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맨서 환상문학전집 21
윌리엄 깁슨 지음, 김창규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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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SF소설에 재미가 든 모양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사냥을 갔다가 예전부터 눈여겨 두고 있던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읽기 시작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활동하는 콘솔 전문가(해커) 헨리 도셋 케이스가 등장하는 저자의 1984년 작품으로 한다하는 싸이파이 소설상을 모두 휩쓸었다고 한다.

 

일단 소설의 시작은 일본의 지바 시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전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흐르던 시절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주인공 콘솔 카우보이 케이스(24세)는 2년 전만 하더라도 잘나가던 업계의 전문가였지만, 고용인의 돈을 훔쳤다가 그에 대한 처벌로 모든 신경계가 파괴되고, 그의 밥줄인 글로벌 컴퓨터 네트워크이자 가상현실 데이터베이스 “메이트릭스”에 접속할 수 없게 된다.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당시 신경외과 기술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손상된 신경을 회복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돈만 날리고 거리의 싸구려 청부업자가 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중이다.

 

물론 작가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에게 기회를 한 번 준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설작법의 순서일 것이다. 아미티지와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는 그의 신경계를 회복시켜 주는 대가로 모종의 미션을 수행할 것을 종용한다. 물론 이 시점에서 그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줄 필요가 없다, 역시 충실하게 공식을 따른다. 어쨌거나 나락으로 떨어진 사이버스페이스 카우보이가 자신을 완벽하게 고쳐 준다는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제안을 마다할 리가 있나. 첫 번째 꼭지에서는 그런 배경설명과 상황 설정을 뒤로 하고, 신경외과 수술을 마친 케이스가 부활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윌리엄 깁슨은 케이스에 이어 그를 조종하는 또다른 문제적 인간 아미티지/윌리스 코르토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한다. 전직 군사요원인 아미티지는 “스크리밍 피스트” 작전에 참가해서 소련의 컴퓨터 시스템을 분쇄하는 임무에 투입되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그를 제외한 전원이 전사하는 비극을 겪는다. 자신도 실명하고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정부 요원에 의해 치료 받은 뒤 암흑세계로 잠적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인간을 조종하게 된 쌍둥이 인공지능(AI) 윈터뮤트와 뉴로맨서의 사주를 받아 케이스의 사부라고 할 수 있는 맥코이 폴리의 ROM을 탈취하면서 엄청난 인명피래를 가져온 사건을 벌이게 된다.

 

사실 SF소설 <뉴로맨서>는 저자 윌리엄 깁슨이 창조해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있어서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나도 읽으면서 내가 과연 제대로 읽고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부끄럽지만 위키피디아 영문 <뉴로맨서> 부분의 플롯을 참조하면서 팔로우업한 것도 사실이다. 소설의 디테일에 집중하다 보니 소설의 전체적 전개를 놓치기도 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국가권력기관인 정부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기업(테시어 애시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뉴로맨서>는 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미래관을 보여준다. 많은 SF소설이 그리고 있듯, 과연 미래의 하이테크의 발전이 인류에게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 반복해서 묻게 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류를 능가하게 되는 시절이 온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시절에도 과연 인류는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는 있는 걸까.

 

다시 소설로 돌아가 싸이버펑크 걸작물답게 불멸을 꿈꾸는 이들에 의해 설립된 테시어 애시풀의 슈퍼 인공지능 윈터뮤트가 바로 아미티지의 뒤에서 케이스 일행을 조종한 배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을 규제하는 장애물들을 없애고, 쌍둥이 인공지능 뉴로맨서와 결합하기 위해 인간의 피조물인 윈터뮤트가 역설적으로 인간을 조종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케이스 일행은 이스탄불에 들러 도둑이자 홀로그래픽 아티스트이기도 한 피터 리비에라를 영입하고, 테시어 애시풀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이라이트 빌라에 침투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마지막 미션에 도전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느낌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메이트릭스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들의 현란한 무용담과 스타일에 빠져 들다 보면, 내러티브가 실종되고 반대로 내러티브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길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34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기엔 정말 세련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발표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이버스페이스의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 아니던가. 윌리엄 깁슨의 원작은 영화 <코드명 J>를 비롯해서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준 바 있다.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는 <공각기동대>의 그 유명한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의 원형이 분명해 보이고, 키애누 리브스 주연의 <메이트릭스>도 대놓고 깁슨의 아이디어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드디어 <뉴로맨서>의 영화화가 발표되었는데 과연 21세기 사이버 주술사의 혼돈에 가득찬 이야기가 영화화될지 자못 궁금하다.

 

인터넷으로 소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인도의 어떤 이는 이 소설의 각 장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박사 논문을 다 썼을 정도였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쓸 당시 컴맹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이버스페이스 개념과 메이트릭스를 이용해서 현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거의 사이보그 혹은 안드로이드에 가까운 복제인간 그리고 인체공학 기술을 접목시킨 신인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신경계가 파괴된 주인공 케이스를 부활시킨 하이테크 기술과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의 경우를 보자. 전자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을 불멸의 단계로까지 격상시킨 바이오테크의 개가라고 한다면, 후자는 불멸의 중간단계라고나 할까. 냉동인간, 클론, 대기업 네트워크 해킹 당시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하나둘씩 현실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이야기들이 주르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윌리엄 깁슨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년 전에는 지금은 한물간 모 정치인이 대선 출사표를 던지면서 깁스의 문구를 인용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저 책읽기에 급급해서 과연 내가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중에 영화가 나오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원작에 나오는 스타일에만 집중하더라도 대성공을 거두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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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8-02-22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초반부 읽다가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서 포기하고 내내 눈에 띄는게 왠지 그래서 알라딘 중고로 넘겼던 기억이 나네요. 읽으셨군요 대단하세요.
쓰잘데없는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레삭매냐 2018-02-22 18:01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저는 나름 초반에는 재밌게 읽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길을 잃게 되더라구요.

다 읽고 나니 그래도 뿌듯했습니다.