이다. 지난 번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테미오의 최후>를 비싸게 사서 읽다 말았지 아마. 멕시코를 대표하는 작가의 책으로 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푸엔테스 작가 읽기의 연장선이다.

 

자 이제 어떤 책부터 읽을까나.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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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08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벌 공장> 20대 초반에 저도 읽었는데, 겨우겨우 읽고 나니까 웬만큼 충격적인 작품들도 버틸 수 있게 되더라구요 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2-08 21:20   좋아요 0 | URL
엽기적이라고 짜안!~ 하더군요.

당장 도전은 그렇고 봄이 오면
한 번 읽어 볼까요...

설해목 2019-02-09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쌓여가는 책을 보니 신간 사기가 주저되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굿즈에 혹해서 가끔 신간을 왕창 사기는 합니다. ㅋㅋ
저도 어제 중고서점 가서 5권 데려왔어요! 낑낑거리며 걸어도 즐겁더라구요. ^^
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는 레삭매냐님의 글도 그렇고 syo님 글도 보니 저도 <말벌 공장>에 혹합니다. 왜 충격적일까나....리뷰로 꼭 알려주세요! ^^

레삭매냐 2019-02-09 09:00   좋아요 0 | URL
굿즈... 독서정가제 실시 후에 기기
묘묘한 굿즈들이 등장해서 유혹하
더라구요. 전 최근에 예스24 중고매장
에서 산 고흐 책갈피를 아주 애정하고
있답니다. 넉넉해서 여기저기 꽂아도
남더라구요 :>

낑낑... 책쟁이들의 숙명입니다.

<말벌 공장> 대신 전 시배스천 폭스
의 <바보의 알파벳>을 집어 들었는
데 넘 재밌어서 100쪽을 순식간에
읽었네요.

<말벌 공장>은 고 다음에 읽고 리뷰
로 보답하겠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19-02-09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독이야말로 독서의 본질‘이란 생각에 정말 공감합니다. 그 진리를 40넘어 이제야 깨달았는데 시간과 체력이 안받쳐주니 마음만 조급해지네요ㅎㅎ 저도 사실은 레삭매냐님을 보고 중고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츠바이크 저 시리즈는 얇지만 내용은 강렬한거 같아요. 몰랐던 책 알게 되어 좋아요.

레삭매냐 2019-02-09 19:33   좋아요 1 | URL
일찍이 이탈로 칼비노가 그랬더랬답니다.

책은 다시 읽는 것이라구요.
새 책이 엄청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재독이야말로 우리 독서인들이 추구
해야 할 로망이 아닌가 사료해 봅니다.

말쌈 대로 츠바이크 짱입니다 !!!

가끔 사연이 있는 중고책을 만나게
되는 데 참 그렇더군요. 그전에 어느
분은 콜롬비아 갈 꿈에 마르케스의
책을 샀는데 꿈이 무산되어 책을 파노
라는 글을 써 두셨더라구요 ㅠㅠ

서니데이 2019-02-09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사진이 흑백같은 느낌이 들면서 예쁜데요.^^
전에 읽었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개정판이 나오는 것처럼 다시 읽고 싶어져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표지도 새로 나오는 것처럼 다시 읽으면 조금은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요.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2-09 21:11   좋아요 1 | URL
달아주신 덧글을 읽고 보니 그렇네요 :>

오래 전에 흑백사진 찍고 인화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정말 오래 전
일이네요.

가끔은 흑백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
 


긴 명절 때문에 월간 독서 리포트가 늦어졌다.

 

명절이 끝나니 감기에 걸렸다. 아 젠장 맞을... 너무 놀아도 피곤한 모양이다. 일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놀기만 하고 일을 안해서 그런가. 그냥 무념무상으로 놀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

 

어쨌든 지난 달에는 20권의 책을 읽었다.

 

새해의 독서 출발이 나쁘지 않구나. 원래 그냥 저냥 읽으려고 했는데, 막판에 가서 이 책 저 책 집적대다가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한 책들이 많아서 일주일 정도 공친 느낌이랄까.

 

원래 대로 읽었다면 칼럼 매캔의 누레예프 전기 <댄서>를 월간 베스트에 넣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뭐 나중에라도 다 읽으면 되겠지. 이달에 마저 다 읽어야지 싶다. 얼마나 남았나.

 

1월의 월간 베스트

 

1. 에라스무스 평전 - 슈테판 츠바이크

2. 전족 - 펑지차이

3. 동방의 부름 - 피터 프랭코판

 

요렇게 세 권을 뽑는다. 올해를 츠바이크 읽기의 해로 삼은 만큼 우선 그의 작품부터 컬렉션에 들어갔다. 절판된 책도 제법 되고 해서 사냥하는 맛이 나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오래전에 구입해 두었으나 이제야 결국 읽게 되었다. 참 오랜 시간이 필요하구나. 작가가 오롯하게 집중하는 광기에 대한 혐오를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츠바이크는 모든 종류의 광기에 대해 반대한다. 종교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런 면에서 카스텔리오네의 변론을 위해 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서 칼뱅을 그렇게 비판하는 걸까.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 버린 종교개혁가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글들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도 다시 읽을 계획이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지 않아서 다시 읽고 나서 쓸 계획이다.

 

펑지차이의 <전족>에서는 천진에 사는 전족광들의 전족학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넘실거린다. 문제는 어떻게 포장을 하던 전족을 여성들을 상대로 한 끔찍한 폭력이다. 하긴 지금은 전족이 목숨을 건 성형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들을 옥죄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페티시즘에 가까울 정도로 중국인들의 전족 사랑은 적어도 내게는 비정상으로 다가왔다.

 

피터 프랭코판의 <동방의 부름>은 새해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게 된 책이다. 역사서를 소설보다 빠른 속도로 읽는 지라 아주 재밌게 읽었다. 십자군 원정의 진짜 주인공이 비잔티움 제국의 알렉시오스 1세라는 주장이 참신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서임권 투쟁 이래 쇠락해 가는 교황권의 재확립을 위해, 서유럽의 기사들은 성지회복과 새로운 봉토를 위해, 민중십자군은 봉건 계서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동방에서 새로운 기회를 위해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의 알렉시오스 1세는 동방 투르크의 압박을 효과적으로 감쇄시키고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서방 기사단의 전투력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서로의 이해가 딱 맞아 들어 중세 최대 규모의 군사원정이 종교전쟁의 외피를 두르고 시작된 것이다.

 

어제 읽은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전쟁의 비인간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민중십자군이 성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도중에 만난 유대인과 비그리스도들(심지어 같은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교도로 제거의 대상이었고, 민중십자군은 학살을 마다하지 않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대소련 전투에서 전투부대를 따라 전선으로 이동하면서 학살을 맡았던 아인자츠그루펜 부대원들이 처형 트라우마로 시달리게 되자, 대량학살 수용소에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가스실에서 죽은 동료 유대인을 처리하게 만든 일이 생각났다. 대량학살의 원조였던 공중폭격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어떤 방식의 전쟁도 우리 세대에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핵무장이니 무력통일 운운하는 환자들의 발언은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월에는 쉬엄쉬엄 가자. 특히 재미난 소설을 집중적으로 읽을 것이다. 그렇다면 추리 소설이 제격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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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2-07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새해 인사가 늦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2019년 되세요!^^:)

레삭매냐 2019-02-07 13: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바로 방문해서
메리 설날 남겼답니다 헷 :>

페크(pek0501) 2019-02-14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권 독서에 기죽고 갑니다. (오늘밤 늦게까지 책 봐야지~~:혼잣말...)

 

[영화읽기] 알리타 배틀에인절 / 로베르트 로드리게스

관람일시 및 장소 : 인천 아시아드 롯데시네마 14:00

 

설날에는 딱히 할 것도, 갈 곳도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갔다. 항상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인간이 선택한 영화는 <알리타 배틀에인절>이었다. 러닝타임 두어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일본 3대 사이버펑크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총몽>을 실사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를 실사로 만들기 위해 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던가. 연출은 자신의 피를 팔아 독립영화를 제작한 영화매니아 중의 매니아라고 할 수 있는 로베르트 로드리게스가 맡았다. 특수효과는 아바타님이 맡았다고 하는데, 스칼릿 요한센도 구하지 못한 <공각기동대>의 위업을 과연 <알리타>가 해낼지 궁금했다.

 

영화는 대만족이었다. 영화 <엘리시움><업사이드 다운>의 두 개로 나뉜 세계라는 구조를 떠올리는 자렘으로 가고자 하는 고철도시에 사는 군상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300년 전, 대추락(The Fall) 이후 고철도시(아이언 시티)와 배드랜드를 지배하는 자렘의 존재는 천국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고철도시의 모두가 가보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갈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다.

 

무료로 사이보그들을 치료해 주는 닥터 다이슨 이드는 어느날 자렘에서 떨어지는 고철더미 속에서 알리타의 코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알리타에게 자신의 죽은 딸 이름을 그대로 붙여주고,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들어 놓았던 바디를 알리타에게 준다. 닥터 이드의 이미지는 닥터 프랑켄슈타인이자 자상한 아버지의 그것을 따른다. 로드리게스 감독의 연출은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는 동시에 특별한 재조립의 과정을 거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만화 <총몽>을 보기 시작했는데, 원작의 시간구성을 따르지 않고 제작진은 그들만의 유니크한 <배틀 에인절>을 만들어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배틀 에인절 알리타는 화성에서 자렘을 정복하러 온 광전사(버저커) 부대의 일원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야 했고, 자신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닥터 이드가 헌터워리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의 밤사냥을 미행했다가 비로소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히게 되는 빌런도 만나게 된다.

 

원작에서는 헌터워리어 등록을 마친 알리타가 헌터워리어들의 소굴인 <캔자스> 바에서 실력발휘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은 명백하게 통과의례의 과정이다. 그리고 감독은 원작의 중반에 등장하는 모터볼경기도 적절하게 조합해서 영화의 속도감을 높인다. 오락영화라면 모름지기 속도감 넘치는 볼거리가 중요하지 않은가. 시속 300KM 달리면서 모터볼을 낚아채는 경기야말로 영화팬들을 매혹시키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영화 속에서 휴고와 사랑에 빠진 알리타가 휴고에게 자신의 소중한 심장을 꺼내주면서 돈으로 바꿔 자렘으로 올라 가라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You are the most human I've ever met"이라는 대사도 멋지더라. 문득 다분히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의식한 대사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원작의 전개와 좀 다른 점 중에 특이할 만한 캐릭터는 바로 자렘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노바와 닥터 이드의 전 부인인 닥터 쉬렌(제니퍼 코널리 분)이었다. 노바는 에드워드 노턴으로 보이는데, 이거 꼭 속편을 만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감독은 흥행에 성공하면 속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는데 꼭 만들어 주시길.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이만 접어야겠다. 대단한 영화였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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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2-07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통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보니 어떤 영화가 개봉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는데, 이 영화 느므 땡기는데요! 덕분에 좋은 영화 알게 되었습니다! 만화 <총몽>도 보고싶네요! ^^

레삭매냐 2019-02-07 09:55   좋아요 1 | URL
제가 영화 만화 모두 보니 역시나 원작이 뛰어납니다.
그나저나 극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던
데, 아이들 데리고 볼만한 영화는 아닌 듯...

<극한직업>이 이번 명절 최대 수혜자라고 하던데
아직 못보았네요. 본 사람들은 두 번이라도 볼 기세
더라구요 ㅋㅋㅋ

coolcat329 2019-02-07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어제 봤는데...그냥 뭐. 멋지다! 진짜 멋지다! 이 말 밖엔 안 나오더라구요

레삭매냐 2019-02-07 19:17   좋아요 0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흥행도 저패니메이션 리메이크의 저주
를 뽀사길 바랍니다.

감독은 속히 속편 제작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

coolcat329 2019-02-07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속편이 너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